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65화 (165/173)

< 시험대 (3) >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 명의 상대를 마주하면서,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려할 지 않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도훈을 끌어 들이기 위해 기다렸던 양 쥔첸의 선택은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고,

도훈은 그 공을 뺏어내 곧바로 돈캐스터의 박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반 8분만에 맨유에게 2대0이라는 굴욕을 선물했던 돈캐스터.

그리고 그 이후로도 경기를 쥐락 펴락 하고 있었던 돈캐스터.

이 곳, 맨유팬들의 성지 올드 트래포드에서 그러한 꼴을 마주한 팬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건방진 자식들.’

지금, 도훈 자신의 마음도 이러한데.

“박스엔 두 명의 수비밖에 없습니다!”

박스 안엔 두 명의 수비 뿐.

그러나 그렇다 해도 완벽한 찬스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어차피 빈 곳의 동료에게 패스를 넘긴다 해도, 아까 전 확인했듯 샤오 후를 뚫어낼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국 샤오 후를 상대할 수 있는 건 본인뿐이라고 생각하며,

도훈은 어떻게든 눈앞의 수비를 제쳐내야만 한다고 마음 먹었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그리고,

돈캐스터의 센터백 웨이 라오 앞에서 춤추기 시작하는 도훈의 다리.

브리스틀과의 경기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지주신보.

브리스틀은 꽤나 많은 정보를 가져다 주었었지만,

도훈도 모든 걸 보여줬던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웨이 라오는 처음 마주하는 그 모습을 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여덟 개의 다리가 공 주변을 휘젓는다.

그 중 어떤 것이 진짜인 지 알 길이 없다.

때문에 웨이 라오는 시각 정보에 집중하는 대신 도훈의 머릿속을 꿰뚫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어떻게..?’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웨이 라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훈의 머릿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

왼쪽으로 움직이겠다든지, 오른쪽으로 움직이겠다든지, 혹은 패스를 내주겠다든지.

그런 생각 자체가 없었고, 그저 몸만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파아앙-

타타타탓-!

박스를 향해 대각선으로 달려들던 도훈이 중앙 쪽으로 접고 들어가는 순간,

따라가는 웨이 라오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퍼어어억-!

콰당탕-!

“삐이이이이이이익-!”

자신을 지나쳐가는 도훈의 다리를 걸어 버리고 마는 웨이 라오.

그리고 울리는 주심의 휘슬.

“옐로 카드가 주어 집니다!”

“지금은 확실하게 경고죠! 아니, 오히려 운이 좋습니다! 레드 카드가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백도훈에게 저런 찬스는 곧 득점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박스 바로 앞에서 벌어진 파울.

웨이 라오에겐 옐로 카드가 주어졌고, 맨유는 좋은 위치에서 프리 킥을 얻게 되었다.

보통이라면,

옐로 카드를 감수했더라고 해도 수비 입장에서는 일단 그 돌파가 끊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볼 수는 있었다.

어쨌든 돌파를 허용하는 것보다 프리킥을 내주는 것이 실점의 확률 자체는 줄어든 것이니까. 퇴장을 당한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 위치에서 다른 선수가 아닌 도훈에게 프리킥을 내줬다는 것은, 어쩌면 더 위험한 행위일 수도 있었다.

물론,

“일단은 막았어. 천천히 생각하자고.”

“들은 적 없는 드리블을 쓰더군. 이건 상의를 좀 해봐야할 것 같아.”

그것 역시도 보통의 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돈캐스터는 프리킥에 대비해 수비벽을 세우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 했다.

일단은 막았다고.

브리스틀 선수들이 보고한 적 없는 그 드리블에 대해 바오 란에게 보고를 해야 겠다고.

그 말인 즉,

이 프리킥에서 실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프리킥이라는 건 키커에게 그렇게 유리한 게임은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성공률이 70퍼센트가 넘는 페널티 킥과 달리 성공률이 10퍼센트만 넘어도 위력적인 키커로 분류되는 게 프리킥이니까.

하물며,

돈캐스터 선수들이 믿고 있는 샤오 후는,

훈련 때 페널티 킥 마저도 10번 중 7번 이상은 막아내는 골키퍼 였으니까.

이런 프리킥에서, 키커가 아무리 백도훈이라고 하더라도 실점할 확률은 극히 낮다고 생각하는 돈캐스터 선수들의 생각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백도훈 선수가 처리 하겠죠.”

“위치 상으로는 왼발로 처리하는 게 더 용이한 위치지만, 백도훈이라면 어느 코스로도 넣을 수 있는 선수니까요. 심지어 왼발로 찰 수도 있을 겁니다. 주 발의 의미가 없는 백도훈이니까요.”

키퍼가 바라보는 기준에서, 박스 중앙에서 살짝 왼쪽에 거리는 22미터.

그 곳에서 오른발로 처리할 듯 자리를 잡는 도훈.

그리고,

“...”

“...”

서로를 노려보다 눈이 마주치는 도훈과 샤오 후.

순간,

샤오 후는 도훈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읽었다.’

그 순간 이미 도훈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느 방향으로 프리킥을 차려 하는지.

그런데,

피식-

도훈도 미소를 지었다.

“삐이이이이이익-!”

휘슬이 울리고,

타타탓-

공을 향해 달려드는 도훈.

그리고,

뻐어어어어어어어엉-!

도훈이 프리킥을 때렸다.

그와 동시에 몸을 움직이는 샤오 후.

도훈의 킥이 워낙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도훈이 공을 차는 동시에 몸을 움직인 샤오 후였다.

슈우우우우우웅-

도훈이 킥을 찬 방향은,

수비 벽의 머리 위를 넘기는 방향.

말하자면 가까운 거리의 프리킥을 처리하는 정석의 방향이었다.

‘너무 정직한 거 아냐?’

샤오 후의 미소는 그 의미였다.

그래도 좀 꼬아서 프리킥을 처리할 줄 알았던 백도훈이, 너무 정직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뭐, 어쩌면 자신감의 표출이자 자존심 일수도 있었다.

정공법으로 자신이 지키고 있는 이 골대를 뚫어낼 수 있다는.

하지만 그것은 오만일 것이었다.

이미 이렇게 한 발 먼저 반응하고 있는데, 제 아무리 백도훈이라도 이 코스로 프리킥을 성공 시킬 순 없을 터였다.

그런데,

1초도 안되는 짧은 찰나의 순간 뒤.

샤오 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슈우우우웅-

파아아아아앙-!

공이 수비 벽을 넘기도 전에 울려 퍼지는 타격음.

정확히 말하면, 공이 수비 벽을 넘는 순간이었다.

“굴절!”

도훈의 킥이,

힘껏 뛰어 오른 수비 벽의 머리에 맞은 것.

수비 벽을 넘기려던 도훈의 계산이 미스였던 것일까.

아니면 수비의 점프력이 계산 밖이었던 것일까.

어쨌든,

어느 쪽이든 도훈의 킥은 성공적이지 못한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웅-

투우웅-!

수비 머리 맞고 방향이 꺾여 박스 안으로 떨어지는 공.

공은 수비 벽에 완전히 막힌 것이 아니라, 방향만 바뀌는 굴절이 되었을 뿐.

그리고 그 공은,

여전히 속도가 죽지 않은 채 바운드 되어,

슈우우웅-

출렁-!

샤오 후 키퍼가 몸을 날렸던 반대쪽,

빈 골문 안으로 흘러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도훈의 프리킥이, 굴절이 되어 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들어갔어요, 골입니다-!”

“이게 이렇게 들어 가네요. 맨유에게 행운이 따르는 프리킥 골이 터졌습니다!”

골문으로 들어가버린 공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샤오 후 키퍼.

그리고 그 공을 냅다 가져가 뛰어가는 맨유 선수들.

불운이었다.

차라리 수비 머리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주 가볍게 자신이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킥이었는데.

“올 시즌 두 번째 실점을 하는 돈캐스터의 샤오 후 키퍼입니다. 첫 실점도 굴절에 의한 실점이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굴절이네요.”

“바꿔 말하면 굴절 외에는 실점을 안했다는 뜻인데, 어찌됐든 맨유에게 행운이 따랐습니다.”

만회 골에 환호하는 올드 트래포드의 홈팬들.

하지만,

완전히 열광적인 환호가 아니라 조금은 김이 새는 환호였다.

물론 어떻게든 만회 골이 터진 것은 상당히 기쁜 일이었다.

멋지고 시원하게 상대의 골문을 열어젖혀주길 바랐던 것과는 달리 요행이 섞인 골이었고, 때문에 상대가 가진 철벽의 이미지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들 아니고는 골이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예에에에에에-!”

그런데,

골 이후 도훈의 행동이 조금은 의외였다.

평소라면 그런 골에 셀레브레이션도 하지 않았을 도훈이었다.

그런데, 도훈은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그리고,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휘저어 보이며 더 크게 환호하라는 듯 호응을 유도했다.

충분히 환호해도 되는 골이다, 라고 말하는 듯이.

“와아아아아-!”

그 모습에 일단 환호하고 보는 관중들.

도훈이 하라는 데 환호하지 않을 맨유 팬은 없었다.

다만,

그러면서도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천하의 백도훈이, 굴절 골로 저렇게 기뻐한다는 것 자체가 썩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방증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돈캐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았던 골에 저렇게 환호하는 모습이라니.

녀석도 절박하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돈캐스터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 골에 대한 진실을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골의 진실은, 도훈만이 알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호산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이 골의 진실.

‘성공했어.’

만약,

그 굴절을 노렸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랬다.

사실,

그 굴절은 도훈의 계산이 틀려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노린 것이었다.

그래서 도훈도 기뻐했던 것이었고.

사실은 즉흥적인 것이었다. 호산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도 그 이유.

샤오 후는 분명히 다른 바오 란의 제자보다도 훨씬 능력의 활용 수준이 뛰어난 자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도훈은 판단했다.

그래서, 그걸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고.

그게 일부러 굴절이 되도록 수비가 뛰어오르는 그 높이로 조준하여 찬 킥이었다.

벽을 세운 수비수들 역시 도훈의 킥을 예상했을 것이고, 반드시 뛰어 오를 수밖엔 없었다.

도훈은 그 머리를 맞춘 것이고, 결과적으로 공은 굴절이 되어 방향이 꺾인 채 빈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운이 따른 골이 아니라, 도훈이 완벽하게 만들어낸, 노림수의 절정인 골이었다.

그래서 도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던 것이고.

또한,

‘너희들의 밑천은 다 드러났다.’

이 시합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시발점이 되는 골이기도 했다.

전반 16분,

1대2로 따라가기 시작한 맨유.

그러나 한 점의 실점은 사고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돈캐스터 였기에, 그 이후로도 경기 양상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역시나, 그저 백도훈을 맞상대할 때는 좀 더 주의를 가져라 라는 정도의 피드백만 서로 확인했을 뿐.

돈캐스터는 여전히 맨유를 상대로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하 듯, 여유롭게 플레이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샤오 펑, 쉽게 콩테를 속여내고 오른쪽으로 내줍니다.”

“콩테가 저렇게 쉽게 벗겨지는 선수는 아닌데, 오늘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가주는 콩테. 저런 점이 은골로 콩테의 가장 큰 장점이죠.”

하지만, 도훈의 만회 골 이후 맨유 선수들은 경기 초반과 같이 당황에 빠진 모습에서 벗어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중원에서의 돌파를 허용했지만, 악착같이 다시 따라가 수비 숫자를 채워주는 콩테.

각자의 자리에서 단단하게 라인을 구축하는 수비수들.

아무리 돈캐스터 선수들이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지만,

단순한 운동 능력, 공을 다루는 스킬.

그리고 풍부한 경험은 맨유 쪽이 위였다.

그걸 바탕으로, 맨유는 차근 차근 돈캐스터의 공세를 버티는 것으로 전반전을 끌고 나갔다.

그리고,

“삐이익, 삐이이이익-!”

전반전은 2대1의 스코어 그대로 끝이 났다.

어쨌든,

그렇게 맨유가 한 점을 뒤졌지만 잘 버텨냈다는 한 줄 평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전반전.

그렇기에 후반전도 맨유가 낙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도훈은 빠르게 드레싱 룸으로 돌아가면서, 동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후반전.

충분히 경기를 뒤집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 시험대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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