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운 싸움 (1) >
“아름다운 골이 들어갔습니다.”
오른발에 걸리는 순간 이미 알았던 것일까.
공이 골대로 감겨 들어가고 있을 때,
이미 코티뉴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국 해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골.
“우오오오아아앗-!”
골이 들어가는 순간 거대하게 울려 퍼지는 브라질 응원단의 함성.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펄쩍 펄쩍 뛰는 탓에 울리는 경기장.
그 곳의 분위기를 실감케 하듯 흔들리는 중계 카메라.
그 해일같은 인파들을 향해 만세를 부르며 감격하는 코티뉴와 브라질 선수들.
그것은 말 그대로 감격이었다.
어떠한 셀레브레이션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닌, 그저 원초적인 환희를 몸으로 표현하는 코티뉴.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골.
그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자는 설명할 수 없는 환희는 순간이리라.
“브라질의 선제 골이 터집니다. 전반 11분.”
“어쩔 수 없는 골이 하필 여기서 나오네요.”
아름다운 골이었다.
이런 골이라면 실점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문제는 그 이전이었다.
코티뉴의 슈팅이야 어떤 골키퍼가 와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인정할 순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레이마르에게 덤벼들다 돌파를 허용하고, 피르미노의 침투를 놓쳐 편하게 패스를 받게 해준 뒤 급하게 커버하다 다시 코티뉴에게 슈팅 공간을 내준, 그 일련의 과정들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너무 쉽게 슈팅까지 허용을 했어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못했습니다. 물 흐르듯 브라질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브라질의 패스 플레이가 워낙 빠르긴 했습니다만은..”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지금부터라도 그런 문제점들을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
과연 박의영이 다음 번에 레이마르와 마주한다면, 지금의 실수를 만회해 좋은 플레이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솔직히 어려워 보였다.
왜냐하면,
‘젠장..’
다른 모든 걸 떠나서,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적인 실력의 차이가.
조별 예선, 8강, 4강.
한국이 월드컵에서 상대했던 나라들은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었다.
아르헨티나의 멧시도 있었고, 잉글랜드의 해리 카인, 포르투갈의 호널두 등 세계 최고라는 선수들은 모두 만났던 한국이었다.
그 때마다 대단한 선수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몸으로 받았긴 했었다.
하지만 그 땐 집중 수비, 협력 수비로 항상 서로를 도와가며 주 득점원만을 상대하면 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동료들과 힘을 합치지 않고, 온전히 일 대 일로 세계 최고의 선수와 마주하는 지금.
몸으로 느껴지는 격차는 어렵게 올라가려던 자신감을 다시금 땅 밑으로 추락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한국 선수들에겐 절대 해서는 안되는 생각들이 스멀스멀 머릿 속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그건,
경기 중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른 시간의 실점은 그것대로 괜찮은 점도 있습니다. 만회할 시간이 많다는 거죠.”
“우리 선수들, 자신감 잃지 말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월드컵 결승전, 누구 하나 조언해줄 사람도 없고 힘든 싸움일 겁니다. 하지만, 일단은 지금까지 해왔듯이 계속해서 기적을 위해 싸워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15분정도가 지나간 결승전.
확실히 무대의 무게감 때문일까.
한국은 4강까지 보여줬었던 플레이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선수들에게 뭐라 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지금 이 선수들은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최초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외로운 싸움일 것이었다.
누구도 먼저 가본 이 없고, 길을 가리켜 줄 사람도 없다.
이 싸움의 무게감은 지금 그라운드 위에 있는 선수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게감을 이겨내야 하는 것도 이들 뿐이었다.
“일단은 이 흐름을 버텨내야 합니다.”
“완전히 브라질의 흐름입니다. 하지만, 90분 내내 브라질의 흐름일 수만은 없을 거에요. 분명히 우리에게도 흐름은 찾아 옵니다. 그 때까지 잘 버텨내 봐야겠죠, 우리 선수들.”
선제 골 이후로 완전히 달아오른 브라질 응원단의 기세처럼,
조금씩 더 거세지기 시작하는 브라질의 공세.
공수전환이 완벽에 가까운 브라질의 최대 장점을 보여주듯, 공세를 펼칠 땐 이보다 강한 화력을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브라질은 완벽히 삼바 군단으로의 변신이 가능했다.
“비니시오스, 중앙으로 접고 들어 갑니다. 자, 저렇게 여유롭게 활개치도록 놔둬서는 안되는 선수인데요.”
오른쪽의 비니시오스가 공을 가지고 중앙으로 움직이자, 우측 풀백 다니 아베스가 높게 오버래핑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왼쪽에서 마로셀루 역시 높게 올라가기 시작했고.
다니 아베스와 마로셀루는 웬만한 윙어들 보다도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선수들.
그런 공격력에 걸맞게 이미 두 선수 모두 이번 대회에서 한 골씩을 둘이었다.
경계를 해야할 선수들이 한 둘이 아닌 이 상황.
한국의 수비는 집중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고, 공을 가진 비니시오스를 쫓을 수 있는 것도 한 명뿐이었다.
적어도 수비수 중에서는 그랬다.
타타타탓-!
비니시오스를 쫓아가며 그 민첩함에 숨이 차오름을 느끼는 서영제.
그러나 동료의 도움을 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팀을 패배로 밀어넣는 일.
때문에 동료들이 커버를 들어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서영제는 이를 악 물고 비니시오스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달아나는 비니시오스의 속도는 빨랐다.
결국, 누군가 비니시오스가 향하는 공간으로 커버를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자신에게서 누수가 생기는 것일까, 서영제가 어금니를 깨무는 순간.
촤아아아아-
자신을 도와주러 온 그 동료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백도훈의 태클!”
도훈이었을 때.
서영제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커버는 민폐라는 느낌보다, 말 그대로 구원자를 바라보는 듯 했다.
파아아앙-!
“정확히 공을 끊어 냅니다!”
뒤 쪽에서 달려드는 도훈을 전혀 보지 못한 것일까, 비니시오스는 손 쉽게 공을 잃어버리고 말았고 공은 김민제에게 향했다.
완벽한 슬라이딩 태클.
“다시!”
그리고 벌떡 일어나는 도훈에게 다시 공을 대주는 김민제.
도훈은 공을 받아 곧바로 전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 시간대 쯤 되서, 도훈은 동료들의 상태를 보며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오늘 이 90분 동안, 동료들을 바꾸긴 힘들다는 것을.
아무리 자신감을 북돋아 주고 기세를 이끌어 준다고 해도, 절대적인 실력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있는 동료들을 한 순간에 바꿀 순 없다는 것을.
때문에, 도훈은 마음을 다르게 먹고 게임에 임하기로 했다.
‘게임을 바꿔야 한다.’
자신 혼자서, 이 게임을 바꿔 놓아야 한다고.
파아앙-
타타타타탓-!
“올라 갑니다!”
“모처럼 공을 잡은 백도훈! 한국에게 오랜만에 기회가 찾아 옵니다!”
수비 시에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없다.
그리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건 공격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도훈은 마음을 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은 도훈이,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노란 물결을 향해 공을 몰고 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의 배수의 진을 친 셈이었다.
“뒤 따라 붙는 비니시오스!”
“안돼요, 속도에서 못 따라갑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 도훈의 뒤를 쫓는 비니시오스.
그러나 서영제가 벅차하던 비니시오스 조차 도훈의 속도를 따라붙지 못했다.
따라붙긴 커녕 오히려 벌어지는 격차.
“브라질 선수들이 모두 부리나케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도훈이 공을 잡고 올라오자 브라질은 마치 하나의 몸처럼 뒤로 쭈욱 물러나기 시작했다.
다른 한국 선수가 공을 잡았을 때 전혀 물러나지 않고 개인 압박을 가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어차피 도훈이 속도를 붙힌 이상 한두 명이 붙어준다고 해도 의미 없는 일.
하지만 분명히 경기 초반 도훈이 보여준 게 하나 있었다.
그렇게 뒤로 물러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대포 한 방이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걸.
때문에 무조건 뒤로 물러나기만 할 수도 없는 브라질.
일단의 대처는,
“피르미노가 어느 새 아래까지 내려와 있군요.”
피르미노가 도훈을 따라 다녀주는 것.
최소한 슈팅 각도만 내주지 않는 것으로 피르미노의 역할은 충분했다.
중거리 슈팅의 경우 힘을 싣는 로딩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피르미노라도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워낙 좋은 경기 분위기에 선제 골까지 넣었고, 한국 선수들이 위축되어 있는 모습에 자신감이 만땅으로 차오른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훈까지 만만히 봐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취했군.’
스르륵-
파아앙-!
얼쩡대는 피르미노를 앞에 두고.
도훈은 뒷발로 공을 가져갔다.
그리곤, 루사일 스타디움에 두 번째 무지개를 그렸다.
“사포!”
“똑같이 보여줍니다!”
한국 선수들이 위축이 된 것이지,
도훈이 위축이 된 것은 아니었다.
브라질 선수들이 개인 기량으로 한국을 압살하고 있는 것은 맞았으나,
그렇다고 도훈을 압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거 하난 브라질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월드컵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었다.
이 그라운드 위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것은,
브라질의 그 누구도 아닌 도훈이라는 걸.
잠깐 분위기에 취해 브라질 선수들이 잊고 있었던 걸 도훈은 가르쳐주고자 했다.
투웅-
레인보우 플립으로 머리를 넘기며 피르미노를 제쳐내는 도훈.
경기는 90분으로 짧다.
그 시간 안에 동료들을 바꾸기엔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동료들을 바꿀 순 없어도 상대를 바꿀 수는 있다.
동료들의 자신감을 끌어 올릴 순 없어도, 상대의 자신감을 추락시키기엔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다.
도훈은 브라질 선수들의 뇌 깊숙한 곳에 각인시켜 놓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자신을 막아 내기에, 90분은 너무나 길다고 느끼도록.
“백도훈!”
피르미노를 떨쳐내고 계속해서 속력을 높여 박스로 돌진하는 도훈.
그런 도훈의 모습에 잔발을 구르며 잔뜩 자세를 낮추고 기다리는 브라질 수비수들.
도훈은 온 몸의 기를 잔뜩 응축시키며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박스 근처까지 여섯 보폭 가량을 움직이는 동안 공을 8번 터치하며 달려갔다.
그리고,
‘여기.’
단 하나의 빈틈을 발견한 도훈이 지체 없이 오른발을 당겼다.
알리손 키퍼는 자리를 잘 잡고 있었고, 그 앞의 티오고 시우바나 레오 산토스도 시야를 잘 가리고 있었지만 도훈에겐 보였다.
레오 산토스의 다리 사이가 조금 벌어져 있었고, 그 뒤엔 골대의 빈틈이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뻐어어어어어어어어엉-!
“슈우우웃-!”
이번에도 예상키 어렵도록 한 박자 빠른 도훈의 슈팅.
그 슈팅은 낮고 빠르게, 거의 잔디를 깎듯이 깔려,
촤아아아아아아아-
레오 산토스의 다리 사이를 통과했다.
“큭...!”
빠르게 몸을 뉘이며 팔을 뻗는 알리손 키퍼.
몸을 붕 날릴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전광석화 같은 슈팅이었다.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넘어지며 팔을 뻗은 알리손 키퍼의 판단은 그 역시 월드 클래스의 골키퍼임을 입증하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마저도 슈팅에 비하면 느리다는 것이었다.
파아아아앙-
촤아아아아아아-!
도훈의 슈팅은 알리손 키퍼의 바로 앞에서 바운드 되었다.
그리고, 마치 물수제비처럼 공은 앞으로 강력한 회전이 걸리며 2차 가속을 해 더욱 빨라졌고,
철썩-!
골망 하단을 뚫을 듯이 강타했다.
“드, 들어 갔습니다!”
“고오오오올-! 백도훈! 역시 백도훈!”
그 순간 기세 높던 브라질 응원단은 한 순간에 침묵했고,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있던 한국 응원단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만세를 외쳤다.
역시, 역시 백도훈.
“어흑..!”
“너밖에 없다!”
워낙에 불안했던 경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제발 도훈이 해주길 기다리고 있던 한국 관중들 몇몇은 골이 들어가는 순간 눈물을 왈칵 터뜨리고 말았다.
골이 들어가기 직전보다, 오히려 골이 들어간 순간 경기장의 데시벨이 더욱 낮아졌다는 건 얼마나 그 전까지 브라질 응원단의 기세가 높았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
완전히 브라질의 것이었던 루사일 스타디움을 조금이나마 가져오는 도훈의 동점 골이었다.
그리고,
타타타탓-
도훈은 슈팅을 날린 이후에도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아앙-!
골망을 흔들고 튀어나온 공을 빠르게 낚아채,
타타타탓-!
공을 들고 하프라인을 향해 달리는 위해서.
마치, 1분 1초라도 아깝다는 도훈의 그 모습에,
“...”“...”
브라질 선수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 이 결승전의 90분이.
결코 짧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 외로운 싸움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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