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ginner's Luck (1) >
단순히 운이었을까.
도훈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단순히 운이었다면 블랙번과 바오 란은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대놓고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닥공을 펼치고,
바오 란은 골대에서 자신을 기다리듯 가만히 있었던 것 말이었다.
그 태도는,
분명히 자신을 막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 터.
분명 비밀은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생각의 간파를 간파해낸 것에 대한 재간파.
그게 무엇인지,
도훈은 찾아내고 확인을 해야만 했다.
앞으로 남은,
75분간 동안에.
그렇지 않으면,
오늘 승리는 없었다.
‘일단은.’
그러는 동안.
맨유는 블랙번의 공세를 버텨내는 데 급급해 보였다.
아무리 도훈이라고 해도,
머리가 듀얼 코어로 돌아가는 게 아닌 이상 바오 란의 비밀을 풀어내며 일일이 동료들의 수비 범위까지 지정해줄 수는 없는 입장.
게다가,
도훈이 온전히 수비에 집중한다고 해도 블랙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보였다.
블랙번의 토탈 공격은 그런 수준이었다.
이 시합을 이기기 위해선 바오 란을 뚫어내야 하지만,
이 시합을 지기 싫다면 일단 블랙번의 공격부터 막아내는 게 먼저.
도훈은 무엇이 더 중요한 지 판단을 마치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오늘 승리보다도 중요한 것은 패배 또한 없는 것.
파아앙-
파아앙-!
“라인 유지!”
정신 없이 돌아가는 패스 속에서,
일단 도훈은 깊게 내려서며 수비 대열 안으로 끼어 들었다.
중앙에 도훈이 들어서자 그 중심으로 뭉치는 맨유의 수비.
어쨌든 아직은 0대0.
맨유로써도 급하게 갈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우승컵을 위해선 앞으로 올 시즌 몇 번이나 부딪히게 될 상대.
마지막에 웃는 게 승자니, 그 전까지 머리로 고민하기 보다 최대한 많은 경험을 몸으로 쌓아 놓는 것도 좋은 방법.
최대한 많은 걸 알아낸다는 느낌으로.
“오늘 이기는 팀은 우승 레이스에서 상당히 유리해 지겠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게 지는 팀이 잃는 것이겠죠. 단순히 승점 3점짜리 게임이 아니에요. 승점 6점짜리 경기인 겁니다.”
“이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전에 패배를 피하는 것이 첫 번째가 될 수 있겠네요.”
“그렇죠.”
맨유나 블랙번이나.
현재의 경기력을 본다면 앞으로 패배는 물론 무승부를 거두는 경기도 몇 번이나 될 지 모를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팀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꺾을 수 있는 건 서로 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인데.
만약 한 쪽이 패배를 하기라도 한다면 그 격차는 다른 어디에서도 매꿀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
일단 도훈은 수비에 집중 했다.
그러나,
블랙번과 바오 란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어딜 내려가? 나랑 놀아야지.’
제자들에게 총공격을 지시하는 바오 란.
스퍼트를 끌어 올리기 시작하는 블랙번.
“블랙번이 완전히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펼칩니다.”
“바오 란 키퍼는 거의 하프 라인까지 나와서 패스를 받아주고 있어요. 저거 보세요. 반대 전환하는 패스까지 뿌려 줍니다.”
“최후방 플레이 메이커네요.”
일단 맨유가 먼저 방패를 세우자,
블랙번은 기세가 살아 올라 다시 완전한 공격 태세로 맨유의 진영에서 패스를 돌리며 위협했다.
골키퍼인 바오 란 마저 공격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하는 형국.
그 탓에 자연히 수적 우위를 가져가는 블랙번.
파아앙-!
“사람!”
파아앙-!
‘커버... 젠장.’
빠르게 돌아가는 패스 사이에서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맨유.
그러나,
동료에게 커버를 들어가주라는 말을 하려다 도훈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커버를 들어가 줄 사람이 없었다.
한 명이 퇴장을 당한 것도 아닌데, 바오 란이 최후방에서 가세하니 골키퍼가 골문을 지키고 있는 이 쪽 입장에서는 한 명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이 부족한 것이 절대적인 사실이었다.
때문에,
결국.
파아앙-
파아앙-!
“빠른 2대1 패스!”
“2선을 허물고 들어 갑니다!”
맨유의 장벽에 하나둘씩 금이 가는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브리스틀, 돈캐스터가 맨유를 상대했던 것과 조금은 다르게.
개인 돌파를 완전히 배재하고 기계저럼 패스 플레이만을 고집하며 맨유의 수비를 벗겨내는 블랙번.
한 사람당 공을 받고 나서의 터치가 2회가 넘어가지 않을 정도.
그 속도는 무서웠고, 수적 우위를 활용하는 아주 영리한 방법이었다.
파아앙-
“가운데로!”
스르륵-
“흘려주고!”
파아앙-!
“오른쪽을 봤습니다!”
뻐어어어어어어엉-!
“지안 하오, 슈웃-!”
그 속도가 어느 정도냐면,
맨유의 2선을 2대1 패스로 허물고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에 전광판의 시간이 25분 32초였는데, 패스가 이어지고 이어져 우측 공격수 지안 하오에게까지 도달한 뒤, 지안 하오가 다시 슈팅을 가져갔을 때.
이 때가 37초였다.
블랙번은,
벌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웅-
지안 하오의 슈팅은,
말벌의 독침처럼 너무나 날카롭고,
치명적이었다.
철썩-!
있는 힘껏 뻗어본 픽포트의 손을 비껴가, 골문 구석으로 향한 지안 하오의 슈팅.
그 슈팅은 골 네트를 흔들었고,
“와아아아아아앗-!”
이내 이우드 파크가 함성으로 들썩였다.
“들어 갔습니다!”
“블랙번이 선제 골을 가져가네요!”
어디 수비를 하러 내려가느냐.
네가 할 일은,
수비가 아니라 나와 노는거다.
바오 란은 도훈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많지 않다고, 친구.’
네겐 미래를 볼 여유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작정하고 수비에 가담했다.
선수 전원이 준비한대로 수비 라인을 세우며 공격만을 막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도 실점했다.
0대1.
브리스틀 전도 그랬고, 돈캐스터 전때는 이것보다 더 하게 전반 초반 0대2로 끌려간 적도 있었으니 이 정도가 절망적인 시간대와 스코어는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시간 동안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섣불리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이렇게 되면 백도훈 선수가 아까의 그 1대1 찬스를 놓친 것이 뼈 아프게 됐네요.”
“바오 란 키퍼가 대단한 거죠. 백도훈이 놓쳤다기 보단, 바오 란이 막아낸 겁니다.”
도훈마저 막혀버린 걸 모두가 확인했으니.
이젠 이 격차마저도 더 벌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지금 이 상황은 백도훈 선수가 맨유에 온 이후로, 어쩌면 최대의 위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게 말해도 무리가 없죠. 블랙번이 너무 강합니다.”
대위기.
대위기였다.
이젠 뒤로 물러설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상황.
배는 침몰했고,
등 뒤엔 건널 수 없는 바다가, 눈앞엔 목을 노리고 있는 적들이.
도훈에게 이런 위기는 처음이었다.
“...”
아무런 말 없이,
공포스러운 얼굴로 얼어붙은 맨유 팬들의 표정이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듯이.
“전반 26분, 블랙번이 1대0으로 앞서 갑니다.”
재개되는 경기.
어찌되었든, 이제는 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바오 란을 뚫어낼 수 있는 답.
역시나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최대한 많은 찬스를 만들어 슈팅을 때려보는 것.
바오 란이 실제로 몸을 날리게끔 만들어, 어떤 식으로 수비를 해내는 것인지를 파악해내야 했다.
“비니시오스, 중앙으로. 푸그바, 백도훈에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블랙번 선수들은 전원이 공격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수비에 있어서는 오히려 브리스틀이나 돈캐스터 보다도 평이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뭐, 바오 란이 워낙 자신이 있으니 일부러 그렇게 팀을 구성한 것일 테지만.
어쨌든,
슈팅을 때려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만드는 것까지는 도훈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
타타타탓-!
‘그래, 여기까진 문제 없어.’
상대 미드필더들을 제쳐내며 생각하는 도훈.
여기까진, 돈캐스터 전때처럼 ‘자기 자신을 속이는 드리블’ 이 통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분명히 이것에 대한 대처법을 알고 있다는 건 아닐텐데.
도대체 바오 란은 어떻게?
‘다시 해보자. 왼쪽으로..’
뻐어어어어어어어어엉-!
각도가 나오자 지체 없이 슈팅을 때리는 도훈.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왼쪽을 생각하며 슈팅을 때렸으나 공은 우측 포스트를 향해 날아갔다.
‘초승달 차기.’
방향 뿐만 아니라, 왼쪽으로 때렸다면 일직선 혹은 감겨 들어갔을 궤적이 무섭게 역회전하며 골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만약 바오 란이 속는다면 아무리 중거리 슈팅이라도 이 초승달 차기를 막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슈우우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아앙-!
“바오 란 키퍼가 잡아 냅니다!”
“안정적인 캐치!”
바오 란은 그 슈팅을 품 안에 안았다.
몸을 날려 쳐내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품는 바오 란.
과연 저걸 뚫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는 맨유 선수들.
그러나,
일단 어쨌든 한 가지는 확인한 것 같다고 도훈은 생각했다.
‘바오 란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속고 있지 않다.’
바오 란은 속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것일까?
아예 생각을 읽고 있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오히려 단순히 신체 능력만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훈도 알다시피, 초식이라는 게 꼭 하나만을 사용하게끔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도훈만 해도 몇 개의 초식을 사용 중이니까.
그렇다면,
꼭 생각을 읽는다는 것에 너무 중점을 둘 필요가 없을 지도.
‘일단, 다시 찬스부터 만들자.’
도훈은 다시 공을 되찾아 오기 위해 뛰었다.
그러나,
한 번 블랙번에게 넘어간 공은 다시 돌아오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주 처우양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넘어 갑니다!”
그나마도 공의 소유권이 돌아온 건 블랙번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났기 때문.
바오 란을 뚫어내는 것은 고사하고,
그 패턴을 읽어내는 것만 해도 몇 번의 슈팅이 필요할 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한 번 공을 가져가면 거의 5분 이상은 블랙번이 무조건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앞으로 60분 정도가 남아 있는 시간대에서 슈팅 기회는 많아 봐야 10번 정도나 되려나.
‘한 번 한 번이 소중해.’
그 몇 번 되지 않는 기회 안에 정답을 찾아내야 한다.
여러모로 도훈에겐 빨리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가 주어지고 있었다.
“다시 백도훈에게.”
“그래도 맨유가 믿을 건 백도훈밖에 없습니다.”
다시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파팡-!
유령신보와,
쉬이이익-!
환영신보.
급할수록 돌아가라지만, 지금은 돌아갈 여력조차 없다.
가진 모든 걸 활용하며 블랙번 선수들을 제쳐내며 다시 박스까지 다가가는 도훈.
그리고,
‘이번엔 원래대로.’
도훈은 패턴을 바꾸어 슈팅을 시도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아무래도, 생각과 몸이 따로 논다는 건, 그만큼 슈팅에 온전한 집중이 실릴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지금까진 상대가 그것에 속았기 때문에 슈팅의 위력이 100퍼센트가 아닐지라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바오 란은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이제는,
‘상대를 의식하지 말고.’
상대가 생각을 읽는다는 것에 너무 중점을 두지 말자.
슈팅을 마음 먹고 오른발을 당기는 도훈.
이전까지와 달리,
도훈의 시선은 골대가 아니라 공.
자신의 힘을 온전히 실어 슈팅을 때리는 것에 집중하는 도훈.
뻐어어어어어어어엉-!
“슈우우웃-!”
슈팅은 강력하게 쏘아져 나갔다.
위력적인 힘이 실려 왼쪽 구석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슈팅.
바오 란이 예측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대로 이 슈팅을 막아내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훈이 쏘아져 나가는 자신의 슈팅을 눈으로 쫓는 순간.
“...!?”
도훈의 가슴이 또 한 번 콱, 막히는 듯 했다.
슈우우우우우우웅-
바오 란은 이미 몸을 날리고 있었다.
공이 날아들고 있는 그 쪽을 향해.
파아아아아앙-!
“다시 막아 냅니다!”
“슈팅 코스를 완전히 읽은 것 같은데요!”
차근히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해답을 찾기 위해선 한 단계씩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의 그 모습.
슈팅 코스를 이미 예측한 듯 한 발 먼저 몸을 날려 슈팅을 막아내는 바오 란의 그 모습은,
지금까지 쌓아 왔던 세이브 파일이 날아가 처음으로 돌아온 듯.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눈앞이 막막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시간은 없고,
기회는 적다.
그러나,
해답을 찾기 위해서 앞으로 몇 번의 슈팅을 더 때려봐야 할 지,
그것에 대한 답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도훈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 Beginner's Luck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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