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8화 (158/173)

< 슈퍼 팀 (1) >

“감사 하옵니다.”

“어.. 그래.”

호산을 데리고 들어와 커피라도 한 잔을 내준 도훈.

어린 호산은 뜨거운 김이 나는 커피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였다.

“송구하지만, 이것은 무슨 물입니까?”

“아아, 그것은 커피라는 거다. 일종의 차지.”

“아, 차..”

도훈의 설명을 듣곤 커피를 후후 분 뒤 홀짝이는 호산.

“켁..”

곧 호산은 인상을 찌푸리며 기침을 했고, 도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는 몇 살이니?”

“소인 올 해로 열 다섯입니다.”

머릿속으로 스승님의 나이를 가늠해보는 도훈.

적어도 몇백년을 사셨다고 했던 스승님이니, 그럼 스승님이 열다섯이었을 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지도 않던 시절 아닌가.

그래서 말투도 사극에서나 듣던 말투인건가.

“그나저나, 나는 왜 찾아온 거니?”

도훈이 묻자,

어린 호산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축구를 배우러 왔습니다.”

“누가 시켜서 온 거니?”

“아닙니다.”

“그럼?”

“선생님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축구를 하고 계시기에, 제 발로 찾아 온 것 입니다.”

호산이 하는 말에, 도훈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그렇겠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축구가, 호산이 만들어 낸 축구니까.

“지금 실력은 어느 정도 되는데?”

“말로 해야 의미가 있겠습니까. 원하신다면, 당장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좋은데.”

패기 넘치는 호산의 모습에, 도훈은 당장 호산을 데리고 뒷마당으로 향했다.

툭, 툭, 툭-

“자. 간단히 몸부터 풀어볼까?”

“좋사옵니다.”

파아앙-

파아앙-!

가볍게 트래핑을 하며 공을 주고 받기 시작하는 도훈과 호산.

발등으로, 허벅지로, 가슴으로.

도훈이 튕겨주는 공을 호산은 자유자재로 받아내며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다.

문득 스승님이 아주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르는 도훈.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온 몸이다.”

자신과 달리,

스승님은 타고난 자.

이런 스펀지같은 소년에게 비급을 전수해 준다면, 굳이 동굴 안에서의 수련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쭉쭉 비급을 빨아들일 수 있을 터.

“잘 하네.”

“과찬이십니다.”

“혹시, 기에 대해 아니?”

“기 말씀 이십니까?”

도훈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이는 호산.

어린 호산은 아직 기라는 개념을 모르고 있는 듯.

“좋아. 내가 가르쳐 주지.”

“정말입니까? 그럼, 저를 제자로 받아주시는 겁니까?”

자신을 제자로 받아주겠냐는 스승님의 모습에,

도훈은 묘한 기분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ㆍㆍㆍ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될 걸세.”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도훈은 구단과 두 번째 재계약 협상을 가졌다.

처음 협상에서 도훈이 확답을 내리지 않은 것 때문에 상당히 불안 했었는지, 구단은 하루만에 조금씩 더 상향된 계약서를 도훈에게 제시했다.

그러나, 도훈은 그 계약서를 받는 대신 자신이 내건 두 가지 조건을 지켜줄 것을 역으로 제시했다.

“누구길래?”

“정말 큰 자질이 있는 친구입니다. 잠재력은 제가 보증해요. 이미 지금의 실력 만으로도 웬만한 1군 선수들 못지 않을 거구요.”

그 중 첫 번째는 호산을 맨유 리저브 팀, 그러니까 2군으로 스카우트를 해달라는 것.

크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도훈이 실력을 보장한다고 할 정도라니 맨유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도훈이 내건 두 번째 조건이 맨유로써는 조금 난감한 것이었다.

“제 연봉은 올릴 필요가 없으니, 그 돈으로 다른 포지션을 보강해 주십시오. 각 포지션에서 최고인 선수들로 다음 시즌을 구성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다음 시즌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맨유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서 모든 우승컵을 거둬 들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도훈이었다.

그런 도훈이, 뭐가 무서워서 더 좋은 동료들이 필요하다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시즌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더 좋은 팀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은 도훈의 말이나 구단이 일치하는 것.

세계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의 팀을 만들고자 하는 건 어차피 구단도 마찬가지.

더구나 백도훈이라는 선수를 지금의 연봉으로 붙잡을 수만 있다면, 다른 포지션에 더 좋은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도 충분히 수지타산이 맞는 이야기였다.

지금의 맨유라면, 도훈이 있는 맨유라면 당장 연봉이 조금 안맞더라도 맨유로 오겠다는 선수들은 넘치는 상태니까.

“좋습니다.”

결국,

구단은 승낙했다.

그리고,

도훈도 맨유와 두 번째 계약서에 싸인을 했고.

-백도훈, 맨유와 4년 더 간다.. 재계약 완료

그런 도훈의 재계약 소식은 축구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도훈의 거취 여부가 유럽 초미의 관심사였던 만큼, 반응은 빨랐다.

원래의 맨유 선수들은 도훈이 남아주는 것에 쾌재를 불렀고, 타 리그나 다른 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중 야망이 가득한 선수들은 발 빠르게 에이전트와 상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맨유 구단 역시 빠르게 그들과 접촉하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시금, 유럽 축구에 새 판이 짜여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ㆍㆍㆍ

“2022년, 많은 일들이 있던 해였습니다. 새로운 유럽 챔피언이 탄생했고, 월드컵에서도 역시 역사상 첫 챔피언이 탄생했죠.”

2022년 12월 28일.

도훈은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발롱도르 시상식에 생애 두 번째로 참석을 해야 했기 때문.

사실,

시상식이 열리기 한참 전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쉽게 예상을 하고 있었다.

누가 올 해의 발롱도르를 가져갈 지에 대해서.

역대로 봐도 올 해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던 해는 없었다고 다들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선수들의 실력이나 활약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한 명의 선수가 워낙 차원이 다른 활약을 선보였기 때문일 것.

“2022 발롱도르,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얻은 선수는 바르셀로나, 그리고 브라질의 레이마르 다 실바입니다.”

2위로 호명된 레이마르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2위라는 것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애초에,

1위 자리, 그러니까 발롱도르는 언감생심이었다는 듯.

그리고,

올 해 발롱도르의 위너가 발표되는 순간.

시상식 장은 당연하다는 듯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2022 발롱도르, 축하합니다. 2년 연속 수상이네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대한민국의 백도훈!”

도훈은,

그렇게 아주 당연하게.

2년 연속이자 생애 두 번째 발롱도르를 획득했다.

그리고 그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그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할 뿐, 누구도 놀라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 정도로,

도훈이 보여줬던 2022년의 활약은 대단했고, 발롱도르라는 명예로 치하하기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미 발롱도르보다 더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던 도훈이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도훈은 두 번째 황금 공을 받아 들며 스스로 생각했다.

중요한 건 오늘의 이 상이 아니라,

내 년이라는 것을.

내 년, 그리고 내후 년에도.

반드시 이 황금 공을 품에서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꼭 그렇게 해내겠다고 도훈은 다짐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였다.

ㆍㆍㆍ

월드컵이 끝나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 세계는 다시 축구 모드로 돌입했다.

2022/23 시즌 후반기 시작.

절치부심하며 지난 시즌 챔피언 맨유에게 도전하는 여러 프리미어 리그 팀들과, 유럽 챔피언 자리에 도전하기 위해 무력 시위를 시작한 타 리그의 팀들.

레이마르의 바르셀로나는 엘클라시코에서 레알을 4대2로 꺾으며 전반기의 기세를 이어 나갔고,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은 새롭게 바뀐 젊은 힘을 보여주며 다시금 분데스리가의 카이저로 군림하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리에의 유벤투스도 미국으로 떠난 호널두의 빈 자리는 없다는 듯, 역시나 세리에의 군주다운 모습으로 리그 1위를 달려 나갔다.

그리고,

프리미어 리그는 지난 시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맨유는 최강입니다.”

도훈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한,

잉글랜드의 최강은 맨유였고, 그것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 보였다.

많은 팀들이 맨유를 상대하기 위한 맞춤 전략을 지난 시즌부터 고심하고 또 고심한 것은 사실이었다.

수비적인 전술도 동원되고, 공격적인 전술도 동원되고.

맨유라는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다른 팀들은 이번 시즌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힘의 차이는 이전 시즌과 다를 게 없었다.

“백도훈! 절정의 기량을 오늘도 이어 갑니다!”

“역시 발롱도르 위너! 누구도 막을 자가 없어 보입니다!”

도훈이 그 곳에 있는 한 말이었다.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고,

3월이 지났고,

4월이 지났다.

프리미어 리그는 37라운드까지 진행이 되어 이제 단 한 경기만을 남겨 놓고 있었고,

챔피언스 리그 역시도 결승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올 해도 두 개의 컵을 들어올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그 컵과 FA컵의 주인은 이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결정이 난 상태.

2년 연속 우승.

리버풀도, 토트넘도, 맨체스터 시티도 맨유의 아성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지난 시즌과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도훈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바로 호산이었다.

“제 말이 맞죠?”

“대체 어디서 이런 천재를 발견한 겁니까?”

호산은 맨유 리저브 팀에 정식 선수로 발탁이 되었다.

처음엔 도훈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낙하산.

그러나,

호산은 실력으로 보여줬다.

열다섯의 호산은 이미 그 레벨대에 있을 실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실력에서 호산은 매일같이 도훈과 함께 훈련하며 스펀지처럼 도훈의 가르침을 쑥쑥 빨아 들였다.

‘정말 남다르셨구나.’

도훈은 하루가 다르게, 아니 가르침 한 번 한 번에 실력이 일취월장 하는 호산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호산은 동굴이 없더라도 비급을 하나씩 하나씩 제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비급의 창시자에게 비급을 가르치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었다만.

“잘 다녀 오십시오.”

“너도 잘 다녀 와라.”

그렇게 시간은 흘러.

도훈과 호산은 각자 시즌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집을 나섰다.

호산은 리저브 팀의 마지막 경기를 위해 나섰고, 도훈은 리그 마지막 경기와 챔스 결승전을 위해 집을 나섰다.

“믿고 지켜 보겠사옵니다, 스승님! 우승하면 꼭 피자 사주십시오!”

“하하, 그래. 잘 하고 오렴. 나도 배신하지 않도록 할게.”

그렇게 집을 나선 둘이,

서로의 믿음에 배신하는 일은 없었다.

호산은 마지막 경기에서도 혼자서 다섯 골을 터뜨리며 맨유 리저브팀의 승격을 일궈냈고,

도훈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연속 프리미어 리그 우승!”

2년 연속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마침표를 찍은 뒤 챔스 결승전이 열리는 독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번에야 말로 백도훈을 꺾겠다는 의지에 가득한 레이마르와 바르셀로나를 만났다.

하지만,

레이마르는 그 곳, 독일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 하늘은 자신을 낳고 백도훈을 낳았을까.

왜 하늘은 자신을 멧시와 호널두, 그리고 백도훈 사이에 태어나게 한 것일까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레이마르는, 백도훈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은 언제까지고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대위업! 맨유가 2년 연속 트레블을 달성하는 최초의 팀이 됩니다!”

“그 어떤 팀도 해내지 못했던 대위업입니다!”

도훈은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4대2로 꺾었다.

그리고,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트레블이라는 역사적인 위업을 일궈냈다.

“이런 팀은 없었습니다!”

도훈과 맨유는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다시 한 번 해내고야 말았다.

도훈이 이끄는 지금의 맨유를 아무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니, 다른 팀들이 아무리 변화를 꾀한다고 해도.

도훈과 맨유가 변하지 않는 이상 맨유의 군림은 계속될 것만 같았다.

따라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2/23 시즌이 끝나고.

맨유가 연일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며,

선수단에 대수술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을.

사람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슈퍼 팀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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