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어택 (2) >
축구라는 게,
결국 모두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0대0으로 게임이 끝나는 스포츠다.
누구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가 아니라, 제 3자가 점수를 매겨 승리자를 판정하는 게 아니라 90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놓고 펼치는 게임이라는 것.
그러니,
급한 쪽은 도훈이었다.
물론,
지금껏 90분이라는 시간이 도훈을 상대하는 골키퍼에겐 늘 길고 길었던 시간이어 왔었지만.
상대는 바오 란.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어쨌든 현재 인간의 몸으로 ‘퇴화’ 한 상태지만, 분명히 그는 스승님과 같이 천상계에 머무르던 자이니까.
어쩌면 90분이라는 시간이 도훈에겐 그리 길지 않은 오늘이 될 수도.
타타타타탓-!
“강하게 전방 압박을 가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블랙번의 후방에서 돌아가는 공을 강하게 따라붙는 맨유의 공격진.
모두 기동성이 좋은 선수들로 구성된 맨유의 공격진이기에, 대부분의 팀들은 맨유의 전방 압박에 상당히 고전하곤 했다. 너무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볼을 예쁘게 돌리다가 빼앗겨 실점을 한 팀들도 상당수였고, 일단 걷어내기 바빠 금새 맨유에게 소유권을 내주는 것이 다반사.
그러나,
“왼쪽!”
“오른쪽!”
“나한테!”
블랙번은 역시나 달랐다.
아무리 빨라도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블랙번의 패스를 뜀박질로 따라가기에는 역부족.
특히나,
최후방에서 일일이 패스 방향을 지시하며 수비진을 컨트롤하는 바오 란의 목소리에 블랙번 선수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기를 펼치는 듯 잔실수 하나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치 여러 개의 꼭두각시를 제어하는 인형술사처럼.
바오 란은 수비수들을 주무르며 맨유의 전방압박을 따돌렸고,
뻐어어어어어어어엉-!
“전방으로 길게!”
“바오 란의 킥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죠!”
충분히 맨유 선수들을 깊숙이 끌어 들였다 판단한 바오 란이 전방으로 길게 롱 킥을 처리했다.
그리고 그 롱 킥이,
파아앙-!
“정확하게 떨어집니다!”
웬만한 필드 플레이어의 롱 패스보다도 정확히 전방으로 떨어졌다.
현재 바오 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역대급 완성형 골키퍼라고 봅니다.”
불가사의에 가까운 선방 능력은 물론이고, 수비 범위와 리딩, 그리고 킥력까지 지금껏 이름을 떨쳤던 그 어떤 골키퍼들 보다도 한 수 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팀들은 섣불리 블랙번에게 전방 압박을 가할 수 없었다.
전방 압박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리버풀 조차도 전반 초반 압박을 시도하다 곧바로 카운터 어택을 맞고 무너졌을 정도니.
“치고 들어 갑니다!”
“따라붙는 조슈아 케미히.”
정확히 연결된 공을 받아 왼쪽면을 파고드는 블랙번의 공격수 리 웨이청.
애초에 맨유는 오늘 경기를 준비하며,
오늘 경기가 브리스틀, 그리고 돈캐스터와 펼쳤던 경기의 답습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세 팀이 공유하는 철학이 똑같아, 세 팀이 같은 팀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한 정도였으니.
아니나 다를까.
블랙번 역시도 다른 두 팀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지금껏 다른 팀들과 경기를 펼칠 때 보여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토탈 사커.
공세를 펼칠 땐 필드 플레이어 대부분이 하프 라인을 넘어설 정도로 밀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
그런데,
그 모습이 오늘만큼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물밀 듯 올라 옵니다.”
“이거 괜찮은 건가요?”
그 정도가,
평소보다도 더 심했던 것.
아예 뒤가 없는 듯.
마치 후반 추가시간 막판에 0대1로 지고 있는 상황이기라도 한 것처럼.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모두가 공격수인 것처럼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프 라인 근처에는 맨유의 공격수들만이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까.
수비 입장인 맨유 선수들이 오히려 블랙번 진영에 가까이 남아 있고, 블랙번 선수들은 불나방처럼 맨유의 박스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랙번 진영엔 바오 란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것은,
그만큼 블랙번이 맨유를 상대로 한다면 확실한 득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일 수 있었다.
그러나,
도훈이 느끼기엔.
“...”
“...”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바오 란의 저 눈빛으로 보기에는.
‘해보자는 거냐.’
의심의 여지 없이 도발의 의미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핑계도 댈 수 없게,
둘이서 제대로 붙어 보자는.
물론,
도훈의 입장에선 피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일단 그러기 위해선 블랙번의 총공세를 막아내는 것이 먼저.
“뒤로 내줍니다!”
“반대, 빨라요! 빠르게 좌우로 흔들고 있습니다!”
맨유도 분명 상대의 공격력을 대비해 많은 선수들이 박스 안팎 근처에 몰려 두터운 수비진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수적 우위를 가져가는 쪽은 오히려 블랙번 쪽.
텐 백이 아닌 텐 어택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도훈의 도움이 절실.
“뒤!”
“리턴 조심!”
“반대 사람 놓치지 마!”
마치,
방금 전 바오 란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의 패스 길을 예측하며 한 발 앞서 동료들의 위치를 잡아주는 도훈.
골키퍼야,
애초에 수비 리딩이 기본 덕목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도훈같은 공격수가 그것도 블랙번의 패스 플레이를 읽어낸다는 게.
바오 란으로서는 인상 깊은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슬며시 흘러 나오는 미소.
역시,
상대를 잘 골랐다.
바로 지금의 이 기분.
강한 자와 승부할 때 몸에서 솟구쳐 나오는 엔돌핀.
대체, 이 좋은 걸 신선이라는 작자들은 왜 경시하는 것인지.
‘쓸모 없는 작자들.’
바오 란은 힘들지만 기다렸다.
어서 빨리 맨유가 공을 뺏어내, 전방의 백도훈에게 패스를 넣고, 백도훈이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골문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빨리 그 장면을 마주하고 싶어, 온 몸이 근질거려 기다리기 힘들었지만.
“박스 중앙에서는 맨유 선수들이 잘 뭉쳐 있습니다!”
“반대쪽도 여의치 않아요! 맨유의 수비가 차분히 잘 기다리고 있습니다!”
돈캐스터와의 경기에서 배웠던 걸 토대로.
사이드는 내주더라도 박스 안 쪽에서 단단하게 뭉쳐 기다리는 수비로 쉽게 빈 틈을 내주지 않는 맨유 수비.
때문에,
블랙번의 우측 공격수 지안 하오가 다시 뒤로 돌렸다가 재차 공격을 하기 위해 공을 내주는 순간.
파아앙-
딱 한 번의 그 안일한 백 패스.
공이 하프 라인을 넘어온 뒤 이어졌던 50번 이상의 패스 중 단 한 번이었던 그 쉬운 백 패스를,
촤아아아-
파아아앙-!
“끊어 냅니다!”
상대의 모든 패스에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있던 도훈이 슬라이딩 태클로 끊어냈다.
그리고 도훈은 곧바로 벌떡 일어나며,
파아앙-
옆에 있던 푸그바에게 내준 뒤 전방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파아아앙-!
푸그바가 다시 전방으로 찔러주며 도훈이 편하게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타타타타탓-!
“앞서 있었지만 오프 사이드는 아닙니다! 하프라인을 넘기 전의 패스니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하프라인을 넘어가는 공과, 그 공을 향해 달리는 도훈.
해설자의 말처럼, 하프라인 너머에 블랙번의 수비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조금은 황당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쉽게 역습을 내준다니?
백도훈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후방에서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니?
대체 블랙번이 어떤 생각인 지 알 수가 없는 장면.
그러나, 사실은.
블랙번 진영에 아무도 없다는 표현은 사실 정확하지 않았다.
거기엔,
바오 란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와 봐.’
‘간다.’
골대 앞에서 꿈쩍하지 않고 기다리는 바오 란.
공을 몰고 가다, 박스로 진입하며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도훈.
그리고, 거의 멈춰서는 도훈.
공을 놓고 대치하는 둘.
마치 페널티 킥처럼,
완벽한 1대1 승부.
“뭐 하는 거야?”
“왜 망설여! 집어 넣어!”
그 모습을 보며 맨유의 원정팬들이 의아해 하기 시작했다.
이런 1대1 상황에서 도훈이 골을 놓치는 장면은, 이들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아니, 애초에 저렇게 뭔가 골키퍼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듯한 모습 자체가.
그러나 도훈은 바오 란을 앞에 두고 마치 대단한 심리전이라도 하는 듯.
그저 평소대로 골대 구석에 차넣기만 하면 되는 것을.
그 모습에 관중들의 답답함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되었을 때쯤.
‘그래.’
도훈이 먼저 선택을 내린 듯,
오른발을 크게 당겼다.
슈우우우-
뻐어어어어어어어엉-!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타격음.
보통은 그렇다.
1대1 찬스가 나오게 되면, 열이면 아홉은 골키퍼가 각을 줄이려 공격수에게 뛰쳐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유는?
페널티 킥이 막기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슈팅 동작에 방해를 주지 못하고, 각도를 모두 열어주면 절대로 막을 수 없기 때문에.
한 마디로 공격수에게 선택지가 너무 많이 주어지고, 그 선택지대로 정확히 공만 차넣을 수 있으면 절대로 막을 수 없기 때문.
하지만 바오 란은 그저 골대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 역시도,
도훈에겐 도발의 의미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넣을 수 있으면 넣어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넣어주는 게 예의였고.
슈우우우우우우웅-!
도훈이 선택한 건,
돈캐스터의 샤오 후를 상대할 때와 같은 전법.
오른쪽 구석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왼쪽.
상대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을 속이는 슈팅.
때문에,
도훈의 슈팅은 골대의 왼쪽, 그러니까 바오 란 입장에서는 오른쪽으로 쭈욱 뻗어 나아갔다.
사실, 방향을 예측한다 해도 보통의 키퍼라면 막기 어려운 슈팅.
그런데,
잠시 후.
“...!”
도훈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슈우우우우우웅-
뻐어어어어엉-!
“어어어엇-!”
“이걸!”
다시 한 번 강렬하게 터지는 타격음.
그리고,
골대 밖으로 튕겨 나가는 공.
“후우.”
탁탁-!
몸을 던졌다가, 일어나 가볍게 손을 툭툭 터는 바오 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오 란이!”
“이, 이 위기를 막아 냅니다! 바오 란! 대단합니다! 다른 것도 아닌 백도훈의 슈팅을 단독으로 막아냅니다!”
바오 란이,
도훈의 슈팅을 막아낸 것이었다.
단순히 어느 평범한 공격수가 놓쳤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완전한 찬스.
그 찬스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백도훈이 골을 놓친다?
“...”
“...”
순식간에 얼어붙은 맨유 팬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듯.
그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막혔다.’
코너킥으로 이어진 경기.
하지만,
도훈은 재개되는 플레이에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자꾸만 방금 전의 찬스 장면이 눈앞에 아른 거려서.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대체, 바오 란이 어떻게 자신의 슈팅을 막아낸 것인지.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오늘 경기에서 자신과 맨유는 바오 란과 블랙번을 이길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시즌 내내 그들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즌이 시작될 때부터 당연히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우승컵을 그들에게 내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아니, 사실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호산류의 자존심이,
백도훈의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져 버리는 수가 있다.
“맨유가 쉽게 공격권을 잃습니다.”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해졌어요. 아무래도 반드시 넣어줄 줄 알았던 백도훈이 그 찬스를 놓쳤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도훈이 집중력을 잃자,
마치 연결된 정신고리가 끊어지는 하나씩 풀려가는 맨유의 집중력.
결국 코너킥도 흐지부지되고,
다시 공은 블랙번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뭘까. 뭐 였을까.’
단순히 어쩌다 한 번 슈팅이 막힐 순 있다지만,
분명 바오 란의 그 태도는 어떻게 되어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그건 절대로 운이 아니었다.
무언가,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아내야 하는 과제가 도훈에게 주어지는 순간.
그리고 역시나,
그 과제의 해결은 90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전반전 15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75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
도훈이 고민하고 있는 그 와중에도 시간은 1초씩 흐르고 있었고.
< 타임 어택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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