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62화 (162/173)

< 선발대 (3) >

상대는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 땐 따라서 가만히 있고,

움직이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상대는 움직였다.

움직이는 것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먼저.

‘이것이.. 바오류의 비기인가?’

딱히 엄청난 초식을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폭발적인 신체 스피드나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상대를 압도하는 그들의 방법.

그것은 바로,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백도훈이 뚫고 지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당히 충격적인데요!”

다시 제 자리에 멈춰서는 도훈.

공격수가 두 명의 수비를 뚫고 지나가지 못하는 것이 축구에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도훈이기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맨유 팬들의 얼굴이 얼어 붙었다.

충분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도훈을 그렇게 오랫동안 막아설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누구도 없었으니.

하지만,

아직 도훈도 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때.’

도훈이 기를 방출했다.

파아앗-!

“...!”“...!”

환영신보.

2대1의 대결이었던 그들의 대치가,

순식간에 3대2의 대치로 바뀌는 순간.

한 명의 도훈은 세 명의 도훈이 되었고,

도훈을 막던 위안 하이동과 륜 쓰펑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것을 보았다는 듯이.

툭, 툭, 툭-!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세 명의 도훈.

어찌 되었든,

그들이 진짜 백도훈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움직임을 예측한다 해도 진짜 백도훈, 도훈의 본체 한 명만은 빠져나갈 수 있을 것.

‘이것도 한 번 읽어 보시지.’

이건 도훈의 대답이자, 역으로 그들에게 문제를 내는 것이었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동시에 헛다리를 짚으며 달려드는 세 명의 도훈.

그리고,

파아앙-!

타타타탓-!

순식간에,

“아아, 역시!”

“백도훈!”

도훈은 위안 하이동과 륜 쓰펑을 제쳐낸뒤 그들의 옆을 지나쳐 나왔다.

그 둘은 도훈의 헛다리 경로를 예상하고 발을 동시에 뻗었으나,

둘 다 허상.

진짜 도훈은 가장 왼쪽에 있었고, 그 둘을 왼쪽으로 제쳐내며 통과하는 데 성공한 것.

“나이스!”

그 모습을 보며,

벤치에 앉아 있던 호산이 벌떡 일어나며 박수를 쳤다.

‘역시 스승님이지!’

역시 도훈이라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호산.

또한,

도훈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스승님은 바오 란을 무참히 제압했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렇다는 건,

호산류가 바오류보다 몇 수 위의 비기임이 분명하다는 것.

아무리 상대가 어떤 비기를 배워 왔건간에.

자신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하물며 바오 란이라 할 지라도 말인데,

‘니들 스승 데려와라.’

이런 떨거지들에게 질 수는 없는 일이지.

타타타탓-!

“중앙으로 파고 듭니다!”

“속도가 붙으면 막아내기 힘들 겁니다!”

도훈은 망설임 없이 중앙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막아낼 수 있을까요!”

박스를 막아서며 좁혀드는 상대 수비들.

분명히,

도훈이 앞선을 뚫어 내면서 브리스틀 선수들의 눈에도 당황의 기색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긴,

지금까지 그렇게 그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자신들을 뚫어낸 선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도훈을 바라보면서,

그 당황의 눈빛보다 더 많이 동공을 차지하고 있던 건 ‘환영’ , 즉 웰컴이었다.

‘어서오쇼.’

타타탓-!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자신을 기다리는 상대를 향해 멈춤 없이 달려드는 도훈.

도훈은,

상대 중앙 수비수들에게 계속해서 일직선으로 공을 몰고 들어갔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일부러 다음엔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공을 몰고 들어갈 뿐이었다.

어차피 상대는 생각을 읽어 낸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움직임을 예측해 한 발 먼저 움직일 것이고.

그렇다면,

아예 생각을 비우고 접근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도훈은 묻고 있었다.

“...!?”

지근거리 까지 다가온 도훈.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는 브리스틀 수비수들.

기어이 도훈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을 때에도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수비수들은,

쉬이이익-!

뒤늦게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그러나,

타타타탓-

파팡-!

“...!”

찰나였다.

도훈의 두 발이 움직인 것은.

그대로 충돌하기 직전.

도훈은 생각을 하지 않고 몸만을 움직였다.

굳이 생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도훈에겐 필드 위에서 하는 모든 동작들이, 생각할 필요 없이 몸이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모든 동작이, 100년 동안의 단련으로 몸에 체화된 것들이었으니까.

‘너희들과 달라.’

아무리 비기를 배웠다 해도,

생각하며 쓰는 것과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과는 다르다.

도훈은 싸움을 걸고 있었다.

몸의 대화를 걸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화에서,

상대의 대답은 한 발 느렸다.

이전처럼,

한 발 더 빠르지 못했다.

‘어떻게..!’

그들이 읽을 수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움직임을 읽었을 땐,

이미 도훈이 자신들의 옆을 지나치고 있던 순간이었다.

느렸을 뿐이었다.

‘자, 이제 네가 가진 걸 보여줘봐.’

브리스틀의 수비 라인을 붕괴시키고 들어간 도훈.

그리고 마주하는 브리스틀의 수문장, 후안 쉬엔.

바오 란은 골키퍼였다.

그렇다면,

자신의 제자들 중 가장 많은 것을 배운 녀석을 골키퍼로 지명했을 것.

따라서,

브리스틀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녀석이 바로 저 녀석이라고 볼 수 있을 터.

확실히 몇 수 아래긴 하겠지만,

도훈은 저 녀석을 가상의 바오 란이라고 상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훈은 골대의 왼쪽을 바라본 뒤,

그대로 오른발을 당겼다.

뻐어어어어어어엉-!

“슈우우웃-!”

강력하게 발등에 얹히는 슈팅.

쏘아져 나가는 공.

그 공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멈칫-

촤아아아아-!

후안 쉬엔도 공을 향해 몸을 날렸고.

하지만,

“큭...!”

몸을 날리는 동작에 앞서,

후안 쉬엔은 약간 역동작에 걸리는 듯한 몸 동작을 보였다.

애초에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려 했던 것이었다.

도훈의 눈빛과 생각이 그 쪽을 향하고 있었으니.

그러나 찰나의 순간,

그 기세는 변했다.

그걸 반응했다는 것 자체가 바오류의 비기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던 일.

하지만,

속도 자체가 몸으로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이미 아니었다.

슈우우우우우웅-

철썩-!

“고오오오오오올-!”

“그렇지!”

아슬하게 후안 쉬엔의 손을 빗겨 나가,

골망을 가르는 공.

도훈이,

브리스틀의 중앙을 부수고 들어가 선제 골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역시 백도훈이었습니다!”

“이게 백도훈이죠. 브리스틀이 챔피언십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최고 클래스의 선수. 백도훈이 한 방 제대로 먹였습니다!”

선제 실점.

맨유에게 선제 득점은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브리스틀에게 실점이라는 건 매우 익숙하지 못한 것.

“뭐야, 너무 쉽게 먹혔잖아.”

“역시 맨유한테는 안되는 거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브리스틀 팬들.

챔피언십에서 실력을 보여줬음에도, 은근히 무시하던 프리미어 리그에게 본 때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건만.

결국 맨유에겐 안되는 것인가?

결국 똑같이 슈퍼 팀 앞에선 평등한 것인가?

그런 실망감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는 순간.

“어이, 다들 봤지.”

“수확이 있어.”

그러나,

정작 브리스틀 선수들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예상치 못한 실점에 낙담하는 것이 정상일 것일텐데,

오히려 피식 피식 웃음을 짓는 선수들이 있을 정도.

이들이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이 경기에 임하는 목적이 조금 다르기 때문일 것.

“최대한 많은 걸 뽑아내라. 너희들의 임무가 막중하다.”

사실,

경기 전부터.

오늘 경기를 준비하는 훈련 때부터,

이들은 경기의 승리가 목적이 아니었다.

승리보다 우선시 되는 목적.

그것은 바오 란의 지시였다.

백도훈,

호산류의 계승자인 그 백도훈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

그리고,

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이들은 그것이 목표일 뿐이었다.

“너희들은 선발대다. 마무리는 우리에게 맡겨라.”

“예, 바오 란님!”

경기는 목표에 걸맞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브리스틀 로버스는,

맨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팀이었다.

맞상대를 하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브리스틀은 맨유를 효과적으로 괴롭혔고 심지어 전반 34분엔 맨유에게 이번 시즌 첫 실점을 선물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분명 맨유에게 브리스틀은 꽤나 강력한 적수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도훈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백도훈의 추가 골!”

도훈은 전반전 선제 골에 이어, 후반전에 두 골을 더 몰아쳤다.

총 세 골을 넣은 것.

그러나,

분명히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도훈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경기들보다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집중했고,  경기가 끝날 때쯤 기가 이렇게 많이 소모된 것이 처음이라고 느낄 정도로 많은 것을 쏟아냈다.

하지만 어찌됐든,

“경기 종료!”

“슈퍼 팀, 맨유가 브리스틀 로버스의 돌풍을 3대1로 제압하는데 성공합니다!”

도훈이 브리스틀을 제압해낸 것만은 사실이었다.

“스승님! 고생하셨습니다!”

“휴우. 고생은 무슨.”

경기가 끝난 후 도훈에게 펄쩍 뛰어와 안기는 호산.

“역시 스승님이라면 박살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제자가 보고 있는데 엉망인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상대는 별 것 아니던데요? 제가 나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보였사옵니다!”

“하하.”

호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도훈.

“하지만, 호산아.”

“예?”

“브리스틀은 바오 란의 제자들 중 가장 떨어지는 녀석들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해야지 않겠느냐.”

“아...”

말했듯,

진정한 상대는 브리스틀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일 뿐.

진짜는 그 너머에 있다.

그리고,

오늘 그 문지기들과 상대를 해본 바.

“진짜는 만만치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스승님.. 스승님이라면 충분히 이겨내실 겁니다.”

쉽지만은 않을 지도.

“당연하지.”

“들어가시지요!”

하지만,

절대로 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고 도훈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ㆍㆍㆍ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스포츠 뉴스에서 브리스틀의 패배 소식은 짤막하게 전해졌을 뿐,

크게 주목 받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맨유의 승리 소식이야 당연하다시피한 것이었고, 도훈의 해트트릭 역시도 오늘 누군가 세 끼를 먹었다는 말처럼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프리미어 리그도 어느 덧 8라운드까지 진행이 된 시점에서야,

그 날의 경기 결과는 다시 새삼스럽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올 시즌의 맨유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강했던 것일까요?”

“시즌 2라운드에서 맨유가 브리스틀을 꺾은 것이, 그 때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졌었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의미가 있는 승리 였다는 게 이제 와서야 느껴지네요.”

브리스틀 로버스가 그 날 맨유에게 패배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기 때문.

7승 1패.

브리스틀은 차근차근 프리미어 리그 팀들을 차례로 밟아 나갔고, 챔피언십에서의 포스를 이 곳에서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돈캐스터 로버스와 블랙번 로버스 역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였고.

“이 쯤되니 새삼 다음 라운드 경기가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대체 브리스틀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 돈캐스터는 맨유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8승 0패.

시즌 3라운드 vs 토트넘 3대0 승.

7라운드 vs 아스날 4대1 승.

가히 충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팀.

돈캐스터 로버스가 시즌 9라운드의 상대로써 맨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 선발대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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