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어택 (1) >
“당연히 넣겠지?”
“말이라고 하냐! 우리는 전승 우승으로 간다! 어쩌다 보니 돌풍은 여기까지라고! 패배를 선물해줘라!”
?
후반 38분,
맨유에게 행운처럼 찾아 온 확실한 득점 찬스.
PK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도 곧잘 골을 집어 넣는 도훈은, PK 역시도 지금껏 단 한 번도 실축한 적 없는 스페셜 리스트.
그렇기에 도훈이 공을 들고 페널티 에어리어에 선 순간,
맨유 팬들은 모두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오늘 경기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확신에 찬 것은 돈캐스터의 선수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돈캐스터 선수들은 모두 샤오 후를 믿고 있었다.
PK 승부야 말로 샤오 후의 장기가 드러나는 순간이니까.
또한,
샤오 후 역시도 누구보다 강하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 녀석의 PK를 막아내리라는 것을.
?
“젠장, 어렵구만.”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야. 어쨌든 차는 쪽이 먼저 움직여야 하니까.”
훈련 때,
동료들의 승부차기를 모조리 막아냈던 게 샤오 후.
승부차기라는 것은,
필연히 키커가 골키퍼보다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골키퍼는 키커가 어디로 찰 지 방향을 예측한 뒤 뛰는 것이고.
하지만,
그 방향을 알 수 있다면 키퍼는 먼저 뛸 수 있다.
물론 그런 키퍼를 보고 역이용해 반 박자 늦게 차는 키커들도 있지만, 어쨌든 아주 미세하게나마 먼저 뛰는 것만으로 공을 막아낼 수 있는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질 수가 없어.’
샤오 후는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골대 중앙에 자리를 잡고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그런 샤오 후를 마주 바라보는 도훈.
이제는 때가 되었다.
이제는, 상대도 진실을 알 때가 되었다.
지금까지 두 골을 실점하면서, 샤오 후는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틀렸다는 것을.
그저 불운에 의해 실점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가르쳐줄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를 끝낼 때도.
“삐이이이이이익-!”
휘슬이 울리고,
타타타타탓-!
공을 향해 달려드는 도훈.
도훈이 생각한 것은 ‘왼쪽’ 이었다.
그리고,
생각처럼 공이 왼쪽으로 향하려면, 도훈의 오른발은 왼쪽으로 꺾이도록 닫힌 각도가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뻐어어어어어어어엉-!
오른발이 공을 타격했을 때,
오른발의 각도는 상당히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에 샤오 후는 이미 왼쪽으로 뛰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웅-!
“...!?”
찰나의 순간.
페널티 킥을 지켜보던 돈캐스터 선수들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가장 당혹한 것은 역시나 샤오 후였다.
공이,
자신이 뛴 방향과는 정반대로 향하고 있었으니.
철썩-!
“네! 들어갑니다!”
“맨유의 역전 골! 백도훈이 오늘도 헤트트릭을 기록하면서 팀을 구해냅니다!”
공이 들어가고,
도훈은 셀레브레이션을 위해 코너 플래그를 향해 뛰어가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허탈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샤오 후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눈으로 전했다.
‘네 스승에게 전해. 덤비려면 ’직접‘ 덤비라고.’
시합은 그걸로 쐐기였다.
그리고,
관중들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페널티 킥이었을 그 마지막 승부는,
돈캐스터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묵직한 한 방이었다.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3대2! 맨유의 역전승으로 이렇게 경기가 마무리 됩니다! 이로써 무패를 유지하게 되는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돈캐스터는 1패를 가지고 가게 됩니다!”
단순히 리그의 한 경기지만,
돈캐스터 선수들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엄청난 허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쉽다고 생각했다.
압도할 수 있다고,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경기를, 연속된 불운으로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대체 마지막의 그 PK는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샤오 후가 방향조차 읽어내지 못한 것일까.
이대로라면 돌아가 바오 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오늘도 역시 백도훈이었죠?”
“아마도 시험대가 될 경기라고 많이들 생각하셨을 겁니다. 양 쪽 모두에게요. 백도훈이 풀어야 할 문제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죠. 하지만, 해트트릭이라는 멋진 정답을 써내면서 문제를 깔끔하게 풀어 보였습니다. 오늘은 두 말 할 것 없이 백도훈의 승리네요.”
시험대는 실패였다.
ㆍㆍㆍ
“잘했다.”
“...?”
패배로 끝난 맨유전.
그리고 바오 란에게 찾아간 돈캐스터의 제자들.
다 이긴 경기를 패배했으니 호된 꾸지람을 예상했던 제자들은, 의외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오 란에게 화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온 힘을 다해 싸우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졌는데도.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실망? 너희들이 이겼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백도훈에게 말이다. 내가 나설 차례도 주지 않고 먼저 쓰러져 버렸다면, 내가 그 녀석에게 실망 했겠지. 근데 다행이야. 그 정도로 멍청한 녀석은 아니라는 게 증명 됐으니.”
“아아..”
바오 란은 진심이었다.
백도훈이 자신이 아닌 제자들에게 패배를 당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실망할 일.
그래도 지상까지 내려올만한 녀석이었다는 게 증명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샤오.”
“예.”
“세 점이나 실점했다.”
“죄송합니다.”
“뭔가 느낀 것이 있겠지.”
샤오 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페널티 킥 승부에서, 제가 속았습니다. 분명 방향을 읽어 냈으나, 백도훈은 그 반대로 차더군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른쪽으로 차겠다는 걸 읽었는데, 왼쪽으로 차더라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거 재밌군. 근데 말이다, 샤오.”
바오 란의 부름에 고개를 드는 샤오 후.
“그 전의 실점 두 개는?”
“그건.. 보시면 아실테지만 운이 나빴습니다.”
“정말 운이라고 생각하느냐?”
“예?”
미소를 짓는 바오 란.
바오류의 근간, 비기인 ‘미래예지’ 를 속인다라.
물론 바오 란이 그걸 하는 사람을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은 호산이라는 자에게 그것 때문에 패배한 적이 있었으니까.
다만,
백도훈이 자신의 수제자인 샤오 후를 속여낼 정도로 빠르게 바오류를 꿰뚫어 봤을 줄이야.
확실히 호산류의 적통 계승자인 녀석이다 싶었다.
그래서 재밌다는 이야기였다.
“그 두 골 모두 운이 아니었다.”
“예..?”
“모두 녀석이 노린 골이란 말이다.”
“그럴 수가..”
바오 란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백도훈의 앞선 두 골 모두.
운에 의한 골이 아니라 100퍼센트 노려서 만들어낸 골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은.
바오 란은 백도훈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상대가 자신을 속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 해야할지는 생각해 보았느냐?”
“그건... 가르침을 주십시오.”
“그래. 내가 가르침을 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오 란.
바오 란은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다.
“직접 보여주마. 내가 그 녀석을 막는 것을.”
자신만만하게 웃는 바오 란.
“녀석의 처형대가 만인의 앞에서 마련될 것이다.”
맨유는 3라운드 뒤인 프리미어 리그 12라운드에서 블랙번 로버스를 만나게 될 예정이었다.
ㆍㆍㆍ
맨유가 돈캐스터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프리미어 리그에 유이하게 남은 무패, 아니 전승 팀은 단 두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블랙번 로버스.
이 두 팀은, 2주가 더 지나 리그가 11라운드까지 진행 됐을 때까지도 여전히 승리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따져 본다면 현재까지 단 1실점도 허용치 않고 있는 블랙번이 더 압도적인 전승 팀이라고 볼 수 있을 터.
리그가 11라운드까지 진행되는 동안 무실점.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블랙번이 딱히 수비 지표들에 있어서 압도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
걷어내기, 가로채기, 태클 성공률 따위의 지표들 말이었다.
그 말인 즉, 무실점의 이유는 오로지 바오 란의 선방 능력이 7할 이상을 해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블랙번의 골문을 가장 먼저 열 가능성이 높은 건, 역시나 이번 12라운드에서 만나게 될 맨유겠죠. 아니, 어쩌면 골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팀이 맨유일지도 몰라요. 적어도 지금까지 블랙번의 바오 란 골키퍼가 보여준 활약으론 그렇죠.”
그렇기에,
이번 12라운드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
맨유의 백도훈과,
블랙번의 바오 란.
그 둘이 맞붙는다면, 모든 것을 뚫어내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가 만난다면 승리하는 것은 누가될 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그 질문의 대답이, 바로 12라운드에서 나오게 될 것이었다.
그 경기가,
2023년 11월.
블랙번 이우드 파크에서 열리게 되었다.
“오늘, 이 곳에서 어떤 경기 결과가 나오든 프리미어 리그엔 단 한 팀만 전승 팀으로써 남을 수 있게 됩니다. 혹은 사이좋게 무패에 만족하게 될 수도 있겠고요. 홈팀 블랙번 로버스와, 원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격돌하게 된 공동 1위.
한 쪽이 이기든, 무승부가 되든 두 팀 모두가 전승의 기록을 이어나갈 수는 없다.
어떤 의미로 보나 올 시즌을 통틀어 앞으로의 리그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이는 오늘의 경기.
“양 팀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 입장을 마치고, 한 명씩 악수를 나누는 선수들.
보통 경기 시작 전엔 다들 으레 그렇듯 어느 정도 적대감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 따라 더욱 심한 적대감을 느끼는 도훈.
그러나,
“...”
“...”
바오 란과 악수를 나눌 때 만큼은 그런 적대감을 느낄 수 없었다.
바오 란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정체를 몰랐다면,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그 미소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도훈은 그 미소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치,
‘넌 나를 뚫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듯 했으니.
때문에,
도훈도 그 미소에 미소로 화답했다.
‘넌 나를 막을 수 없다.’
라고 말하면서.
“경기장에 긴장감이 흐르네요.”
“중요한 경기니까요. 이 경기를 기다리신 분들이 워낙 많기도 하고요.”
선수들의 악수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며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익-!”
휘슬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 되었다.
마침내 시작된 맨유와 블랙번의 90분.
이 경기에 있어 팀의 승패 보다도 주목을 받는 건 역시나 도훈과 바오 란의 대결이었다.
올 시즌 모든 팀을 상대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11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공격수와, 11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골키퍼의 대결.
“천천히 경기를 시작하는 블랙번.”
“확실히 블랙번도 맨유를 상대할 땐 다르군요. 신중합니다. 블랙번이 첼시를 잡았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킥 오프부터 시종일관 몰아 쳤습니다.”
사실,
무실점 기록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블랙번은 오히려 매우 공격적인 팀이었다.
웬만한 팀들은 대부분 3점차 이상으로 이겨 버리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
경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 자체가 거의 공격 일변도에 가까운 팀이 바로 블랙번.
하지만,
오늘따라 블랙번은 나름 신중하게 초반을 시작하고 있었다.
후방에서 천천히 공을 돌리며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듯.
그건 블랙번 역시도 맨유를 쉬운 상대라고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맨유는 맨유고 백도훈은 백도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물론 도훈이 그런 블랙번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1분 1초씩 시간이 흐른다는 건 도훈에게 좋을 게 없었으니까.
90분 안에 바오 란이 지키고 있는 골문을 열어 젖혀야 하는 게 오늘 도훈의 미션.
따라서 1분 1초가 무의미하게 흐르는 것 자체가 도훈에겐 미션 성공의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맨유가 먼저 올라 갑니다!”
“전방 압박을 시도하네요. 이게 라겔스만 감독이 선택한 방법이군요.”
맨유는 마냥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전방 압박을 통한 공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훈의 타임 어택은 시작 되었다.
< 타임 어택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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