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51화 (151/173)

< 외로운 싸움 (3) >

다급히 중단되는 경기.

“브라질 의료진이 경기장으로 달려 나옵니다. 아.. 지금 시우바 선수가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워낙 슈팅이 강했는데, 티오고 시우바가 그걸 머리로 막아 냈으니..”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브라질 응원단.

의료진이 급하게 시우바의 상태를 확인했다.

브라질 벤치도 걱정스럽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곧바로 벤치에 있던 다비드 로이스가 몸을 풀어야 하는 것인지 살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우바가 일단 정신을 차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대팀 선수지만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시우바는 곧 의식을 되찾았고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안정을..”

“아녜요. 멀쩡합니다. 오히려 개운한데요? 뛸 수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휴식을 종용하는 의료진.

그러나 시우바의 의지는 완강했다.

동료들이 더 걱정할까봐 되레 벌떡 일어나 보이는 시우바.

“뛸 수 있다는 표시를 벤치로 보내고 있는 의료진.”

“시우바가 계속해서 뛸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모습에,

“시우바! 시우바!”

브라질 응원단이 함성을 보냈다.

“티오고 시우바가 투혼을 보여 줍니다.”

“상대지만 주장으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네요.”

브라질도,

이 경기를 쉽게 지고 싶지 않은 건 당연했고 그걸 몸으로 보여주는 티오고 시우바.

언제나 영원한 우승후보라 불리는 브라질이지만,

어느 덧 마지막 우승도 20년전.

2002년의 기억이 워낙 강렬할 뿐이지, 1980년과 2000년의 갭이 20년인만큼 상당히 오랜 시간.

그 오랜 시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던 브라질이 얼마나 우승을 염원하는지를 티오고 시우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고마워.”

그런 시우바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는 알리손 키퍼.

시우바가 보여준 투혼에 알리손 키퍼가 고마운 이유는, 역시나 그렇게 막아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손을 쓸 수도 없었던 슈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어쨌든 시우바가 막아 주었고, 그 시점에서 알리손 키퍼는 뭔가 행운의 여신이 본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직감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

“네버 마인드.”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우바에게 다가가 사과의 의미로 손을 내미는 도훈과 그 손을 맞잡고 도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시우바.

“백도훈은 금방 지칠거다.”

“그래, 할 수 있다.”

후반전,

전반보다 더욱 활발히 움직이며 존재감을 가득 뿜어내기 시작한 도훈.

그러나,

그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제 살 깎아 먹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브라질 선수들은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후우.”

크게 숨을 내쉬며 곧바로 다시 낮은 위치로 되돌아가는 도훈.

도훈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후반전을 뛸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체력적인 부담은 평소보다 2배, 3배가 아니라 그 몇 배가 될 수도 있다.

도훈의 몸은 인간의 것이었다.

도훈도 자신이 지칠 수 있다는 걸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분명히 도훈이 지쳐, 어쩌면 제 살을 깎아 먹는 짓을 하고 있다는 브라질의 생각도 맞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이 간과하는 것.

‘오늘, 죽어서 나간다..’

도훈은 제 살을 깎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죽을 때까지 뛸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아직 보여주지 않은 한 가지.

이 순간을 위해 세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있던 그 비장의 무기를,

도훈은 오늘 선 보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도훈은 이 경기를 충분히 결정지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백도훈이 정말 많이 뛰어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수비 공격 양면에서 마치 백도훈이 두 명이 있는 듯 영향력을 발휘해주고 있는데요.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건..”

“역시나 체력일까요.”

“우리가 백도훈에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백도훈이 뛰어주고 있는데, 그런만큼 체력적인 부담도 가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이미 남들의 1.5배는 뛰어주고 있는데.. 경기가 길어질수록 이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 지요.”

보통,

한 경기에서 한 선수가 10km 이상을 뛰면 많은 활동량을 기록한 것이고,

15회 이상의 스프린트를 하면 많은 전력 질주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후반 10분까지.

전반을 포함해 도훈은 55분간 벌써 7km 를 뛰었고 스프린트 횟수만 18번을 기록했다.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이 뛴 선수가 도훈이었고 덕분에 한국은 브라질의 공세를 막아내는 한 편 역습으로 간담을 서늘케 하는 장면들도 연출하고 있는 후반이었고.

하지만 문제는 브라질이 그걸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이용하기 위한 플레이로 태세를 변경했다는 점에 있었다.

“글쎄요. 브라질은 길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급할 게 없어 보입니다.”

“경기가 길어지면 유리한 건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브라질은 다시금 전반 후반과 같은 스탠스로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공을 돌리고, 도훈이 없는 반대편으로 길게 전환하며 경기장을 폭 넓게 썼다.

그러면서도 도전적인 공격은 시도하지 않고, 그저 적당한 선에서 다시 뒤로 공을 내주며 일단 공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을 제 1 목표로 삼는 듯한 플레이를 이어 나갔다.

그런 자신들을 끈질기게도 쫓는 도훈을 보며, 브라질 선수들은 자신들의 플레이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경기를 할 수 있었고.

‘절대 못 버틴다.’

같은 축구 선수로서 알 수 있었다.

저렇게 뛰어 다닌다면, 절대로 후반 90분, 그리고 그 이후까지 몸이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을.

몸에 약이라도 꼽지 않은 이상 저런 페이스로 뛴다면 방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대회의 마지막 경기였다.

브라질 선수들 마저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시점에서, 하물며 백도훈이라면.

때문에 브라질은, 연장전까지 갈 생각까지도 마음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 때까지 경기가 이대로 이어진다면, 결국 백도훈은 방전이 되어버릴 것이고 백도훈이 없는 한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도 아닌 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세계 최강인 자신들이 상대와 정면 승부를 피해간다는 것 때문에 상하는 자존심은 뒤로 하더라도.

월드컵을 위해 못할 건 없었다.

“경기 초반만 해도 많은 득점이 나올 듯 했던 경기가, 의외로 팽팽하게 흘러갑니다.”

“우리 선수들, 많이 뛰어주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여전히 급할 것 없다는 듯 경기를 풀어 나갑니다.”

10분이 지나고,

다시 10분이 지나고.

여전히 브라질은 백도훈을 피해 다니고, 도훈은 한국 선수들을 보호하며 뛰었다.

그렇게 경기는 어느 덧 후반 30분까지 흐른 시점.

그 시점에,

예상치 못한 헤프닝이 벌어진다.

“어어, 백도훈 선수가 쓰러져 있습니다!”

“지금은..? 일단 마로셀루가 밖으로 공을 내보냅니다.”

도훈이 갑자기 주저 앉은 것이었다.

중단되는 경기.

한국 벤치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은 아무런 접촉이 없었는데.. 혼자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레오 산토스에게 압박을 가하다가.. 갑자기 주저 앉았어요. 아... 근육이 올라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상대에게 압박을 가하다 다리를 부여 잡으며 주저 앉은 도훈.

쥐가 올라온 듯 곧바로 달려온 손홍민이 도훈의 다리를 펴주며 상태를 살폈다.

그라운드로 들어온 의료진도 다급히 도훈의 상태를 살폈고.

“아.. 어떡해..”

“제발...”

그 모습에 머리를 감싸쥐는 한국 응원단.

그리고, 도훈의 아버지와 소윤은 입을 틀어 막았다.

사실 경기 내내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는 아들을 보며 내내 마음을 졸였던 아버지.

그러다 결국 쓰러져 버리고 마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신의 심장이라도 대신 내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들이 쥐고 있을 고통을 대신 느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월드컵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걸 알고 있기에,

도훈은 죄송한 마음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면 마음이 찢어지실테니 죄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아버지마저 속으실 정도라면, 그걸로 연기는 성공인 것일테니 잠깐만 속으셨으면.

“예, 예. 진짜는 아니에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어휴.”

도훈의 상태를 살피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의료진.

도훈이 쓰러진 것은 정말로 근육이 올라와서가 아니었다.

연기였을 뿐.

그러나 그 누구도 그걸 연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진작에 근육에 무리가 갔을 정도로 뛴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때문에 한국 동료들도 정말로 깜짝 놀라 도훈에게 달려왔던 것이었고,

“이제 됐나.”

“타이밍이다.”

브라질 선수들 역시 서로 기회가 찾아왔다는 귓속말을 주고 받으며 속으로 웃었다.

정확히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던 브라질.

아니나 다를까,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브라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본인도 알고 있었을 텐데.

그렇게 뛰어 다니다간 몸이 버티지 못한다는 걸.

천하의 백도훈도, 이런 상황에 몰리니 결국 제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뛰어 다녔단 말인가.

“아.. 일단 다행히도 일어나는 백도훈.”

“하지만 근육이라는 게.. 한 번 올라오면 계속 올라오거든요. 백도훈 선수, 일단은 계속 뛰겠다는 의지인 것 같습니다만.. 아, 안타깝습니다.”

힘겹게 일어나는 듯 보이는 도훈.

계속해서 뛸 생각.

그 모습이, 브라질 선수들의 눈에는 무리를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백도훈이라고 해도, 이미 한계를 벗어난 몸으로 뛰는 것은 팀에게 짐만 될 뿐이라고 생각하며.

“경기가 재개 됩니다.”

“위기입니다, 한국.”

권창운이 상대에게 공을 내주며 재개되는 경기.

공을 잡은 마로셀루는, 때가 왔다는 듯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로셀루, 빠르게 올라 갑니다!”

정적인 플레이만을 하던 마로셀루가, 갑자기 공을 끌고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한 것.

마로셀루 뿐만이 아니었다.

도훈이 쓰러져 치료를 받는 동안 모여 입을 맞췄던 브라질 선수들이 모두 한국 진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전격적인 태세 전환.

이 때만을 기다려왔던 브라질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브라질 입장에선 절호의 찬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한국의 절대적인 에이스인 백도훈은,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뛸 수 없다.

남은 시간은 15분.

이 15분은 한국에겐 고통스러운 15분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15분안에 월드컵을 브라질의 것으로 가져온다.

파아아앙-

파아아앙-!

“2대1 패스! 사람을 잡아야 합니다!”

“왼쪽 파고드는 마로셀루, 레이마르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리턴 패스로 권창운을 가볍게 제쳐낸 뒤 레이마르에게 공을 건네고 사이드로 돌아 들어가는 마로셀루.

피르미노와 비니시오스, 코티뉴와 카시미로 마저 각자의 자리로 동시에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

작정하고 달려드는 브라질의 기세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한국 선수들.

“백도훈도 들어와 있습니다만, 위기입니다!”

“막아내야 합니다, 한국!”

도훈도 역시나 깊숙이 내려와 선수들 사이에서 수비를 조율하지만,

브라질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도훈을 노릴 생각이었다.

‘왼쪽 다리였지.’

왼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졌었던 도훈.

공을 잡은 레이마르는 도훈에게 정면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잔인한 일일 수 있었다.

상처 입은 선수의 상처를 노리는 일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이것은 월드컵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서 싸우는 자리가 아니니까.

레이마르는, 좌우로 크게 흔들며 성하지 않은 백도훈의 다리를 완전히 박살낼 요량이었다.

쉬이익-

쉬이익-!

도훈 앞에서 상체를 리드미컬하게 흔드는 레이마르.

온전한 상태의 선수라도 그런 레이마르의 페인팅에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훈은 꿈쩍하지 않았다.

레이마르의 페인팅에도 반응 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시그널이라고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레이마르의 드리블을 다리 때문에 쫓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으니.

또한 그렇게 느낀 것은 레이마르도 마찬가지.

자신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 레이마르가 도훈의 왼다리 쪽으로 공을 치고 나가려는 순간.

그 순간이었다.

“...!?”

레이마르의 동공이 커졌다.

그리고 그렇게 커진 레이마르의 동공에 비치고 있는 건,

세 명의 백도훈이었다.

< 외로운 싸움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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