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71화 (171/173)
  • < Beginner's Luck (3) >

    호산의 골.

    어찌 보면 그저 운이 만들어낸 행운의 골이라고 볼 수 있는 그 골.

    그러나,

    그 행운이 어쩌면 이 경기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훈은 그라운드로 나섰다.

    잘 생각해보면,

    그 골은 꽤나 여러 정보를 담고 있는 골이었다.

    일단,

    제 3자의 입장에서 바오 란이 뛰는 타이밍을 봤을 때.

    바오 란은 분명히 ‘미리’ 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가장 가능성 있는 이유를 추측하건데 방향을 예측해 미리 뛰게 되면 슈팅 이후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샤오 후야 그 비기로 재미를 톡톡히 봤지만, 도훈에게 세 골이나 허용하던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충분히 파훼가 가능한 비기였으니.

    그렇다면,

    바오 란은 분명히 자신의 반사 신경을 극대화 시켜주는 초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답은 좁혀질 수 있었다.

    애초에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음에도 그 정보에 거짓을 섞는다는 걸 파악했으니 아예 배제하고, 극대화시킨 반사 신경으로 공을 막아낸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맥이 풀리기도.

    뭔가 거창한 비밀이 숨어 있는 줄만 알고 해답을 찾기 위해 복잡하게 머리를 굴렸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답을 낸 이상.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그리고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말지에 대한 건 단순해져 있었다.

    “후반전, 최선을 다해 가보자. 어쩌면, 오늘 이 경기의 결과가 올 시즌의 모든 것들을 바꿔놓을지도 몰라. 그만큼 중요한 경기니까, 후회 없이 해보자.”

    “오케이.”“오케이!”

    그라운드로 나가기 전 다같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는 맨유 선수들.

    그리고, 그 너머로 각자 말 없이 지나가는 블랙번 선수들과 굳은 표정의 바오 란.

    그 두 팀의 대비는,

    누가 더 오늘의 승리를 절박하게 원하고 있는지의 차이를 보여주는 듯 했다.

    “삐이이이이이익-!”

    시작된 후반전.

    “...”

    바오 란은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바오 란에게, 이 경기가 가지는 의미는 평범한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다른 선수들이 경기의 승리를 위해 뛴다면,

    바오 란은 개인의 승리를 위해 뛰는 것이었으니까.

    애초에 바오 란에겐 경기의 승리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만 지지 않는다면 경기에서 질 일도 없으니.

    바오 란이 오로지 관심 있는 건,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선수로 알려진 백도훈.

    그 백도훈을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무참히 박살을 내버리는 것.

    그 뿐이었다.

    그런 바오 란의 계획은, 전반 중반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 없게도 백도훈도, 다른 누구도 아닌 웬 꼬맹이에게 실점을 내주다니.

    그것도 황당무계한 불운으로.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고, 바오 란은 이 기분을 풀어야 겠다는 생각만으로 후반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에니치, 왼쪽으로. 비니시오스, 다시 백도훈에게.”

    그래서,

    블랙번 선수들은 하프 타임 동안 바오 란의 지시 사항 한가지를 받들었다.

    그것은 블랙번 선수들도 매우 당황스러운 것.

    바로,

    “백도훈은 한 명만 마크해라.”

    도훈에 대한 집중견제를 풀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음?’

    도훈은 공을 받으며 달라진 주변의 흐름에 고개를 갸웃.

    전반엔 이렇게 공을 받을 때면 사방에서 거칠게 달려들던 상대였는데, 지금은 한 명만이 붙어올 뿐 나머지 선수들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어차피 상관은 없었다.

    몇 명이 붙든 결국엔 시간 문제니까.

    파아앙-

    타타타타탓-!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돌파 방법.

    왼쪽으로 치고 나갈 듯 오른쪽으로 치고 나가며 상대를 따돌리는 도훈.

    그러면서,

    ‘뭔 의미인지 알겠다.’

    도훈은 눈앞에 펼쳐진 공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훤히 드러난 중앙의 공간.

    그것은, 일부러 그 곳으로 유도하는 의미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들어와라.

    물론,

    상대가 의도한대로 응해주는 것은 기분이 나쁜 일이다.

    하지만,

    이번엔 도훈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기다리던 바였으니.

    타타타타탓-!

    고민할 것 없이, 빠르게 일직선으로 달리는 도훈.

    그 속도는 여전히 따라붙는 블랙번 수비가 잡을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고,

    도훈은 순식간에 박스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똑같이 해볼까.’

    호산이 주었던 영감.

    호산은 그것이 운이라고 했지만,

    도훈이라면 충분히 그것을 노릴 수 있다.

    때문에 도훈은 그대로 시도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뻐어어어어어어어엉-!

    슈팅을 때린 뒤,

    마치 2대1 패스를 하듯 골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딜.’

    이번엔 바오 란도 그 의도를 알고 있는 듯,

    슈우우우우웅-

    슈팅을 향해 몸을 날리며,

    그것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궤적이 아님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아아아아앙-!

    끝까지 손을 뻗어 그것을 쳐냈다.

    “쳐냅니다!”

    “바오 란이 다시 한 번 가만히 서있다 몸을 날려 백도훈의 슈팅을 막아 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저런 반사 신경을 보여줄 수 있는 건지!”

    “저런 식으로 1대1을 막아내는 키퍼는 정말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골대에 딱 붙어서 말이죠.”

    “각도를 줄이러 나오다보면 백도훈에겐 순식간에 제쳐지기 십상인데, 저렇게 골대에 기다리면서 막아내니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네요.”

    바오 란의 선방에 다시 한 번 들썩이는 이우드 파크.

    한숨을 내쉬는 도훈.

    슈팅은 정확했다.

    분명히 골대에 맞고 정확히 튕겨 나왔을 슈팅.

    그렇기 때문에 바오 란이라고 해도 그 슈팅을 잡아내지 못하고 펀칭을 해낸 것.

    하지만, 막혔다고 해서 도훈이 얻어낸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바오 란은 분명히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고, 들어가지 않는 공이라 해도 아예 그 공을 쳐내 버렸다.

    유효슈팅이 아닌 슈팅이라도 그렇게 바오 란을 뛰게 만들었다는 건,

    바오 란 역시도 호산의 골 이후부터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 말인 즉,

    이제 1대1 승부의 주도권을 도훈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는 상대의 의중 안에서 놀아나는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

    지금까지 수십만번의 1대1 승부를 수련해오며 배워왔던 것.

    승부에서 이기는 건, 언제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 시작이었다.

    뻐어어어어어어엉-!

    코너킥으로 이어지는 경기.

    파아아앙-!

    그러나 문전으로 날아드는 코너 킥으로는 바오 란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 듯.

    펄쩍 뛰어올라 공을 잡아내는 바오 란.

    그리고 바오 란은,

    뻐어어어어어어어엉-!

    곧바로 전방을 향해 공을 차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보고 뿌리는 롱 패스가 아니었다.

    바오 란의 킥력이라면, 분명히 전방 공격수의 발 앞으로 정확히 떨어뜨릴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공이 그대로 픽 포트 키퍼에게까지 굴러 갔으니까.

    그건 마치 골키퍼들이 훈련할 때, 잡아낸 공을 코치에게 다시 던져주는 느낌이었다.

    다시 덤비라는 것이었다.

    파아앙-

    파아앙-

    그렇게,

    넘어간 공은 다시 패스를 통해 도훈의 발로 들어왔다.

    마치,

    11명 대 11명이어야 하는 축구 경기가 1대1로 압축이 된 듯한 느낌.

    일기토랄까.

    그러나, 원래 축구라는 게 그런 게임이기도 하다.

    22명이 싸우고, 그 중 3,4명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만,

    결국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건 한 명에 의해서일 뿐.

    바오 란과 백도훈.

    누가 이기느냐.

    거기서 승리하는 팀이,

    이 경기를 가져갈 것.

    그리고,

    모든 명예를 쟁취할 것.

    타타타타탓-!

    도훈은 다시 박스를 향해 달려 들었다.

    평소 축구 지능에 있어서도 최고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똑똑하게 경기를 펼치는 도훈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치 세상에 갓 나왔을 때로 돌아간 듯.

    그 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1대1을 하기 위해 공을 몰고 상대에게 달려 들었었는데.

    결국,

    그 끝 역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뭘 웃어?’

    도훈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바오 란은 두 손바닥을 맞부딪히며 어서 오라는 듯 도훈을 재촉했고.

    ‘이 승부를 끝낼 때가 됐어.’

    도훈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동굴에서, 수많은 상대들과 대련을 펼치며.

    어떻게 해도 뚫어내지 못할 것 같았던 상대였음에도,

    어느 순간엔 지더라도 ‘한 번만 더하면 뚫어낼 수 있겠다’ 라는 직감이 올 때가 있다.

    그 직감이 오면, 방금까지 수십 수백번을 졌던 상대에게 거짓말처럼 이겨 버리고 만다.

    그 때,

    그 때의 직감이 도훈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제 실패라는 계단은 충분히 쌓였고, 성공에 도달할 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지만 이제 어머니들은 지금까지로 충분.

    이제 동등하게 맞춰진 눈높이, 불리할 것 없는 싸움에서.

    자신이 진다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도훈은 자신감 넘치게 박스 안으로 진입했고,

    ‘이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도훈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만약,

    여기서도 골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승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

    스승님은, 분명히 도훈이 바오 란을 혼자의 힘으로도 꺾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 말씀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스승님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도훈은 이 골을 반드시 성공시키리라 마음을 먹으며,

    오른발을 크게 당겼다.

    뻐어어어어어어어어엉-!

    강력하게 발등에 얹히는 도훈의 슈팅.

    도훈의 선택은,

    왼쪽.

    슈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바오 란 역시 이번에도 슈팅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이상했다.

    ‘음..?’

    몸을 날리며 눈으로 공의 궤적을 쫓는 바오 란.

    백도훈의 의중은 꿰뚫고 있었다.

    이번에도 또 다시 골대와 패스를 주고 받을 셈.

    이미 한 번 실패한 방법에 매달리고 있다니, 녀석의 밑천이 이 정도뿐이었나 실망하며 몸을 날렸던 바오 란이었다.

    그런데, 그 실망감이 슈팅의 궤적을 확인하며 배가 된 것이었다.

    ‘가만히 있는 골대도 맞추지 못하는 거냐.’

    슈팅은, 한 눈에 봐도 골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뭐 이해는 되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받고 있을 중압감이 상당 했을테니.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적수.

    최대한 자신의 손아귀를 피해 슈팅을 때려야 하니, 이렇게 실수가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백도훈 마저도 그랬다는 것이 실망스러웠을 뿐.

    그렇게,

    바오 란은 골대를 벗어날 슈팅을 바라보며 뻗으려던 손을 회수했다.

    쳐낼 가치도 없는 슈팅이었다.

    손을 최대한 뻗는다고 해도 닿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잠시 후.

    바오 란의 시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

    공이,

    바깥쪽으로 멀찍이 나가던 공이 거짓말처럼 휘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우우우우웅-!

    마치 누가 공중에서 헤딩이라도 한 듯 꺾여 들어가는 슈팅.

    ‘초승달 차기.’

    강력한 역회전이 걸린 그 슈팅은,

    나가는 듯 보였으나 날카롭게 꺾여 들어가,

    파아아아아앙-!

    “골대!”

    골대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 순간,

    털썩-!

    바오 란은 이제 막 공중에서 바닥으로 착지하는 시점이었고,

    슈우우우우웅-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온 공은, 마치 정확히 계산되기라도 한 듯 도훈의 발 앞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계산된 것이 맞았다.

    호산의 행운의 골에서 받았던 영감.

    ‘역시 한 번 스승님은 영원한 스승님이야.’

    그리고,

    그걸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도훈의 발이 합쳐져,

    파아아아아앙-!

    “재차 슈웃-!”

    멋지게 만들어낸,

    슈우우우우웅-

    호산과 도훈의 합작품이었다.

    출렁-!

    “들어 갔습니다아아-!”

    “골! 골! 백도훈! 드디어! 드디어 백도훈이 블랙번의 골문을 열어 젖힙니다! 기어이 해내고 마는 백도훈!”

    마침내,

    바오 란을 뚫어내고 골을 집어 넣는 도훈.

    비록,

    수많은 기회들을 막히고 또 막히며 자존심을 구겼던 도훈이었다.

    그러나,

    도훈에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의 도훈은 수십만번의 패배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승자라는 걸 누구보다 많이 몸으로 배워온 것이 도훈이었으니까.

    “스승님!”

    “예에에에에-!”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는 스승에게 달려가는 도훈.

    서로를 끌어안는 둘.

    그리고,

    “와아아아아앗-!”

    “예에에에-!”

    곧바로 그 둘을 덮어 버리는 동료들.

    올 시즌 동안,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던 난공불락의 바오 란.

    “하...”

    “결국은 뚫리는 구나.. 애초에 왜 수비를 갑자기 그 따위로 하기 시작한거지? 이해할 수 없군.”

    그러나,

    오늘 그런 바오 란에게 두 골이나 선사하는 호산과 도훈.

    그 두 골의 의미는,

    단순히 두 골의 의미를 넘어서,

    호산류, 도훈이 100년 넘게 해왔던 그 축구의 승리를 알리는 골이었다.

    < Beginner's Luck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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