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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7화 (157/173)
  • < 도전 (2) >

    콰콰콰콰콰-

    ‘음..?’

    익숙한 소리에 눈을 뜨는 도훈.

    몸을 일으켜 세운 도훈은 잠결에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매우 익숙하면서도 비현실적인 풍경.

    ‘동굴이잖아?’

    자신이 동굴 안에 있음을 깨닫는 도훈.

    그러나, 분명히 자신은 맨체스터의 집으로 돌아왔는데?

    ‘꿈이구나.’

    그 생각이 들자 도훈은 단번에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자각몽(自覺夢)이라는 말은 들어 봤지만,

    실제로 자각몽을 꾸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

    ‘이것도 초식에 있었으면 매일 자는 시간에도 수련을 할 수 있었을텐데.’

    도훈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몸을 내려다 보았다.

    다리를 움직여 보고, 어깨도 돌려 보고.

    몸을 풀어 보아도 잠을 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훈은 신이 나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공.’

    꿈이니까 만들어 내고자 하면 뭐든 만들어낼 수 있을 터.

    도훈은 눈을 뜨면 발 앞에 공이 놓여 있길 바라며 정신을 집중한 뒤,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허억..!?”

    눈을 뜬 도훈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 앞에, 바라던 공 대신 다른 것이 서 있었기 때문.

    “...”

    도훈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호산.

    스승님이었다.

    “스승.. 님? 아, 잠깐.. 이거 꿈이지.”

    오랜만에 스승님을 보고 놀랐던 가슴을 쓸어 내리는 도훈.

    꿈인데 놀랄 일이 뭐가 있나.

    스승님이 아니라 공룡이 나온다해도 이건 꿈일 뿐인데.

    도훈은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할 말이 있어 잠시 네 꿈 속으로 내려 왔다.”

    “할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그래.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좀 앉자.”

    익숙하게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는 스승님.

    도훈도 항상 스승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앉던 자리에 착석했다.

    아무리 꿈 속이라지만, 묘한 기분.

    다시는 뵐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스승님과 다시 이렇게 마주 앉게 되다니.

    이런 꿈이라면, 왠지 자주 꾸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하실 말씀이 뭡니까?”

    “오랜만에 보는데,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해라 이거냐?”

    “100년 동안 붙어 있다가 고작 2년 떨어진 사이끼리, 새삼스럽게 뭐 필요 합니까?”

    “허허, 하지만 너도 나도 그 2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 않았느냐. 네 활약상들은 항상 잘 지켜보고 있다.”

    스승님의 말씀에 피식 미소를 짓는 도훈.

    “하늘에도 티비가 있나 보죠?”

    “아래에선 위가 보이지 않아도, 위에선 아래가 보이는 법이니까. 네가 처음으로 민간대회에 나간 것부터, 최근에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까지. 다 보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너 때문에 난리니까.”

    “허허. 신령들께서 미천한 인간들 축구하는 게 뭐가 재밌다고 난리가 납니까.”

    “원래 고수들의 싸움보다 초보들의 싸움이 재밌는 법이다.”

    실 없는 이야기에 껄껄 웃는 스승과 제자.

    꿈이지만 그래도 간만의 재회라고.

    도훈이나 스승님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도 웃음꽃이 피는 듯.

    그러나,

    스승님은 곧바로 얼굴의 웃음기를 지웠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뭡니까? 말씀하시지요.”

    “이건 네 꿈이지만, 이 이야기는 진짜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야 한다.”

    갑자기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스승님에, 고개를 갸웃이는 도훈.

    꿈인데 진짜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이미 처음 동굴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도훈은 스승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천상계에 바오 란이라는 이단아가 있다. 중국 대륙에서 발원한 바오 류의 계승자지.”

    “그런데요?”

    “그 자가 너가 지상에서 보여준 호산류의 성공을 매우 아니꼽게 본 듯 하다.”

    “아니꼽다니. 신선 맞습니까?”

    “신선이라는 놈들이 원래 인간보다 고약한 신선도 많다. 바오 란이라는 녀석은 신선이라고 하기도 뭐한 녀석이고.. 아무튼, 말하고 싶은 건 그 바오 란이 현재 천상계를 탈출해, 지상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그 무슨..”

    “어이 없는 놈이지. 그래도 천상계에 사는 놈이, 네가 왕 노릇을 하는 꼴을 보기 싫어 직접 내려갔다는 거다.”

    도훈은 믿기 힘든 정보들에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요?”

    “녀석은 중국의 본거지로 내려가, 짧은 시간안에 제자들을 무더기로 양성한 모양이다. 총 서른 두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을 모두 이끌고, 네가 뛰는 잉글랜드로 넘어갔다. 지금,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글쎄요. 거기까지 챙겨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집중할 일들이 많은 요즘인지라.”

    “3개의 팀이 리그를 학살하고 있다. 돈캐스터 로버스, 브리스틀 로버스, 블랙번 로버스. 세 팀이 13연승,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퍼펙트로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너무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스승님의 말에,

    방금까지도 이것이 그저 꿈일 뿐이라 생각하던 도훈이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럼, 그 세 팀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을거다. 그리고 그 선수들이, 바오 란을 포함한 그의 제자들이다.”

    “허...”

    “다음 시즌엔 그 세 팀이 나란히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될 거다. 녀석들의 실력이라면, 이미 확정이라고 봐야겠지.”

    도훈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는 이유가 뭔데요?”

    “바오 란류의 축구로 세계를 제패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미안하지만, 그 원인은 사실 나에게 있다.”

    “스승님에게?”

    “내가 신선이 되어 천상계에 발을 들인 첫 날, 내가 녀석을 무참히 압도했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녀석은 망신살을 뻗쳤고, 이후로 녀석은 내게 열등감을 갖기 시작했다. 호산류에 열등감을 갖은거지.”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는 도훈.

    신선이라는 자들이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녀석은 날 이길 수 없었기에, 널 이기고자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제자들까지 대동해, 지상계를 바오류가 점령하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절 이기기 위해 제자까지 동원하는 이유는 뭡니까? 신선이라면 스승님보단 못해도 저 정도야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오 란이라는 녀석이 일단 천상계에서도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단아다. 하물며, 지상으로 내려가기 위해선 신선으로서의 온 능력을 유지한 채 갈 수 없다.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그럼 그 바오 란이라는 자의 현재 실력 수준은?”

    “너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까지 네가 상대한 어떤 상대들 보다 어려울 것이고, 가장 큰 문제는 녀석이 혼자가 아니라는 거지만.”

    도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제자들도 저처럼 수련을 한 자들 입니까? 그게 30명이나 된다고요?”

    “똑같을 순 없을거다. 30명을 일일이 가르쳤을 순 없을거고, 속성으로 키워낸 제자들이니 너와 비교할 순 없지. 애초에, 바오 류는 호산 류에 비교하면 3류에 불과한 비급이다.”

    “흠... 그러니까. 저보고 그 녀석들을 막으라는 것이군요.”

    “아니, 내가 뭘 시키려고 온 것은 아니다. 어차피.”

    호산은 도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시키지 않아도 넌 계속 축구를 할 거고, 녀석들이 활개 치는 것을 보고만 있진 않을 것 아니냐?”

    스승님의 말에, 도훈도 피식.

    “그렇겠죠.”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있는 녀석들의 정체를 모른다고 했어도,

    도훈이 순순히 정점의 자리를 내주진 않았겠지.

    “그리고 하나 더.”

    “하나 더요?”

    “너를 도와줄 녀석을 하나 파견해 두었다.”

    “절 도와줄 사람이요?”

    “분명히 너는 너의 힘으로도 녀석들을 무찌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스승된 몸으로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더구나.”

    “그게 누굽니까?”

    도훈의 질문에 호산은 씨익.

    “신선도, 도사도 아닌 시절의 나다.”

    도훈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ㆍㆍㆍ

    “음..”

    도훈은 진짜로 눈을 떴다.

    푹신한 베개와 침대에서.

    꿈이 아니라 진짜 현실.

    그러나, 도훈의 정신은 방금 잠에서 깬 것 치고는 너무나 맑고 또렷했다.

    간 밤에 꾸었던 꿈의 기억도 너무나 선명했고.

    “어디.”

    도훈은 일어나자 마자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챔피언십 리그를 검색했다.

    1위 블랙번 로버스 13승 0무 0패 50득점 0실점

    1위 돈캐스터 로버스 13승 0무 0패 42득점 7실점

    1위 브리스틀 로버스 13승 0무 0패 40득점 8실점

    .

    .

    .

    그러자 정말로,

    스승님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 개의 팀이 나란히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꿈은 그냥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스승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맞은 듯 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세 개의 로버스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는 블랙번 로버스의 선수 명단을 확인하면서 였다.

    “3번, 센터백, 국적 차이나. 셔츠 네임 마 샹궈.. 5번, 미드필더, 국적 차이나. 셔츠 네임 마오 류..”

    로스터에 등록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중국 선수들.

    서브 선수들을 제외한 딱 11명의 선수가 모두 중국 선수들이었다.

    올 시즌 출전 기록은, 이 11명을 제외하곤 한 명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상태였고.

    그리고,

    문제의 이름.

    스승님이 말했던 그 문제의 이름은, 조금 의외의 포지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셔츠 네임 바오 란. 국적 차이나. 백 넘버 1번.. 포지션 골키퍼.”

    13경기 무실점.

    리그에서 단 1실점도 하지 않은 블랙번 로버스의 원동력은,

    바로 이 바오 란이 골키퍼를 보고 있었기 때문.

    “기를 익힌 골키퍼라..”

    스승님의 말에 따르면, 이 지상으로 내려온 바오 란의 실력은 신선일 때의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까지 단 한 개의 실점도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현존하는 다른 골키퍼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직접 보지, 뭐.”

    도훈은 곧바로 블랙번 로버스의 가장 최근 경기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영상이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도훈은 가만히 그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10분..

    30분..

    60분..

    90분.

    그 경기에서,

    블랙번 로버스는 5대0으로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며 승리하고 있었다.

    “완벽한 경기력으로 13연승째를 거두는 블랙번 로버스!”

    해설자의 말처럼 블랙번의 경기력은 완벽해 보였다.

    비록 그 상대가 2부 리그의 팀이긴 하지만, 현재 1부리그 상위권의 팀이라 해도 그렇게 완벽하게 경기를 압도하긴 힘들어 보일 정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도훈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선수들이, 기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그거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오늘도 바오 란 키퍼는 그다지 활약할 일이 없었습니다.”

    “경기 끝나고 샤워를 할 지 말 지가 가장 고민일 거라는 우스개 소리처럼 말이죠.”

    바오 란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바오 란 선까지 공이 가는 일이 드물었다.

    경기 내내 바오 란은 마치 최후방 수비수인 것처럼 앞으로 나와 정확한 패스를 몇 번 보여줬을 뿐.

    그 선방 능력은 보여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앞선에서 처리가 되는 모습이었다.

    ‘음..’

    5대0.

    4대0.

    4대0.

    3대0.

    그 이전 경기들의 스코어만 보더라도, 아마 지금 본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결국,

    바오 란이라는 녀석의 진정한 실력을 보기 위해선,

    다음 시즌.

    블랙번 로버스가 프리미어 리그로 올라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과,

    자신을 마주해야 진정한 실력을 드러낼 것이었다.

    과연 그들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지금과 같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어쨌든.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띵동-

    그 때.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도훈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 일찍 집에 올만한 사람이 없는데 누굴까.

    철컹-

    도훈이 마당으로 나와 문을 열자,

    문 앞엔 앳된 얼굴의 소년이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특이했다.

    마치 먼 옛날 서당에 다니는 학동의 모습처럼.

    저고리를 입고 긴 머리를 뒤로 딴 행색.

    소년은, 도훈의 얼굴을 보곤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처음 뵈옵겠습니다. 소인, 호산이라고 하옵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호산이라고 소개했다.

    < 도전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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