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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2화 (152/173)
  • < 외로운 싸움 (4) >

    오늘 도훈이 몸이 세 개인 것처럼 뛰어 다니긴 했으나.

    그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레이마르의 눈에 도훈이 세 명으로 보였다는 것은.

    ‘뭐야?’

    레이마르의 눈에 또렷히 보이는 세 명의 백도훈.

    당황하는 레이마르.

    이미 돌파를 마음 먹었으나, 어디로도 지나갈 수가 없는 상황.

    아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맞닥뜨린 이 초자연적인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황당한 레이마르가 주춤거리는 사이.

    촤아아아-

    파아아앙-!

    세 명의 도훈 중, 가운데에 있던 도훈이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공을 빼앗아내는 ‘진짜’ 도훈.

    “막았어요!”

    “레이마르의 공을 뺏어냈습니다! 대단합니다, 백도훈!”

    그 모습을 보며 빠르게 골문으로 침투하던 브라질 선수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눈엔 그저 레이마르가 너무도 쉽게 공을 빼앗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그러나 당황하고 있을 시간조차 없었다.

    초자연적인 상황을 레이마르 뿐만이 아니라 브라질 선수들 모두가 느낄 수밖에 없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으니.

    타타타타타타탓-!

    “백도훈이 다시 올라 갑니다!”

    “달립니다! 여전히 빠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레이마르의 공을 갈취해낸 도훈은, 다시금 전방을 향해 공을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여전히 번개처럼 빨랐다.

    브라질 선수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니, 모두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뛰고도, 다리 근육의 무리가 왔을 정도의 상태일텐데도.

    또 다시 저렇게 뛸 수 있는 것인지.

    도훈의 그 불가사의한 속도는,

    “카시미로를 따돌리고! 페르난지노를 따돌립니다!”

    이전보다도 더 빨라진 듯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건 상대적인 것이니.

    도훈의 속도가 진짜로 이전보다 빨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느려진 것은,

    “크윽..!”

    브라질 선수들의 발이었다.

    워낙 도훈의 체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을 뿐, 다른 선수들이라고 지쳐가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도훈을 뛰쫓아가는 브라질 선수들의 발은 무거웠고, 다친 사자는 사바나를 호령하던 시절로 돌아간 듯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가로 질렀다.

    그리고 마주하는 브라질의 최종 수비 라인과 도훈.

    워낙 지금까지 두텁게 수비 라인을 세우던 탓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노출된 채로 도훈과 마주하는 것이 처음인 브라질 수비 라인.

    되도록이면 이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브라질 수비수들이었다.

    백도훈과 마주하는 게 반가울 수 있는 수비수는 이 세상에 없었고, 그건 브라질 수비수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러나 그것이,

    이런 것 때문이리라고는 티오고 시우바나 다른 선수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거침 없이 박스를 향해 달려든 도훈.

    그리고 그 앞에 몰려드는 세 명의 수비수들.

    티오고 시우바, 레오 산토스, 그리고 다니 아베스까지.

    대회 동안 5점 이상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대회 최고의 수비진 셋이 동시에 도훈을 가로 막는 상황.

    도훈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그 셋 앞에서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 뒤,

    다시금 레이마르를 당황시켰던 그 초식을 발산 시켰다.

    ‘환영분신술(幻影分身術).’

    환영신보의 2성.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환영분신술을 도훈이 시전하자,

    그 순간 3대1 이라는 수적 열세 따위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한 명이라고 해도 두렵다.

    그런데,

    지금은 백도훈이 세 명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백도훈의 바디 페인팅은 어찌나 진짜 같은지, 마치 분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 정도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세 명의 백도훈이 각자 따로 살아 움직이듯 공을 몰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티오고 시우바와 레오 산토스, 다니 아베스는 동시에 똑같이 목격하고 있었다.

    때문에 누구도 옆의 동료를 도와줄 순 없었다.

    어느 것이 진짜 백도훈인 지 알 수 없는 상황.

    세 명의 수비수는, 온전히 1대1일로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는 눈 앞의 백도훈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세 명의 도훈은,

    쉬이익-!

    스르륵-!

    파팡-!

    각자 다른 방법으로 각자의 상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아앙-!

    파아앙-!

    ‘막았..!?’

    그리고, 동시에 도훈을 상대한 레오 산토스와 다니 아베스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예상보다 조금 더 쉽게,

    자신들이 도훈의 드리블을 막아냈기 때문.

    자신이 막아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백도훈을 막아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지.

    하지만,

    백도훈을 막아냈다는 기쁨이 스쳐지나가는 두 선수 사이에서.

    티오고 시우바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시우바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백도훈이 이 세 명중에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

    또한,

    자신이 그런 백도훈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백도후우운-!”

    “제쳐냅니다악-!”

    거의 목소리가 뒤집어질 정도로 절규하는 해설자.

    세 명의 수비수를 앞에 두고, 도훈은 티오고 시우바의 정면을 향해 달려 들고 있었다.

    그리고 번개같은 드리블로 시우바의 중심을 무너뜨리며 그를 제쳐냈고.

    그 순간, 다른 두 명의 백도훈은 공기 중으로 증발했다.

    남은 건 진짜 도훈뿐.

    진짜 도훈이 선택했던 건, 티오고 시우바였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알리손이 지키고 있는 골대뿐.

    ‘드디어.’

    그 골대를 앞에 두고.

    도훈은 이때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에 파노라마가 지나가는 듯 했다.

    월드컵 4강전의 그 마지막 페널티 킥.

    8강전때의 그 충돌.

    조별 예선 경기들.

    월드컵 최종 예선의 순간들.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

    분데스리가.

    나이키 더 찬스.

    그리고 동굴에서의 100년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골 하나를 넣기 위한 발판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걸 넣기 위해서,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해왔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도훈에겐 그렇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놓칠 수는 없었다.

    매 순간 그래왔듯이.

    쉬이익-

    “슈우웃, 이 아니라!”

    달려 나오는 알리손 키퍼를 정확히 보고, 오른발로 슈팅을 가져가려는 듯 하다 헛다리를 짚듯 공을 타고 넘어가는 도훈의 오른발.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한 그 페인팅에 알리손 키퍼는 미리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도훈은,

    뻐어어어어엉-!

    넘어진 알리손 키퍼를 가볍게 넘기는 슈팅을 때렸고,

    슈우우우우웅-

    철썩-!

    공은 빈 골대에 정확히 안착했다.

    너무나 완벽히 골망에 안기는 공.

    도훈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그 순간 뒤집어 지는 루사일 스타디움.

    안전 사고가 염려될 정도로 방방 날뛰는 한국 관중들.

    방송 사고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환성을 내지르는 캐스터들.

    정신 없이 도훈에게 달려드는 동료들.

    교체 조끼를 입은 채 그라운드로 난입하는 선수들.

    믿을 수 없는 순간.

    후반 5분을 남겨두고, 브라질을 상대로 작렬한 역전 골.

    도훈도 그 순간의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는 듯,

    유니폼 상의를 벗어 머리 위로 돌리며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유니폼을 하늘 높이 집어 던지며 뛰어 올라,

    “예에에에에에에-!”

    포효했다.

    그리고 도훈은 곧바로 달려든 동료들에게 파묻혀 버리고 말았고.

    “으아아아!”

    “으어엉..!”

    한국 관중석은 눈물 바다가 되어 버리고 있었다.

    도훈의 아버지와 소윤 역시도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부르고 있었고.

    정말,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역전 골입니다!”

    “정말, 백도훈! 백도훈! 백도훈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백도훈!”

    그 환희의 순간이 진정 되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기에,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감을 애써 누르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

    도훈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눈 뒤 벗어 던졌던 유니폼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보여주었다.

    자신의 유니폼에 적힌 이름과, 등번호를.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세계 최고의 대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백도훈입니다!”

    “축구의 신!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신의 선물! 우리에게 백도훈이라는 선물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 백도훈입니다!”

    침묵에 휩싸인 채, 그 모습을 지켜보는 브라질 관중들.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하고, 인생의 전부가 축구다시피한 브라질의 관중들이었다.

    그런 관중들이 응원하는 브라질이, 너무나 결정적인 실점을 한 순간.

    비통하고 애통한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 편으로는.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축구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선수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그 사실에.

    비통한 가운데서도 한 편으로는 기쁜 마음이 들기까지 하는 그 복잡한 마음을 브라질 관중들은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조국의 패배이면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의 탄생이었다.

    “자, 아직 결승전은 끝난 게 아닙니다.”

    “추가 시간까지 합한다면 8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시간만 버틴다면.. 대한민국이 우승입니다. 월드컵 우승입니다!”

    어쨌든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브라질은 마지막 총공세를 준비했다.

    워낙 극적인 골이었던 탓에 셀레브레이션을 몇 분이나 했던 한국 팀인 만큼, 추가 시간도 꽤나 주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길면 10분가까이가 될 수도.

    그 정도라면 충분했다

    어차피 한 골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은 10초면 충분하니.

    “티오고 시우바, 길게!”

    “브라질도 플레이가 단순해질 수밖에 없는 시점!”

    길게 박스로 붙여 놓고 어떻게든 한 골을 노리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는 브라질.

    확실히 그렇게 단순하게 갈 수밖에 없는 시간대이긴 했다.

    이 마당에 천천히 빌드업을 하면서 완벽히 만들어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그런 식의 공격은 한국에게 유리할 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파아아앙-!

    “백도훈이 걷어 냅니다!”

    무조건적으로 박스로 붙이고 보는 브라질.

    그렇다는 건,

    도훈도 박스 안에서 대기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방금 전, 엄청난 드리블로 상대를 모두 제쳐내고 골을 넣었던 그 선수와 동일 인물이 맞는 건지,

    이번엔 완벽한 센터백처럼 상대의 롱 패스를 모두 머리로 끊어내는 도훈.

    “정말.. 승리를 만들고, 지켜내고. 혼자서 모든 걸 다하고 있습니다. 백도훈.”

    “부정할 수 없어요. 한국은 백도훈이 없으면 안됩니다!”

    브라질의 간절함이 무색하게,

    헛되이 흘러가는 시간과 헛되이 소모되는 공격 기회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도훈.

    결국,

    “아, 길게 주네요.”

    “추가 시간은 4분입니다!”

    전광판이 멈추었다.

    월드컵의 마지막 정규시간도 모두 끝이 나고, 흐르기 시작하는 추가 시간.

    시간이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정확성이 떨어지고, 급해지는 브라질의 시도들.

    그리고,

    1초씩 월드컵에 가까워질수록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하는 심장 박동.

    “이제 불 때가 되었는데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나요!”

    다시 한 번 공을 튕겨낸 뒤, 똘똘 뭉쳐 다음 공격에 대비하는 한국 선수들.

    모두들 체력적 한계의 상황에 놓여 있을 테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게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오히려 눈빛은 더욱 살아 있는 모습.

    그렇게,

    경기가 시작된 후 멈춤 없이 흘러갔고 1초, 1초의 시간은.

    마침내 마지막을 알리는 순간에 다다르고 있었다.

    뻐어어어어어엉-!

    시간이 없다는 걸 알기에 다급히 박스로 공을 붙이는 레오 산토스.

    그러나,

    그 공이 박스까지 가기도 전에.

    대한민국 선수들은 동시에 그라운드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휘슬이,

    “휘슬이!”

    휘슬이 울린 것이었다.

    < 외로운 싸움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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