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47화 (147/173)

< 꿈과 집착 (1) >

“고생 많았어요. 생각보다 오래 있었네.”

“그러게요. 오늘로 마지막이네요.”

월드컵 기간 동안 현지에서 활동한 기자 박수연은 아담한 체구로 간신히 포토라인의 앞 자리를 차지한 뒤 한숨을 내쉬며 옆 자리의 기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쩌다 보니 자주 마주치며 친해진 브라질 기자였는데, 대회 초반까지만 해도 이렇게 오래 얼굴을 보게 될 줄은.

사실, 그 동안 현지에서 취재를 하면서 말을 걸어오는 다른 나라의 기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태도들이었다.

생각보다 한국이 오래 있는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그럴 때마다 과연 그럴까라며 강단있게 대답했던 박수연이지만, 솔직히 그럴 때마다 조금씩 위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특히 오늘은 더했다.

한국 기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브라질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고, 만나는 기자마자 벌써부터 위로의 뉘앙스가 풍기는 말들을 건네오고 있었다.

모두가 그러니 박수연 조차도 오늘은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배가 된 것은, 브라질 선수들이 탄 버스가 먼저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레이마르!”

“비니시오스!”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브라질 선수들.

긴장될 수밖에 없는 순간임에도, 꽤나 밝은 얼굴로 여유가 있어 보이는 슈퍼스타들의 모습은 과연 브라질의 현재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들에게 월드컵 우승은 언제나 불가능보다는 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아니, 가능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되찾아 와야지.”

“너무 오래 걸렸어.”

모든 브라질 기자들은 월드컵을 ‘되찾아 와야 한다’ 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월드컵은 ‘우리의 것’ 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에겐 꿈이 아니었다.

“뒤로 조금만 물러 나세요! 버스 들어 옵니다!”

그렇게 브라질 선수들이 모두 들어간 뒤.

이어서 도착한 대한민국 팀의 버스.

“잘하자!”

“긴장하지 마요!”

하나둘씩 버스에서 내리는 선수들에게 응원의 외침을 전달하는 한국 기자들.

그러나 그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선수들은 긴장된 얼굴로 빠르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안될 수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단 하나의 경기.

모든 걸 갖느냐, 모든 걸 잃느냐를 앞둔 선수들.

이런 상황에서 처음 이런 무대를 밟아보는 선수들이 긴장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브라질 선수들에게 느껴졌던 여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그 모습에 박수연 또한 괜히 긴장감에 몸이 떨릴 무렵.

“아...”

마지막으로 한 선수가 버스에서 내렸을 때,

박수연은 그런 긴장감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백도훈!”

“백도훈!”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메고 버스에서 내리는 도훈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더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

진중한 여유였다.

“컨디션이 좋은가 본데.”

“그래도 역시 백도훈 때문에 결과를 알 수 없는거지.”

그런 도훈의 모습에 박수연은 지금까지 받았던 작은 서러움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분명히 쉽게 지지만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저 사람이라면 우리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게 월드컵은 꿈이다.

“먼저 가볼게요.”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브라질 기자의 물음에 미소를 짓는 박수연.

“우승 인터뷰 질문 만들어야 돼요.”

“...하하.”

박수연은 어느 한 감독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의 상황과 잘 맞아 보이는 그 이야기.

꿈과 집착에 관한 이야기 말이었다.

꿈은, 집착보다 순수하다.

한국에게 월드컵 우승은 꿈이다.

그리고, 브라질에게 월드컵 우승은 집착이고.

오늘, 반드시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박수연은 기자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9만여 명.

말이 9만 명이지, 옛날이었다면 한 나라를 정벌하고도 남을 정도의 머릿수인데.

그런 정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메운 경기장.

“루사일 스타디움입니다.”

스물두 명의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모인 9만여 명.

그 압도적인 인파를 바라보며, 한국 선수들은 온 몸이 굳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첫 월드컵 결승 무대.

상대는 브라질.

이런 상황에서 몸이 굳지 않는 게 이상한 일.

“월드컵 결승 무대에! 태극기가 등장합니다!”

그라운드에 등장하는 거대한 브라질 국기와, 태극기.

월드컵 결승전에 태극기가 등장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선수 입장!”

양 팀의 선수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싸우자, 이기자, 브라질!”

“대-한민국!”

온 힘을 담아 선수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하는 관중들.

그 에너지를 받은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고.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의 전설. 클로드 마클레레가 월드컵을 들고 등장하고 있습니다.”

월드컵, 황금빛의 트로피를 들고 나타나 모두에게 들어 보이는 마클레레.

그 순간 모든 선수들의 시선이 월드컵으로 쏠렸다.

갖고 싶다.

저것을 들기 위해, 지금까지의 그 여정들을 헤쳐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저것을 들고야 말겠다.

그러한 눈빛들이, 스물 두명의 전사들에게 스쳐 지나갔다.

“애국가 연주가 있겠습니다.”

“루사일 스타디움에 애국가가 울려 퍼집니다!”

애국가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하는 루사일 스타디움.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목청껏 애국가를 제창하는 한국 선수들.

그 순간, 도훈은 처음으로 가슴이 떨려오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어떤 클럽 경기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

분명한 것은, 좋은 떨림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200퍼센트 발산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끓어오르게 하는, 좋은 떨림.

-대한민국

-피파랭킹 34위

-월드컵 최고 성적 4위(2002년)

-조별 예선 3승

-16강 vs 일본 7대0 승

-8강 vs 잉글랜드 3대0 승

-4강 vs 포르투갈 4대3 승

[선발 라인업 (4-4-2)]

GK 조형우

CB 김민제

CB 김형권

LB 서영제

RB 박의영

MF 위강인

MF 백성호

MF 권창운

MF 황휘찬

FW 손홍민

FW 백도훈

“카메라가 백도훈의 얼굴을 오랫동안 비춰주고 있습니다.”

“과연 지난 러시아 월드컵에서 모드리치와 크로아티아가 해내지 못한, 새로운 월드컵 우승국의 탄생을 백도훈과 대한민국이 해낼 수 있을까요. 현재까지 6경기에서 16골. 월드컵 득점왕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백도훈이 오늘도 해내주길 바랍니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모드리치가 이끌었던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와 오늘의 대한민국이 다른 것은,

크로아티아는 그 해 최고의 선수였던 모드리치를 보유했을 뿐이지만,

대한민국은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지도 모르는 백도훈을 보유했다는 것.

과연 그 차이가,

결과의 차이까지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어서 브라질의 국가 연주가 있겠습니다.”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입니다.”

-브라질

-피파 랭킹 3위

-월드컵 최고 성적 우승(1958, 1962, 1970, 1994, 2002)

-조별 예선 2승 1무

-16강 vs 벨기에 승

-8강 vs 프랑스 승

-4강 vs 스페인 승

[선발 라인업 (4-3-3)]

GK 알리손 베커

CB 레오 산토스

CB 티오고 시우바

LB 마로셀루

RB 다니 아베스

MF 페르난지노

MF 카시미루

MF 필리페 코티뉴

FW 비니시오스 주니오르

FW 레이마르

FW 로베르트 피르미노

“가슴에 빛나는 다섯개의 별. 브라질 입니다.”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타 군단, 그러면서도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친 브라질입니다. 특히나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고요. 신구의 조화가 여느 대회 때보다도 강력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다섯 번이나 우승을 경험한 브라질.

그러니 월드컵을 되찾아 온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왜 더 떨릴까요.”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휘슬이 울리길 기다리는 것뿐.

선수들이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위치를 잡고.

브라질의 최전방 공격수 로베르토 피르미노가 킥 오프를 위해 경기장의 정중앙에 선 뒤.

“삐이이이이이이이익-!”

마침내 월드컵 결승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동시에,

경기가 시작 되었다.

브라질의 선축으로 시작 된 경기.

파아앙-

파아앙-!

브라질은 가볍게 공을 돌리며 경기를 시작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역시나 결승전은 신중할 수밖에 없는 듯.

그러나, 그 모습도 한국 선수들의 눈에는 한결 여유가 있는 모습들로 비출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거대해 보였다.

“백도훈 선수를 제외하고, 현재 트랜스퍼 마켓의 몸값을 기준으로 양팀을 비교한다면, 거의 10배에 가까운 차이가 납니다. 엄청난 체급 차이죠. 이렇게 차이가 나는 전력을 어떤 식으로 메꿀 수 있을지. 역시나 백도훈에게 많은 것이 걸려 있는 경기입니다.”

하지만, 역시 이 그라운드 안에서 가장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건 도훈이었다.

그런 도훈이 과연 동료들을 이끌고 브라질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슬슬 템포를 올립니다.”

“오늘 경기에서는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를 거에요. 브라질은요.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과 경기할 때보다는 훨씬 주도적으로 경기를 펼칠 겁니다. 잘 대응해야겠죠!”

슬슬 라인을 높이기 시작하는 브라질.

도훈을 포함해 깊게 내려서는 한국.

“오른쪽으로. 비니시오스.”

이번 대회에서 레이마르와 쌍끌이로 브라질을 결승에 올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활약을 펼치고 있는 비니시오스.

그 때문에 비니시오스가 공을 잡으면 벨기에든 프랑스든 두 명 이상이 붙어 오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걸 한국은 알고 있었다.

한 명에게 두 명이 붙으면 필연히 다른 쪽에 구멍이 생기고 만다. 브라질은 그걸 활용할 줄 아는 팀이었고, 누구든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게 문제였으니까.

일단은 어떻게든 1대1에서 막아내는 것이 경기를 이기기 위한 포인트.

“비니시오스, 리듬을 타 봅니다.”

“뚫리면 안됩니다!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경기 내내 시달릴 겁니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쉬울까.

서영제를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가는 비니시오스.

아무리 월드컵을 향한 의지, 각오, 꿈으로 강하게 무장되어 있다고 해도.

절대적인 실력 차 앞에서는 소용이 없는 일.

게다가 긴장감에 몸이 굳은 서영제 보다 비니시오스는 훨씬 더 여유가 있었고,

쉬이익-

타타타탓-!

“아!”

“치고 들어가는 비니시오스!”

비니시오스는 가볍게 헛다리를 치며 서영제를 따돌리고 오른쪽 사이드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브라질의 첫 번째 공격 시도부터 무너지는 한국의 승리를 위한 첫 번째 공식.

비니시오스는 마치 자본주의의 공정함을 증명하는 듯, 둘 간의 몸값차이를 제대로 보여주며 서영제를 1대1에서 압도했다.

뻐어어어어어엉-!

“문전으로 크로스!”

파아아아앙-!

슈우우우웅-

“아우우우우우-!”

잠시 후 아쉬움의 탄성이 루사일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위험했습니다!”

“돌아 들어가던 피르미노를 놓쳤어요! 집중해야 합니다!”

반대편으로 길게 넘어갔던 비니시오스의 크로스를 영리한 움직임으로 따라가 발을 갖다 댔던 피르미노의 슈팅.

그러나 그 슈팅은 골대를 빗겨갔고, 다행히 실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번째 공격 시도부터 결정적인 장면까지 내주고 마는 한국.

브라질이 공격할 때 관중들이 내는 함성 소리에 혼이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결승전..’

도훈을 제외하곤 모두 처음일 것이다.

이런 거대한 무대에서 모든 걸 걸고 싸워보는 것이.

“후우.”

골 킥을 위해 공을 놓고 몇 걸음 물러서는 조형우 키퍼.

지금 이 순간, 그런 조형우의 시점에 서본다면 누구든.

“골 킥으로 재개 되겠습니다.”

“브라질 응원단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아마 조형우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지 모른다.

‘할 수.. 있을까?’

월드컵을 뛰며 처음으로,

조형우는 경기에 대해 확신을 내릴 수가 없었다.

< 꿈과 집착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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