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족 (1)
내 표정 때문일까.
움찔한 여자애가 나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난감하다.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당황한 탓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똑같이 생긴 여자애가 한명 더 보인다.
쌍둥이?
그러고 보니 저 얼굴들 기억이 난다.
액자사진 속 쌍둥이들이구나.
그때 먼저 문을 열었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얼레? 별일이네,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집에 다 있어?”
“······.”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며 눈알을 굴렸다.
뭔가 대답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오히려 더 의심하지 않을까?
긴장감으로 목이 뻣뻣해지는 기분이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여자애를 바라본다.
그런 내 모습이 여전히 이상한지 잠시 갸웃거리긴 했지만 곧 방안으로 들어온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것인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있다.
같이 들어온 쌍둥이 여자애도 같은 모양의 가방이다.
그런데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아 이 시대.
그리고 보니 몇 년간 잠시였지만 교복자율화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떠오른다.
이 와중에도 오만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그때였다.
“밥 차려줘?”
먼저 입을 열었던 여자애가 내게 말했다.
뒤따라 들어온 다른 여자애는 별말 없이 그냥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오빠, 밥 먹을 거냐고.”
오빠?
역시, 이 아이는 나를 자신의 친오빠로 알고 있는 게 확실하다.
일단 외모 때문에 대충 위기는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가 문제다.
원래 있던 본체 인간.
머리스타일이라든가 외모도 약간 변한 느낌이니까.
아, 젠장. 이렇게 말하니까 어째 내가 복제인간이라도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더럽다.
아무튼 본체 쪽 녀석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으니 행동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잡다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어선지 여자애가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어휴, 대답을 바란 내가 바보지.”
뭐야, 대충 이러면 되는 건가?
본체 놈 성격이 별로 말이 없는 시크한 성격이었던가?
“나중에 또 갑자기 밥 차려 달라고 소리나 치지 마. 알겠지.”
“······.”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고 버텨본다.
그랬더니 여자애가 콧방귀를 살짝 뀐다. 그러고는 뒤따라 들어왔던 여자애를 따라 다락방으로 올라가려하다 다시 멈칫했다.
여자애 시선이 다시 내게 향한다.
“······?”
뭔가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내게서 뭔가를 발견한 걸까.
여자애가 내게 후다닥 다가와서는 얼굴을 쭉 내밀더니 버럭 소리친다.
“어? 머리 그거 뭐야! 반창고네. 많이 다쳤어? 어?”
아참, 내 이마의 상처를 봤구나.
하지만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얼떨결에 대답해 버렸다.
“아니. 상처는 별거 없어.”
그 말을 들은 여자애가 콧등을 잠시 찌푸리더니 혀를 툭 찬다.
“쯧쯧, 도대체 또 무슨 말썽을 친 거야? 하여튼 오빠는 진짜. 어쨌건 엄마 돌아오면 또 난리 나겠네. 오빠 다쳤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 테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곧바로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후우.
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얼떨결에 대답하긴 했지만 별달리 크게 의심하는 눈초리는 아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의심하는 쪽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쭉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조금 다른 행동을 했다고 해서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 도대체 몇이나 되겠나.
어쩌면 생각보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은 해야겠지만 그래도 대충 얼버무린다면 그럭저럭 넘어갈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진다.
그리고 다시 벽에 붙은 액자 속 사진을 살폈다.
역시 나랑 같이 찍은 쌍둥이 애들이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사진속 보다 조금 더 성장한 느낌이라는 것 정도.
그다음 다시 거울을 살펴본다.
평소 거울을 자주 안 보는 성격이지만, 오늘은 좀 제대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디보자, 코 밑에 있던 작은 점이······, 역시 없구나.
턱에 있던 만성 뾰루지도······, 사라졌고.
외모는 분명 내가 맞는데, 원래의 내가 아니라는 건 일단 맞는 것 같다.
내가 아닌 상황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아야 정상인데, 생각보다는 별 감정이 일지 않는다.
이곳에선 내 원래의 얼굴보다는 빌붙어야 할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이 와중에도 먹는 걸 걱정하다니, 어쩐지 내가 어쩐지 한심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목구멍이 포도청인거지.
그나저나 이곳은 정말 1983년의 과거일까?
아니면 1983년이라는 설정의 다른 세상인 걸까?
확실히 경악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인데, 정작 나는 어쩐지 무덤덤하기만 하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 번 충격을 받은 덕분에 어쩌면 감각이 무뎌졌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그나마 이곳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만약 이런 동떨어진 세상에서 가족도 없이 혈혈단신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큰 문제가 될 테니까.
어쨌건 밥은 먹을 수 있겠네, 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이런 내 모습, 진짜 한심하긴 하네.
그렇게 잠시 멍한 모습으로 있는데, 그새 가벼운 평상복(무지 촌스러운)으로 갈아입은 여자애들이 다락문을 열고 내려왔다.
먼저 내려온 애는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방바닥에 떨어져있는 무언가를 번쩍 들어올린다. 그리고는 그것을 느닷없이 내 쪽으로 척 하니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피를 닦았던 수건이다.
“엄마야! 이거 뭐야?”
다른 여자애가 수건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더니 이내 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오빠, 크게 다친 거야?”
“아, 이거.”
난 다시 반창고가 붙어있는 이마를 가리켰다.
“도대체 얼마나 이렇게 피범벅이래? 으음. 보기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머리에 붙은 반창고의 크기가 작으니 의아할 만도 하다.
나 역시도 이해가 안 될 정도였으니.
그런데 반창고가 붙어있는 곳을 보며 손을 멈칫멈칫하다가 만다.
차마 상처를 들춰볼 용기는 없는 모양이다.
수다를 심하게 떠는 모습과 달리 겁은 많은 모양이다.
“······.”
“암튼 적당히 좀 해. 엄마 알면 난리날 거야.”
계속 잔소리를 던지던 여자애가 한심하다는 듯 다시 날 본다.
그런데 이 둘, 쌍둥이인데도 뭔가 완전히 다르다.
지금껏 줄곧 떠들어 댔던 쪽이랑 아까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애.
생긴 것만 똑같을 뿐 극명하게 다른 느낌이다.
피 묻은 수건을 들고 있던 애는 곧 방문을 열고나간 뒤 부엌에서 빨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른 걸레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곧바로 방청소를 시작했다.
내가보기엔 이미 과할정도로 깨끗해 보이는 방이다. 그런데도 걸레로 구석구석 꼼꼼하게 청소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데 그런 내 모습이 이상한지 수다스럽던 애가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나저나 어쩐지 오늘 좀 많이 이상하네?”
콕 집어서 얘기하긴 어렵지만, 어쨌건 뭔가 평상시와 다르다는 걸 느낀 거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이니,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쓸데없이 말했다가 오히려 더 이상한 상황으로 몰릴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무작정 걸리지 않고 계속 지낼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그때 문밖에서 웬 소리가 들린다.
“윤환이 엄마! 윤환이 엄마 있어?”
어? 윤환이 엄마?
내가 윤환인데.
설마 여기서도 내 이름이 이윤환인건가?
그때 바깥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방문을 툭툭 두드리나 싶더니 문이 벌컥 열린다.
그러더니 성격 있어 보이는 아줌마가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그래, 너희들 있었구나. 엄마는?”
“아직 퇴근 안하셨는데요.”
“아니, 도대체 밀린 방세는 언제 줄 참이야? 정말.”
짜증이 잔뜩 묻어나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리더니 인상을 쓴다.
“저기, 안 그래도 엄마가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실 수 없냐고······.”
“그렇게 기다린 게 벌써 얼마니? 방세가 네 달이나 밀렸잖아.”
그 말에 두 여자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 진짜. 이젠 깔 보증금도 없어. 그런데 이렇게 방세를 주지 않으면 어쩌란 거야? 엄마 오시면 전해. 오늘 당장 안주면 3일안에 방 비우라고.”
“주인아줌마.”
“시끄러. 이번엔 진짜 안 돼. 우리 바깥양반이 마음이 약해서 이제까진 어쩔 수 없이 참아줬지만 더 이상은 안 돼!”
“제발요, 아줌마. 오늘 엄마랑 언니가 퇴근할 때까지만 이라도 좀 기다려 주세요.”
“기다려서 뭐 어쩌라고? 그래봐야 또 미안하다는 말만 할 거잖아. 이렇게 벌써 몇 달을 보냈어? 그러니까 오늘은 절대 못 봐줘. 이건 그냥 통보니까, 너희들이 엄마 오면 잘 말해라.”
“아줌마아!”
“시끄러워!”
수다스럽던 여자애가 주인아줌마라는 여자에게 매달렸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대충 대화만 들어도 곤란한 상황.
하지만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만, 이곳에서 잠시나마 가족의 일원으로 묻어 지내다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는데, 이곳 사정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런데 그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곧바로 후다닥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어? 어디 갔지?”
방에 있던 만화잡지 보물성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있던 보물성······.”
책의 행방을 물으려하는데 문 앞에서 사정하는 여자애를 뒤에서 말없이 보고 있는 여자애 손에 보물성이 들려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는 잽싸게 여자애에게 다가가 그것을 낚아챘다.
덕분에 무뚝뚝이 여자애가 살짝 놀란 얼굴로 날 돌아본다.
“아 미안, 잠시만.”
그렇게 말하고는 휘리릭 넘겨본다.
혹시나 했지만 다행이 잘 있다.
그것을 곧바로 집어 들고는 다시 여자애에게 만화책을 돌려줬다.
그 와중에도 수다쟁이 여자애는 아줌마를 붙들고 통 사정을 하고 있었다.
“아줌마, 제발요.”
“이거 안 놔! 너희 가족도 참 징하지. 아무리 너희 아빠랑 우리 바깥양반이 친구사이라고 해도 너무하잖아. 양심이 있으면 나가주는 게 도리가 맞고.”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정이 이래서 그래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그러니까, 안된다고.”
부엌에서 바깥문으로 나가려는 아줌마를 붙들고 애걸복걸하는 여자애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만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냉랭한 음성으로 아줌마를 불렀다.
“저기, 아줌마.”
“왜!”
짜증 섞인 말투로 돌아본다.
“방세가 얼마에요?”
“몰라서 묻니?”
“그러니까, 얼마냐고요.”
내가 눈을 부라리며 묻자 그녀가 움찔하더니 곧 눈을 데굴거리며 약간 더듬듯 말한다.
“시, 십만 원!”
이거 참, 공교롭다. 어떻게 금액도 딱 맞아 떨어지냐.
조금이라도 남으면 좋을 텐데.
금액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꽤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액수일 것이다.
뭐,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곧바로 다시 날을 세운 표정으로 바꾸고는 아줌마를 돌아보며 획하니 내밀며 소리쳤다.
“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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