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3화 (153/173)
  • < 외로운 싸움 (5) >

    레오 산토스가 차낸 공이 하늘 높이 떠가는 순간.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으며,

    “삐이이이이익-!”

    입에 문 휘슬을 힘차게 부는 주심.

    그 휘슬이 들려오자 심판을 바라보는 모든 선수들.

    어떤 의미의 휘슬인가.

    주심은 이내,

    두 팔을 앞으로 뻗으며,

    “삐이이이이이익, 삐이이이이이이익-!”

    두 번의 휘슬을 더 불었다.

    세 번의 휘슬.

    축구 경기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의 상황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었다.

    “끝났습니다아아아-! 끝났습니다아아아-! 경기 끄으으읏-!”

    “이게 현실입니까! 이게 진짜입니까!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이! 월드컵 우승이라는 게 이게 현실입니까!”

    휘슬이 울리는 동시에 무릎을 꿇는 선수들.

    브라질 선수들이나, 한국 선수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행동의 의미는 너무나 달랐다.

    믿을 수 없는 허무함에 무릎을 꿇는 브라질 선수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환희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터뜨리는 한국 선수들.

    우승이라니, 월드컵 우승이라니.

    대한민국의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우승이라는 결과를 맞이한다는 것은 솔직히 평생 동안 꿈을 꿔본 적도 없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다니.

    “으어어엉..!”

    “잘했드아! 장하드아!”

    눈물 바다가 된 것은 한국 관중석도 물론.

    아버지와 소윤을 비롯한 선수들 가족이나, 붉은 악마들 역시 대한민국을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도훈은 하늘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침내,

    비로소.

    ‘해냈습니다.’

    도훈은 하늘을 우러러 당당하게 설 수 있었다.

    스승님의 앞에서, 당당히 세계 축구를 제패했노라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동안의 우승컵들, 그리고 발롱도르까지.

    모든 걸 이뤄낸 도훈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보다 당당히 어깨를 펼 수 있는 순간은 없었던 듯 했다.

    지금이야말로, 정말 이 땅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뤄냈다는 느낌이었다.

    당장,

    축구 선수를 은퇴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훈아!”

    “고맙다! 정말 고마워!”

    그리고,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동료들은 모두 도훈을 부둥켜 안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환희가 도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2022 카타르 월드컵! 그 대망의 결승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대결은! 백도훈의 두 골에 힘입어! 마침내 대한민국이 월드컵 사상 첫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우승컵을 위해 지난 4년간을 달려온 모두가 한 데 모여, 지난 날들의 노력과 땀을 보상받음에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

    그 순간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록될 순간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오늘도 역시나 주인공으로 기록될 선수는 도훈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세계 축구의 변방.

    아시아의 평범한 나라를 이끌고 월드컵 우승까지 이끌었던,

    백도훈.

    오늘은 누가 뭐라 해도 도훈의 대관식이었다.

    “역사상 최고, 백도훈!”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서 말이었다.

    “월드컵을 마무리하는 시상식이 거행 되겠습니다.”

    마침내 모든 경기가 끝난 2022 카타르 월드컵.

    한 달 동안 달려왔던 월드컵을 총망라하는 시상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경기장 한 가운데 설치되는 카타르스러운, 호화스러운 단상.

    그리고 시상을 위해 FIFA의 고위 관계자들이 하나둘 단상으로 모여 들었다.

    “카타르 월드컵, 가장 깨끗한 플레이를 펼쳤던 팀. 페어 플레이 상 수상 팀으로는 코스타리카 입니다.”

    본선 페어플레이 상부터 진행되는 시상식.

    “신인상은, 브라질의 비니시오스 주니오르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개인 수상.

    가장 먼저, 브라질의 비니시오스가 카타르 월드컵 신인상의 주인공으로 호명이 되었다.

    기쁜 수상이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상을 전달받는 비니시오스.

    어떠한 개인 수상도 지금 이 순간, 브라질 선수들을 위로하긴 힘들 것.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이 그런 비니시오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이어서,

    “야신상, 수상자는 대한민국의 조형우 선수입니다.”

    대회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야신 상 수상자가 발표 되었다.

    그러자 경기장에 이는 함성.

    야신상의 주인공은, 대회를 통틀어 단 4실점만을 허용했던 한국의 조형우였다.

    오늘, 결승전에서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단 한 골만을 허용한 조형우.

    그 역시 분명히 한국이 우승을 차지하는데 지대한 일조를 한 선수임은 분명했다.

    “참 여러모로 역사적인 대회가 아닐 수 없네요. 조형우 선수가 대한민국 골키퍼 최초로 월드컵에서 야신상을 수상하는 모습입니다.”

    이쯤 되니 월드컵의 사나이라 불릴만한 조형우였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시상식.

    야신상에 이어 시상된 것은 브론즈볼과 실버볼이었다.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상들.

    “브론즈볼, 포르투갈. 크리스티아누 호널두.”

    “실버볼, 브라질. 레이마르 다 실바.”

    불세출의 스타,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끈 호널두가 브론즈볼을,

    그리고 브라질의 에이스 레이마르가 실버볼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서,

    “골든볼. 이번 대회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뭐, 수상자를 호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 것 같은데요.”

    “네, 역시 백도훈 선수입니다.”

    루사일 스타디움에 호명되는 도훈의 이름.

    도훈이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장관이 펼쳐졌다.

    루사일 스타디움에 모인 9만여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도훈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내기 시작한 것.

    우승을 차지한 한국이나, 패배한 브라질 관중들이나 구분 없이.

    모두 도훈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뜨거운 박수를 보내오고 있었다.

    사상 최초로 우승컵을 가져다준 것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축구를 보여준 것에 대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의 탄생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아낌없는 박수를 도훈에게 보내 주었다.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의 백도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백도훈을 넘어, 대한민국의 백도훈도 역시나 세계 최고였습니다. 아니, 역대 최고였습니다.”

    “골든부트 역시 백도훈 선수에게 전달되고 있네요. 한 대회 18골. 유례가 없는 득점왕 신기록입니다. 역사상 이런 선수는 없었어요. 이것은 백도훈의 대관식입니다.”

    골든볼과 함께 대회 득점왕을 의미하는 골든부트 역시 동시에 거머쥐는 도훈.

    한 대회, 7경기에서 18골이라는 불멸의 대기록.

    이런 선수를 그 누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작 이제 18살이 될 소년입니다.”

    “새삼,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심지어, 10대의 나이로 말이었으니.

    “자, 이제 준우승 시상과 그리고, 대한민국의 월드컵을 들어올리는 순간만이 남았습니다!”

    개인 수상이 끝나고.

    이제 단 두개의 수상만이 남게 된 시상식.

    먼저,

    레이마르와 함께 20년만의 우승을 노렸으나,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브라질 선수단이 시상대로 올랐다.

    “올 해가 브라질에겐 어느 때보다 우승 적기라는 평가였으나, 결국 백도훈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백도훈이 아니었다면, 우승은 브라질이었을 거에요. 레이마르도 참, 시대운이 없는 선수네요. 이전까진 멧시와 호널두의 그늘에 가렸고, 이제 빛을 보나 싶었으나 백도훈이라는 역대 최고의 선수에게 가려지고 맙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보았듯 그 역시 대단한 선수임은 분명했습니다. 브라질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준우승은,

    가장 큰 패배자일 뿐이라는 말이 있듯.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서 2위라는 대단한 성적을 올린 브라질이지만.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수여받는 브라질 선수들의 표정은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도 결국 운이 없었을 뿐.

    세계최고인 도훈과 만난 것이 문제였을 뿐, 이번 대회 브라질이 보여준 축구 역시 영원한 우승후보라는 별명에 걸맞는 것이었다.

    브라질은 2위에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팀이었다.

    세계 최고를 상대하는 자 역시 세계 최고인만큼.

    브라질도 이번 대회 최고의 팀이었다.

    다만,

    이번 월드컵을 들어 올릴 자격이 있는 팀이 따로 있었을 뿐.

    “이제, 드디어.”

    “꿈만 같은 순간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2위 수상이 끝나고.

    월드컵 우승국가의 이름이 호명될 차례만이 남게 되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

    루사일 스타디움에 또렷이 호명되는 대한민국.

    우레와 같은 함성.

    사상 첫 월드컵 우승.

    대한민국.

    그 주역들이, 차례 차례 단상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그 순간이 선수들에겐 평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자신들이 정말 월드컵 우승 단상에 오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실감이 나지 않는듯한 모습들.

    그리고 마침내,

    “월드컵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저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것입니다!”

    황금색의 지구, 그리고 그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두 명의 선수들 모양을 가진, 이 세상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손에 쥐어 보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바로 그 트로피,

    월드컵이 시상대로 옮겨졌다.

    눈앞에서 그 월드컵을 바라보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선수들.

    그렇게 모두 월드컵만을 바라보던 선수들이,

    갑자기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

    “비가..?”

    툭, 툭-

    갑작스레,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

    그러다,

    투투투투툭-!

    이내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카타르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네요. 겨울 카타르의 비는 참 흔치 않은 것인데요.”

    “뭐, 하늘에서도 한국의 우승을 축하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막이 있을 정도로 비가 내리는 것이 흔하지는 않은 카타르.

    그런데 마치 한국이 월드컵을 우승한 것이 놀라운 일인 것처럼.

    시상대, 루사일 스타디움에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비가 있을까.

    선수들은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간 듯 내리는 비를 맞으며 즐거워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들어 올리시죠.”

    이제 월드컵을 들어올릴 차례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자, 멋지게 들어 올려줘라.”

    “부탁한다.”

    한 선수의 등을 떠미는 선수들.

    역시, 도훈이었다.

    선수들의 앞으로 나선 도훈은, 기꺼이 그 황금색 트로피를 받아든 뒤,

    “와아아아아아앗-!”

    “예에에에에에에-!”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월드컵 우승! 대한민국입니다!”

    도훈이, 대한민국을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는 순간이었다.

    “아들!”

    “아버지!”

    시상식이 모두 끝나고.

    루사일 스타디움은 한국의 파티장으로 바뀌었다.

    각자 경기장을 찾은 친인척들과 경기장에서 함께 기쁨을 나누는 선수들.

    도훈도 경기장으로 내려온 아버지와 가장 먼저 포옹을 나누었다.

    불과 2년 전.

    도훈은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평생 축구와는 단 1도 관련이 없었던.

    그런 아들이, 갑자기 축구를 하겠다고, 유럽으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얼마나 황당 하셨을까.

    그러나, 아들은 너무나 확고히 축구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약속했고, 아버지는 믿어 주었다.

    그리고 결국 그 약속을 이렇게 월드컵 우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로 지켜 냈고.

    그 순간, 아버지와 도훈은 서로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잘했어...”

    “고맙다.”

    소윤과도 포옹을 나누는 도훈.

    여태 그래왔듯이, 동생에게 한 없이 자랑스러운 오빠가 된 도훈.

    이 순간을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기쁜 도훈이었다.

    그리고,

    “도훈아!”

    “로레나!”

    가족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보았던 로레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도훈.

    비가 내리는 탓에 예쁜 옷과 머리가 흠뻑 젖은 로레나였지만, 그 모습이 도훈의 눈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

    “크흠.”

    로레나와 도훈은 아름다운 키스를 나누었고,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괜히 소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누구나 그 모습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런데,

    “어땠어?”

    “글쎄. 뭐, 그냥 이 세계의 축구 수준은 이 정도구나, 싶었는데.”

    그 모습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사실은, 오늘 경기가 시작될 때부터.

    경기장 한 쪽 켠에 앉아 도훈만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의문의 남자들.

    모두가 결승전의 엄청난 경기에 감탄하고 있을 때,

    그들만큼은 시큰둥한 눈길로 경기를 지켜보았었다.

    “이 정도라면.”

    “차질은 없겠군.”

    그들은,

    다른 것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곧바로 자리를 떠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 외로운 싸움 (5)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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