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72화 (172/173)
  • <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 (完) >

    “젠장, 믿고 있었다고!”

    “어이어이! 역시 너다!”

    환호하는 동료들과, 맨유 원정팬들.

    정말 마음을 많이 졸이고 있었다.

    도훈이 바오 란을 뚫어내지 못한다는 건, 결국 맨유가 블랙번을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번 시즌 유럽에서 가장 강한 팀이 맨유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고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근간들이 뒤틀리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

    백도훈이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맨유팬들에게 공포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신성 모독을 당한 것처럼.

    강한 믿음이 깨져버리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도훈의 골로 마침내 경기를 역전 시키고 마는 맨유!”

    “역시 백도훈의 저력입니다. 이건요! 전반 호산 선수의 골을 그대로 모방한 듯이 보이는데요. 이걸 운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백도훈 선수가 그대로 한 거니까 말이죠. 이건 노렸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정말 대단하네요. 어떻게 이런 골을 노릴 수 있단 말입니까! 골대와 패스를 주고 받는다니요! 결국 바오 란도 이 기상천외한 방법에 실점을 허용하고 맙니다!”

    결국,

    도훈은 해냈다.

    도훈은 바오 란을 뚫어내 보였고,

    이 세상의 상식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며 많은 이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백도훈이 뚫지 못하는 것은 없다.

    백도훈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라는 믿음을.

    “...”

    망연자실한 얼굴로,

    골대 안에 놓인 공을 바라보는 바오 란.

    기회를 충분히 주었던 게 화근이었을까.

    원래대로 수비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충분히 실점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자신이 원하던 건 백도훈에게 1대1로 이기는 것이었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겼다고 한 들 그건 이미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었다.

    자신이 졌다.

    깔끔하게.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천상계에 있던 시절, 홀연히 나타난 그 이름 모를 뉴 페이스의 신선에게 그랬듯이.

    그 신선의 제자라던 녀석에게 결국,

    바오류는 넘어서지 못했다.

    천상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 여기서도 마찬가지인가.

    수백 년 동안,

    왕의 거처를 지켜오는 문지기의 가문이었던 바오 가.

    왕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그러하듯,

    몇백 번을 막았다 해도 단 한 번 뚫리는 순간, 그것으로 임무는 실패.

    지키던 것을 잃은 문지기는 이제 쓸모가 없는 폐기물.

    이걸로,

    자신의 임무는 실패였고,

    승부는 끝이었다.

    자신은 이제 참수를 기다리는 쓸모 없는 백정일 뿐이었다.

    “어.. 선수 교체가 있는데요. 바오 란이 빠집니다?”

    “스스로 교체를 해달라고 손짓을 하던 것이 보였는데요. 몸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일까요.”

    그렇게, 후반 15분.

    바오 란은 스스로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그리고,

    다시는 그의 모습을 이우드 파크에서 볼 수 없었다.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이이익-!”

    “네! 경기 그대로 종료 됐습니다! 블랙번 로버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즌 12라운드 경기, 결국 단 하나의 무패, 그리고 전승 팀이 남게 되었습니다. 최종 스코어 4대2, 맨유의 승리 입니다!”

    바오 란이 경기장을 떠난 뒤,

    블랙번은 한 골을 따라 잡았지만 호산과 도훈이 각각 한 골씩을 더하며 맨유는 총 4골을 뽑아내었고 경기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블랙번의 돌풍을 잠재우며 프리미어 리그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데 성공하는 맨유.

    그리고,

    호산류의 명예를 지키게 된 도훈.

    “정말 잘했어.”

    “처음이라 그런지, 정신이 없었사옵니다. 하지만, 다음 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그 다음에는 더더욱이요.”

    “그래. 근데 오늘도 정말 잘했어. 네 덕분에 이긴거야.”

    “아니옵니다. 스승님이 승리로 이끄셨지요.”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 그리고 호산과 함께 기쁨을 즐기는 도훈.

    결국,

    마지막까지 스승님에게 신세를 지는구나 싶어 도훈은 웃었다.

    ‘제가 이겼습니다. 아니, 호산류가 승리 했습니다.’

    도훈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 모습을 보고 계실 스승님께 이 승리를 바쳤다.

    “집에 가면, 저녁으로 피자 먹을까?”

    “정말이요? 좋아요!”

    그리고,

    자신의 곁에 있는 꼬마 스승에겐 피자라는 제일 좋은 선물을 줄 것이었고.

    ㆍㆍㆍ

    12라운드.

    리그는 38라운드까지 진행되고, 시즌은 6월까지나 가야 끝이 나는 여정이지만.

    2023/24시즌의 종지부는 어쩌면 그 12라운드에서 이미 찍혔던 것일는지도.

    브리스틀 로버스와 돈캐스터 로버스, 그리고 블랙번 로버스는 이후에도 리그에서 강세를 보였고, FA컵에서도 강력한 상대들을 무찌르며 상위 라운드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잉글랜드의 정점에 올라서지는 못했다.

    세상에 강 팀은 많지만,

    정점은 하나일 뿐.

    그들의 파훼법을 찾은 도훈과 맨유에게 로버스들은 이후에도 연거푸 패배의 고배를 들이켰다.

    바오 란마저 꺾어낸 도훈 앞에서 로버스 선수들은 호랑이를 만난 여우처럼 다른 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를 펴지 못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는 천재 호산의 실력 또한 천적 관계는 공고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천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천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표현이 이상했으니까.

    그저 코끼리가 육지의 그 어떤 생물들보다 강하다고 코끼리가 모든 동물들의 천적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처럼.

    절대적인 무력 앞에서 손을 쓸 수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고 그게 로버스들도 마찬가지였을 뿐.

    맨유는 그저 정점에 있는, 누구도 건들 수 없는 팀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어느 때보다 치열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결국 또 한 번의 우승을 확정 짓습니다!”

    맨유는 리그 38라운드까지 또 다시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은 채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시즌 초,

    슈퍼팀 결성이라는 담대한 포부와 함께 출발했던 맨유.

    비록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혀 좌초될 위기도 있었으나, 결국 선원들의 합심과 1등 항해사의 멋진 대처로.

    맨유라는 무적함대는 다시금 바다 위의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최강 함대로서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유럽 정상 자리를 놓고 잉글랜드의 두 팀이 만났습니다. 2023/24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21년만에.

    맨유는 그들의 성지에서 오랜 라이벌 리버풀과 유럽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격돌하게 되었다.

    올드 트래포드.

    21년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의 무대로 선정이 된 맨유의 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인 리버풀을 상대로하는 경기.

    프리 시즌이라도 절대 져서는 안될 그런 경기인데, 하물며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라면 어떠할까.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굳은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떨리지는 않지?”

    “무지하게 떨리옵니다.”

    도훈과 호산은 그 경기에 나란히 투 톱을 이뤄 선발로 나섰다.

    도훈은 물론, 그 시점에서 호산의 챔스 결승 선발 출전은 사실 놀랄 일이 아니었다.

    이미 도훈과 호산의 투 톱은 과거 MSN, BBC 등의 트리오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진 조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투 톱이었으니까.

    그랬다.

    둘이서 세 명에 필적하는 파괴력을 도훈과 호산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호산의 기량 발전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빨라, 맨유가 내세웠던 갤럭시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건 수천억대의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아닌, 유스 출신의 호산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그렇게,

    사상 최강의 함대는 세계 정복에 도전하는 내부의 오랜 적과 싸웠다.

    그리고, 그 날.

    올드 트래포드와 맨체스터는,

    사람들이 내지르는 기쁨의 함성 소리와 노랫 소리로 밤이 새도록 조용해지지 않았다.

    “맨유가! 리버풀을 꺾고 3년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하는 순간입니다! 챔스 3연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입니다!”

    “3년 연속 트레블이에요! 완벽하게 이 시대를 맨유의 시대로 만들어낸 선수들입니다!”

    3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 챔피언.

    그리고,

    역사상 지금껏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대위업.

    3년 연속 트레블.

    그것을 호산을 비롯한 맨유 선수들과,

    도훈이 해낸 것이었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3대 리그 득점왕. 챔피언스 리그 3연속 득점왕. 프리미어리그 3회 우승.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 월드컵 우승. 발롱도르 2회에 3회 수상 유력. 이 모든 것이 이제 스무살도 되지 않은 소년의 커리어라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제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 감사하는 건, 앞으로 10년 이상 그의 모습을 더 볼 수 있다는 거죠.”

    그 날 부로,

    맨유의 구단주는 곧바로 모 기업에게 전화를 걸어 한 가지 작은 사업에 대한 발주를 넣었다.

    그것은 올드 트래포드의 정문에 하나의 동상을 건립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앳된 얼굴로 오른발 아래엔 황금색의 공을 두고 있고, 당당히 편 가슴의 왼편엔 태극기가, 오른편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엠블럼이 새겨져 있는.

    그리고 등 뒤에는 BAEK 이라는 이름과 7번이라는 번호가 마킹되어 있는.

    그리고 구단주의 그 즉흥적인 사업 결정에,

    토를 다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ㆍㆍㆍ

    도훈의 생일은 6월 20일이었다.

    그리고, 2024년 6월 20일.

    도훈은 만 20세의 청년이 되었다.

    이 날은, 도훈에게 아주 뜻 깊은 날이었다.

    16세에 축구를 시작한 소년이 스무살 청년이 되는 날임과 동시에,

    평생의 배우자와 혼인을 서약하게 되는 날이었으니.

    “너무 아름다워요!”

    “두 분 정말 잘 어울립니다!”

    도훈과 로레나 마티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와, 밀라노 거부의 하나 뿐인 딸의 결혼식이니 세간의 관심이 쏠린만큼 결혼식에도 신경을 쓴 듯.

    많은 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웨딩 드레스를 입은 로레나의 모습은 평소보다도 더욱 천사같이 아름다웠고, 턱시도를 차려 입은 도훈의 모습 역시 훤칠하고 당당해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두 선남선녀는,

    “서로를 평생토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네!”

    평생 서로만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맹세했다.

    그리고,

    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둘은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도훈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고 그것은 로레나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도훈의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로레나의 가족들도 물론이었고.

    평생 서로만을 사랑하겠냐는 주례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듯, 사랑은 변함없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다들 도착해서 봬요. 안전 비행 부탁 드립니다.”

    “타자, 자기야.”

    성대한 결혼식이 끝난 후.

    도훈과 로레나, 그리고 양 가의 가족들은 세 대의 헬리콥터가 기다리고 있는 비행장으로 향했다.

    이 헬리콥터가 도훈 부부에겐 웨딩카인 셈.

    지중해의 한 섬을 통째로 빌려, 이 헬기를 타고 그 곳으로 신혼 여행을 떠나는 참이었다.

    “아름답네..”

    “행복해.”

    헬기를 타고 내려다 보자 저 먼 발치 아래로 수놓아지는 푸른 바다.

    그 멋진 광경을 눈에 담으며 서로의 손을 더 꼬옥 잡는 도훈과 로레나.

    서로와 함께, 그리고 힘든 시간이나 행복한 시간이나 언제나 함께였던 가족들과 함께.

    지중해의 멋진 섬에서 보낸 달콤한 열흘은 도훈의 인생에 있어, 아니 그 곳에 있었던 모든 이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멋지고 행복한 열흘이었다.

    정말,

    정말로 행복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행복한 점은,

    그 행복한 나날들이 꿈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젠 일상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교적 자유롭게 밀라노와 맨체스터를 드나들며 만나왔던 둘이었지만,

    이젠 부부의 연을 맺어 한 집에서 살며 함께 눈을 감고, 함께 눈을 뜨는 것이 일상이 되었기에.

    이제 매일같이 로레나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도훈은 감사했다.

    “정말 괜찮겠어?”

    “저도 이제 사춘기이옵니다. 저야 오히려 더 좋은걸요.”

    “짜식이.”

    독립을 하는 것에 어리광을 피우고 아쉬워할 줄 알았던 호산도 옆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매일 같이 훈련을 하는 것은 여전.

    참,

    이렇다 할 미래가 안보이던.

    그저 아버지처럼 매일이 고된 인생을 되물림하여 살아가야 하는걸까 매일 밤 골방에서 고민하며 잠들던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도훈은 행복했다.

    물론,

    ‘100년 동안 동굴에서 썩었으니 이 정돈 누려도 되잖아?’

    이 행복은 공짜로 얻어진 게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렇기에.

    도훈은 이 행복이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현재의 이 행복에만 안주할 생각은 없었다.

    도훈은,

    가장으로서, 많은 이들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행복을 평생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눈을 감을 때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보다 많은 이들이 이 행복을 더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었고.

    그 방법에는,

    역시나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더 잘 하고, 더 오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뿐.

    “오늘 수련도 알찼사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열심히 해보자.”

    도훈은 매년 그래왔듯, 작년보다 더 열심히 새 시즌을 준비했다.

    한 발이라도 더 뛰고, 한 번이라도 더 공을 차며.

    1초라도 더 명상을 하며 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예리하게 칼을 갈았다.

    그것은,

    많은 이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많은 이들의 불행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 백도훈이.

    지금까지 많은 팀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의 절망을 안겼던 백도훈이,

    또 다시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다는 의미였으니까.

    ‘행복하고 싶으면, 그냥 우리를 응원하면 되잖아? 이길 수 없으면, 합류하라는 말처럼 말이야.’

    그렇게,

    도훈은 오늘도 편안하게 잠에 들 수 있을 때까지 구슬 땀을 흘렸다.

    이 모든 행복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호산과 함께.

    ㆍㆍㆍ

    사람들은 대부분,

    아니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10대보다 무서웠던 10대.

    10대의 백도훈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던 선수였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결국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듯이.

    2024/25 시즌이 시작되며 10대의 백도훈을 넘어서는 천재는 나타나고야 말았다.

    그 천재는 다름이 아니라,

    “백도훈! 4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작렬 시킵니다! 엄청난 퍼포먼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죠!”

    “무슨 말이 필요 하겠습니까. 그냥 한 마디면 정리가 되죠?”

    “백도훈입니다!”“백도훈이에요!”

    20대가 된 도훈이었다.

    아니, 천재라는 표현은 너무 박하고.

    정점.

    이젠 그 누구도 도훈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고,

    오히려 도훈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 천재’ 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같은 팀의 호산뿐.

    도훈의 10대는 그 어떤 선수의 전성기에도 필적하는, 아니 상회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었지만,

    사실 자신의 전성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도훈은 계속해서 역사를 써내려갔다.

    사실이었다.

    도훈의 전성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ㆍㆍㆍ

    “자기는 아직도 날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래?”

    “뭐? 갑자기 뜬금없이.”

    “왜, 영화보면 그렇잖아. 운명같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먹어 노부부가 되어도 서로를 보면 연애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렌다고. 자기는 날 보면 그렇냐구.”

    “로레나, ‘새삼스럽다’ 라는 한국말 알아?”

    도훈의 말에 고개를 갸웃이는 로레나.

    부부의 연을 맺고 같이 살아온 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그 동안 도훈이 한국어도 많이 가르쳐주고, 본인도 배우려고 노력했으니 간단한 회화 정도는 한국어로 할 수 있는 로레나였다.

    하지만 어려운 단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전 그대로 읽어줄 게. 새삼스럽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느껴지는 감정이 갑자기 새로운 데가 있다.”

    “갑자기 그건 왜?”

    “내가 매일 아침 눈 떠서 널 보면 이 생각을 하거든. 참, 새삼스럽게 오늘도 예쁘네.”

    “뭐? 치.”

    도훈은 자신도 어이가 없었다.

    자기도 이런 낯 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탈리아 남자들처럼 된 걸까.

    로레나는 기가 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침실을 나갔고, 도훈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뭐, 사실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

    옛말에 예쁘고 잘 생긴 거 하나 소용 없다고 하지만.

    로레나의 미모는 결혼식 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변함 없이 아름다운 것을.

    “밥 먹어.”

    “뭐야, 아침부터.”

    “뭐가? 그냥 있는 거 차렸어.”

    그리고,

    아침상을 맞은 도훈은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들.

    그럼에도 콧 노래를 부르며 기어이 고기를 더 굽겠다며 프라이팬을 꺼내는 로레나.

    비싼 선물보다도 이런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소녀같은 와이프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따 6시에 가면 되는거지?”

    “응. 카메라들 많을 테니까 예쁘게 하고 와.”

    “당연하지. 우리 남편 기죽일 수는 없으니까.”

    오늘,

    2044년 5월 30일은 도훈이 만 40세의 나이를 한 달 앞둔 날이자.

    선수 백도훈으로서 마지막 유니폼을 입는 날이었다.

    장장 23여년 동안 최고의 자리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백도훈이라는 선수가, 이제 일반인으로 돌아가는 날인 것이었다.

    오늘 올드 트래포드에서 도훈의 은퇴식이 치뤄진다.

    평소,

    선수 생활을 하며 언젠간 자신도 은퇴를 할 것이고, 그 날이 다가온다면 감회가 매우 남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도훈.

    그러나,

    막상 은퇴날 아침이 밝아왔는데도.

    도훈은 딱히 별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정들었던 올드 트래포드에 아직 가지 않아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라운드를 떠난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라고 쏟지 않을까 상상해왔던 것과는 다른 기분.

    어차피,

    앞으로 계속해서 축구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생을 살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일까.

    “그럼 갈게. 좀 있다 봐.”

    “응. 경기장에서 봐.”

    로레나와 입맞춤을 하고,

    도훈은 마지막으로 출근용 정장을 입은 채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올드 트래포드를 향해 차를 출발 시켰다.

    도훈의 은퇴 경기는,

    다른 선수들이 으레 그러하듯 상징적인 의미가 부여된 경기는 아니었다.

    보통 은퇴라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선수로서 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선수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은퇴 경기는 짧게 5분, 10분 정도를 뛰거나 하는 것이 보통.

    그리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 하프타임이나 경기가 끝난 뒤 팬들과 함께 은퇴식을 거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보통의 은퇴 경기와는 조금 다르게.

    도훈은 자신의 은퇴 경기인 리버풀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지난 리그 경기들에서와 마찬가지로.

    2043/44 올 시즌, 도훈은 리그 37경기에서 31번을 선발 출장했고, 컵 경기와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빠지지 않고 출장해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다.

    아니, 녹슬지 않은 이라는 표현이 이상할 정도로 도훈은 여전히 월등한 기량이었다.

    덕분에,

    도훈의 은퇴 경기는 사실 은퇴 경기라고 부르기에 앞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2043/44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도훈의 은퇴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절대로 패배해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그 경기에, 선수 생활의 마지막 경기인 도훈이 선발로 출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출장에 다른 의미는 전혀 없었다.

    경기에 이기기 위한 감독의 결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20년만에 다시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챔스 결승전을 찾은 관중들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앞서,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더 이상 후배들의 앞길을 막지 않고 비켜주겠다며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도훈.

    대부분의 선수들은 은퇴 경기에서 예전만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도훈의 은퇴경기이자 결승전을 보며 사람들이 더욱 안타까웠던 건 도훈의 경기력이 여전히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떠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여전히 그는 세계 최고인데.

    조금만 더 그와 함께 아름다운 축구를 즐기고 싶은데.

    때문에,

    도훈의 은퇴 경기는 가장 빛났으나, 가장 안타까운 은퇴 경기로 길이길이 기억되게 될 것이었다.

    “고오오오오올-! 백도훈의 골입니다!”

    “마지막까지 승부를 결정짓고 떠나는 백도훈! 정말 경외롭기 그지 없습니다! 무한한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입니다!”

    도훈은 그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 골을 터뜨렸다.

    만 40세의 나이.

    물론 그보다 오래 뛰었고,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렇게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난 선수는 없었다.

    “맨유가 빅 이어를 다시 한 번 들어 올립니다!”

    “20년전의 역사를 되풀이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러나, 그 순간에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 백도훈이 있습니다!”

    도훈과 맨유는 다시 한 번 올드 트래포드에서 리버풀을 꺾고 빅 이어를 들어 올렸다.

    묘하게 되풀이 된 20년전의 역사.

    그 당시 태어난 아이가 벌써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맨유를 응원하고 있고, 그 때 열광했었지만 지금은 이 곳에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도훈은 여전히 역사의 그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별 다른 은퇴 셀레브레이션은 필요가 없었다.

    그저,

    도훈이 수많은 관중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빅 이어를 들어올리는 것.

    그것보다 멋지고 찬란한 은퇴 셀레브레이션은 없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이번 대회 득점왕이자 MVP는 백도훈 선수가 되겠습니다.”

    “정말 2,3시즌은 더 뛰어도 될 것 같은 선수인데요. 이젠 그를 그라운드 위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습니다.”

    도훈은 최고였다.

    그리고,

    그렇게 최고의 자리에서 떠났기에.

    도훈은 앞으로 영원히 최고였던 모습만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었다.

    도훈의 선수 생활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말 새삼스럽게 기분이 이상해요.”

    “왜?”

    “이 동상을 보니까 말이에요. 오늘도 이렇게 멋진 활약을 보여준 선수가, 20년 전에 이미 이런 동상이 건립될 정도의 선수였다는 게.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잖아요?”

    “그렇지. 너랑 난 정말 행운이다. 그가 이끄는 맨유를 눈으로 직접 보고, 응원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우승의 기쁨과, 도훈의 은퇴라는 슬픔을 동시에 느낀 뒤 경기장을 빠져 나온 맨유의 팬들은.

    너도 나도 도훈의 동상 주변에 모여 남다른 감회와 여운을 느꼈다.

    누군가에겐 새로운 영웅이,

    누군가에겐 언제나 이 자리를 지키던 영웅이.

    이제는 그라운드 위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끝은 언제나 새로운 출발.

    “그래도, 올드 트래포드에서 그의 모습을 계속해서 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겠죠?”

    “한 편으로는 더욱 기대가 되네요. 과연, 백도훈이 감독으로서 이끄는 맨유의 모습은 어떠할 지 말이죠.”

    오늘부로 더 이상 선수로서 도훈이 맨유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내일도 도훈의 모습을 올드 트래포드에서 볼 수는 있을 것이었다.

    내일부터는,

    도훈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서 올드 트래포드로 출근할 것이었으니까.

    “이제, 이 영웅의 제 2막을 기대해 보도록 하자꾸나.”

    “앞으로도 그와 함께, 우리도 계속해서 축구와 함께 살아가 보도록 합시다!”

    “백도훈! 백도훈! 백도훈!”

    “글로리, 글로리 맨유나이티드!”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

    백도훈은 그렇게 찬란하게 선수 생활을 마쳤다.

    100년을 수련한 축구 선수.

    그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 (完)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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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완결입니다.

    그 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머리 숙여 인사 올립니다.

    비록 글의 재미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셨을 테지만, 저로서는 쓰고 싶었던 부분까지 온전히 써내렸으니 홀가분하고 뿌듯한 마음 뿐입니다.

    앞으로 꼭 더 재미 있는 글로 돌아올테니, 그 때도 함께 해주셨으면 더한 영광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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