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 (1) >
“해트트릭!”
“세 골째 입니다! 대한민국이 결승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 집니다!”
허탈함에 고개를 떨구는 포르투갈 선수들.
반면,
도훈의 로빙 슛이 떠가는 순간, 그 잠깐의 순간을 영겁의 시간처럼 느꼈던 한국 선수들은 펄쩍 뛰어 오르며 포효했다.
“와아아아아앗-!”
그리고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는 붉은 악마들.
정말 가는 것인가.
정말, 이번 생에는 절대 인연이 없을 것 같던 월드컵 결승의 고지에 다가가는 것인가.
언제나 아시아의 변방국가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이,
아니, 다른 이들의 평가보다 오히려 자기 자신들이 먼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월드컵 결승 진출.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인가.
“3대2-! 백도훈의 해트트릭으로 앞서 갑니다, 후반 31분! 대한민국!”
“남은 시간은 15분여!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카타르 월드컵의 결승전은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됩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흥분감이 한반도는 물론, 이 곳 알 와크라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요동치는 심장 박동.
선수들의 소리, 벤치의 소리, 관중석의 소리.
사방이 온통 시끄러운 와중에도 또렷히 들려오는 심장의 소리.
한국 선수들은 방금 전까지도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긴장감이 전신에 차고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스코어 그대로, 한 점만 지켜낸 채 경기가 끝나게 되면 자신들은, 대한민국은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이 1분 1초가 역사의 순간이나 다름 없었다.
훗날 대한민국, 아니 세계 축구 역사의 한 장면으로 회자될 순간에 자신들이 서 있는 것이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 아니었다.
꿈에도 그리지 못하던 순간이었지.
그러니, 이제 공든 탑의 마지막 돌을 놓기 직전인 것처럼 긴장이 될 수밖에.
“집중하자, 집중!”
“하던대로 합시다! 다르게 생각하지 마요!”
중요한 건, 이 순간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필요에 따라 긴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부터 15분여 동안을 특별한 상황이라고 계속해서 의식하며 평소보다 더 긴장할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랬다간 괜히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이제 마지막 돌을 놓을 차례지만,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첫 돌을 놓는 것처럼.
마지막 계단을 오르지만 첫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경기를 해왔던 그대로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말했듯 문제는 그걸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슈퍼스타라고 부르는,
영웅이 아닌 이상.
“페레이로, 전방으로 길게!”
“포르투갈은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이 시간을 버텨내야 해요!”
15분을 남겨두고 한 점을 뒤지기 시작한 포르투갈은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젠 크로스가 아니라, 후방에서부터 그저 일단 박스 쪽으로 붙이고 시작하는 포르투갈.
그러기를 몇 번.
포르투갈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호널두에게 공을 보냈다.
역시나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건 호널두의 영웅본능.
언제나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호널두는 지난 월드컵에서도 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스페인과 3대3 무승부를 이끈 경험이 있는 남자.
오늘도 이미 두 골을 기록했고, 또 한 번 그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타아아앗-!
파아앙-!
수많은 선수들로 혼잡한 박스 안에서, 높게 뛰어올라 기어이 머리로 공을 따내는 호널두.
그러나 그것이 헤더 슈팅은 아니었고, 떨어지는 공에 선수들이 벌떼처럼 모여 들었다.
그 사이에서 공을 지키기 위해 몸으로 공을 막는 호널두.
그리고,
타아앗-!
호널두가 기어이 공을 갈무리해 돌아서는 순간,
콰당-!
호널두가 무언가에 밀쳐진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헤에에에에에이-!”
“레프리-!”
그리고 고함을 내지르는 호널두와 동시에 모두 주심을 쳐다보며 손을 치켜드는 포르투갈 선수들.
페널티 킥이 아니냐는 항의였다.
그러나, 워낙 선수들이 겹쳐 있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
뒤에 서 있던 주심은 아무런 제스쳐를 보이지 않고 있었고,
뻐어어어엉-!
김민제가 공을 바깥으로 걷어 냈다.
“지금은...!”
“글쎄요, 글쎄요. 포르투갈 선수들이 몰려들어 항의하고 있습니다만.. 심판은 넘어가는 것 같거든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수들이 워낙에 몰려들어 있던 상황이고, 그 상황에서 선수들간의 접촉이 없을 수만은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위치가 박스 안이었고, 호널두가 분명히 공을 컨트롤하고 있던 상황이기에 포르투갈 선수들과 호널두는 주심을 잡아 먹을 듯이 달려들어 항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지부동인 주심.
주심은 선수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그냥 경기를 재개시키려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자, 글쎄요.”
“심판이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는 듯 보입니다.”
주심이 잠시 스로인을 멈추라는 지시를 내리더니, 귀에 착용한 인이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인이어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격렬하게 항의를 하던 포르투갈 선수들이 한발짝 물러나기 시작했고,
“아...”
“지금은 정말 중요한 판단이 내려지게 되겠습니다.”
주심은 그라운드를 뛰어 나오기 시작했다.
“VAR 판정이 내려지겠습니다.”
순식간에 얼어붙는 그라운드의 공기.
주심이 화면으로 반복되는 문제의 장면을 확인하는 동안,
선수들은 숨 막히는 심정으로 주심의 판단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느 쪽에게나 절체절명의 순간.
이 판단 하나로 모든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판단이 끝난 것 같습니다.”
“어떤 판정이 내려질까요.”
주심이 판독을 마친 듯 그라운드로 다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익-!”
포르투갈 응원단의 함성이 벼락처럼 터져 나왔다.
“PK 선언입니다..”
“아..”
휘슬을 불며 박스 한 가운데를 가리키는 주심.
페널티 킥 선언이었다.
주심의 선언이 내려지자 이번엔 한국 선수들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포르투갈 선수들은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한 남자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피케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호널두가 차겠죠.”
“호널두가 일찌감치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피케이를 처리할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상황.
엄청난 부담과 압박감이 짓누를 수밖에 없는 상황.
그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은 호널두밖에 없었다.
이 피케이를 호널두가 처리하는 것은, 말 그대로 처리였다.
한 골을 더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구도 할 수 없기에 그가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포르투갈의 슈퍼스타니까.
“삐이이이이익-!”
“후우-”
마주 선 호널두와 조형우 키퍼.
그리고 울리는 휘슬.
호널두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신 뒤, 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타타타탓-
뻐어어어어어어어엉-!
그리고, 강슈팅.
키퍼가 어디로 뛰든, 절대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는 듯 호널두는 골대를 보지도 않고 슈팅을 때렸고,
슈우우우우우웅-
그 슈팅은 빌어 먹게도 정확했다.
철썩-!
“아....”
“들어 갑니다. 호널두. 세 번째 득점.”
월드컵 결승 진출을 놓고, 한 점을 뒤진 후반 37분.
그리고 얻어 낸 페널티 킥 기회.
그 상황에서의 압박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호널두는 페널티 킥을 깔끔하게 성공시켰고, 포르투갈 관중들은 신에게 경배하듯 허리를 숙였다.
15분은 커녕 10분을 채 가지 못하고 동점을 허용하는 한국.
“여섯 골이 터졌고, 그 여섯 골이 두 선수에게서 나왔습니다. 이토록 예상대로 흘러간 경기도 없을 듯 싶네요.”
“정말 두 영웅의 대결입니다.”
김민제는 축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처럼 멘탈이 무너져 내릴 듯한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호널두의 등을 손으로 민 것은 자신이었다.
마치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댄 느낌이었다.
제발 걸리지 말아라.
제발.
그러나 주심이 VAR을 선언했을 때, 심장은 철렁 내려 앉았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파울이라는 것을.
그리고 팀은 피케이를 내줬고, 결국 경기는 3대3 동점이 되고 말았다.
딱 15분만, 딱 한 점만 지켜냈다면 월드컵 결승에 오를 수 있었는데.
만약, 똑같은 상황이 그저 평범한 훈련 상황에서 였다면 과연 자신은 그 순간 공격수의 등을 손으로 밀었을까.
아니었다.
당연히 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방금은 정신이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손이 자기 것이 아닌 기분이었다.
너무도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해버린 것이었다.
“자, 이제 남은 10분이 더 중요해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연장전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 된 것 같네요.”
호널두의 동점 골로, 경기의 기세는 완전히 포르투갈 쪽으로 향했다.
5분만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이젠 오히려 한국이 무승부로 90분을 마치는 것에 불만이 없어 보일 정도고, 포르투갈이 90분 내에 경기를 끝내고 싶어하는 모습.
포르투갈은 계속해서 몰아 쳤다.
지금까지 한국을 상대로 어느 팀도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포르투갈은 한국을 강하게 밀어 붙였고 그 공세에 한국은 흔들렸다.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된 듯 보였다.
지금까지 너무도 순탄했다는 것이.
불안할 정도로 순탄하게 4강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마치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결말처럼.
한 번도 위기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한국은 처음 몰려 보는 핀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까지 단단했던 수비도 빈 틈을 보이고 있었고,
뻐어어어어어엉-!
“지금도 실점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건 운이 따랐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호널두의 네 번째 득점은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그래도 하늘이 마지막 기회를 한국에게 주려는 것일까.
그나마 조금씩 운이 따르는 장면들이 연출되며,
후반 40분, 45분까지 실점을 모면하는데는 성공하는 한국.
하지만,
이렇게 실점 없이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면 그것대로 다행이긴 하다만.
이 기세로 연장전을 치룬다면 그다지 승산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후반 막판 15분간은 완전히 포르투갈의 경기였고, 그 흐름은 연장전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였으니.
난세였다.
“오른쪽에서, 곤살로 귀데스. 아! 다시 돌파를 허용합니다!”
“우리 선수들, 발이 너무 무거워져 있어요!”
3분의 추가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과 동시에 우측을 허물고 들어가는 귀데스.
또 다시 찾아온 크로스 기회에 한국의 중앙 수비수들이 잔뜩 긴장하고 골문 앞으로 몰려 들었다.
헤더 한 방이면, 패배가 아니라 탈락이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점프를 하기 위해 무릎에 힘을 잔뜩 주는 순간.
호널두는 그 사이에 없었다.
점프할 생각도 없었고, 애초에 크로스는 문전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파아아아앙-!
촤아아아아-
컷 백.
땅볼 크로스였다.
박스 뒷 편을 향하는.
그리고, 호널두는 귀신처럼 그 쪽으로 빠져 나오고 있었다.
정말 5초 후의 상황을 볼 수 있기라도 한 것일까.
박스 안에서, 그 공을 향해 홀로 빠져 나오는 것은 호널두 단 한 명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르투갈 유니폼을 입은 선수 중엔 호널두 뿐이었다.
파아아아앙-!
“끊어 냅니다!”
“백도훈!”
절규에 가까운 해설자의 탄성.
한 명이 더 있었다.
그 공을 향해 빠져 나온 것은.
도훈이었다.
그 필드 위에서, 크로스를 올린 귀데스까지 포함한다면 그 코스를 예측한 건 딱 셋뿐이었다.
그 중 한 명이 한국 선수였다는 건, 한국 팀에겐 천운이었다.
그리고, 그게 도훈이었다는 건 우주의 기운이었고.
파아아앙-
타타타타타탓-!
“빠져 나옵니다!”
“그대로 올라 갑니다!”
한국의 상황은 난세였다.
완전한 난세였다.
영웅이 나서기 딱 좋은.
그 영웅이, 다시 한 번 공을 몰고 그라운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2분 남짓.
여기서 득점, 혹은 실점은 모든 걸 가지느냐 모든 걸 잃느냐의 문제.
포르투갈 선수들도 당연히 필사적이었다.
“저건 퇴장을..!”
“아, 계속 가요! 계속 가요!”
팬이 경기장으로 난입한 줄 알았다.
도훈에게 달려들어 끌어 안으려고 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팬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카르발류였고, 하지만 도훈은 그마저도 뿌리친 채 계속해서 골문을 향해 달려갔다.
거의 좀비들이었다.
도훈에게 몰려드는 포르투갈 좀비들.
그들의 처절함은, 결국 도훈이 하필 박스 안까지 진입한 시점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지금은!”
“진로 방해죠! 명백한 진로 방해죠!”
도훈은 좀비들에게 막혀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좀비들은 공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살아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듯 도훈에게 달려 들었고,
이번엔 주심도 고민 따위 하지 않은 채 단호했다.
“삐이이이이이이익-!”
다시 한 번 휘슬이 울렸고, 또 다시 영웅의 차례가 왔다.
“숨 막히는 순간입니다..”
“얼마나 떨릴까요. 얼마나 긴장될까요. 제 손에 땀이 지금.. 하지만 백도훈이기에 믿어 봅시다.”
역시나 마찬가지.
이 폭탄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도훈뿐이었고, 페널티 킥을 처리하기 위해 선 것은 도훈이었다.
파트리우스 키퍼와, 골대.
그 뒤로 가득 찬 관중들.
그리고 그 너머, 보이진 않지만 수천 만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질 정도의 순간.
보통 사람이라면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순간임이 분명했다.
“영웅은 이런 위기에 더 강해집니다!”
믿음 가득한 해설자의 목소리.
그러나,
도훈의 생각은 달랐다.
영웅이란, 위기에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영웅이란, 이런 위기에서도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게 영웅이다.
지금처럼 국가의 운명이 달린 순간을,
그저 아무도 없는 동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과 다름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그 자세.
“삐이이이이이이익-!”
휘슬이 울리고,
‘공을 찰 뿐이다.’
도훈은 텅 빈 훈련장에서 공을 찰 때처럼 너무도 경쾌히 공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영웅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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