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44화 (144/173)
  • < 두 날개 (2) >

    처음으로 실점,

    처음으로 침체 되는 기분을 느꼈던 한국 응원단과 국민들, 그리고 해설자들까지.

    그렇기 때문에 달려가는 도훈에게 더욱 열망을 느낀 것일까.

    “달려 갑니다!”

    “역습입니다!”

    “가라아아앗-!”

    “뛰어라-!”

    해설자들과 관중들이 동시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듯 도훈과 선수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파아앙-!

    도훈의 첫 패스를 전방에서 이어받는 손홍민.

    손홍민은 꽤 많은 포르투갈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딱히 어려운 역할이 요구되지는 않았다.

    파아아앙-!

    그저 도훈이 달리고 있는 그 경로에 적당히 패스를 밀어주는 것으로 충분 했으니까.

    촤아아아-

    파아아앙-!

    그 연결은 정확했고,

    도훈은 속도를 그대로 살린 채 공을 차놓고 달릴 수 있었다.

    다른 경로는 볼 필요도 없었다.

    중앙, 박스를 향해 달리는 도훈.

    사실, 손홍민의 주변에 포르투갈 선수들이 꽤나 몰려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역시나 백도훈에게 리턴 패스가 이어졌을 때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

    그렇기에 손홍민의 패스를 방해할 수도 없었지만, 포르투갈 수비수들은 곧바로 도훈의 전진 경로를 차단하는 위치로 움직일 수 있었기도.

    “나머지 뒤로 달려!”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앞으로 나서는 페페.

    백전노장, 페페.

    호널두보다도 두 살이 더 많은 페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포르투갈의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는 선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FC 포르투에서도, 그리고 포르투갈에서도.

    호널두 보다도 팀에 큰 기여를 하는 선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인 게 이 남자.

    그런 페페가 도훈을 먼저 맞이하기 위해 달려갔고, 나머지 선수들은 뒤로 물러나며 봉쇄선을 덧댔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

    자신에게 붙어오는 페페를 보며 생각하는 도훈.

    경험이란 건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도훈은 잘 알고 있었다.

    키엘로니같은 베테랑들을 상대하며 느껴본 바도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력이 경험으로 완성된 것이었으니까.

    바꿔 말하면,

    페페조차도 도훈 앞에선 애송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체 능력이 전성기보다 떨어졌을 뿐인.

    쉬이이익-

    파아아앙-!

    쿠당탕-!

    “페페가!”

    “페페를!”

    페페가 가장 먼저 달려 나간 건 실수였다.

    페페는 수비의 리더였고, 팀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런 리더가, 가장 먼저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으니 실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엉덩방아를 찧는 페페!”

    “계속해서 들어가는 백도훈!”

    오른쪽 사이드에서 공을 탈취했던 도훈은 박스 왼쪽을 향해 가듯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었고, 페페도 그 방향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선로 변경.

    도훈은 공을 접으며 박스 중앙을 향해 뒤틀었고 페페는 그 움직임을 따라가려 몸을 뒤집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모습이 포르투갈 선수들에겐 충격일 수밖에.

    안 그래도 백도훈을 상대할 때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데 더욱 몸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게 되는 수비수들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일수도 있었다.

    위축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까.

    쉬이이이익-

    쉬이이이익-!

    박스 안으로 접어 들며, 도훈은 자신을 막아서는 수비수들을 앞에 두고 속도를 조금 줄였다.

    그런 뒤, 지주신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기회는 너무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아직 전반이지만 충분히 승부처라고 생각 될만한.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도훈이 확실하게 라고까지 생각할 정도면, 그건 정말로 확실한 것이었다.

    “제쳐냅니다!”

    “현란합니다!”

    지주신보에 추풍낙엽처럼 허물어지는 포르투갈의 수비수들.

    도훈은 그 좁은 틈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낸 뒤,

    뻐어어어어어엉-!

    오른발 슈팅을 가져갔다.

    슈우우우우웅-

    그 슈팅은 골문 좌측 구석을 절묘하게 찔러 들어갔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오올-!”

    “동점 골입니다! 천금같은 동점 골이 빠른 시간안에 터져 나왔습니다!”

    동점 골이 터지는 순간.

    한국 선수들은 안도했다.

    좋은 예감도 맞아 떨어질 수 있구나 싶어서.

    그러나,

    도훈은 조금 아쉬웠다.

    평소에 자기도 호널두처럼 관중들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는 셀레브레이션을 하나 만들어둘 걸 싶어서.

    하지만,

    다행히도 붉은 악마들은 도훈의 골 자체만으로도 포르투갈 응원단보다 더 큰 함성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성공합니다!”

    “역시 백도훈이에요! 오늘 두 슈퍼스타들의 대결이라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호널두에게 곧바로 되갚아주는 백도훈입니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포르투갈도, 한국도 아닌 다시 카타르로 돌아오고 있었다.

    소문난 잔치에, 메인 디쉬 만큼은 확실했다.

    호널두와 도훈의 1골씩으로 다시 경기는 원점.

    두 영웅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끝이날 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아직 그 두 골은 시작에 불과할 것 같다는 점이었다.

    오늘 이 카타르는 이베리아 반도가 되든지, 한반도가 되든지 해야 끝날 것이었으니까.

    “경기는 원점에서 다시 흘러 갑니다.”

    “두 팀 모두 기조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자신감이죠.”

    원점으로 돌아간 스코어처럼, 경기도 원점으로.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 두 팀은 계속해서 경기를 하던대로 이어 나갔다.

    포르투갈은 계속해서 어떻게든 크로스를 올리며 호널두의 머리를 노렸고, 한국은 그걸 막아내며 언제든 빈 틈이 보이면 도훈과 손홍민이 그 후방을 노리는 식으로 맞대응했다.

    그리고, 전반이 끝나기 전까지.

    “네...”

    “네!!!”

    호널두와 도훈은 각각 한 골씩을 더 터뜨렸다.

    그 두 골 역시 첫 번째 골과 비슷했다.

    호널두의 골은 코너킥 상황에서의 헤더였고, 도훈의 골 역시도 역습 상황에서 손홍민의 컷 백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골이었다.

    그렇게 2대2, 팽팽한 상황에서 전반전이 마무리 되었다.

    과연 전반의 총평은,

    자존심 강한 두 영웅의 대결이었다고 보면 무방했다.

    “자, 역시나 결승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보시는 게 현재 광화문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리 응원의 모습이고요. 시청 앞 광장에서도 무려 1만여 명 가까이 운집해 대한민국의 결승행을 응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오늘 경기 승리를 염원하는 지 알 수 있군요.”

    결승으로 가는 마지막 문턱.

    이 문턱만 넘으면 사상 최초 월드컵 결승의 무대를 밟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도 전국민이 열띤 응원을 카타르로 보내고 있었다.

    포르투갈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포르투갈이 낳은 최고의 선수, 포르투갈의 영웅 호널두의 마지막 월드컵.

    그는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라는 날개를 달고 선수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선 선수였다.

    하지만 세계 최고에서 역대 최고의 반열에 들기 위해선 그 한 개의 날개만으론 부족했다.

    나머지 한 개의 날개는 포르투갈이라는 날개였다.

    역대 최고라는 자리는 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날개는 한 쌍을 이루지 못한다면 날아갈 수 없다.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도훈은 이미 충분히 날아올랐지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선 반드시 양 쪽의 날개가 필요했다.

    도훈이 원하는 건 적당한 위치가 아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꼭대기였으니까.

    그렇기에 도훈에게도 대한민국이라는 날개가 필요했다.

    조국에게 월드컵을 안기고, 범접할 수 없는 레전드가 된 팰레나 마라두나처럼.

    아니, 그 이상이 되기 위해.

    “과연, 누가 결승에 오르게 될 지. 정규시간은 이제 45분이 남아 있습니다.”

    누가 양 날개를 타고 날아 오르는가.

    경기는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먼저 교체 카드를 집어 듭니다.”

    “정승혁 선수가 준비하고요. 권창운 선수를 빼주네요. 수비적인 보강을 꾀하는 베투 감독입니다.”

    후반 8분.

    한국은 먼저 변화를 주었다.

    변화라기 보단, 보강.

    미드필더 권창운을 빼고, 중앙 수비수인 정승혁을 투입하며 사실상 파이브 백으로 전환하는 한국.

    호널두를 집중 견제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였다.

    과거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베투 감독은 포르투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호널두만 막겠다는 의지를 내보여도, 사실상 포르투갈이 이에 대해 대응하는 변화를 주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도훈에게 의지하는 한국만큼이나 포르투갈 역시도 여전히 호널두에게 의지하는 팀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베투 감독의 예상은 맞았다.

    한국이 파이브 백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포르투갈은 여전히 크로스와 헤더에 목숨을 걸고 있었으니.

    또한 정승혁 투입의 효과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었다.

    “정승혁의 헤더! 걷어 냅니다! 투입되자마자 헤더를 따내는 정승혁!”

    “좋습니다. 지금은 그 전에 김민제 선수가 호널두가 뜨지 못하도록 1차적으로 몸싸움을 잘 해줬어요. 확실히 숫자로 밀어붙이면 아무리 호널두라고 해도 힘이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두 명이 한 명을 상대하는데, 동수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면.

    그렇다면 한 명이 더 가세하면 될 문제였다.

    호널두는 초능력자가 아니었다.

    정승혁의 투입으로 조금씩 호널두의 존재감을 지우기 시작하는 한국.

    그렇다면,

    포르투갈로써도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포르투갈은 칼 한 자루의 검사.

    여기서 공격수 한 명을 더 보강한다고 해서 호널두와 그가 중심이 되는 공격에 보탬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은 대신 이것이 단판 토너먼트임을 이용하기로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포르투갈도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주앙 뮤티뉴 선수를 빼주고, 다닐루 페레이로를 투입합니다. 이 쪽도 수비적인 보강인데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인 뮤티뉴를 빼고, 수비형 미드필더인 페레이로를 투입하는 포르투갈.

    역시나 수비적인 덧댐을 하는 것.

    더 이상의 공격적 보탬이 어렵다면, 이 쪽에서도 수비적인 보탬을 하면서 경기를 더 길게 보겠다는 의지였다.

    이렇게 되면 결국 경기가 더더욱 호널두와 도훈, 두 명의 능력 대결로 압축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경기가 한 쪽으로 기울려면 더욱 더 집중 견제를 받게 된 두 명 중 누가 먼저 그 견제를 뚫을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된 것이니까.

    이런 양상을, 도훈은 매우 환영했다.

    도훈은 충분히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호널두보다, 자신이 낫다는 것에 대해서.

    그건 이미 새삼스럽게 더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지만,

    오늘 이 자리가 평범한 클럽 경기가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달린 월드컵, 그것도 결승행이 달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경기였기에.

    이것은 개개인의 실력이 누가 낫냐는 증명이 아니라, 누가 영웅이 될 자질이 있냐의 증명이라고 볼 수 있었다.

    도훈은 그것에 대해서도 자신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증명의 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반 21분이었다.

    “코너킥이 가장 큰 위기입니다.”

    호널두를 견제하는 동시에 최대한 크로스 자체를 봉쇄하려 애를 썼던 한국.

    그런 한국의 대처를 파고들기 위해 포르투갈은 어떻게든 최대한 많이 코너킥이나 프리킥을 얻어내려는 모습이었다.

    코너킥이나 프리킥은 크로스를 올리는 걸 방해할 수 없으니까.

    “베르나르 실바가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뻐어어어어엉-!

    날카롭게 문전으로 향하는 코너킥.

    그 공을 향해 동시에 뛰어 오르는 선수들.

    그 가운데, 역시나 가장 높은 곳까지 튀어 오르는 머리의 주인공은,

    호널두.

    파아아아아앙-!

    그러나, 그런 호날두의 눈앞에 날아든 것은 손이었다.

    “조형우! 잘 잡아냅니다!”

    아무리 머리가 높아서 뻗어내는 손보다 높을 수는 없는 법.

    가볍게 날아올라 공을 캐치해낸 조형우 키퍼는, 곧바로 전방의 도훈을 바라봤다.

    부우우우웅-!

    “그렇죠, 빠르게 가야죠!”

    지체 없이 공을 투척하는 조형우 키퍼.

    그 공을,

    파아앙-!

    도훈이 정확히 가슴으로 받아낸 뒤,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코너킥 상황이라지만, 포르투갈의 모든 선수들이 전방으로 올라가 있는 상태인 것은 아니었다.

    코너킥이지만 일반적인 상황인 것처럼 호널두에게 최대한 맡겨놓고, 나머지는 역습을 대비해 뒤에 남아 있는 식.

    때문에 역습이라지만 딱히 역습의 느낌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도훈의 속도가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이것은 역습이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타타타타탓-!

    첫 골때 보다 오히려 포르투갈 선수들의 숫자가 많았다.

    호널두가 세 명의 센터백 사이에서 고전했듯, 포르투갈도 수비적 보강을 더했으니 당연한 일.

    그러나,

    도훈의 전진은 그것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제쳐내고 올라 갑니다!”

    “두 명, 세 명째! 거침이 없습니다!”

    애초에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이 추가된 걸로 도훈이 어려움을 겪었다면, 백도훈이 백도훈이겠는가.

    어이 없게도 도훈은 윌리안 카르발류와 페레이로를 동시에 제쳐내며 마치 한 명을 제쳐내는 것 같은 모습으로 순식간에 박스까지 도달했고,

    “막아서는 페페와 디오스!”

    박스 정면을 막아서고 있는 페페와 디오스를 피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박스 왼쪽 부근에서, 골키퍼의 위치를 확인한 뒤 왼발을 크게 당겼다.

    파아아앙-!

    그러나 슈팅은 가벼웠다.

    ‘급했겠지.’

    파트리우스 키퍼는 쓸 데 없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페페와 디오스가 제쳐지는 순간 이미 급한 마음이었던 게 어찌보면 당연.

    그걸 캐치한 도훈이었고,

    슈팅은 그런 파트리우스 키퍼의 머리 위를 넘기기 위한 로빙 슛이었다.

    슈우우우우우웅-

    그 로빙 슛은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애매한 세기와,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애매한 높이로 떠가며 파트리우스의 머리를 넘겼고,

    투우우웅-

    출렁-!

    골대 안으로 가볍게 떨어지며 골망을 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앗-!”

    “백도훈입니다-!”

    경기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급격히 멀어지는 순간.

    갑자기 분위기 한반도가 되는 순간이었다.

    < 두 날개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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