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7화 (17/425)

당신은 미래를 잃어버린 거야 (2)

순간 당황했다.

설마 눈치를 챈 건가?

평소 말도 없던 애가 느닷없이 내게 처음 꺼낸 질문이 내 정체를 묻는 질문이라니.

하긴,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으니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달리 이 아이는 의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렇게 내게 대놓고 묻고 있는 것이다.

아씨.

내가 오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상관없지만 그건 나중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에 벌써부터 의심까지 받으니 난감한 것이다.

최대한 당황한 심정을 내색하지 않고 표정관리 하면서 느긋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렇게 질문하는 것부터 이상하니까.”

“······.”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지만 묘한 힘이 느껴지는 말투다.

“평소라면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은데?”

“미친년이 지랄하고 있네.”

“······아.”

역시 본체는 그런 캐릭터였구나.

알고 있었다 해도 저런 말을 면전에서 할 수는 없었을 거다.

내가 한숨을 쉬며 피식 웃었다.

“어떻게 알았냐?”

“······뭐?”

“내가 네 오빠가 아니라는 거 말이야. 어떻게 알았냐고.”

“······.”

에라, 모르겠다, 막 나가보는 거지.

그나저나, 얘 지금 당황하는 건가?

분명 의심해서 던진 질문이면서 왜 저렇게 눈알을 데굴거려?

“네 말대로 나 네 오빠가 아니야.”

“지, 진짜······ 로?”

“그렇다니까. 길거리에서 만난 고물상 아저씨에게 받은 박카스를 마셨고, 눈떠보니 여기더라고. 그런데 놀랍게도 말이야, 네 오빠랑 나랑 이름까지 같더라고. 햐, 이게 무슨 인연인지······.”

“······.”

“난 사실 미래인 이거든?”

“······미래?”

“그래에~ 미래. 너 알지? 미래, 21세기.”

“······.”

“거기서 왔어. 솔직히 와서 보니까,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는데. 이것도 적응하고 보니까 살만해. 네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냥 쭉 네 오빠행세하면서 대충 빈대 붙으려 했는데. 이젠 그것도 물 건너갔네.”

아까까지만 해도 의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던 선희가 이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기껏 날 보며 한다는 소리가 이거다.

“미래 언제?”

“방금 말했잖아. 21세기라고.”

“그러니까, 구체적인 년도를 말해봐.”

“흐음, 그건 왜?”

“내가 알고 있는 거랑 비교하려고.”

“네가 알고 있는 거?”

뭐야? 얘 설마 나랑 비슷한 경우인가?

“네가 뭘 알고 있는데?”

최대한 긴장한 감정을 숨기고 물었다.

그런데.

“1999년 9월 9일 9시 9분 9초. 그때 멸망하는 거 아니었어?”

“뭐?”

혹시나 하며 뭔가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내가 한숨을 푹 쉬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거 ‘천년여왕’에 나오는 얘기잖아.”

“······어? 그걸 어떻게?”

‘천년여왕’은 1983년 그러니까 올해 초에 ‘은하철도999’의 후속 작으로 MBC에서 방영한 애니다. 다른 건 몰라도 만화에 대한 지식으로 내게 구라를 치면 안 되지.

“······그, 그럼 2008년 초자력 무기로 세계가 멸망하는······.”

“그건 미래소년코난 서두부분에 나오는 말이고. 또?”

“······.”

“뭐야? 벌써 떨어졌어?”

내가 혀를 쯧쯧 하며 찼다.

그나저나 얘도 참 웃기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농담을 한 것 같지는 않고.

“······그럼 진짜 언제에서 온 건데?”

“구체적으로는 2018년.”

“2018년?”

“그래.”

“그럼 아무 일도 없다고? 3차 세계대전도 안 일어나?”

“얘가 뭔 겁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갑자기 왜 그런 게 일어나.”

처음엔 긴장했는데 어째 나도 대화가 점점 재밌어 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이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얘 정신세계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는데, 이젠 대충 알 것 같다.

그동안 경희가 만화를 좋아한다는 말을 그렇게나 하더니, 얘 정신 속 절반은 만화로 가득 차 있는 모양이다.

“북한하고 전쟁은?”

“평화로워!”

“일본의 야심은?”

“야심은 개뿔, 걔들 상병신 이구만.”

“······.”

“너 도대체 이제까지 무슨 만화를 보며 산거냐?”

“······.”

그때 옥상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경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 여기서 뭐해?”

그 말에 선희가 시선을 피한다.

그 모습을 본 경희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아, 뭐 별거 아니야.”

그런데 뭘 생각했는지 경희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더니 킥킥거린다.

“아, 알겠다.”

“알겠다니. 뭘?”

“선희가 오빠 정체가 수상하다고 했구나? 그래서 또 이러는 거고.”

“또?”

“그래.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던 거 기억 안나?”

나야 모르지. 예전일은.

그나저나 이런 일이 또 있었다는 이건 또 무슨 얘기야.

“왜 몇 년 전에 그때도 오빠가 어느 날 우리한테 용돈을 줬던 적이 있잖아. 그때 선희가 대뜸 ‘우리 오빠 아니지? 정체가 뭐야?’하고 했다가 오빠한테 쥐어 박혔잖아.”

“아.”

“하여간, 얜 가끔가다가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니까. 며칠 전엔 나한테도 진짜 동생을 납치한 외계인 아니냐며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어이가 없다.

만화는 그렇다 치더라고 나름 뭔가를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뭔가 허무한 결말이라 오히려 김이 빠지는 기분이다.

“자 빨리 내려가자. 엄마가 옥상에서 그만 떠들고 빨리 내려와서 밥 먹으래.”

“얘기가 들리디?”

“들리긴, 엄마가 두 사람 올라가는 거 보고 그런 거지. 그나저나 참나, 너도 적당히 좀 해!”

그렇게 말하며 선희에게 다가가더니 등짝을 찰싹 때린다.

“아!”

“아는 무슨, 비싼 쌀밥 먹고 헛소리 좀 하지 마.”

“너 내 동생 아니야.”

“그래그래, 아니니까 빨리 내려가자. 오빠도 빨리 내려와. 날도 추운데.”

“······그래. 알았다.”

내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선희를 끌고 계단 아래로 내려간다.

“진짜, 넌 왜 쓸데없이 오빠를 건드려? 이제 사람이 되나하며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너 또 예전에 그 놈팡이를 보고 싶어?”

“아니.”

“그럼 좀 평소처럼 입 좀 다물어.”

“······.”

쌍둥이들이 내려가면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난 그 모습을 보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젠장, 10년 감수했네.”

***

요 며칠간 스토리 때문에 강형석에게서 연락이 자주 왔다.

때문에 담뱃가게 주인아줌마도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총각, 이렇게 전화 자주 오면 나도 곤란해. 우리 아저씨도 막 잔소리 하고.”

“미안해요. 아줌마.”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받으러 박상식이 담뱃가게로 달려갔다.

잠시 후 돌아온 박상식의 얼굴이 싱글벙글 이다.

“네 말대로야. 원고료 더 줄 테니까, 빨리 갖다 달래. 내일 중으로 가져오면 권당 22만원 준댄다.”

“그 양반 지금 출판사 독촉을 엄청 받고 있을 거야. 받아낼 수 있을 건 최대한 받아내야지.”

“그나저나, 이래도 괜찮은 거 맞냐? 이러다 우리 완전히 눈 밖에 나는 거 아니야?”

“괜찮아. 지금 아쉬운 건 저 사람이야. 그리고 형도 알아둬야 할 게 있어.”

“그게 뭔데?”

“선배니, 아는 형이니 하는 사람들 눈치 너무 보면서 끌려 다니지 마. 그래봐야 호구밖에 안 돼.”

그 말에 박상식도 잠시 머뭇거린다. 그도 솔직히 스토리작가가 부당하게 대접받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만화에 있어서 스토리는 절대적인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야기를 어떻게 연출하느냐도 중요하다 그건 정말 만화가의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로 표현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만드냐에 따라 명작이 되기도 하고 졸작이 되기도 하는 거다.

그리고 이 시절에 나와서 후대까지 명작으로 소문난 만화 중 많은 수가 스토리작가에 의해 탄생되었음에도 만화책 어디에도 스토리 작가의 이름 따윈 적혀있지 않다.

그냥, 만화가 이름 하나만 덩그러니 적혀있을 뿐이다.

나중에 대박이 나서 증쇄에 들어갈 때도 적당한 돈으로 합의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고 만화가 혼자 독식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양심적인 만화가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튼, 박상식도 이미 경험했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앞으로 어쩔 생각인데?”

“나도 몰라. 지금은 그냥 돈 말고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집중할 생각이다. 내가 혁명을 일으켜야 할 이유도 주체도 아니다. 비록 문제가 많은 시절이지만, 그런 것 보단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가족이니까.

언젠가 돌아가게 될 때가 되더라고 그때까진 이곳의 가족이 내 진짜 가족이다.

그리고 이틀 후 박상식이 스토리 노트를 가지고 화실을 다녀왔다.

“하루 늦었다고 난리더라.”

“그래서 어쨌는데?”

“어쩌긴, 스토리가 그냥 그렇게 쑥 나오냐? 우리도 몇날며칠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고민해서 겨우 완성했다. 그렇게 말했지. 그러니까 코를 실룩거리기는 하던데, 앞에서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하더라. 솔직히 자기도 스토리 고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래?”

“어. 그리고 참 이거.”

그렇게 말하며 봉투를 내민다.

44만원이다.

이번엔 이야기가 완결까지 4권이지만, 스토리는 두 권 분량, 즉 절반만 넘겼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 절반만 넘기니까, 더 안달을 하더라. 그리고 웬만하면 빨리 완성해 달래. 그래서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했지.”

“잘했어.”

“자, 일단 이건 네 몫.”

절반인 22만원을 받았다.

전에 받은 돈 24만원과 이번 22만원, 총 46만원이다.

이시절의 가치가 대략 10배쯤이라고 생각하면 460만 원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엄청 큰돈이네.

내가 다니던 공장 두 달 치 월급이니 결코 작은 돈은 아니다.

“와, 이렇게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다니, 정말 네 덕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일거야.”

“뭐, 대부분 형이 구상한 건데 뭐.”

“그래도, 재미난 부분 아이디어는 대부분 네가 만든 거잖아. 넌 정말 천재야, 천재.”

그리고 일주일후에 다시 원고를 가져갔을 땐 권당 25만원을 받았다. 두 권에 50만원, 한 사람당 한권 값인 25만원씩 나눴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동안 번 돈이 한 사람당 71만원이었다.

박상식은 곧바로 집에 전화를 놓았다.

처음 안 사실인데 전화를 집에 놓기 위해서는 보증금이라는 걸 걸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액수도 결코 작지 않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전화보급 정책으로 예전보다 많이 내려갔다고 하지만, 내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가격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앞집 아줌마에게 저런 눈치를 받으며 전화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니 꼭 해야 할 일이긴 했다.

*

“더 빨리요?”

“그래. 스토리는 그냥 머리만 굴리면 되니까 금방 쓰잖아. 그리고 돈도 조금 깎았으면 하는데.”

강형석에게서부터 아침부터 오라는 연락을 받고 찾아왔더니 만나자마자 이런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솔직히, 너희들이 받아가는 돈이 적지 않은 건 인정하잖아. 나도 화실 식구 늘리고 좀 어려워서 그래. 나중에 돈 더 벌면 더 챙겨 줄 테니까, 이해하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받아가는 돈이 적지 않은 건 당연히 우리가 그만큼 빠른 시간 만에 작업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실 식구를 늘린 건 본인이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문제를 우리에게 얘기하며 더 빨리 쓰라고 하면서도, 원고료는 오히려 깎겠다니.

누굴 호구로 아나.

“그렇겠네요.”

그런데 박상식은 저런 되지도 않는 소리에 벌써 마음이 흔들린 것인지 강형석을 동정하고 있다.

지금 책은 충분히 팔리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만화방에서도 인기가 제법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분명 돈이 있는데 저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돈독이 제대로 올랐는지, 아니면 번 돈으로 딴 짓을 하는지는 모른다. 아니 관심 없다.

제대로 값을 치르지 않겠다면 거래는 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그러니까 이해해 주는 거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죄송합니다만, 그건 곤란합니다.”

내가 박상식의 말을 중간에 끊고 들어가자 강형석이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곧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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