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날개 (1) >
“다들 어때?”
“최고에요.”
2022년 12월 14일.
카타르, 도하.
알 와크라(Al Wakrah) 스타디움.
전혀 다른 두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전혀 다른 나라의 경기장.
포르투갈과 대한민국은 대륙의 정반대에 위치한 나라들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비슷한 점도 많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듯이.
유럽 극서 쪽에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
아시아 극동 쪽에 위치한 한반도의 대한민국.
그 두 나라가 중간 지점인 카타르에서,
축구로 맞붙게 되었다.
“역시 주목해야할 점은 두 슈퍼 스타들의 대결입니다.”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 될 크리스티아누 호널두, 그리고 이번이 첫 월드컵인 백도훈. 둘 중 누가 조국을 결승전으로 이끌게 될 지요.”
“오늘, 어느 국가가 결승전으로 올라가든 사상 최초 월드컵 결승에 오르게 될 텐데요. 자, 누가 그 영웅이 될까요. 먼저 포르투갈의 국가 연주가 있겠습니다.”
-포르투갈(Portugal)
-피파 랭킹 7위
-조별 예선 1위, 16강 vs칠레 승, 8강 vs카타르 승
-월드컵 최고 성적 3위(1966년)
-역대 상대전적 1승 0무 0패(2002년)
-A매치 최다 출전자 : 크리스티아누 호널두(171경기)
-A매치 최다 득점자 : 크리스티아누 호널두(101골)
선발 명단 (4-3-3)
GK 후이 파트리우스
CB 페페
CB 루벤 디오스
LB 케빈 루드리게스
RB 주앙 칸셀누
MF 헤나토 산체스
MF 윌리안 카르발류
MF 주앙 뮤티뉴
FW 베르나르 실바
FW 곤살로 귀데스
FW 크리스티아누 호널두
“4강까지 함께 했던 베스트 일레븐이 오늘도 그대로 출전합니다.”
“일관성 있는 팀이에요.”
조별예선부터 확고했던 베스트 일레븐이 그대로 가동되는 포르투갈.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도훈과 손홍민을 투톱으로 내세우는 4-4-2 전형 그대로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삐이이이이이익-!”
결승전, 남은 한 자리를 놓고 펼치는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4강전이 시작 되었다.
브라질과 스페인의 경기를 두고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 미리보기라고 했던 이유는, 당연히 각각 두 팀간의 경기 스타일이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브라질은 한국과 비슷했다.
예전이라면 전혀 접점이 없었을 두 팀인 듯 싶지만, 수비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빠른 공격을 추구한다는 모토는 분명 현재 두 팀의 공통점이었고, 실제로 그랬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비슷했다.
중원에서의 짧은 패스로 주도권을 가진 채 경기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
또한 공격 마무리에 있어서 스트라이커에게 의존하는 점이 크다는 것도 비슷했다.
스페인은 알바로 모레타가 그 의존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게 스페인의 패배 요인이기도 했고.
“베르나르 실바, 귀데스에게.”
“크로스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에는 모레타가 아닌, 호널두가 있었다.
뻐어어어어엉-!
“조심해야 합니다!”
우측면에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크로스를 올리는 귀데스.
박스 안에서는 호널두가 기다리고 있었고,
파아아아앙-!
슈우우웅-
“어어, 지금은 굉장히 위험 했습니다!”
호널두는 펄쩍 뛰어 올라 그 크로스에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비록 헤더는 골대를 빗겨 나가긴 했으나, 전반 3분만에 첫 슈팅을 허용하는 한국.
“집중해, 집중!”
선수들에게 일갈하는 김형권.
오늘도 마찬가지로 흔히 말하는 두 줄 수비를 세우고 시작하는 한국이었다.
그 두터운 수비 장막이 지금껏 한 번도 뚫린 적 없는 한국이었고.
하지만 이런 두 줄 수비를 부수는 것이 주특기인 호널두이기도 했다.
그 원동력은 역시나 타점 높은 헤더.
그나마 그의 점프력이 전성기 같지는 않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위협적인 호널두였다.
“측면에서의 크로스, 그리고 헤더. 이 공식은 아마 포르투갈이 경기 내내 시도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상성 상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팀이 포르투갈이라고 볼 수 있어요.”
“호널두가 있기도 하고 말이죠.”
포르투갈의 경기가 쉬울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경기가 시작되고 나니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오늘 경기가 지금까지 중엔 가장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다는 것을.
“중원에서, 위강인. 선택이 빨라야 합니다!”
“베르나르 실바, 공을 강탈해 갑니다! 압박이 거셉니다!”
진행되는 경기.
포르투갈의 압박은 거셌다.
양 쪽 윙 포워드로 나온 베르나르 실바와 곤살로 귀데스가 적극적으로 중원으로 내려오며 머릿수를 더했고, 양 쪽 풀백들 조차도 높게 올라오며 압박에 가담했다.
그러다 보니 머릿수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한국의 허리였고, 포르투갈은 그런 허리의 힘을 바탕으로 패스 횟수와 점유율을 높여가기 시작.
그런 뒤의 공격 패턴은 역시나 단순했다.
박스 안의 호널두를 겨냥한 크로스.
그 크로스의 위치나 패턴이 다양하다는 게 한국으로써는 곤욕이었다.
“칸셀누, 올립니다!”
유벤투스 동료인 라이트백 칸셀누의 얼리 크로스는 날카로웠고,
“이번엔 왼쪽, 실바의 크로스!”
베르나르 실바의 크로스 역시 날카롭게 문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곤욕인 것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호널두의 박스 안 움직임이었다.
‘그만 좀 움직여라.’
호널두를 집중 마크하고 있는 김민제와 김형권.
분명히 둘이 하나를 막고 있는데도, 김민제와 김형권은 똑같이 두 명을 상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잠깐 시야를 딴 곳에 두면 사라져 있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이미 반대편에 가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시간 문제일지도..’
크로스는 계속해서 올라오고, 공은 계속해서 호널두의 머리에 맞고.
솔직한 얘기로 시간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이 수비수들의 머릿 속에 스치는 순간.
실점 말이었다.
오늘도 이전 경기들처럼 클린 시트를 유지하려면, 정말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상대의 전술이었다.
때문에,
선수들은 더욱 도훈에게 의지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겠지만, 오늘은 무조건 득점이 필요해 보였다.
“베르나르 실바.”
그리고,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 것일까.
이러다가 조만간 실점할 것 같다는 생각이 한국 수비진에 감돌던 그 순간,
뻐어어어어엉-!
다시 한 번 왼쪽에서 베르나르 실바의 크로스가 올라왔고,
김민제와 김형권은 동시에 호널두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호널두는 마치 자석처럼 크로스를 향해 높게 뛰어 올라,
파아아아아앙-!
이마를 가져다 대었다.
슈우우우웅-
그 헤더를 향해 몸을 날려보는 조형우 키퍼.
그러나, 동물적인 반사 신경을 가진 조형우 키퍼조차도 닿을 수 없는 헤더는,
철썩-!
무진장 강력했다.
“아...”
“실점합니다, 대한민국. 역시 호널두 입니다.”
급격히 차분해지는 한국의 해설.
그리고, 그 조용함 너머로 포르투갈 관중들과 선수들의 함성 소리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포효하며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가는 호널두.
그리고,
“호우우우우우우-!!”
특유의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며,
호널두는 경기장을 포르투갈의 분위기로 완전히 가져가고 있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다.
거의 세상의 이치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항상 그렇다.
김민제와 김형권은 후회했다.
실점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하는 순간, 실점해 버리고 말았으니.
그에 반해,
좋은 예감은 왠지 모르게 안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절박하게 바라면 바랄수록 더더욱.
그러나,
“괜찮아요. 하던대로 계속 하면 돼요.”
이상하게 이번에는 좋은 예감도 맞아 들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말이었다.
도훈은 수비수들에게 괜찮다며 격려했다.
어떤 수비수들도 호널두를 완벽하게 막아내기란 힘들다.
특히나 지금같은 헤더 상황에서는.
그러니 자신감을 잃을 필요도 없었고,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걸 도훈은 알고 있었다.
때문에 도훈은 동료들에게 괜찮다며 격려를 보냈고, 그런 도훈을 보며 선수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맞았듯 좋은 예감도 들어맞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훈도, 호널두처럼 분명히 득점을 해줄 것이라는.
“일단 분위기를 되찾아 오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 선수들.”
대회 첫 실점.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0대1의 상황이었기에, 어린 선수들은 동요할 수 있었다.
골은 케첩과도 같아서, 아무리 짜도 나오지 않다가 어느 순간 쏟아진다는 말이 있다.
호널두가 한 말이었다.
실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무실점을 이어왔다고 해도, 한 번 무너지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건 마찬가지.
단 판의 승부를 결정짓는 건 역시나 분위기였다.
도훈은 무조건 빠른 시간 내에 그 분위기를 가져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박스 안까지 가면 일단 힘들어.’
김민제와 김형권이 호널두를 상대하는 건 확실히 벅찬 모습이었다.
유럽 정상의 수비수들도 벅차하니 당연한 일.
일단은 크로스 자체가 박스 안으로 투입되는 것을 봉쇄하는 게 첫 번째였다.
도훈이라면 충분히 1대1에서 그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공을 탈취해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포르투갈이 의식적으로 도훈을 피하고 있다는 것.
“반대로 전환합니다.”
포르투갈은 계속해서 좌우 전환을 빠르게 가져갔다.
그 방향의 선택은, 간단했다.
백도훈의 반대쪽.
도훈의 영향력은 공격 쪽에서만 끼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비 시에도 꽤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도훈이었고, 포르투갈은 그걸 알고 있었다.
호널두나 베르나르 실바가 도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도훈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카르발류, 오른쪽으로.”
도훈이 조금이라도 왼쪽에 치우쳐 있으면, 곧바로 반대편으로 공을 돌리는 포르투갈 중원.
공보다 빠를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일일이 따라갈 수도 없는 일.
대신,
“다 붙어!”
도훈은 실점 후 선수들을 불러 놓고 주문했던 것이 있었다.
“일단 방향을 정하면, 모두 그 쪽으로 몰아 세워요. 무조건 크로스를 차단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반대편으로 전환하도록.”
그 주문대로 움직이는 선수들.
포르투갈이 공을 칸셀누에게 내주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듯 하자, 모든 중원의 선수들이 그 쪽으로 향했다.
‘뭐야.’
빽빽하게 둘러 서서 자신을 터치 라인 쪽으로 밀어 붙이는 상대를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칸셀누.
그런 좁은 공간에서 억지로 크로스를 올리긴 힘들었다.
때문에,
파아아앙-
다시 뒤로 내주는 칸셀누.
이 쪽에 이 만큼의 인원이 동원 되었다면, 필히 반대편엔 크게 공간이 났을 터.
멍청한 일이었다.
반대로 전환한다면, 더 양질의 크로스가 호널두에게 공급될 수 있었다.
“헤나토 산체스, 반대편으로 길게!”
칸셀누에게 공을 받자 마자 빠르게 반대편으로 때리는 헤나토 산체스.
기계적일만큼 빠른 그 전환은, 포르투갈이 얼마나 확고한 하나의 전술로 여기까지 왔는 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모습.
슈우우우웅-
그런데, 그 공이 높게 떠 그라운드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순간.
중원에서 한 명의 한국 선수가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도훈이었다.
“어어, 쫓아 갑니다!”
“끊어 낼 수 있을까요!?”
사람이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게 절대적인 건 아닌 듯 했다.
아닐 때도 있다는 걸, 도훈이 보여주기 시작했으니까.
타타타타타탓-!
긴 전환 패스를 땅볼로 처리할 수는 없다.
중간에서 걸리기 마련이니까.
때문에 헤나토 산체스는 로빙 패스로 반대편에 전달한 것이고.
도훈은 그걸 노리고 있었다.
짧게 이어가는 패스를 따라갈 수는 없어도, 롱 패스가 떠가는 동안에 그 공을 따라갈 자신은 있었으니까.
꿀꺽-
그게 그렇게 큰 상황은 아니었다.
하프라인을 넘어선 곳이었으니 공을 커트 당한다고 바로 실점 상황인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헤나토 산체스의 패스가 향한, 패스를 받아야 하는 베르나르 실바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하늘에서 떠오는 패스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고 있는 도훈을 마주하고서.
가늠을 하기 힘들었다.
웬만해선 중간에 끊어내기 힘들어 보이는 공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백도훈의 속도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베르나르 실바는 어쩔 수 없이 공을 포기했다.
타아아앗-
파아아앙-!
“끊어 냅니다!”
미리 돌아가는 베르나르 실바.
그리고 그 앞에서, 도훈은 높게 뛰어 올라 머리로 공을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점프 높이가, 더 높으면 높았지 호널두에게도 뒤쳐지지 않을 것 같을 정도.
그렇게 자신의 앞에 공을 떨궈 놓은 도훈은,
파아아앙-!
곧바로 전방의 손홍민에게 전달한 뒤,
타타타타타타탓-!
베르나르 실바를 겁 먹게 한 그 속도로 이번엔 전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한국의 관중석에서 함성이 일기 시작했고,
“역습입니다!”
“올라가야죠!”
한국 캐스터들의 목에 핏대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 두 날개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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