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3화 (13/425)
  • 빨대는 사양한다 (1)

    난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바로 아래층 박상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째 박상식이 보이지 않는다.

    맛있는 거 해준다더니 아마도 근처 시장에라도 간 모양이다.

    “별거 없으면 라면도 괜찮은데.”

    뭘 저렇게 올 때마다 신경을 쓰는지.

    물론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게 신경 쓴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그런데 방 한가운데 밥상이 있고, 그 위에 노트가 놓여있는 게 보인다.

    강형석 만화가에게 속편 제의를 받고 나서 신작에 대한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되도록 본인이 직접 이야기를 떠올리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곰탱이시리즈의 경우, 모든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들어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순서대로 꺼낼 생각은 없었다.

    박상식이 떠올리는 이야기에 되도록 집중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원작이고 나발이고 후다닥 원작 이야기를 그것도 혼자 뽑아내,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그건 나 자신을 결국 파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덕후로서 원작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하면 웃기겠지만. 뭐, 어쨌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거다.

    어쨌건 박상식은 어제 나와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노트를 내용을 살폈다.

    전체적인 얼개만 대충 잡혀있지만 그래도 기억에 있는 내용과 유사하다.

    물론 만화책으로 나왔던 내용에 비해 허술한 것도 그렇고 결론이 좀 다르게 나긴 하지만, 뭐. 이정도면 약간의 수정만으로도 원작의 이야기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뭔가 사온 모양이다.

    방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박상식이 얼굴을 내민다.

    “생선 사왔어. 찌개 해줄게.”

    그렇게 말하더니 내가 자신의 노트를 보고 있는 걸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거 봤냐?”

    “어.”

    내 대답에 그가 약간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어때?”

    “글쎄, 이것만으로는 알 수 없지.”

    “그렇겠지?”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더니 곧바로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음식을 시작한다.

    나름 고심을 해서 만들었을 텐데.

    내게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싶었을 테지만, 지금 이대로는 그냥 아무런 내용이 없는 그냥 그런 이야기에 불과한 건 사실이니까.

    잠시 후 박상식과 점심을 먹으면서 그가 만들어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는 확실히 이야기꾼으로서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비록 꼼꼼함은 부족해도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재능은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집중력도 상당했다.

    이런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결국 대박 작을 만들어 낸 것이겠지.

    난 그저 그의 말을 받아주며 그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놓친 부분만 꼭 집어서 한마디씩 던질 뿐이었다.

    “아니지, 그렇게 단숨에 넘어가면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잖아. 그리고 빌딩 주인 아들 성격에 그런 일을 겪고 가만히 있겠어?”

    “아, 그렇구나. 그놈을 잊고 있었네. 그런 망나니가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지. 그럼 어떻게 방해를 하려나?”

    잠시 그가 고민에 빠진다.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냥 조용히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어쨌건 그로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단번에 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참동안을 고민하던 그가 몇 번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머리를 푹 숙인다. 그리고는 피곤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내게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쉽지 않네.”

    “그렇지 뭐.”

    “그래도 네가 도와줘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이 진행되었어. 거기다 어설픈 상황은 칼같이 잘 집어내니까 문제점도 빨리 찾았어. 확실히 넌 재능이 있다야.”

    “전체적인 이야기는 형이 만들어내잖아.”

    “에이, 그래봐야 뜬구름이지. 네가 있으니까 이렇게 이야기가 생명을 얻는 거고.”

    따지고 보면 자신이 거의 다 만들었던 이야기지만 지금으로서는 내 역할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원작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보조만 할 생각이었다. 괜히 의욕만 앞서서 원작과 동떨어진 전개를 돕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고,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도 없다.

    아무튼 그는 나와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적어나가며 이야기를 다시 정리하게 시작했다. 난 그의 모습을 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뭐야?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건가?

    어느새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간다.

    이거, 박상식이 과도한 몰입을 했네, 어쨌네 하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도 이 양반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하자. 시간도 많이 된 것 같고.”

    그도 시간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어?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 간식이라도 사올까?”

    “아니, 엄마 돌아오셨을 거야.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그럴래?”

    그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은 좀 더 나와 작업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럼 간다.”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오늘 수고했어.”

    “어.”

    난 박상식의 방을 빠져나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

    쌍둥이들에게 줄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운 호떡포장마차를 발견했다. 그러자 낮에 주인아줌마에게서 호떡 냄새가 났던 게 생각난다.

    그래, 너로 정했다.

    “호떡 얼마에요?”

    “세 개 백 원요.”

    “2백 원어치 주세요.”

    나는 호떡 여섯 개를 신문지를 접어 만든 봉투에 담아 집 대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집주인 아줌마가 내려오다 나와 다시 마주친 것이다.

    주인아줌마의 시선이 나와 닿았다.

    내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그, 그래.”

    나는 호떡봉투를 그녀 근처로 향하게 한 뒤 스쳐 지나갔다.

    “······.”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도 아줌마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대충 알만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우리 방으로 걸어 갈 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부엌에서 반갑게 맞이한다.

    “아들, 일찍 들어오네.”

    부엌에서 엄마랑 같이 음식 준비를 하던 경희가 내손에 들린 것을 보더니 깜짝 놀란다.

    “어? 그거 뭐야?”

    “호떡.”

    “와, 정말?”

    그러면서 내 손에 있던 호떡봉투를 잽싸게 받아간다.

    “와, 여섯 개네? 하나씩 먹어도 되는 거지?”

    “엄마랑 난 하나씩이면 되니까, 너희들 두 개씩 먹어라.”

    “아싸, 조았으!”

    그렇게 말하더니 호떡 두 개를 접시에 남겨두고는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다.

    “야, 선희야. 너 좋아하는 호떡이야. 오빠가 사왔어.”

    평소처럼 선희는 방청소를 하는 모양이다.

    “호떡?”

    “그래. 한사람이 두 개씩. 우리가 이제 드디어 중산층에 들어가는 모양이야. 요즘 왜 이렇게 먹을 복이 터졌는지 몰라. 호호흥.”

    그렇게 말하며 괴상하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여튼 쟨, 정말.”

    경희 목소리를 들은 엄마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날 보며 말한다.

    “너 쓰라니까. 이런 걸 왜 사와?”

    “엄마, 이거.”

    내가 7만원을 내밀었다.

    그것을 본 엄마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이, 이게 뭐니?”

    “돈.”

    “아니, 그게 아니라. 도대체 이게 어디서 난 돈이야? 혹시 고물상에서?”

    “고물상이랑은 상관없어.”

    “그럼, 도대체······?”

    뭔가 걱정하는 눈빛이다. 혹시 내가 나쁜 일을 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하는 듯한 표정.

    이런 상황에서 굳이 변명할 필요는 없다. 일만 복잡해 질 뿐이다.

    “아랫집에 사는 형이랑 스토리를 쓰고 있어. 그래서 그걸로 받은 돈.”

    “스, 스토······? 그게 뭐니?”

    “지금 상식이 형이 만화가들에게 이야기를 써서 팔고 있거든 그거 도와주고 받은 돈이라고.”

    “상식이? 그게 누구니?”

    “아래층에 사는 형.”

    “입구 쪽 방에 사는 그 총각 말이니?”

    “어.”

    “그럼, 그 총각이랑 스토······, 그 뭐라는 일을 같이 한다는 거니?”

    표정을 보니 쉽게 이해가 되는 눈치는 아니다.

    “어. 그리고 엄마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아. 내가 바보도 아니고, 나중엔 차차 알게 될 테니까 너무 걱정 않으셔도 돼.”

    그 말에 엄마도 스스로 무안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힌다.

    “얜, 누가 걱정을 했다고 그러니?”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 7만원을 내려다본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로 받아도 되는 거니? 네가 고생해서 번 돈인데.”

    “고생은 무슨, 그리고 그동안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정도로 그래.”

    나 때문에 라는 말 때문일까, 순간 엄마의 눈동자가 떨린다.

    아들에게는 이리도 약한 사람이다.

    엄마의 눈에 물기가 일자 깜짝 놀란 내가 서둘러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그 때문에 엄마가 흡 하며 코를 삼킨다. 그리고 눈물을 서둘러 닦아내고는 내게 물었다.

    “부탁?”

    “쌍둥이들 고등학교에 보내줘. 학비는 내가 어떻게든 책임질 테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책임진다는 거니. 말도 안 돼.”

    “아들 믿어?”

    “······그걸 말이라고 하니? 당연히 믿지.”

    “그럼 이번 일은 내게 맡겨보면 어때?”

    “······그렇지만.”

    “그냥 믿어봐.”

    “······.”

    순간 엄마가 말을 잇지 못한다.

    충격이 제법 심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안 그래?”

    “윤환아.”

    “내가 반드시 해결할 테니까, 날 믿어봐. 이제까지 믿음을 주지 못했지만, 앞으론 다를 거야.”

    엄마도 쌍둥이들을 그냥 중학교만 마치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는 건 눈치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현실적 문제가 가장 컸을 것이다.

    돈.

    결국 돈 때문이다.

    사실 겨우 7만원이라도 엄마에게 내민 건 지금이 10월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진로를 확정해야 한다.

    돈이야 어떻게든 마련하면 된다. 하지만, 시간을 놓치면 영영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부란 다 때가 있는 거 아닌가.

    엄마가 날 바라본다.

    그리고는 곧 머리를 끄덕인다.

    “그래. 나도 힘내볼게. 네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엄마가 뒷짐이나 쥐고 있으면 곤란하잖니.”

    엄마가 옅은 미소를 짓는다.

    휴.

    일단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오래 끄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자자, 밥이나 빨리 주셔. 나 배고프니까.”

    “으, 으응.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금방 차려줄 테니까. 넌 먼저 씻으렴.”

    “응.”

    서둘러 수건을 들고 아래 수돗가로 내려가 씻고 돌아와서는 방으로 들어갔다.

    쌍둥이들이 아직 호떡을 들고 맛나게 먹고 있다.

    그런데 두 녀석 다 호떡 테두리를 조금씩 잘라 갉아 먹는 게 무슨 배추애벌레 같다.

    “왜 그렇게 깨작거려? 먹기 싫어?”

    “아까우니까 그렇지.”

    “앞으론 오빠가 자주 사줄 테니까.”

    “정말?”

    “그래.”

    “오빠, 그럼 질문!”

    경희가 갑자기 손을 들고 말했다.

    “말해.”

    “혹시, 오늘도 고물상에서 일했어?”

    그놈의 고물상은 진짜.

    “아니, 아랫집 상식이 형이랑 스토리 쓰고 받은 돈이야.”

    “스토리? 무슨 스토리?”

    “만화.”

    그 순간 멍한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리던 선희가 먹는 움직임을 딱 멈추고는 날 바라본다.

    저 녀석, 눈이 왜 저렇게 부담스럽게 반짝거려?

    경희는 내 말에 즉각 반응했다.

    “만화? 아래층 그 아저씨. 만화가야?”

    “만화가는 아니고. 스토리작가. 그런데 너도 상식이 형 아냐?”

    “당연히 알지. 오빠 기억 안나? 저번에도 몇 번 우리 같이 있을 때 그 아저씨가 보름달 사줬잖아.”

    “보름달? 그게 뭐야?”

    “아이참, 빵 몰라? 보름달 빵? 달아 달아~ 카스테라 보름 빵!”

    광고를 흉내 내는 모양인지 노래까지 부른다.

    나야 당연히 알 리 없지만, 그래도 그냥 고개만이라도 끄덕였다.

    그러자 경희의 수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 아저씨. 만화 그리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만화가가 아니라 스토리작가. 말을 하면 제대로 이해를 해야지.”

    “아참, 스토리작가. 그런데 그 아저씨랑 같이 일을 했다고? 오빠가? 오빠 그 아저씨 엄청 싫어하지 않았어?”

    “내가 그랬나?”

    하긴 첫인상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데다가 내 본체 성격이 딱히 좋았던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때 엄마가 문을 열고 밥상을 방으로 들이자 선희가 그것을 받아 방 중앙으로 가져온다. 쌍둥이들은 먹던 호떡을 구석에 잘 놓아 둔 채 식사준비를 마무리 했다.

    곧 모두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난 쌍둥이들을 보며 말했다.

    “아까, 오빠가 일 시작했다는 얘기했지?”

    “어, 그런데 왜?”

    “······?”

    두 녀석이 내 얼굴을 멀뚱히 바라본다.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나 싶은 표정이다.

    “너희들 고등학교 가라.”

    그 순간 정적이 흐른다.

    엄마는 이미 나랑 이야기를 끝낸 상태라 아무 말 없이 그냥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런데 쌍둥이들은 충격이 좀 심했는지 숟가락을 든 채로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상태다.

    그러더니 곧 경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엄마를 돌아보더니 다시 날 본다.

    “고, 고등학교? 정말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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