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66화 (166/173)
  • < 시험대 (4) >

    “후우.”

    ?

    후반전이 끝나고,

    드레싱 룸에서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

    그 어느 경기때 보다 힘들어 보이는 듯한 선수들의 모습.

    이렇게 한 점을 뒤진 채로 드레싱 룸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처음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더 문제인 것은 경기력.

    단 한 번도,

    올 시즌 들어, 상대가 더 뛰어난 경기력을 펼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는 맨유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분명히 전반전 동안 더 위협적이었던 건 돈캐스터였다.

    그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

    도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선수들에게 말했다.

    ?

    “다들, 느끼고 있겠지만 상대는 우리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플레이하고 있어.”

    ?

    단도직입적인 도훈의 말에 고개를 갸웃였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

    확실히 전반전 동안 느껴지던 위화감.

    마치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고 있는 듯 하던 상대.

    그 위압감에, 선수들은 머리가 복잡해 질수밖에 없었다.

    왼쪽으로 가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니 왼쪽으로 가는 척 하다 오른쪽으로 꺾자.

    잠깐, 근데 그것까지 예측하고 있다고?

    그럼 한 번 더 꼬아서 다시 왼쪽으로?

    젠장!

    ?

    “이런 식이었지.”

    “맞아.”

    “그랬어.”

    ?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

    그런 선수들에게,

    도훈은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반대로 생각을 없애자. 그저, 몸이 가는대로 움직이는 거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라.

    어차피, 복잡하게 생각해봐야 상대는 어디까지 생각하든 한 발 그 이상을 대처해내고 있었다.

    그러니,

    아예 단순하게 가자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기다리는 거야. 상대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겠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우린 한 발 늦게 따라가도, 충분히 상대를 막아낼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공은, 우리가 더 잘 차. 무슨 말인지 알겠지, 다들?”

    “후우. 오케이.”

    “위축될 거 없어. 가보자고.”

    “그래!”

    ?

    알게 모르게 경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위축이 되어갔던 선수들.

    그러나,

    이들은 위축될만한 선수들이 아니었다.

    위축되어야 할 선수들이 아니었다.

    ?

    “우리는 슈퍼 팀, 맨유다.”

    “가보자.”

    ?

    세계 최고의 팀을 만들기 위해 모인 선수들이라는 자부심.

    누구도 우리의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자존심을 가지고.

    맨유의 선수들은 후반전을 위해 심기일전 했다.

    ?

    ?

    “삐이이이이익-!”

    ?

    시작되는 후반전.

    맨유의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 지금까지 후반전이라는 의미는 얼마나 상대를 전반보다 더 밀어붙일 수 있을지를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밖에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 하프 타임 동안 걱정이 앞섰던 적도 없는 듯.

    리그에서의 1패라는 건 언제든지 나올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 시즌의 맨유에겐 해당 사항이 아닌 일이었으니.

    ?

    파아앙-

    ?

    파아앙-!

    ?

    “여전히 돈캐스터의 패스 플레이는 빠릅니다.”

    ?

    실점은 불운에 의해서일 뿐.

    경기는 여전히 자신들이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감 있게 후반 초반을 이끌어 나가는 돈캐스터.

    여전히 그들의 패스 플레이는 정교했고, 정확히 말하면 맨유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패스의 길은 도저히 차단하기 힘든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전반 초반과 조금 달라진 점은 관중들의 눈에도 보이고 있었다.

    전반 초반과 똑같이 패스 플레이를 허용하면서도, 1대1로 상대와 마주할 때면 이전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

    그 바탕에는, 역시나 도훈이 하프 타임에 했던 말을 선수들이 상기하며 경기장에 나섰기 때문일 것이었다.

    일단은,

    ?

    ‘기다린다.’

    ?

    뭔가 하려고만 하면 족족 간파 당했던 전반.

    그러나 생각을 바꿔, 상대가 먼저 움직이게끔 놔둔 채 따라가기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맨유의 선수들.

    ?

    ‘흠?’

    ?

    그런 맨유 선수들을 앞에 두고, 돈캐스터 선수들은 조금씩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고 있었다.

    돈캐스터 입장에서는 상대가 먼저 덤벼드는 쪽이 당연히 훨씬 편했다.

    그걸 역이용하면 너무나 쉽게 이겨낼 수 있으니까.

    그게, 전반까지는 그랬었다.

    하지만,

    후반 들어서는 먼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대.

    그렇다면,

    ?

    파아앙-

    ?

    타타탓-!

    ?

    이 쪽에서 먼저 움직이는 수밖에.

    마로셀루를 앞에 두고 사이드 돌파를 시도하는 마 두이펑.

    전반 초반, 마로셀루에게 굴욕을 선사하는 돌파를 선보였었던 마 두이펑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

    타타타탓-!

    ?

    마로셀루는,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마 두이펑이 돌파를 시도하는 순간 따라 움직였다.

    말하자면 한 발 늦게 드리블에 반응한 것.

    그렇게 해서는 보통 돌파를 막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들은 조금 달랐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실력자들이었다.

    ?

    촤아아아-

    ?

    “...!”

    ?

    파아아앙-!

    ?

    옆에서 들어가는 마로셀루의 슬라이딩 태클.

    그 태클은 깔끔하게 공을 향해 들어갔고, 정확히 갈고리처럼 공만을 가져 왔다.

    옆에서 들어오는 상대의 태클까지는 읽어낼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완벽히 공을 빼앗기고 마는 마 두이펑.

    마로셀루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

    파아아아앙-!

    ?

    동료에게 패스를 전달했다.

    ?

    “마로셀루의 깔끔한 수비!”

    “이게 원래 맨유 수비진이 보여주는 모습이죠!”

    ?

    돈캐스터는 분명히 경기를 쉽게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마로셀루가 공을 뺏어낸 뒤 패스를 할 것이라는 건 읽어냈지만, 그 전에 마 두이펑이 공을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은 읽어내지 못했고 몸이 움직이는 게 늦었다.

    마로셀루의 패스를 받은 피에니치는,

    ?

    뻐어어어어엉-!

    ?

    곧바로 오른쪽의 도훈에게 공간 패스를 찔러 넣었고,

    ?

    타타타타타탓-!

    ?

    타타타타타탓-!

    ?

    도훈과 양 쥔첸의 속도 경쟁이 시작 되었다.

    이번에도 한 발 빠른 것은 양 쥔첸이었다.

    도훈은 공이 피에니치의 발에서 떨어지는 순간 스타트를 했지만,

    양 쥔첸은 이미 피에니치가 패스의 코스를 정한 순간 뛰기 시작 했으니.

    때문에 앞서 가는 건 양 쥔첸이었고, 도훈이 그 뒤에서 쫓아가는 모양새였다.

    어찌됐든,

    공은 깊숙한 공간으로 떨어질 것이었고 양 쥔첸이 공을 잡더라도 도훈이 끝까지 따라가 준다면 위험 지역에서의 압박을 넣어줄 수 있는 것이긴 했다.

    그러나,

    도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먼저 공을 잡겠다는 생각뿐이었지.

    ?

    타타타타타타탓-!

    ?

    “빠릅니다!”

    “백도훈의 스피드!”

    ?

    자리에서 모두 일어서는 관중들.

    마치 계주 시합에서, 마지막 주자가 상대를 역전할 때 느껴지는 전율이 경기장 전체에 이는 듯.

    양 쥔첸의 뒤를 따라가던 도훈은,

    어느 새 양 쥔첸과 나란히 달려가고 있었고,

    ?

    “...!”

    ?

    잠시 후엔 양 쥔첸이 도훈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압도적인 주력.

    ‘따라 잡힌다’ 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들 전혀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양 쥔첸에겐 두려움이 한 발 먼저 느껴졌을 뿐.

    그 때만큼은 능력이 없는 게 나았을 정도.

    ?

    파아앙-!

    ?

    “그렇지!”

    “해보여라!”

    ?

    오른쪽 사이드 깊숙한 위치에서 공을 먼저 잡아낸 도훈.

    곧바로 등 뒤로 붙어주는 양 쥔첸.

    그 상태에서,

    ?

    ‘단순하게.’

    ?

    도훈은 볼 것도 없이 박스 쪽으로 공을 차놓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페인팅 일절 없이,

    단순한 속도 경쟁.

    몸과 몸으로 부딪히는 오롯한 피지컬의 대결.

    양 쥔첸은 도훈의 상대가 되고 있지 못했고,

    도훈은 순식간에 공을 몰고 박스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샤오 후와의 대결.

    각은 좁았다.

    시간도 많지 않았다.

    왼편에선 돈캐스터의 중앙 수비수들이 달려들고 있고, 얼마 없는 골문의 빈 공간도 샤오 후가 몸으로 완전히 틀어 막고 있는 상황.

    게다가 자신이 무슨 선택을 하든 상대는 그것을 한 발 먼저 읽어내고 대처할 것이다.

    기어코 몸으로 여기까지 공을 끌고 오긴 했지만, 사면이 막힌 듯한 답답한 상황.

    도훈은 1초안에 그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

    ‘다리 사이.’

    ?

    도훈이 샤오 후 키퍼의 다리 사이를 노려보며 오른발을 크게 당겼다.

    도훈은 그들을 속일 수 없었다.

    도훈이 다리 사이를 노리겠다고 선택한 순간 이미 그들은 모두가 다리 사이로 슈팅이 날아들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속일 수 없기 때문에,

    도훈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속였다.

    ?

    슈우우우웅-

    ?

    촤아아아-

    ?

    뻐어어어어어어어어엉-!

    ?

    다리 사이로 공을 넣겠다고 한다면,

    슈팅은 당연히 땅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히 발등이 공을 타격하는 지점이 최소한 공의 중앙부 이하가 되면 안될 것이고.

    그러나,

    도훈의 발끝은 공 아래의 잔디결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공의 아랫부분을 타격했다.

    미묘한 차이지만,

    도훈의 오른발이 뇌의 명령을 거스르고 스스로 아랫 쪽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

    슈우우우우우우우웅-

    ?

    1초?

    0.5초?

    아니,

    그것보다 더 짧은 시간일 것이다.

    체중을 실어 강력하게 때린 도훈의 슈팅이 골대까지 향하는 시간은.

    그 시간 동안,

    다리를 오므리고 있던 샤오 후가 예상치 못하게 머리 위로 향하는 슈팅에 반응한다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는 불가능했다.

    ?

    처어어얼썩-!

    ?

    도훈이 두 번째로 샤오 후가 지키고 있는 골문을 꿰뚫는 순간.

    ?

    “와아아아아아아앗-!”

    “컴 오오오온-!”

    ?

    천지가 개벽하듯 올드 트래포드가 함성을 내질렀다.

    ?

    ?

    우스운 일이었다.

    천하의 맨유가, 동점 골에 그렇게 환호한다는 것은.

    그것은 분명히 돈캐스터도 그만큼 강력한 상대였다는 의미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이들에게 역시나 백도훈은 누구도 막아낼 수 없다는 게 증명되었다는 게 중요할 뿐이었지.

    ?

    “올드 트래포드가 미친듯이 들썩입니다!”

    “돈캐스터 선수들의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환호하는 홈 팬들!”

    ?

    도훈을 향해 환호하는 수만 명의 팬들과,

    그 수만 명을 마주보며 마주 환호하는 도훈.

    ?

    “...”

    ?

    그 환호 아래서,

    샤오 후는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슈팅 코스는 예측을 했었다.

    다리 사이.

    그런데,

    슈팅은 머리 위로 날아 들었다.

    대체 어떻게?

    ?

    ‘설마.’

    ?

    샤오 후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설명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맨유가 아닌 하위 팀들과 상대를 하면서 몇 번이나 느꼈었던 그것.

    그저,

    잘못 맞았을 뿐이라는 것.

    그것 밖에는 다리 사이를 노렸으면서 공이 머리 위를 지나간 것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프로 선수라도,

    100번 공을 차 100번 모두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하위 팀들에겐 오히려 예측이 잘 안먹혔고, 신체 능력만으로 상대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는 샤오 후였다.

    하지만,

    설마 백도훈 역시도 그럴 줄이야.

    오히려 백도훈이기에 믿었건만.

    하필, 여기서 상대의 미스가 나와 역으로 실점을 하다니.

    ?

    ‘배신감이 들 정도인데.’

    ?

    샤오 후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묘한 경기였다.

    불운에 의한 실점만 두 번째.

    그리고,

    그렇게 여전히 두 번의 실점이 ‘실력’ 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샤오 후의 안일함은,

    어떻게 되었든 오늘 경기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

    ?

    동점이 되면서 180도로 달라진 경기장의 분위기.

    관중들에 눈엔 첫 번째 만회 골과는 성격이 다른, 완벽했던 도훈의 두번째 골에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다시 자신들은 맨유라는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만족한다면 맨유답지 않다는 걸 모두는 알고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역전 골.

    ?

    “무패 팀들간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이 날까요. 어느 덧 후반전도 10분이 남아 있습니다.”

    ?

    후반전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돈캐스터도 더 이상 후방을 비운 채 전원이 공격에 가담할 수 없었고, 맨유도 역전을 노리지만 일단은 돈캐스터의 공세를 막아내는 것만으로 바빠 보였다.

    그렇게 두 팀이 팽팽히 맞서던 후반 38분.

    마침내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 왔다.

    그것은 양 팀 모두가 예상치 못한 형태로였다.

    ?

    뻐어어어어엉-!

    ?

    파아아앙-!

    ?

    “삐이이이이이이익-!”

    “어어, 지금은?”

    “손에 맞았다는 것 같은데요! 찍었어요, 페널티 킥 선언입니다!”

    ?

    코너킥 상황에서 문전으로 올려진 도훈의 크로스.

    그것이 로카쿠의 머리를 맞고 떨어지며, 문전 앞에서 혼잡한 상황이 펼쳐졌는데,

    그 순간 예기치 못한 돈캐스터의 핸드볼 파울이 선언된 것이었다.

    돈캐스터 입장에서는 정말 운이 따르지 않는 오늘 경기.

    후반이 끝나가는 시점에 페널티 킥이라니?

    하지만,

    ?

    ‘믿는다.’

    ?

    돈캐스터 선수들은 후반 막판에 페널티 킥을 내주게 되었어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바로,

    이 페널티 킥이야말로,

    샤오 후의 장기니까 말이었다.

    < 시험대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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