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발대 (2) >
파아앙-
파아앙-!
도훈의 킥오프와 함께,
평범하게 시작되는 경기.
브리스틀의 전형은 3-4-3.
쓰리백의 수비 라인과 더블 볼란치, 그리고 좌우 윙백에 세 명의 공격수가 공격진을 구성하는 형태.
그들이 챔피언십에서부터 고수해오던, 변함 없는 전형이었다.
하지만,
도훈이 영상물을 분석할 때 봐왔듯이.
그들은 그런 전형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움직일 것이라는 걸 도훈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강력하게 압박을 들어갑니다, 브리스틀.”
마치,
과거 요한 크루이프의 토탈 사커처럼.
공이 맨유의 진영 깊숙한 곳에서 돌자 필드 플레이어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전진하며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는 브리스틀.
“...”
도훈은 하프 라인 근처에서 맴돌고 있었다.
맨유를 상대하면서 도훈이 그러한 위치를 잡고 있을 때, 라인을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팀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맨유 선수들 모두가 탈압박과 시야, 그리고 패스까지 모두 좋은 선수들이고 뒷공간으로 패스가 적당히만 떨어져도 도훈의 스피드와 마무리를 막아낼 수 있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러나,
브리스틀 선수들은 달랐다.
그들은 도훈을 투명인간 취급하듯,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모두가 맨유 진영으로 올라오며 강력하게 압박을 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린 듯 했다.
파아앙-
파아앙-!
그런 압박에도 여유롭게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공을 돌리는 맨유 선수들.
웬만한 압박으로는 이들에게 위기감을 줄 수는 없었다.
문제는,
파아앙-
파아앙-!
“패스가 빨라 집니다!”
“브리스틀의 압박이 빠릅니다!”
브리스틀의 압박이,
웬만한 압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브리스틀이 라인을 높이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툭-
몇 번이나 토비 알도웨이럴트와 공을 주고 받던 마로셀루는,
공을 다시 받은 뒤 전진을 꾀하기 위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상대와 마주했다.
마로셀루의 전진 능력은 웬만한 수비수들도 막아내기 힘든 수준이기에, 이런 위치에서의 전진은 마로셀루에겐 크게 어렵지 않은 일.
그러나,
쉬이익-
파아아앙-!
“어엇!”
“마로셀루의 실책!”
마로셀루는 압박을 가하는 브리스틀의 우측 공격수, 준 레이펑을 돌파 하려다 그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다른 수비수도 아닌, 공격수를 상대로 돌파를 실패하는 마로셀루.
마치 어디로 갈 지 알고 있었다는 듯.
쉽게 마로셀루의 공을 커트해내는 준 레이펑.
준 레이펑은 곧바로,
쉬이익-
“마로셀루를 제쳐냅니다!”
“좋은 페인팅인데요!”
마로셀루를 제쳐낸 뒤,
타타타탓-!
우측면 깊숙이 공을 몰고 파고들기 시작했고,
뻐어어어어어어엉-!
박스 안을 슬쩍 본 뒤 크로스를 때려 넣었다.
슈우우우우우우웅-
날카롭게 문전으로 흘러 들어가는 크로스.
그리고,
파아아아아아앙-!
“슈우웃-!”
중앙 공격수 하오 메이의 강력한 헤더.
파아아앙-!
“키퍼 정면! 픽포트 키퍼의 품에 안깁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오 메이의 헤더는 강력했으나 정면이었다.
안전하게 공을 품에 안는 픽포트 키퍼.
무산되는 브리스틀의 득점 찬스.
하지만,
“쉽게 슈팅까지 가져가는 브리스틀 로버스!”
“대단한데요. 일단은 시작부터 강한 압박으로 볼을 탈취해 오는 데 성공했고, 곧바로 빠른 크로스를 통해 유효 슈팅까지 성공 시켰습니다. 브리스틀, 시작이 좋은데요.”
슈팅이 정면이었다고 다행이라고 할 게 아니라,
일단 슈팅은 너무 쉽게 허용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는 마로셀루.
위험 지역에서 공을 빼앗기고, 곧바로 돌파까지 허용 하다니.
아무래도 몸이 덜 풀린 것일까.
아니면 조금 방심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이, 어이! 집중하자!”
“오케이, 쏘리!”
수비수들에게 외치는 픽포트 키퍼.
마로셀루 역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며,
다음 번부터는 절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다.
실수.
마로셀루는 방금의 장면을, 실력이 아닌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집중만 하면 이제부턴 절대 슈팅을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뻐어어어어어어엉-!
픽포트 키퍼의 롱 킥으로 재개되는 경기.
어찌됐든 초반의 어수선함을 넘기기 위해, 이제 공격을 펼칠 차례인 맨유.
픽포트 키퍼의 킥은 로카쿠에게로 향했다.
“큭...!”
“이익..!”
브리스틀의 중앙 수비수 샤이 취엔과 투닥 거리며 몸싸움을 펼치는 로카쿠.
로카쿠의 피지컬은 상당한 편이지만, 샤이 취엔의 몸싸움도 생각보다 강해 둘은 공이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누구 하나가 자리를 선점하지 못했다.
때문에,
로카쿠는 조금 더 영리하게 움직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중 볼을 향해 머리를 갖다 대는 대신, 잘못된 낙구 지점에서 공을 향해 점프를 하는 척 상대를 속인 뒤 뒤로 돌아 들어가며 프리하게 공을 받아내기로 한 것.
‘이게 프리미어 리그다, 짜샤.’
갓 승격한 팀의 선수가, 2년간 압도적인 유럽 최정상의 자리를 지킨 맨유와 맞대결을 하는데 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한 일일 것.
지금도 눈앞의 공만 보일 뿐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이 녀석에게 없을 터.
로카쿠는 그걸 노려 상대를 골려주려 했던 것이었다.
스윽-
타타타탓-!
그렇게 공을 향해 뛸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가, 스윽 뒤로 몸을 돌리는 로카쿠.
그런 로카쿠의 예상엔, 눈앞에 멍청하게 공중으로 몸을 날리는 상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로카쿠의 눈앞에 보인 건 자신에 앞서 먼저 뒤로 달려가고 있는 상대의 등이었다.
파아아앙-!
“가볍게 뒤로. 키퍼에게 건넵니다.”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네요. 로카쿠와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요.”
머리로 가볍게 백 패스를 건네 소유권을 가져가는 상대.
그 모습에, 로카쿠는 머쓱하게 머리를 매만졌다.
‘긴장하지 않은건가?’
뭔가,
경기가 조금 이상하다는 낌새를, 모두가 느낀 건 그 때부터였다.
“확실히 강하네.”
“오래 버티는군.”
10분여까지 0대0으로 흘러가는 경기.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석의 관중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대는 강했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꽤나 오랫동안 실점하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랬다.
맨유 팬들이 브리스틀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브리스틀의 팬들이, 맨유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예상보다 훨씬 팽팽하게 경기가 흘러 갑니다.”
“브리스틀이 대단한데요. 사상 최강의 팀을 만들겠다던 맨유를 상대로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직 백도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진짜 시작은 그 때부터겠죠.”
해설자의 말 대로.
경기는 팽팽하게 흘러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도훈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진검승부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 경기.
도훈은 10분여가 흘러가는 동안에도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중앙에서 머무르며, 동료들과 패스를 주고 받으며 경기의 템포를 조절할 뿐.
개막전에서 보여준 것처럼, 공만 잡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게 만들던 다이내믹한 움직임은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
“...”
도훈은,
아직 파악 중이었다.
‘바오류’ 의 비기가 무엇인지.
솔직히,
브리스틀의 선수들은 딱히 우월한 기술을 가진 것도, 폭발적인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를 익힌 선수들이라는 것 치고는 말이었다.
그 자체로만 보면 평범한 1부리그 선수들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지만,
경기장 가운데서 그들의 플레이를 10분 간 지켜보며, 도훈은 영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딱 지금처럼.
“비니시오스의 돌파가 막힙니다! 중앙으로 접고 들어가는 것을 잘 예측하며 수비에 성공하는 린 타이홍!”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브리스틀 선수들은 한 발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마로셀루가 왼쪽으로 돌파하려고 하면 한 타이밍 먼저 발을 뻗어 막아내고, 로카쿠가 돌아 들어가려 하면 한 발 먼저 물러나고.
비니시오스가 중앙으로 접고 들어가려 하자 또 다시 기가 막히게 그 경로를 차단하는 상대.
도훈은,
그 일련의 플레이들을 떠올리며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증은 확보.
이제, 직접 몸으로 그 심증들을 확인할 차례.
그렇게 전반 15분부터.
도훈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아앙-!
“백도훈이 내려와서 공을 받습니다. 백도훈, 돌아 섭니다! 전진 합니다!”
하프 라인 아래로 내려가,
공을 받은 뒤 이전과 달리 곧바로 돌아서는 도훈.
그리고,
그렇게 도훈이 공을 잡은 채 브리스틀의 진영 쪽을 바라보자,
브리스틀의 모든 선수가 도훈을 마주 바라보기 시작 했다.
이전과는 달랐다.
맨유의 다른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땐, 각자의 맨 마킹을 확인한다든지 공간을 확인한다든지 하던 브리스틀이었다.
그러나,
도훈이 공을 잡자 위치와 거리에 상관 없이.
그들은 모두 도훈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눈빛 또한,
“...”“...”
무언가에 굶주린 듯 바뀌었고.
툭, 툭-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도훈이 천천히 하프라인을 넘는 순간,
타타탓-!
곧바로 브리스틀의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이 도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위안 하이동과 륜 쓰펑이라는 이름을 가진 둘.
그 둘이 달려드는 것을 확인한 도훈은,
툭-
공을 밟은 뒤,
제 자리에 멈춰섰다.
“...”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 모습에 달려들던 위안 하이동과 륜 쓰펑 역시 두 걸음 정도 앞에서 멈춰선 채 도훈과 대치.
‘언제까지 그러고 서 있을 거냐?’
기이한 대치는 계속 되었다.
그 세 명이 서 있는 곳만 시간이 멈춘 듯.
공을 두고 그대로 대치하는 도훈과 둘.
마치 먼저 움직이면 지는 것이기라도 한 듯.
“뭐 하는 걸까요?”
“백도훈을 막을 땐 절대 먼저 달려들지 말라는 말이 있죠.”
사실 수비 입장에서는 도훈에게 달려들지 않는 모습이 이해는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비를 상대로 언제나 먼저 달려들던 도훈이 가만히 멈춰 있는 모습은 특이한 일.
그렇게,
거의 10초간을 대치하던 도훈은 결국,
파아아앙-!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먼저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도훈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상대였다.
정확히 말하면,
도훈이 먼저 움직이고자 마음 먹은 순간.
그들이 움직였다.
쉬이익-
오른쪽으로 뚫고 지나가려던 도훈의 경로를 재빠르게 막아서는 상대.
아무리 도훈의 순간 속도가 빠르다지만, 한 발 먼저 움직이는 상대보다 빠를 수는 없었기에 도훈은 다시 멈춰섰다.
그리고 다시 상체를 흔들다가,
타타탓-!
이번엔 왼쪽으로 움직이는 도훈.
하지만 마찬가지.
상대는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도훈보다 한 발 앞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도훈은 지금껏 파악하려 했던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백도훈이..?”
“뚫고 지나가지 못합니다..?”
상대는 분명히,
자신의 의중을 미리 꿰뚫고 있었다.
상대는 마음을 읽고,
미래를 보고 있었다.
< 선발대 (2) > 끝
ⓒ 한명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