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9화 (19/425)

만화공장 (1)

다음날.

아침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박상식의 방으로 들어가니 코를 신나게 골며 잠들어 있다.

억지로 깨웠더니 겨우 정신을 차린다.

“어제, 네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느라 잠을 못 잤어.”

“으이그, 완성해야 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왜 무리를 해?”

“너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역시 천성이 이야기꾼인 모양이다.

이 인간 생각보다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힘들어 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짜는 것에 대해 늘 즐거워하고 있으니.

아무튼 박상식은 잠에서 깨자마자 정신없이 세수를 하고는 간단하게 미리 사둔 빵을 대충 입안에 구겨 넣고는 전상길이라는 만화가의 화실로 나와 같이 출발했다.

화실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강형석 화실이 있던 산동네와 달리 제법 번듯한 시내 근처에 있었다.

화실은 3층 건물의 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우리를 반긴다.

화실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어서 오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 이 사람이 전상길이구나.

텁수룩한 수염과 피곤에 절은 눈을 하고 있다.

“음, 이쪽은 같이 이야기를 만든다는 친군가?”

나를 보고 묻자 머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윤환입니다.”

그가 내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반갑네. 내가 전상길이네.”

그가 중앙에 있는 소파로 우리를 안내했다.

직원 한명이 커피를 우리 앞에다 놓는다.

전상길이 담배를 꺼내더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박상식은 긴장이 되는지 머리를 꾸벅 숙이며 두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받아든다.

곧바로 내게도 내밀었지만 거절했다.

“담배는 끊었습니다.”

“오, 그래? 장하네.”

그렇게 말하고는 그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동안 난 화실을 앉은 채로 둘러본다.

이곳에서 일하는 문하생은 대략 15명 정도인 것 같다. 이렇게나 많은 문하생이 있는걸 보니, 박상식에게 들은 대로 이곳은 대본소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대충 둘러보던 내가 전상길에게 물었다.

“여긴 사람이 많네요.”

그가 머금었던 담배연기를 내 뱉으며 대답했다.

“여기가 전부는 아니야.”

“전부가 아니라고요?”

“여긴 B팀이거든.”

“B팀요?”

“혹시 B팀이 뭔지 아나?”

그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A팀은 만화가가 직접 관리하는 팀이고, B팀은 만화가의 이름으로 나가긴 하지만 따로 데생맨을 두어 만드는 팀이다.

쉽게 말하면 B팀은 만화가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그린다는 거다.

‘지옥의 외인구단’이 대박을 치면서 대본소만화가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던 1983년경부터 3-5권정도로 짧게 완결이 되던 만화책들이 점점 장편화 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고객들은 재미있는 만화들을 빨리 보고 싶다는 열망이 더해졌고, 때문에 많은 양의 만화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전쟁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만화가는 부산 출신의 박용성이었다.

그가 ‘재벌21세’로 대박을 치면서 본격적인 공장만화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한참 전성기 시절 전국에 대본소가 1만개를 넘었고, 그 곳은 한마디로 물량전을 치를 수 있는 만화가들의 전쟁터였다.

이런 만화가들을 속칭 공장장이라고 부르던 그런 때였다.

물론 나로서는 이런 사실을 책으로만 봤지 직접 본건 처음이었다.

아무튼 전상길의 의외라는 듯 나를 본다.

그런데 박상식도 놀랐는지 나를 돌아본다.

“생각보다 만화계 돌아가는 사정에 밝네?”

“뭐, 이리저리 오다가다 주워들은 겁니다.”

“아는 사람이 많나봐.”

그 말에 난 그냥 웃기만 했다.

“아무튼 A팀 사무실은 위층이야.”

나와 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곧 본론을 이야기했다.

“사실은 말이지, 출판사에서 한 달에 15권 이상을 해달라고 해서 좀 바쁘거든. 그런데 자네들도 잘 알다시피 그림이야 뭐, 사람들을 좀 더 뽑으면 해결은 되는데. 스토리는 다르잖아. 제법 이름 있는 애들은 죄다 다른 만화가들이 채가 버려서.”

결국 스토리작가가 필요해서 우리를 불렀다는 거다. 당장 한두 개의 스토리보다, 이곳에서 상주하며 스토리를 계속 써줄 사람 말이다.

대충 대본소용 만화가라는 사실만 알고 찾아오긴 했지만, 이곳도 소속 스토리작가를 원하는 모양이다.

“스토리도 좋은 것 같고, 속도로 빠른 것 같으니까, A팀 스토리작가는 이미 있으니, 자네들은 B팀을 맡아주면 좋겠는데. 어때, 한번 우리랑 같이 작업해 보면 안 되겠나?”

“소속이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스토리작가는 화실 소속이 되는 게 보통인데, 왜 싫어?”

“저희는 프리랜서라서요.”

“아, 그래?”

의외로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뭐, 나도 대충은 들었어. 소속이 거북하면 안 해도 돼. 혹시나 하고 권해본거니까 너무 기분나빠하지는 말게.”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나저나 우리 B팀 스토리 맡아 줄 거지?”

전상길의 말에 곁에 있던 박상식이 나를 돌아본다.

그의 표정이 “어쩌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일단 전상길을 보며 물었다.

“그럼 B팀의 한 달 작업량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뭐, 7권 정도만 해결해주면 돼. 평균 4일에 한권정도.”

완전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이다.

하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생각해내는 건 내 몫이지만, 그건 머릿속에 있고. 쓰는 건 박상식이 하면 된다.

“권당 20만원이면 어때?”

7권이니까, 140만원.

한 사람당, 한 달에 70만원씩이다.

적지 않은 돈이다.

“인기가 좋으면 더 올려주지.”

박상식이 눈치를 본다.

이거 가능한 거냐고 그의 눈빛이 묻고 있다.

이제까지의 작업과는 다르다.

시간에 쫓기면서 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박상식도 부담이 되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 시절 유행하던 방식의 클리셰를 거의 꿰고 있으니, 마음먹으면 하루에 한권이상의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주는 대로만 받아먹는 건 좀 그렇다.

“좀 더 올려주세요.”

“응? 20만원이 적어?”

“네. 죽자 사자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에요. 어쩌면 잠도 제대로 못 잘지 모르고.”

내 말에 전상길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때문에 박상식의 얼굴이 퍼렇게 변하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린다.

난 아무 말 없이 전상길의 얼굴을 바라만 봤다.

그러자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3만원씩 더 주지.”

“그냥 5만원으로 맞춰주세요.”

“······5만원?”

“대신 만족하지 못하시면 원래 주시겠다는 돈보다 적게 받아도 되고요.”

“······.”

전상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권당 5만원을 더 주면 7권, 총 175만원. 한 달에 35만 원 이상 더 줘야 하는 것이다. 35만원이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 말대로 그렇게 하지. 하지만 시간은 반드시 엄수, 그리고 이야기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혹은 대본소에서 반응이 영 시원치 않으면 먹은 돈의 절반을 내놔야 할 거야. 어때? 그래도 받아들이겠나?”

좀 세게 나온다.

만약 저 말대로 된다면 90만원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냥 조용히 20만원만 받으라는 거겠지.

하지만 그런 그의 압력에도 난 그냥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그거 받아들이죠.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하면 반을 내놓고 다음부터도 그 정도씩만 받고 스토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이다.

“네. 대신 한 가지 더 부탁드릴게 있습니다만.”

“뭐야 또 있어? 정말 만만치 않네.”

그가 미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2차 판권에 대한 계약서를 써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2차 판권? 그게 뭐지?”

“지금 판형대로 나가는 대본소용 만화책은 제외하고, 판형이 바뀌는 만화가 출간된다거나, 혹은 영화, 드라마 또는 캐릭터 사업으로 커질 경우 순수입의 30%를 달라는 계약서입니다.”

“뭐?”

전상길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하긴, 이 시절에 이런 계약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을 리 없으니 당연한 반응일거다.

2차 판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시절이니 이런 황당한 주문을 던지는 젊은 놈이 신기하게 보이겠지.

잠시 동안 날 묘한 표정을 바라보던 전상길이 입에 물고 있던 두 번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그리고는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재미있는 제안이네. 그러니까 자네 생각은 이게 대본소용 만화 말고도 추가수익을 더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군.”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느 것도 확신할 수는 없는 게 이 바닥이잖아요.”

그 말을 들은 전상길이 크게 웃었다.

“와아, 나 만화계에 맨몸으로 뛰어들고 수많은 별종들을 봐왔지만 자네처럼 특이한 사람은 처음이야. 하하.”

사실, 지금 이 작품으로 2차 판권이 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말대로 이 바닥에서 어느 구름에 비 올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나중에 쓸데없는 분란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

곁에 있던 박상식은 나와 전상길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줄곧 긴장한 모습이다.

내 입에서 2차 판권이니 뭐니 하는 내용을 처음 들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도 계약서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전상길은 내 제의를 화통하게 받아들였다.

“뭐, 좋아. 그 2차 판권이니 뭐니 하는 게 결국 나에게도 득이 되는 부분이니까, 뭐. 나눠먹도록 하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 자리에서 OK를 한 후 종이 한 장을 가져와 약식 계약서를 작성했다.

대략적인 내용을 적은 후, 박상식과나, 그리고 전상길, 세 사람이 지장을 찍었다.

“배짱이 좋네. 마음에 들어.”

그렇게 말하더니 내 곁에 있던 박상식에게 고개를 돌린다.

“어디서 이런 친구를 구한거야? 정말 복 받았어.”

“그러게요.”

박상식이 수긍한다면 머리를 긁적인다.

“그럼 우리 계약은 된 거지?”

“네.”

“좋아.”

전상길은 되도록 신작은 일주일 안에 들어가 주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선불로 한 사람당 30만원씩 준다. 일종의 관례란다.

“이렇게 큰돈을 너무 선뜻 내 주시는 거 아닙니까?”

“뭐? 그 돈 받고 날라버리면 내가 사람 잘 못 본거고.”

“······.”

이거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충 전상길과의 대화를 끝내고 화실을 나왔다.

버스를 타러 가는 데 박상식이 말이 없다.

아무래도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모양인지 아직 얼떨떨해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박상식이 입을 열었다.

“너, 정말 어디서 그런 거 배웠냐?”

“뭐?”

“2차 판권이니 하는 거 말이야. 난 그런 거 처음 들어서 뭔 얘긴지 처음엔 알아듣지도 못하겠더라.”

“아, 그거?”

“왜 그런 계약서를 만든 거야?”

그가 궁금한지 나를 독촉했다.

“앞으론 단순한 창작뿐만이 아니라 2차 판권이 중요한 시대가 될 거니까.”

“······?”

“스타워즈 알지?”

“어. 당연히 알지.”

“스타워즈 감독 죠지 루카스가 뭘로 돈을 벌었는지 알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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