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64화 (164/173)
  • < 시험대 (2) >

    돈캐스터가,

    브리스틀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도훈은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수준도 확실히 한 단계 위였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 또한 다르다는 게.

    돈캐스터는 시작부터 오늘의 90분 동안 모든 걸 쏟아 붓겠다는 듯한 태도였고, 이 한 경기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태도였다.

    그렇다면,

    이 쪽에서도 똑같이 대해주는 게 프로로서의 예의겠지.

    아니,

    프로로서가 아니라.

    ‘호산류의 명예를 걸고.’

    호산류의 적통 계승자.

    백도훈과 스승님의 명예를 걸고.

    이 싸움에 응해주마.

    “전반 8분만에 2대0으로 돈캐스터가 앞서 갑니다.”

    일단은,

    맨유 선수들이 많이 당황한 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돈캐스터가 강할 것이라는 거야 현재 리그 성적을 봐도 그렇고, 상대를 분석하면서부터 알고야 있던 것이지만.

    맨유 역시도 극강의 면모를 보여주며 리그를 치뤄 왔던 입장이고, 또한 선수들 모두가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기에.

    초반부터 이렇게 밀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듯 싶었다. 당연하게도.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은 상대의 기세를 최대한 저지하는 것부터가 먼저일 듯 싶다고 도훈은 생각했다.

    파아앙-

    “헤이!”

    파아앙-

    “리턴!”

    파아앙-!

    경기가 재개된 뒤,

    도훈은 동료들과 활발하게 패스를 주고 받으며 경기장을 넓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나 돈캐스터는 도훈을 집중적으로 따라 다녔다.

    도훈이 계속해서 곧바로 리턴 패스를 뒤로 내줄 수밖에 없도록, 도훈에게 공이 오면 순식간에 세네 명씩이 붙어주는 모습.

    때문에 도훈은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자신이 상대를 이끌어 주면 동료들의 공간이 넓어질 것이고, 공이 활발하게 돌다보면 실점의 당황은 잊고 조금 더 원래대로 플레이할 수 있어질테니.

    “맨유가 일단은 점유율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을 합니다.”

    “이른 시간에 2골이나 실점을 했으니 크게 당황 했을 텐데요. 일단 페이스를 찾는 게 중요 하다고 생각하고 있네요. 백도훈이 공을 빼앗기지 않고 잘 움직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도훈은 공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해서 리턴 패스를 내주며 소유권을 잃지 않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 전진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 역시도 쉽게 전진 패스를 뿌리거나 드리블 돌파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슈퍼 팀의 멤버들인 그 최고의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잃은 상태인 것.

    그도 그럴 것이,

    “...”

    “...”

    공을 잡고 상대를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위화감.

    뭔가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상대의 눈빛.

    뭘 해도 예측이 되고 있다는 듯한 압박감 때문에 맨유 선수들은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2점이나 뒤지며 시작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빠른 동점 골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내가 전진을 해야 돼.’

    역시나 이걸 풀어줄 선수마저도 도훈밖엔 없었다.

    어떻게든 전진을 꾀하며 이 꼬인 매듭을 풀어주어야 하는 도훈이었다.

    ‘쌀보리 게임이라고 아냐.’

    도훈은 동료들과 리턴 패스를 주고 받으며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어릴 때 하던 쌀보리 게임과도 같은 것이었다.

    리턴이 보리라면, 돌파는 쌀.

    상대는 자신이 공을 잡는 순간, 다음 선택을 어떻게 할 지 알고 있기 때문에 리턴 패스가 아닌 전진 드리블을 마음 먹는 순간 더 강력하게 자신을 막아설 것이었다.

    그러니,

    전진을 할꺼라면,

    그 선택은 번개처럼 빨라야 할 것이었다.

    ‘보리.’

    파아앙-

    ‘보리.’

    파아앙-!

    계속해서 하프 라인 근처에서 횡으로 움직이며 동료들과 리턴 패스를 주고 받는 도훈.

    그리고, 그런 도훈을 따라 다니며 도훈의 의도를 읽는 돈캐스터 선수들.

    지금은 계속해서 ‘뒤로 리턴’ 이라는 선택지만이 읽혀지고 있지만,

    언제든 ‘돌파’ 라는 선택지가 읽혀진다면 이들은 곧바로 반응할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지가 읽혀지는 순간 이미 도훈은 상대를 지나쳐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보리.’

    파아앙-

    ‘보리.’

    파아앙-

    그러나,

    도훈은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방법도 있었다.

    그건 바로,

    돈캐스터의 선수들을 포함해,

    자신마저도 속이면 되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보리만을 내던 도훈은,

    ‘보리.’

    다시 한 번 보리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한 뒤,

    타타탓-!

    공을 받음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

    도훈의 턴 동작이 번개처럼 빠르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그것보다 빨랐던 것은 생각의 전환.

    아니,

    그것은 전환이라기 보다 속임수에 가까웠다.

    도훈은 자기 자신을 속였다.

    머리론 패스를 생각하면서도, 몸은 알아서 돌아설 수 있도록.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처음엔 도훈도 그랬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요?”

    “나도 그게 궁금하구나.”

    브리스틀과의 경기가 끝난 후.

    다시 돈캐스터와의 경기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도훈은 한 가지 특별한 개인 훈련을 진행 했다.

    그것은, 육체적인 훈련보다 정신적인 훈련이었다.

    자신의 몸을 속이는 훈련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이런 식이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주먹을 내는 상대를 보고 0.5초 뒤에 가위를 내는 것.

    말만 들으면, 이게 뭐야? 할 정도로 쉬워 보일테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어려웠다.

    애초에 가위바위보란 이기기 위해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상대를 보고 늦게 패를 낼 때 본능적으로 몸은 이기는 패를 내게 되어 있었다.

    지는 가위바위보는 본능을 거스르는 훈련인 것이었다.

    후엔 이것이 쉽게 되자,

    도훈은 마늘을 먹으며 초콜릿의 맛을 상상하는 훈련을 했다.

    입 안에 지독한 매운 향이 퍼지는 순간에도, 마치 초콜릿을 먹고 있는 것처럼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훈련들을 어제까지도 해왔던 도훈이었다.

    머리로 몸을 속여야 했다.

    그래야,

    몸으로도 머리를 속일 수 있을테니.

    그 훈련의 성과는 지금 필드 위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도훈은 분명 머리로는 리턴 패스를 내줄 것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몸은 그것을 무시하고 돌아 뛰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있었던 돈캐스터 선수들은,

    사이를 빠져 나가는 도훈을 잡지 못했다.

    똑같이 조건에서 몸으로 반응하기엔,

    그 속도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으니.

    “백도훈! 돌아 섭니다!”

    “시작이네요!”

    한 번의 턴 동작으로,

    자신에게 붙어 있던 네 명의 돈캐스터 선수들을 떨쳐내고 하프라인을 넘어서는 도훈.

    그 동작 한 번에 도훈과 동료들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공간.

    “치고 들어 갑니다!”

    1차 저지선이 돌파당할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잠시 당황하는 듯한 돈캐스터의 수비 라인.

    하지만 이내,

    “모여!”

    돈캐스터의 주장 왕 후이의 외침과 함께 수비수들이 중앙으로 좁혀들기 시작했다.

    좌, 우에서는 넓게 로멜루 로카쿠와 비니시오스가 침투해 들어가고 있는 상황.

    그러나 돈캐스터는 그 둘을 철저히 무시한 채 도훈이 뛰어들고 있는 중앙만을 막아서기 위해 모여들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어차피 최후의 방어선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이들의 임무는 그저 백도훈만을 막는 것.

    그 외의 ‘떨거지’ 들은 알 바가 아니었다.

    왜냐면,

    파아아아앙-!

    “왼쪽으로!”

    “비니시오스! 완벽하게 비었습니다!”

    타타탓-

    뻐어어어어어엉-!

    박스 왼쪽, 완벽한 프리 상황에서 도훈의 패스를 받은 비니시오스.

    박스 안에는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오직 비니시오스와 샤오 후 키퍼 둘 외에는.

    그런 상황에서 공격수가 골을 놓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특히, 최근의 비니시오스에게는 더더욱.

    그런데,

    슈우우우우우웅-

    거짓말처럼,

    샤오 후 키퍼는 비니시오스의 슈팅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니시오스의 슈팅이 이미 뻗어진 샤오 후의 손으로 향하고 있었다.

    파아아앙-!

    “아니, 이걸 잡아 냅니다!”

    “샤오 후!”

    머리를 감싸 쥐는 비니시오스.

    그리고 광분하는 맨유 팬들.

    “저걸 못 넣어!”

    “야이, 썅! 그걸 못 넣으면 뭘 넣겠다는 거야 이 x자식아!”

    너무나도 완벽한 찬스가 무산되었기에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하지만,

    비니시오스의 잘못은 아니었다.

    슈팅은 한 박자 빨랐고, 코스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저,

    샤오 후가 그걸 미리 알고 있었을 뿐.

    과연, 바오 란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일까.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도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니시오스!”

    “아.. 미안!”

    “좋았어. 근데, 다음엔 나에게 다시 줄 수 있어? 내가 마무리 해볼게.”

    “아.. 오케이.”

    결국 그걸 뚫어낼 수 있는 건 도훈밖에 없는 듯 했다.

    빠른 시간내에 한 점을 만회할 수 있었던 찬스가 무산되자.

    도훈이 어렵게 가져오고 있었던 분위기는 다시 돈캐스터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공격 작업에 거의 모든 선수들이 참여 합니다.”

    “패스 플레이가 아주 기계적이네요. 한 치의 오차도 없고, 선수들의 판단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다시금 맨유의 진영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돈캐스터의 패싱 플레이.

    맨유 선수들이 압박을 가해보려 하지만, 워낙 간결하고 빠르게 패스가 돌아가다 보니 다가서기 전에 이미 공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실정.

    “다가서지 마! 물러서서 막아!”

    결국 압박으로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박스 근처로 물러나는 맨유 수비.

    파이널 써드에서만 킬 패스를 내주지 않는 식의 접근.

    도훈이 생각해도 그것밖에 답이 없겠다고 느낄 정도로, 돈캐스터의 패싱 플레이는 완벽했다.

    그리고,

    그렇게 맨유가 인정하고 뒤로 물러서자,

    돈캐스터는 그에 대한 대답을 다시 내놓기 시작했다.

    “사실 급할 것이 없죠, 돈캐스터.”

    “뒤로 공을 뺍니다. 워낙 맨유가 뒤로 물러나 단단히 수비라인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은 그것을 끌어 올리려는 모습입니다.”

    샤오 후 키퍼에게 길게 백 패스를 내주며,

    급한 건 너희들이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돈캐스터.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경기가 길게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돈캐스터의 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동점, 역전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빠른 만회 골이 필요한 쪽은 맨유였다.

    들어올 거면 니들이 들어오라고 말하는 돈캐스터.

    맨유 입장에서 화가 나는 건,

    여기서 들어가 주는 게 상대가 원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들어가는 것밖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들어가야 한다면.

    ‘가보자.’

    이왕 들어가는 거,

    상대가 예상치도 못한 식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타타타탓-!

    왼쪽 깊숙한 곳에서 공을 잡는 돈캐스터의 레프트백 양 췬젠.

    그리고 양 췬젠에게 달려가는 도훈.

    양 췬젠은, 쉽게 다른 쪽으로 공을 넘길 수 있었지만 일부러 조금 기다렸다.

    자신은 경기장의 외곽, 즉 변두리에 있었고 조금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상대의 핵심인 백도훈 역시도 같은 변두리로 이끌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런 뒤 다시 패스를 이어가면 딱 돈캐스터가 원한대로, 상대를 이끌어낸 뒤 다시 들어가는 모양새가 완성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도훈도 그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달려가곤 있지만, 상대가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패스를 넘긴다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을.

    하지만,

    여기서 공을 빼앗아낸다면 이야기는 180도로 달라지게 된다는 것도 도훈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훈은 날개를 펼쳤다.

    파파팟-!

    “...!?”

    알고는 있었다.

    백도훈이 몸이 세 개로 보이는 마수를 부린다는 것을.

    하지만, 잠깐 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그 순간 누가 진짜 백도훈인지.

    아니면 세 명 모두가 진짜인 것인지.

    양 쥔첸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니, 상대가 뭘 하려고 하는 지 알고 있는 것도 소용이 없었다.

    ‘내 공을 빼앗으려 한다.’

    당황에 휩싸인 양 쥔첸이 읽어낼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었으니까.

    파아아앙-!

    “어엇!”

    “어이없는 실수! 패스 미스가 나왔습니다!”

    다급히 공을 걷어 내려던 양 쥔첸.

    그러나,

    그 공은 몸을 날린 가장 오른쪽 도훈의 발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도훈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박스를 향해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 시험대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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