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63화 (163/173)
  • < 시험대 (1) >

    브리스틀이 맨유에게 1대3으로 패배 하던 날.

    브리스틀 선수들을 포함한 바오 란의 제자들은, 경기가 끝난 뒤 모두 바오 란의 자택으로 집결했다.

    그리고, 보고를 올렸다.

    “분신술을 사용 했습니다.”

    “유령처럼 스쳐 지나 갔습니다.”

    “생각을 읽는 걸 안 모양입니다. 그것을 역이용 했습니다.”

    “판단을 읽은 후 대처하기엔 너무 빨랐습니다.”

    패배가 송구했던 듯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 하는 브리스틀의 제자들.

    그러나,

    바오 란은 그들을 꾸짖지는 않았다.

    바오 란도 그들이 백도훈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아니,

    오히려 이긴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오히려 백도훈이 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다만,

    제자들이 가져 온 정보를 토대로 바오 란은 머릿 속에 그림을 그렸다.

    꽤나 오래 전.

    자신이 천상계에 머물던 시절.

    자신은 그 곳에서 주류에 속하지 못했었다.

    그 당시 주류에 속하던 신선이란 작자들은 너무나도 고상하기만 했었으니.

    항상 숭고한 가치만을 추구하고, 경쟁을 싫어 했으며, 그들은 서열을 메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승리하고, 누군가는 패배하고.

    누구의 축구가 더 뛰어난지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바오 란은 축구라는 것의 근본 자체가 승부라고 생각 했었다.

    승부가 없는 축구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천상계에서 지내면서도 항상 바오 란은 지상이 그리웠었다.

    그 곳에서 축구는, 바오 란이 너무나도 원하는 것처럼 오로지 승부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바오 란은 아주 오랜만에 지상에서 갓 올라온 새로운 신선이 나타났을 때 그를 보자마자 승부를 걸었다.

    다른 기존의 신선들은 모두 자신을 무시하고 승부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그만큼은 곧바로 승부를 받아 주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바오 란은 어떻게 해도 그를 이길 수 없었고, 대체 왜 자신이 지는 것인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실력이 압도적으로 차이났기 때문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도전을 받아주지 않았다.

    자존심이었던 바오류의 축구가 수준 이하라고까지 했다.

    바오 란이 앙심을 품은 것은 그 때부터였다.

    “몸이 세 개로 분리되고, 유령처럼 옆을 스쳐지나갔다고.”

    “그렇습니다.”

    제자의 대답에 미소를 짓는 바오 란.

    분명,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지상으로 내려온 자신은 많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제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의 차이보다도 더 큰 것은,

    자신에게 굴욕감을 주었던 그 자와, 그 자의 제자라는 백도훈 간의 차이라는 걸 바오 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제자들은 마치 대단한 것을 말하듯 몸이 세 개로 보이니, 유령처럼 지나가느니 말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경험했던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것이었으니까.

    “자, 돈캐스터의 열한 명.”

    “예, 바오 란님.”

    “내일, 너희들에게 임무를 주겠다.”

    “받들겠사옵니다.”

    바오 란은 단호히 말했다.

    “전력을 다해라. 전력을 다해, 백도훈을 꺾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브리스틀이 선발대였다면,

    돈캐스터는 돌격대.

    이번, 돈캐스터와 맨유의 경기야 말로, 백도훈에게 자신이 주는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었다.

    이 시험대까지 백도훈이 통과할 수 있다면, 그 때는.

    ‘내가 나설 가치가 있는 것일테지.’

    시험대가 아닌 처형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고.

    ㆍㆍㆍ

    2024년 10월 1일.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돈캐스터 로버스의 시즌 9라운드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올 시즌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세 팀 중, 두 팀 간의 대결입니다. 전승 팀 간의 대결인만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경기인데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주 궁금하네요.”

    8전 전승.

    맨유와 돈캐스터 로버스 모두 지금까지 리그에서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팀들.

    하지만,

    세부적으로 따져 본다면 오히려 성적이 더 압도적인 쪽은 맨유가 아니라 돈캐스터 쪽이었다.

    특히나 실점 부분에서.

    “돈캐스터의 수비력은 리그 최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8경기에서 단 1실점. 그것도 운 나쁘게 굴절로 인한 실점이었는데요.”

    “그 중심에 골키퍼 샤오 후 선수의 놀라운 활약이 있겠죠. 경기당 평균 선방 4개. 선방률 97퍼센트. 괴물같은 골키퍼입니다. 8경기에서 유효 슈팅 34개 중 33개를 막아 냈습니다. 미친거죠.”

    철벽이라는 말이 걸맞는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돈캐스터의 수문장, 샤오 후.

    ‘어쩌면.’

    블랙번 소속의 제자들 보다도, 어쩌면 돈캐스터의 키퍼 장갑을 낀 저 녀석이야 말로 바오 란의 수제자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도훈이었다.

    자신의 포지션을 맡길 정도의 제자가 저 녀석이라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보여주지.’

    오늘, 보란듯이 골을 넣어 주겠다고 다짐하는 도훈.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익-!”

    “경기 시작 됐습니다!”

    경기가 시작 되었다.

    돈캐스터의 선축으로 시작 된 경기.

    “한 번에 길게-!”

    지난 번 브리스틀과의 경기나, 여타 다른 경기들도 마찬가지로.

    보통 맨유를 상대하는 팀들은 경기 초반 조심스럽게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었다.

    천천히 공을 돌리며 자신들의 긴장을 풀기도 하고, 맨유를 상대하는 데 있어 90분은 누구나 길게 느끼는 시간이기에, 경기를 본격적으로 빠르게 시작해봐야 좋을 것도 없기도 하니까.

    하지만,

    돈캐스터는 시작부터 다른 팀들과 달랐다.

    슈우우우우우웅-

    파아앙-!

    “멋지게 잡아 놓습니다.”

    “바로 1대1 치고 들어갈 겁니다! 그렇죠!”

    킥 오프와 동시에,

    전방으로 물밀 듯 밀고 올라가는 선수들과, 전방으로 정확하게 향하는 롱 킥으로 먼저 선공을 시작하는 돈캐스터.

    그리고, 맨유 선수들이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공을 잡자 마자 1대1 돌파를 시도하며 왼쪽을 흔들고 들어가는 좌측 공격수 시 웨이셰.

    맨유의 우측 풀백인 조슈아 케미히는 현 시점에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라이트백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선수였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그랬듯, 언제나 전방위적인 활약과 더불어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게 케미히.

    그런데, 그런 케미히가.

    쉬이익-

    타타타타탓-!

    “제쳐 냅니다!”

    처음부터 쉽게 돌파를 당했다.

    별다른 개인기도 아니고, 그저 상체 페인팅 한 번에 손쉽게 돌파를 허용하는 케미히.

    그리고, 거기서부터.

    파아아앙-!

    “뒤로!”

    돈캐스터의 패스 플레이가 물 흐르듯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 명이 모든 선수를 조종하는 게임에서처럼.

    서로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한 몸처럼 움직이는 돈캐스터의 공격수들.

    하지만 도훈은 이미 알고 있듯.

    그것은 마치가 아니었다.

    정말로,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읽고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브리스틀은 그 부분에서 부족했다.

    상대는 잘 읽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생각을 읽는 것에 있어서 미흡했다.

    그러나,

    돈캐스터는 한 층 더 완성되어 있는 팀이었다.

    촤아아아아-

    스르륵-!

    “기가 막힌 백힐!”

    “좋은 센스네요!”

    한 치의 오차없이.

    맨유의 박스 근처에서 원 터치로 모든 패스를 이어가는 돈캐스터.

    사실 이론적으로.

    축구에서 그렇게 정확하고 빠르게 패스를 이어간다고 한다면, 그걸 막아낼 수 있는 수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기에.

    지금 돈캐스터의 패스 플레이는 이론적으로 완벽했다.

    그리고,

    투웅-

    파아아앙-!

    그 마지막 패스 마저도 완벽했다.

    마지막 패스는 슈팅이었다.

    촤아아아아-

    철썩-!

    “어엇!?”

    “고, 고오올-!”

    당황, 그리고 황당.

    순식간에 맨유의 골망이 출렁이는 순간.

    시끌벅적하던 올드 트래포드가 싸늘해졌다.

    몇몇 관중들은 먹을거리를 사들고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참이었다.

    아직 입장이 다 끝난 것도 아니었고.

    경기가 시작된 지 고작 3분도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

    그런데,

    그런 이르고도 이른 시점에.

    맨유의 골망이 먼저 흔들린 것이었다.

    “돈캐스터의 선제 득점!”

    “이렇게 이른 시간에 맨유가 실점합니다! 이건 예상 외인데요!”

    맨유 선수들 역시도 어안이 벙벙한 실점.

    이런 실점은, 처음이었다.

    시간대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완벽하게 허물어진 실점 말이었다.

    충격적인 선제 실점이었다.

    운이나 어쩔 수 없는 원더골이라 그런 것도 아니고,

    완벽한 패스 플레이에 속수무책으로 뚫려 버린 맨유의 수비.

    리그 최강이라 불리는 이름값을 가진 맨유 수비를 그렇게 쉽게 뚫어낼 수 있었던 팀은 지금껏 단 한 팀도 없었건만.

    그러나,

    돈캐스터는 너무도 쉽게 맨유의 골문을 열어 젖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것으로 놀라기엔 이르다는 것이었다.

    전반 3분의 득점.

    그리고,

    그 득점에서 5분 뒤인 전반 8분.

    “맨유의 첫 슈팅! 그러나 샤오 후 키퍼가 안정적으로 잡아 냅니다.”

    “곧바로 역습으로 가나요!”

    뻐어어어어어어엉-!

    공을 잡아낸 뒤 곧바로 전방을 향해 킥을 때리는 샤오 후 키퍼.

    그런데,

    그 전에 주목할 점이 하나 있었다.

    맨유의 첫 슈팅이 된 미랄렘 피에니치의 슈팅이 때려지는 순간.

    그러니까 피에니치가 슈팅을 때리는 순간 필드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이었다.

    그 때,

    공이 골대를 향해 쏘아지고 있는 시점에, 이미 모두가 역습을 위해 전방으로 몸을 돌린 것이었다.

    보통, 상대가 슈팅을 날리면 반사적으로 골키퍼 쪽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당연.

    골이 들어갈 수도 있고, 세컨 볼이 흘러나올 수도 있으니 슈팅이 나왔다고 해도 수비 플레이를 이어나가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거의 모든 수비가 도훈에게만 붙어 있었고, 피에니치의 킥력은 일품인 수준이기에 프리한 상태에서 때리는 피에니치의 슈팅은 위력적일 수밖에 없었는데도.

    그러나,

    돈캐스터는 보지 않아도 안다는 듯.

    당연히 막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듯 달려 나갔고,

    샤오 후 키퍼는 정말로 쉽게 피에니치의 슈팅을 막아냈다.

    슈우우우우우웅-

    “빠릅니다!”

    덕분에 역습의 속도도 그만큼 빨랐다.

    맨유 진영의 뒷 공간으로 떨어지는 샤오 후 키퍼의 정확하고 빠른 킥.

    그리고 그 공을 먼저 잡는, 한 발 먼저 뛰었던 돈캐스터의 우측 공격수 마 두이펑.

    타타타타타탓-!

    마 두이펑은 그대로 속도를 살려 골 라인까지 순식간에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황급히 복귀하는 맨유의 수비수들.

    그러나 각자의 위치로 복귀하면서, 어지러이 침투해 들어가는 사람까지 막기란 쉽지 않은 일.

    돈캐스터의 선수들은 서로 엇갈리면서 수비수들에게 혼동을 주었고,

    파아아아앙-!

    마 두이펑은 뒤로 컷백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 컷백을,

    촤아아아-

    스르륵-!

    뒤 따라 달려 들어오던 미드필더 레이 롱이 찰 듯하더니 뒤로 흘려 주었고,

    뻐어어어어어어엉-!

    흘려준 공을 수비수 양 췬젠이 그대로 때렸다.

    골 라인에서 뒤로 내준 컷백을 중앙 수비수가 때릴 수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돈캐스터 선수들이 얼마나 전격적으로 역습을 올라온 것인지 알 수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슈팅의 궤적은,

    수비수가 때렸다고 보기엔 너무나도 강력하고 정확했다.

    슈우우우우우우우웅-

    슈팅은 수비수들 사이로 쏘아져 나가,

    처얼썩-!

    픽포트 키퍼의 손아귀를 벗어나 그대로 골망에 꽂혔다.

    돈캐스터의 두 번째 득점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0:2.

    올드 트래포드의 전광판에 띄워진 숫자로는,

    너무도 익숙치 않은 숫자.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기 시간이 이제 8분이라는 것.

    전반 8분만에 두 골을 내리 허용하는 맨유.

    “...”

    맨유 선수들은 스스로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렸고,

    그 실점을 도훈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니네.”

    “꼭 이렇게 전력으로 해야 하는거야?”

    그런 도훈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돈캐스터 선수들.

    돈캐스터는 벌써부터 경기를 잡은 듯이 웃으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자신이 들으라고 한 말일까.

    아니면 그저 자기들끼리 하는 말일 뿐일까.

    하지만, 어느 쪽이 됐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고 도훈은 그 순간 생각했다.

    ‘그거, 실수다.’

    자신을 자극하는 건 실수라는 것을.

    드드득-

    도훈은 목을 꺾으며 조용히 킥 오프를 준비했다.

    전광판의 시계가 가리키고 있듯,

    경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 시험대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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