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ginner's Luck (2) >
‘분명히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금의 그 세이브는, 슈팅을 보기도 전에 몸을 날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이 중간쯤 날아가고 있을 때 이미 몸이 날아가고 있었던 걸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쩌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게 아니고, 그저 슈팅이 실력에 이해 막혔을 뿐이라면,
그 뒤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게 느껴질 뿐이니까.
“맨유로써는 답답하게 됐습니다.”
“슈팅은 가져가고 있지만 바오 란 키퍼가 워낙 안정적이네요.”
돌아온 원점.
대체 어떤 식으로 골을 넣어야 할 지가 아니라,
그 전에 대체 어떤 식으로 공을 막는 건지 조차도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맨유가 이른 시점에 교체 카드를 준비합니다.”
“음..? 호산 선수가 들어 가네요. 올 시즌 1군에 합류한 유망주인데요. 이 선수를 지금 타이밍에 교체로 넣습니다. 올 시즌 첫 출전이 되겠군요. 라겔스만 감독. 어떤 의미일까요?”
맨유가 먼저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반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수를 두는 라겔스만 감독.
“로멜루 로카쿠를 빼주고 호산을 투입 합니다. 이 선수, 지난 시즌 리저브 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긴 합니다. 하지만 이제 16살의 나이에요. 백도훈 보다도 훨씬 어린 선수입니다.”
“이 선수를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투입한다는 건, 어쨌든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겠죠. 단순히 경기 경험을 쌓아주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로카쿠 대신 투입되는 호산.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고 있는 호산의 실력은, 구단 내부적으론 이런 큰 경기에 당장 투입되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성장해 있는 상태.
그런 호산이 들어온 것은 도훈으로서도 나름 믿을 구석이 생기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변화가 경기를 바꿔줄 수 있을까.
지금으로써는 자신도 바오 란을 뚫어낼 방법이 보이지 않는데.
“어쨌든 공격수를 투입했다는 건 맨유도 이 경기를 뒤집어 볼 생각이라는 겁니다.”
“경기는 끝까지 지켜봐야 겠죠. 아직 1대0입니다. 전반전이구요.”
맨유가 교체를 했건 말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의 블랙번.
블랙번은 그대로 자신들의 플레이를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일단 도훈이 공을 잡으면 그래도 슈팅까지는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해볼테면 해보라는 듯 여전히 수비 공간을 훤히 드러내놓고 공격을 퍼붓는 블랙번.
“그나마 맨유가 아니었다면 이미 3대0 이상으로 벌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입니다. 다른 팀들이 그랬듯이요.”
“잘 버티고 있는 거에요. 문제는 경기를 뒤집을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만요.”
그래도 호산이 들어오면서,
로카쿠가 있을 때 보다는 확실히 수비력에 힘이 실리기는 하고 있었다.
호산은 축구에 대한 감각과 재능 자체가 워낙 뛰어난 녀석이라,
“호산! 뒤!”
도훈이 이렇게 위치만 잡아주면 대인마크에 있어서는 몇몇 수비들 보다도 뛰어날 정도니까.
하지만,
그런 호산의 모습이 블랙번 선수들의 눈엔 만만해 보였을까.
‘뭐야, 이 꼬맹이는?’
호산을 앞에 두고 공을 전달 받은 좌측 공격수 리 웨이청은,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공을 받은 뒤 2초 이내에 패스를 전달하지 않았다.
키도 170정도 언저리에, 얼굴도 젖먹이 티가 나는 꼬맹이가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으니, 이걸 제쳐내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아서.
그러나,
그 순간적인 리 웨이청의 충동은 실수였다.
타타탓-
생각을 읽어낼 필요도 없다는 듯, 땅을 박차며 호산의 옆을 지나치려는 리 웨이청.
그 속도는 분명히 빨랐다.
그 동안 드리블을 하고 싶었던 걸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정도로.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빨랐던 것은 공을 향해 뻗은 호산의 발이었다.
아니, 보다 더 빨랐다.
파아앙-!
“...!?”
오른발로 정확히 공을 뺏어내는 호산.
호산의 눈엔 리 웨이청의 드리블은 너무 느려 보였다.
왜냐면,
하루도 빠짐 없이 소화해내고 있는 오후 일과 중 하나가, 바로 스승님과의 1대1 대련이었으니까.
도훈 스승님에 비하면 리 웨이청은 너무 느리고, 뻔했다.
타타타탓-!
“뺏어 냈습니다!”
“좋은데요! 곧바로 치고 올라 갑니다!”
공을 뺏어낸 뒤 곧바로 전방을 향해 공을 차놓고 달리기 시작하는 호산.
비록 호산이 아직 뼈가 덜 여문 소년이긴 했지만, 그 속도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우측면을 타고 달리기 시작하는 호산과, 왼쪽과 중앙에서 같이 달려가기 시작하는 비니시오스와 도훈.
“여기!”
파아아아아앙-!
도훈이 손을 들며 외치자, 호산이 곧바로 중앙을 향해 패스를 찔러 넣었다.
수비의 등을 지며 공을 받아내는 도훈.
그리고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하는 블랙번 선수들.
잠깐이라도 지체하는 순간 주변에 네다섯 명이 둘러쌀 정도로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도훈이었으니.
‘젠장, 돌아서야 하는데.’
상대를 제쳐내기 위해서는 등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돌아서야 했다.
하지만 등 뒤에서 거칠게 밀어대고 있는 상대 탓에 쉽사리 타이밍이 나오지 않는 상황.
그렇게 아주 잠깐 공을 가진 채 시간을 지체했을까.
타타타탓-!
“둘러 싸여요!”
설탕물에 개미떼가 몰려들 듯 블랙번 선수들이 도훈에게 달려 들었다.
그 때,
“스승님!”
오른쪽에서 도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은.’
파아아앙-!
도훈은 그 상황을 넘기기 위해 호산에게 패스를 뿌렸다.
그리고 다시 수비가 자신의 주변에서 조금 떨어지면, 다시 공을 받아 제대로 돌파를 성공시킬 생각.
그런데,
‘젠장.’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도훈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블랙번 수비들 중 누구도 호산에게 달려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도훈만 막으면 된다는 듯.
호산이 공을 잡고 프리한 상태에서 박스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데도.
도훈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건 곧 블랙번이 영리하게 수비를 펼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차피,
도훈도 뚫어내지 못한 바오 란을 다른 이가 뚫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저렇게 단독 1대1 찬스를 맞이한다고 해도.
“호산!”
“1대1 찬스입니다! 본인이 해결해 봐야죠!”
도훈과 비니시오스에겐 수비들이 붙어 있고.
호산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바오 란.
너무도 완벽한 1대1 찬스인데,
왜 더 여유로워 보이는 건 골키퍼인 바오 란인 것인지.
특히 호산은 이런 경기 경험이 많이 없다보니 긴장한 얼굴이었다.
사실이었다.
‘...’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
호산의 시야에는 공 밖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축구에 대한 재능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처음으로 서보는 큰 무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게다가,
상대는 스승님도 뚫어내지 못한 괴물 골키퍼.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호산은 눈앞의 공, 그리고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뻐어어어어어어엉-!
“슈우우웃-!”
바오 란의 괴물같은 선방 능력을 고려해 최대한 구석으로 때린 슈팅.
그러나,
‘안 돼..’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바오 란은, 이미 그 쪽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건 막힐 수밖에 없는 슈팅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수확은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찰나의 차이라 확신은 할 수 없으나, 바오 란은 샤오 후처럼 ‘미리’ 뛰고 있는 것은 아니고 동타이밍에 뛰고 있다는 걸 확인 했으니.
그 타이밍이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예측을 하지 않는다고 단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지만, 분명히 바오 란은 미리 뛰어 공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분명히 다른 비기가 있다는 이야기.
그렇게,
그걸 확인했다는 정도로 이번 찬스의 수확은 정리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웅-
슈팅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손을 뻗는 바오 란.
그런데, 그러다가 바오 란은 슈팅의 궤적을 확인한 후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았다.
그 이유는,
파아아아아아앙-!
“아아, 골대!”
호산이 슈팅을 구석으로 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던 나머지, 슈팅이 골대를 강타했기 때문.
그 모습을 보고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맨유 팬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런데,
그 이후의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골대를 맞은 공이,
슈우우우웅-
바깥으로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처럼 다시 호산의 발 앞으로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
그 공에 대한 호산의 반응은,
빨랐다.
파아아아앙-!
“재차!”
슈우우우우웅-
철썩-!
가볍게 인사이드로 그 공을 빈 골대로 밀어 넣는 호산.
골.
골이 들어간 것이었다.
“고오오오오올-!”
“동점 골! 이걸 호산 선수가 해냅니까? 대단합니다! 라겔스만 감독의 용병술이 통했어요! 교체로 들어간 첫 출전의 호산이 바오 란의 블랙번에게 동점 골을 선사 합니다! 믿기 힘든 순간인데요!”
누구도 믿기 힘든 골이었다.
바오 란도, 도훈도.
흥분은 거대했다.
정말 어려울 것이라 봤던 블랙번의 골문을 전반이 끝나기 전에 열어 냈으니.
마치 어두컴컴한 동굴에 갇혀 있다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
호산의 골은 맨유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줄 수 있는 골이었다.
그리고,
골을 허용한 바오 란은 이 상황을 용납할 수 없는 듯 했다.
시즌 첫 실점.
그 실점을, 백도훈도 아닌 다른 녀석에게 내주고 말다니?
“...”
말 없이 서 있는 바오 란의 모습을 보며,
눈치를 살피는 블랙번 선수들.
화가 많이 났을 바오 란 때문에 블랙번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고 말았다.
그리고,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그 이후 전반전의 남은 시간은,
이렇다 할 것 없이 그대로 마무리.
두 팀의 전반전은 1대1로 끝이 나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거야?”
“예?”
“대단했다고. 그 노림수.”
드레싱 룸으로 돌아온 뒤.
도훈은 감탄을 금하지 못하며 호산에게 물었다.
그 순간, 어떻게 그런 센스를 발휘한 것인지.
왼쪽으로 슈팅을 차 바오 란을 그 쪽으로 뛰게 하고, 그러나 사실은 골대를 노림으로써 공을 되돌아오게 한 후 빈 골대에 공을 차넣는다니.
이 얼마나 기발한 재치인가.
하지만,
정작 호산의 표정은 어리둥절해 보였다.
“저.. 사실은 노린 게 아니옵니다.”
“응?”
“그냥 공이 다시 튕겨 오길래.. 차 넣은 것 뿐이옵니다. 운이 좋았지요.”
“...”
호산의 대답에 벙 찌는 도훈.
그게,
그러니까 노린 것이 아니었다고?
“아아, 하긴. 애초에 골대를 노리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바오 란이 그 쪽으로 뛰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군.”
“아직도 흥분이 가라 앉지 않사옵니다.”
“어쨌든 잘했다. 정말 잘 했어.”
어찌되었건 간에,
일단 호산의 골로 경기가 1대1이 되었으니 천만 다행.
그리고,
그 뿐만 아니라.
호산의 골은 단순히 경기를 1대1로 만들어 주는 것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었다.
“후반전, 이길 수 있겠지요?”
“음..”
후반전을 위해, 다시 일어나는 선수들.
분명히,
방법은 있다.
호산이 보여줬듯이.
호산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한 것이라고 했지만,
분명히 호산은 정답으로 가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이제,
그 길을 도훈이 걸어가면 된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덕분에.”
도훈은 호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함께 경기장을 향해 걸어 나갔다.
< Beginner's Luck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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