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46화 (146/173)
  • < 영웅 (2) >

    남은 시간 단 1분.

    넣으면 월드컵 결승 진출이고, 못 넣으면 승부는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다보면, 결국 패배할지도 모르고 지금껏 아무리 잘해왔어도 패배의 멍에를 벗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뒤바뀔 수도 있다.

    외다리 나무의 토너먼트에서 멋진 결승골들을 터뜨리며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결국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적이 되어버린 로베르트 바지우처럼.

    실패한다면 잃는 게 너무 많은 승부.

    이런 거대한 압박감이 짓누르는 상황에서의 페널티 킥과,

    그저 동네 운동장에서 혼자 골대 앞에 공을 두고 차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페널티 킥.

    그 두 상황에서 같은 마음가짐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축구 선수들을 모두 통틀어도, 몇 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몇 명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타타타타탓-

    뻐어어어어엉-!

    슈우우우우웅-

    도훈은, 그 몇 명 안에 속하는 영웅이었다.

    도훈은 너무도 경쾌하게 공을 향해 달려 들었고, 오른발등에 공을 얹었다.

    매일 수백 번씩 그러하듯이.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매일 해오는 그 킥이 달라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도훈에겐 지금 이 페널티 킥도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게 월드컵 결승행을 확정짓는 페널티 킥이든, 텅 빈 훈련장에서 차는 페널티 킥이든.

    도훈에겐 그저 무조건 넣어야 하는 것일 뿐이었다.

    철썩-!

    “네에에에에에-!”

    “들어 갔어요! 들어 갔습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구우욱!”

    도훈의 페널티 킥이 깔끔하게 구석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대한민국의 모든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 그리고 5천만의 국민들은 열광했고, 그 거대한 압박감을 무사히 이겨내 준 도훈에게 감사했다.

    “대한민국 축구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백도훈!”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도훈에게 달려들어 포효하는 한국 선수들.

    마치 도훈이 월드컵인 마냥, 도훈을 높게 들어올려 기쁨을 표출하는 선수들.

    “...”

    그리고, 먼 발치에서 고개를 숙이는 또 하나의 영웅.

    호널두를 비롯해 할 말을 잃어 버리는 포르투갈 선수들, 그리고 관중들.

    믿을 수 없었다.

    호널두의 동점 골에 힘 입어 분명히 뒤집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경기.

    그러나,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희망.

    “시간은 이미 다 지났어요.”

    “아마 많아 봐야 한 번의 기회 정도가 주어질 것 같은데..”

    마지막 킥 오프.

    어차피 기회는 있어 봐야 한 번.

    포르투갈의 모든 선수들이 하프 라인에 다닥다닥 붙어 섰다.

    킥 오프와 동시에 골문으로 빠르게 달려갈 수 있게끔.

    그리고 파트리우스 키퍼가 센터 서클 근처까지 나와 있었다.

    “삐이이이이익-!”

    파아앙-!

    파트리우스 키퍼에게 공을 건네는 동시에 달려 나가는 호널두와 포르투갈 선수들.

    그리고 파트리우스 키퍼가 골문을 향해 길게 공을 차내는 순간.

    공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의 뜀박질이 너무도 허망하게,

    주심이 입에 문 휘슬을 불었다.

    끝이었다.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월드컵 결승에!”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이미 터치 라인에 모두 늘어서 있던 한국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은, 휘슬이 울리는 순간 만세를 부르며 경기장 안으로 뛰쳐 들어왔고,

    그라운드에 있던 선수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서 주저 앉으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양 쪽 모두에게.

    포르투갈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주저 앉았고, 한국은 믿을 수 없는 환희에 주저 앉았다.

    이것이 토너먼트.

    그리고 이것이 결승이라는 너무도 거대한 것이 달린 4강전이었다.

    포르투갈은 이제 지금으로썬 아무런 의미도 없는 3,4위전을 치르러 가야 했고,

    대한민국은 월드컵을 놓고 브라질과 마지막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결정 지은 것은,

    대한민국의 영웅 백도훈이었다.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백도훈, 포르투갈을 상대로 4골을 집어 넣었습니다.”

    “이건 그 어떤 월드컵 역사의 4강전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명경기였어요. 꼭 우리가 승리해서가 아니라요. 정말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습니다. 아, 포르투갈과 호널두도 정말 대단했지만. 대한민국에 백도훈이 있었습니다. 백도훈이 있었어요.”

    너나 할 것 없이 도훈에게 먼저 달려가 안기는 한국 선수들.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대한민국을 구해낸 것은 누가 뭐래도 도훈이었으니.

    결국 이거였다.

    해줘야할 때 해주는 사람.

    그게 영웅이고, 슈퍼스타니까.

    그리고, 이제.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중계 예고해 드리겠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12월 19일 새벽 2시,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펼쳐지는 경기. 브라질과 대한민국의 결승전 경기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해내준다면, 월드컵의 새 역사는 쓰여진다.

    어차피 목표는 결승 진출이 아니었다.

    우승이었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오늘의 승리는 딱 오늘까지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결승전을 준비해야 하는 임무를 안게 되었습니다!”

    우승을 향한 도전은 이제 시작이었다.

    ㆍㆍㆍ

    “미스터 백? 이 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버님, 가시죠.”

    도하의 한 5성급 호텔.

    그 아래가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로 높은 최상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월드컵을 맞아 무수한 부호들로 바쁜 모습.

    워낙 사람들이 많아 테이블을 잡기도 어려운 그 곳에 도훈의 아버지 백승태와 동생 소윤, 그리고 임찬주가 예약되어 있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적응이 안되는구만. 너무 높아서 소화나 되겄어, 이거.”

    “이런 건물도 한 번 지어 보셔야죠.”

    “우리 규모로 이런 거 지으려면 평생 지어도 못 지어. 이런 건 대기업들이 국가 수준 사업으로 짓는거지.”

    “하하.”

    창 밖으로 비치는 멋진 풍광과 분위기를 즐기고 있자, 잠시 후 음식들이 하나둘씩 테이블로 서빙되기 시작했다.

    무슨 음식인지, 뭘로 만든건지도 모르는 음식들이지만,

    “녹는구만.”

    “맛있어.”

    입에 넣는 족족 녹아 내리는 것이 하나같이 고급 요리들임이 분명.

    하긴, 애초에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니 음식도 대충 나올리가 있겠나.

    “내일은 경기장에 몇 시까지 가면 되지?”

    “경기 시작이 7시니까요. 6시 정도까지 가면 될 거에요.”

    “낮잠이나 푹 자고 가면 되겠구만.”

    VIP 자격으로 내일 있을 결승전에 초대받은 아버지와 동생.

    둘은 아직도 도훈 덕분에 모르는 세상을 알아 가는 것이 낯설었다.

    세상에 이런 호텔 레스토랑에도 와보고, 월드컵 결승전을 직접 관람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대회가 시작하기 전, 반드시 결승전에 초대하겠다고 도훈이 말했음에도 그 때까진 몰랐다.

    그것이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몸 상태는 어떻다대?”

    “어제 통화 해보니까 좋다네요. 얘야 뭐 자기 관리 하나는 끝내주니까요.”

    “거, 브라질은 어떨 것 같다더냐. 이길만 할 것 같다든?”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답니다.”

    월드컵 결승까지 단 하루.

    브라질도 예전이었다면 월드컵에서 이긴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힘든 팀이었을지 모른다.

    토너먼트에서 브라질을 만난 순간 이미 기대를 접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일 있을 결승전의 결과를 섣불리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도 뭐 이런 데서 밥 먹고 있을지 예전에 상상이나 했겠어? 이게 다 그 놈 덕분에 일어난 일이니까. 내일도 믿어 봐야지.”

    이 모든 걸 바꿔버린 단 한 명의 사나이, 도훈.

    도훈 덕분에 과연 세계의 역사가 새로 쓰일 수 있을까.

    “이기나 지나 후회없이 하고.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도훈을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걱정하는 건, 아마 아버지 밖에 없을 것이었다.

    ㆍㆍㆍ

    “가장 경계해야 하는 점은 득점자가 골고루 분포 되어 있다는 거다. 4강까지 레이마르가 3득점, 비니시오스가 3득점, 코티뉴가 2득점, 이외에 1득점씩 기록한 선수가 다섯 명이다.”

    사실,

    한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임하기 전부터 자신감이 있는 상태였다.

    과거의 월드컵들 보다 훨씬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자신이.

    그러나, 솔직히 결승까지 올라와 브라질과 대결을 할 것이라고 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었다.

    특히 토너먼트에 올라온 이후부터는 매 경기를 마지막 경기라 생각하고 준비하기 바빴지, 그 너머까지 대비하며 준비할 여유는 없었고.

    때문에 브라질의 전력 분석을 오랫동안 해온 것은 아니었다.

    부랴부랴 브라질의 분석을 시작한 것은 포르투갈과의 4강전이 끝나고 부터니, 고작 4일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그렇게 브라질을 분석하며 코칭 스태프들이나 선수들이 느낀 것은, 역시 브라질은 강하다는 것.

    또한 현재 한국 팀에게 있어 모든 나라들을 통틀어 가장 까다로운 스타일의 상대라는 것이었다.

    과거 삼바 군단, 스타 군단으로 일컬어지던 화려한 브라질과 현재의 브라질은 꽤나 거리가 있었다.

    현재 브라질의 가장 큰 무기는 조직력과 수비력이라고 모두가 이야기할 정도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전히 브라질의 색채는 가지고 있는 현재의 브라질이었다.

    레이마르, 비니시오스, 코티뉴 등 공격 쪽을 이루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걸출한 테크니션 들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완성형이라는 것.

    역시나 그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점은 그런 테크니션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풀백들까지 득점력을 갖춘, 어디서 득점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정도로 화력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포르투갈은 득점원이 단 한 명, 호널두에게 집중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호널두만 막으면 되었던 4강전이었고.

    그런데도 3실점이나 하며 위기를 맞이 했었던 한국이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그렇게 한 명에게만 집중할 수 없다.

    “1대1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각자가 각자를 막는 수밖에 없다.

    한 쪽에서 누수가 생긴다면 돌려 막다간, 또 다른 쪽에서 누수가 생길 수밖에 없으니.

    반면에,

    “이 쪽에서는 집중 견제를 뚫어내야 하고.”

    브라질의 수비는 당연히 도훈을 집중 견제할 것이다.

    도훈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걸 뚫어내야 할 것이고.

    여러 모로 불리한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껏 유리한 게임이 있었던가.

    모든 불리함을 뚫고 부수며 여기까지 왔을 뿐.

    “어차피 예상하지 못했던 건 브라질쪽이 훨씬 더겠지.”

    이 쪽에서도 브라질과의 만남을 예측하지 못했다지만, 브라질이야 말로 결승에서 한국을 만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변명일 것이다.

    어차피 남은 건 이제 단 한 경기.

    “후회 없이 해보자.”

    부딪혀 볼 뿐이다.

    “가자!”

    “해보자!”

    이제 카타르 월드컵도 단 한 경기만이 남아 있었다.

    2022년 12월 17일.

    결승전을 앞서, 카타르 월드컵 3,4위전이 펼쳐졌다.

    브라질에게 패배한 스페인과, 대한민국에게 패배한 포르투갈의 경기.

    공교롭게도 이베리아 반도에 붙어 있는 두 나라의 경기가 성사됐기에, 보통의 3,4위전 보다는 훨씬 치열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경기.

    사실, 4강전에서 만난 상대를 본다면 운이 나빠 3,4위전에 오게 된 쪽은 스페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16강, 8강에서 브라질을 만난 벨기에나 프랑스까지 모두가 브라질을 가장 늦게 만났다면 그것이 결승전이었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3,4위전에서 스페인은 그 말을 증명했다.

    “라무스의 헤딩 골! 결정적인 골입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호널두! 더 이상의 기적은 없는 듯 합니다!”

    3대1.

    지난 번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맞대결과는 다르게, 스페인은 포르투갈을 비교적 손쉽게 잡아 냈다.

    전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스페인이었음에도.

    때문에,

    이 경기로 사람들은 더욱 브라질에 대해서 고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을 꺾고 죽음의 토너먼트를 뚫고 결승까지 올라온 브라질은 진짜라고.

    그런 평가는 곧바로 도박사들의 우승 배당률로도 나타났고.

    브라질 2.03

    대한민국 3.15

    거의 모든 이들의 예상이 브라질로 쏠리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마침내 결승전의 아침이 밝았다.

    < 영웅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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