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60화 (160/173)

< 선발대 (1) >

꽤나 놀랄만한 일이었다.

승격팀이 첫 경기부터 기존의 프리미어 리그 팀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은.

그러나 정말 놀랄만한 것은, 경기 결과보다도 그 안의 내용이었으리라.

“대단하네요.”

챔피언십 3위로 승격에 성공한 브리스틀 로버스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 리그 16위 브라이튼을 상대로 3대0 승리를 거두었다.

완벽한 압승이었다.

경기장을 찾았던 브라이튼의 팬들이 실망감에 후반 30분 경부터 일찌감치 자리를 떴을 정도로.

또한,

2위로 승격한 돈캐스터 로버스 역시 지난 시즌 14위 번리를 맞이해, 충격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3대0 완승을 거두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실 평소 챔피언십을 챙겨보는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게 공공연히 말해 왔었다.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도 긴장을 좀 해야할 거라고.

이번에 올라갈 녀석들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아니.

이미 몇몇 프리미어 리그 팀들 보다도 강할 거라고.

실제로 챔피언십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경기력은 확실히 챔피언십 레벨이 아니었다.

그 어떤 팀들과 경기를 하더라도 그들은 한 수, 혹은 두 수 위의 플레이를 보여줬고 특히나 블랙번 로버스는 단 한 차례도 패배나 무승부를 당하지 않고 전승, 압도적으로 우승을 했으니.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팬들도 프리미어 리그에 자부심이 있지 않은가.

설마 2부에서 갓 올라온, 그것도 두 시즌 전엔 3부였던 세 팀이 어떻게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그런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겠나.

그런데,

브리스틀 로버스와 돈캐스터 로버스는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그러나,

그 두 팀의 승리보다도 훨씬 더 충격적이었던 건 역시나 블랙번 로버스의 경기였을 것이다.

블랙번 로버스는 브리스틀과 돈캐스터 로버스에게 리그에서 1패, 2패씩을 안긴 로버스 중 최강 팀이었다.

하지만,

그런 블랙번의 개막전 상대는 첼시 FC.

첼시가 어떤 팀인가.

은골로 콩테가 맨유로 이적하며 전력에 누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빅 6로 거론이 되는 프리미어 리그의 강팀이 아니던가.

그런데,

경기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첼시, 무너 집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첼시, 승격팀인 블랙번 로버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블랙번은 첼시를 압도했다.

완벽하게.

90분 동안,

점유율은 70대 30.

슈팅 숫자는 18개 대 6개.

그리고 스코어는, 4대0.

승격팀인 블랙번이, 프리미어 리그의 빅 6 첼시를 첫 경기부터 완벽하게 박살낸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꽤 힘들었는데요?”

“확실히 1부는 다르군. 아주 조금이지만.”

블랙번과 바오 란은,

그 경기 내용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ㆍㆍㆍ

“흠.”

개막전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

도훈은 호산과 함께 다른 팀들의 경기를 찾아 보고 있었다.

역시 로버스 3팀의 경기들이었다.

먼저 브리스틀과 브라이튼,

그리고 돈캐스터와 번리의 경기를 모두 지켜본 도훈은 호산에게 물었다.

“어떤 것 같으냐?”

“신기합니다. 평범한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사옵니다.”

호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도훈.

확실히, 그들이 하는 축구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겠지만,

도훈이나 호산처럼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확실히 보이는 차이.

“기를 사용하는 느낌이 듭니다.. 저만의 생각인지요?”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평범하게 1대1 돌파를 하는 장면.

그러나 브리스틀의 선수를 상대하는 브라이튼의 수비수들이 멈칫 멈칫하며 당황하는 기색은, 분명히 기를 사용한 초식을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걸 도훈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충은 파악할 수 있을 듯 싶었고.

“숙달된 느낌은 아니야. 특히 브리스틀은, 11명 중 한두 명 정도만이 어떤 초식이든 1성을 겨우 통달한 수준인 듯 해.”

“저도 12분깨의 장면에서 느꼈습니다. 돌파를 시도하다 자기 혼자 공을 놓치는 모습에서 말이옵니다.”

“그래. 상대에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초식을 시전하다 혼자 꼬여 버렸었지.”

다른 모든 챔피언십 팀들을 완파했으나, 돈캐스터와 블랙번에겐 이기지 못했던 브리스틀.

말하자면, 이들은 바오 란의 제자들 중 가장 열등생 11명이 소속된 팀이라 볼 수 있을 터.

“돈캐스터는 그 다음이군요.”

그리고, 돈캐스터는 열등생도 우등생도 아닌 11명이 모여 있는 팀이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수준만 되더라도,

“번리 정도는 압도하는 군.”

1부에 잔류한 지 10시즌이 되어가는 번리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

그렇다면,

“블랙번과 첼시 경기를 봐볼까.”

그런 돈캐스터에게 이긴, 바오 란과 그 최정예 제자들로 꾸려진 블랙번은 어떠할까.

이미 블랙번이 4대0으로 첼시에게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예상한 바였지만,

생각보다도 블랙번의 경기력은 우월했다.

과연, 바오 란의 정예 멤버라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로.

그러나,

확실히 첼시는 챔피언십의 팀들 보다는 강한 팀이었기에, 그래도 6번의 슈팅을 때리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 다행이었다.

그 슈팅 중 4번이 유효 슈팅이었고, 그걸 통해 바오 란의 선방 능력도 얼추 확인할 수는 있었으니까.

“이걸 막아 냅니다! 엄청난 세이브! 바오 란!”

중거리 슈팅 두 개.

헤더 슈팅 한 개.

박스 안에서 구석으로 향하는 감아차기 한 개.

“생각보다 첼시가 득점 찬스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네요.”

“슈팅 기회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유효 슈팅 비율이 높았어. 그것도 상당히 날카로운 슈팅이었고. 골이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두 번이나 수비를 벗겨내고 슈팅을 때려낸 에덴 하자드와, 높이에서 상대를 이겨내고 헤더를 노렸던 지루드.

블랙번의 수비를 맡고 있는 선수들은, 생각보다 철벽의 수비라고 까지 볼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최종 골문이었다.

“골키퍼가 괴물이군요...”

“말 그대로 괴물같은 반사 신경..”

무더기로 단 시간에 양산해 낸 떨거지들이 아니라,

바오류의 계승자인 바오 란.

그가 지키고 있는 골문은 놀랍게도 챔피언십의 모든 경기에서 단 한 번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한 시즌 동안 단 한 번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것은 반사 신경 따위의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히,

“바오 란은 무언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사옵니다.”

“바오류의 초식. 그것에 비밀이 있는 듯 하다.”

무언가가 있었다.

그 미친듯한 선방이 가능한,

무언가가.

“재밌을 것 같지 않느냐?”

“어떤 것이 말이옵니까?”

“한 번도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저 녀석에게, 득점을 꽂아 넣는 최초의 선수가 되는 것이.”

“보여주십시오, 스승님.”

바오 란의 선방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보며,

도훈은 옅은 미소를 흘렸다.

ㆍㆍㆍ

8월의 어느 날.

브리스틀 로버스의 훈련장.

브리스틀의 선수들이 한창 훈련을 펼치고 있는 훈련장에,

두 남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1라운드 끝나고 나니까, 난리더군요. 핸드폰에 불이 났다니까요. 어디서 그런 선수들을 무더기로 구해올 수 있었던 건지 말입니다.”

“그런가.”

젊은 남자 하나와, 나이가 꽤나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

그러나,

특이하게도 존대를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중년의 남성 쪽.

이 남자는 지난 시즌부터 브리스틀 로버스의 구단주가 된 중국의 부호 레이 왕.

그리고 레이 왕이 존대를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바오 란이었다.

1년여 전.

인간의 몸으로 지상에 내려 온 바오 란은 오갈 데 없이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들을 거두어 자신의 제자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축구에 관심이 있는 중국 내의 부호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에게 제안했다.

자신들의 세계 축구 제패에 함께 할 것을.

자신이 원하는 구단을 사들여, 자신들을 그 구단들의 선수로 넣어주면 몇 년내에 반드시 그 팀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사실,

행색도 꾀죄죄하고 어디 하나 믿을 구석 없어 보이는 모습의 남자들이 우루루 나타나 그런 제안을 하는 걸 받아주는 부호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오 란과 1시간도 안되는 대담을 가진 이후,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부호는 셋이나 되었다.

과연 그 1시간도 안되는 시간 사이에 바오 란이 보여준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 지.

게다가 지금처럼,

이렇게 구단주가 직접 선수에게 존대를 하는 모습까지.

“어이! 휴식이다.”

“휴우.”

그 뿐만이 아니었다.

브리스틀 팀에는 엄연히 감독과 코치진들이 있었다.

그들이 선수들과 가까운 곳에서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러나,

휴식이라고 외치며 선수들을 컨트롤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바오 란이었다.

애초에,

브리스틀을 포함해 돈캐스터 로버스, 블랙번 로버스 이 세 팀의 선수들이 모두 바오 란의 제자인만큼.

이 세 팀에 대한 모든 전권을 쥐고 있는 건 바오 란이었다.

이미 압도적인 챔피언십 우승에, 지난 프리미어 리그 1라운드에서도 실력 행사를 한 바가 있으니 현재 바오 란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었다.

“맨유의 개막전 경기는 보셨습니까?”

“아아, 봤지.”

“어떻게 보셨습니까? 꽤나 전력이 강화된 듯 보이던데요. 꽤나 만만치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핫!”

구단주의 말에 크게 웃는 바오 란.

“호랑이가 아무리 강해져 봐야 호랑이라네. 그러나 나는 용이야. 용의 눈에 호랑이가 아무리 토끼들을 잘 잡는다 한 들 그것이 무서워 보이겠는가.”

“하하, 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나는 말이야, 벌써 부터 궁금해 죽겠단 말이지.”

“어떤 것이 말입니까?”

바오 란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맨유와 우리들이 만나게 되는 날 말이야. 우리를 상대해 본 그 녀석들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오를지 궁금해 죽겠다고. 처음에는 놀람, 그 다음은 당황, 그 다음은 공포쯤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엔, 절망이 될거야.”

제자들에게 휴식을 부여한지 고작 5분이 지났을까.

바오 란은 다시 제자들을 일으켜 세운 뒤 훈련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그 얼굴이 빨리 보고 싶구만.”

바오 란의 지시에 다시 벌떡 일어나 훈련에 들어가는 브리스틀 선수들.

브리스틀 로버스의 시즌 2라운드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ㆍㆍㆍ

2024년 8월 20일.

브리스틀, 메모리얼 스타디움.

“시즌 2라운드, 홈팀 브리스틀 로버스와 원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평범한 승격팀은 아니지만,

그래도 갓 승격팀과의 평범한 리그 경기.

그런 오늘의 경기에, 맨유의 선수들 중 누구도 크게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선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도훈에겐 의미가 남다른 경기인 것이 당연했다.

바오 란의 제자들인 브리스틀을 만나게 되었으니.

사실 꽤나 빠르게 그들과 만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어쨌든 영상으로만 보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혀 보는 게 그들의 수준을 파악하기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 오늘의 결과를 통해 도훈은 돈캐스터, 그리고 그 너머의 바오 란과 블랙번의 수준까지도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솔직히 저도 아직은 이름들이 헷갈립니다만, 이 선수들이 올 시즌 돌풍을 예고하고 있는 핵심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연 오늘, 슈퍼 팀이라고 불리우는 맨유를 상대해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지켜 봐야 겠죠.”

스르륵-

킥 오프를 위해, 공을 발 아래 두고 브리스틀의 선수들을 주욱 훑어 보는 도훈.

상대 열한 명 모두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도훈은 한 가지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분명히 무언가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굶주려 있는 얼굴들이었다.

“삐이이이이이익-!”

심판의 휘슬과 함께,

맨유와 브리스틀 로버스의 시즌 2라운드 경기가 시작 되었다.

< 선발대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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