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6화 (156/173)

< 도전 (1) >

“이런 거 입에 맞으실란가 모르겠네.”

“그래도 한국까지 오셨는데 엉뚱한 요리 대접할 수는 없잖아요.”

서울 어딘가의 한 레스토랑.

레스토랑이라기 보단 고급 한정식집이라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 이 곳에,

도훈과 아버지가 깔끔한 옷을 차려 입고 앉아 있었다.

괜스레 긴장한 듯 연거푸 물을 들이키는 도훈과 아버지.

그리고 잠시 후,

“나갔다 올게요.”

도훈이 전화를 받고 식당 앞으로 나가 차를 맞이 했다.

로레나와 마티니 부모님이었다.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너무 반갑네! 축하해요!”

밝게 웃으며 살갑게 인사하는 어머니 마리나와 근엄하게 차에서 내리는 아버지 로렌초 마티니.

로렌초는 도훈에게 악수를 건네며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안으로 들어 가시죠.”

지금 이 순간,

아마도 세계에서 도훈을 이렇게 빠릿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축구공 밖에 없을 것.

도훈은 로레나와 부모님을 모시고,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아이고. 사돈 오셨구나.”

“저희 아버지에요.”

“너무 반가워요!”

역시나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마리나.

이탈리아식 인사로 볼을 가져다대자 아버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아 주었다.

“로렌초 마티니라고 합니다, 라고 하셨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백승태라고 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동시 통역을 해주는 도훈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누는 두 아버지.

“선물이라고 하시네요.”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와인 공장 회장님이라고요.”

의미 있는 자리인만큼 가지고 있는 와인 중 가장 아끼는 와인 한 병을 기꺼이 선물로 가져온 마티니 부부.

두 집안은 인사를 마치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이거 뭐 상견례 기분 나네.”

“참, 그래서 제가 불편한 거에요. 꼬맹이 둘이 만나는 거 가지고 뭐 이런 자리까지..”

“쓸 데 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아이고, 그나저나. 먼 거리 오시느라 힘드셨겠다고 전해 드려라.”

이런 저런 이야기들과 안부를 물으며 사뭇 긴장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가는 두 가족.

도훈과 로레나는 사이에서 가볍게 농담도 하고 칭찬도 하며 부모님들이 어색해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의외로 부모님들은 국적이 달라도 연배가 비슷해서 그런지 금방 통하는 구석들이 있어 보였다.

“바로 한 잔 드셔 보시죠.”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디, 맛 좀 보자.”

즉석에서 와인을 따기 시작하는 로렌초 마티니.

“그냥 여따 따라 주시요.”

“하하, 그러죠.”

물잔에 와인을 받아 얼른 한 모금 들이키는 아버지.

평생 술이라곤 소주뿐에, 그것도 맛보단 취하기 위해서가 다였던 아버지지만,

그래도 평생 애주가로서 나름 식견이 있으신 듯.

와인을 음미한 아버지는 곧바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죽이는데, 이거. 쌉싸름하니 좋다야. 파전 같은 거랑 같이 먹으면 끝나겠는데.”

“안 그래도 코스로 쫙 나올 거에요.”

맛있게 와인을 음미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는 마티니 부부.

이윽고 도훈이 부탁한 와인잔과 함께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자, 뭐. 제가 뭐라고 그래도 자리가 자리니까 건배사 한 번 하겠습니다.”

각자 잔을 모두 채우고.

아버지는 일어나 으레 하는 진부한 건배사를 읊기 시작했다.

역시나 마지막은,

“그럼, 모두의 건강을 위하여!”

“위하여!”

무병장수 기원.

기분 좋게 와인을 들이키는 두 가족.

그리고 역시나,

로렌초의 볼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떡갈비라는 건데, 한 번 드셔 보시죠.”

휘황도 찬란하게 상을 수놓은 갖가지 음식들.

마티니 부부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문화가 다르기에, 그들도 항상 멋드러지게 매 식사를 해왔지만 이렇게 한 상 가득한 식사를 해보기는 처음.

뭐부터 먹어야할 지 고민을 하다 부부가 동시에 집은 것은 가운데 송이 버섯을 끼워 넣어 만든 떡갈비였다.

그리고,

“으으음..”

“이 맛은..”

떡갈비를 한 입 조심스럽게 베어 문 부부는 동시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요?”

“정말 맛있네요, 이거!”

마티니 부부는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 모습을 보며 도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믿고 있었던 떡갈비였다.

뭐, 떡갈비야 인도 사람한테 먹여도 맛있다고 할 음식이니까.

“많이 드십쇼.”

“모든 게 맛있습니다. 하나 하나 다 건강한 느낌에, 깔끔하고. 정말 멋진 한 상이네요.”

“와인이랑도 궁합이 기가 막히는데요.”

“하하! 이탈리아나 한국이나 똑같은 반도 나라라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립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가는 식사였다.

“즐거웠습니다. 조심히 들어 가시고요. 좋은 시간 보내십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뵀으면 좋겠네요.”

긴 식사시간 동안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낸 두 가족.

자리가 자리였던 만큼, 마리나 여사의 제지와 자제력으로 간신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한 로렌초와 마티니 가족이 돌아가고.

도훈과 아버지도 한시름 놓고 차에 올라 탔다.

“좋으신 분이여. 남자는 그렇게 남자다운게 최고다. 담 크고, 화통하고 솔직하고.”

아버지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로레나 가족을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아니, 정확히는 로레나 보다도 로렌초 마티니에 대한 것이 대부분.

중년의 나이에 처음으로 만난 이역만리의 외국인이지만.

확실히 통할 사람들 끼리는 어떻게든 통하듯.

자녀들로 이어진 인연이지만 둘은 좋은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

식사하며 한 잔씩 걸친 와인의 취기도 한 몫 한 듯 하고,

아버지의 기분은 매우 좋아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도훈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 뭐야, 내일 모레는 몇 시 비행기랬지?”

“아침 비행기요.”

“그래 거 늦지 않게 잘 가고. 몸 조심 하고.. 이제 또 한국은 여름에나 오는거냐?”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알았다.”

물론,

아마도 아버지가 기분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였겠지만.

“결혼은 할거제?”

“취하셨으면 한숨 주무세요.”

도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ㆍㆍㆍ

한국에서의 휴식을 마치고.

도훈은 다시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대회는 끝났지만, 아직 2022/23 시즌은 잠시 멈춰있을 뿐 진행 중.

12월 말부터 재개되는 리그 후반기 준비와 함께,

도훈은 중요한 선택을 남겨두고 있었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재계약과 미래에 대한 거취 여부였다.

-복귀 후 곧바로 협상 테이블 마련.. 맨유, 백도훈 잔류 위해 총력 다한다

도훈의 계약 기간은 2023년 여름까지.

이제 남은 기간이 고작 7개월 정도니, 보통 재계약을 할 거면 지금하는 게 맞는 시점이었다.

도훈은 꽤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도훈이 멧시처럼 유스 시절부터 맨유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

애초에 밀란에서 맨유로 온 것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온 것이었다.

그렇게 도전을 위해 온 맨유에서, 이룰 건 다 이룬 지금.

새로운 도전을 위해 변화를 꾀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 대상인 시점이었다.

그러나,

딱히 맨유나 영국을 벗어나는 것도 크게 도전이라는 메리트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도훈 덕분에 맨유는 현재 유럽 최강, 최고의 클럽이 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중심이 이동하며 프리미어 리그 역시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최고의 리그가 되어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굳이 소위 말하는 ‘하위 리그’ 로 간다고 한 들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굳이 그걸 도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글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 월장을 해 헤비급 챔피언에 도전하는 건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헤비급 챔피언이 체급을 내려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을 흠씬 두들겨 팬다한들.

썩 내키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차라리 헤비급 타이틀을 오랫동안 지켜가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

재계약에 대한 맨유의 태도는 역시나 매우 적극적이었다.

맨유야 재정 상태로 따진다면 유럽에서 최고 수준이고, 최근의 인기도 구단 성적 덕분에 기존보다 더 상승한 상태에 도훈 개인이 기여하는 수익도 짭짤하니 돈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을 맞춰줄 요량이었다.

기존에도 이미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도훈을 데려온 맨유였지만, 재계약시 그것보다 더 파격적인 금액까지도.

도훈 하나만 잡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기세인 맨유였다.

2022년 12월 26일.

로레나와 함께 맨체스터로 넘어와 크리스마스를 보낸 도훈.

그리고 그 다음 날, 도훈을 비롯해 월드컵을 치뤘던 모든 선수들이 구단 훈련장으로 복귀했다.

“축하한다.”

“난 네가 우승할 줄 알았다. 우리가 졌을 때부터.”

도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동료들.

8강에서 도훈을 만났던 크리스 즈몰링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장난스럽게 도훈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해시포드와 신가드 등 잉글랜드 선수들도 도훈에게 장난을 쳤고.

지난 1년간 동고동락 했던 둘도 없는 동료들.

월드컵에서 만큼은 서로의 국가를 위해 죽일듯이 맞서 싸웠지만, 이제 다시 한 팀으로써 뭉쳐야 할 때.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마음은 좀 결정 됐나?”

“뭐, 일단 오늘 테이블 보고..”

그런 동료들에게도, 도훈의 재계약 여부는 매우 큰 관심사였다.

도훈의 거취 여부에 따라 180도로 바뀔 수 있는 것들이 워낙 많았으니까.

당연히 동료들은 도훈이 남아주길 바라고 있었다.

맨유는 지난 시즌 전승 우승이라는 유례 없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고, 트레블을 포함해 모든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유럽과 세계를 제패한 팀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팀에서 단 한 명, 도훈만 빠져도 다시 예전처럼 우승컵 하나도 장담하기 힘든 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절대 과언은 아니었으니까.

“도훈!”

“아, 오셨어요.”

“지금 바로 가도 괜찮겠나?”

“예, 상관 없습니다. 가시죠.”

간단히 마친 훈련.

훈련이 끝난 도훈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조르제 게데스였다.

게데스와 함께 무슨 꼬마 팬들처럼 우루루 몰려 함께 도훈을 기다리고 있던 맨유 관계자들.

“시작 하는구나.”

“잘 좀 해보소, 관계자 나으리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무실로 향하는 도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동료들.

팬들에게도, 구단에게도 그렇지만.

도훈의 재계약 문제는 동료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점.

참 사람 일 모른다고.

본인들이 바라던 결과 때문에 본인들의 운명이 바뀌게 될 줄은 이들도 이 때까진 몰랐을 것이다.

“그럼, 좋은 결과 있길 바라겠네.”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협상을 마치고 나오자 어느 새 저녁이었다.

꽤나 길게 진행된 첫 번째 협상.

구단은 역시나 적극적이었다.

상한된 연봉의 폭은 그 폭이 꽤나 컸고, 게데스가 미리 일러준 다른 접근 팀들을 훌쩍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재밌는 옵션들도 많았다.

맨유 소속으로 뛰면서 발롱도르를 2회 수상시 보너스 수당.

4회 이상 수상시 올드 트래포드 정문에 동상 건립.

잉글랜드 내 원하는 곳 어디든 평생 저택 제공.

등등.

단순히 축구 공 잘 차는 것만으로 평생 먹고 살 걱정 없게 해주고 가족들까지 전부 책임져 주겠다는,

일반인들에겐 꿈의 직장이나 다름 없는 대우를 약속한 구단.

그 게데스 마저도 이런 계약 조건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맨유가 얼마나 도훈과 오랫동안 함께 가고 싶어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도훈은 고심해보겠다며 싸인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다른 구단들과 경쟁을 붙이며 조건을 좀 더 좋게 하기 위해 간을 보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도훈은 그저 스스로 좀 더 고민해보고 싶었을 뿐.

신중해야 할 문제였다.

특히나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렇게,

“휴우.”

도훈은 집에 돌아와 밤늦게 까지 여러가지 미래의 갈래 길들을 생각하다 잠에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밤.

도훈은 꿈에서 귀인의 충고를 듣게 된다.

< 도전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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