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42화 (142/173)
  • < 정당방위야 (2) >

    한 명이 부족하고, 이미 스코어는 뒤지고 있고.

    경기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 갔고, 뭐 그 따위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물론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 8강전을 터뜨린 가장 첫 번째 요소는,

    도훈을 열받게 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대가는, 과하다 싶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정당방위였으니까.

    “후반 3분! 백도훈의 추가 골이 터집니다!”

    “이걸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환호하는 붉은 악마들! 경기장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혼자서 질주해 골을 집어넣고,

    붉은 악마들이 환호하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도훈.

    도훈은 더 크게 환호 하라는 듯 귀에 손을 대고 달렸다.

    그런 도훈에 더 크게 함성을 내지르는 붉은 악마들.

    그 소리에, 잉글랜드 선수들은 무릎을 짚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이 8강전이, 완전히 한 쪽으로 기우는 느낌을.

    그 느낌은 정확한 것이었다.

    도훈의 그 골을 기점으로, 안 그래도 잉글랜드 입장에선 답답했던 게임이 확 닫혀 버리는 느낌이었다.

    수가 부족한 잉글랜드는 뭘 해도 벅차 보이는 느낌이었고, 한국은 확연히 여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경기의 주도권 자체도 한국에게 넘어가 후반 30분을 기점으로 점유율은 6대4에 가깝게 기울었고, 후반전 슈팅 숫자도 3대6으로 한국이 두 배를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도훈은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결과적으로 바클러의 테러는 절대로 해서는 안됐던 시도가 되고 말았다.

    전반 중반까지만 해도 도훈에게 유독 거칠게 달려들던 잉글랜드 선수들이, 후반에 들어서는 누구도 섣불리 몸싸움을 걸며 지저분하게 잡고 늘어질 수가 없었으니까.

    만에 하나 여기서 또 도훈에게 덤벼들었다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그건 정말 겉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거칠게 까지 하지 못하니 누가 도훈을 억제할 수 있었겠는가.

    도훈은 너무도 편안히 경기장 중앙에서 뛰놀며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그 지배하에, 한국은 태평성대를 이루었고 잉글랜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힘 없이 수탈 당하는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후반 45분은 완전히 대한민국의 경기였다.

    그렇게,

    “삐이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이익-!”

    경기가 그대로 종료 되었다.

    최종 스코어는 3대0.

    후반 21분 도훈의 어시스트를 받은 손홍민의 쐐기골까지 작렬하며 경기는 일찌감치 종지부를 찍었고,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합니다!”

    “20년만에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대한민국! 원정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대한민국입니다! 아, 우리 선수들!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순간입니다!”

    그 때문인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이미 경기장은 극적인 환호보다는 감동의 순간을 즐기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일단, 바로 차에 타.”

    “알겠습니다.”

    4강의 감격을 누리는 선수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도훈은 동료들과 오래 기쁨을 나눌 수 없었다.

    전반에 있었던 바클러와의 충돌 때문에, 도훈이 아무리 멀쩡하다고 해도 일단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들의 권고가 있었기 때문.

    일단 8강은 승리했고 이제 바로 4강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기에, 승리의 기쁨보다는 도훈의 상태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한국 팀이었다.

    “이상은 없네요. 뇌진탕이라든가, 이런 소견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곧바로 메디컬 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도훈의 몸에 이상은 없었다.

    뒤로 떨어지며 받았을 허리의 충격이나, 가벼운 뇌진탕 증세조차도 전혀.

    호신강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햐아..”

    “타고난 신체구나.”

    그 모습을 보며, 도훈이 팀에 합류했을 때부터 도훈을 연구대상으로 여겼던 의료진은 탄복할 수밖에.

    이런 걸 두고 아이언맨이라고 하는 건가 싶었다.

    참,

    여러모로 믿을 수 없는 선수였다.

    “4강, 고맙다.”

    “고맙긴요. 제가 감사합니다.”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도훈을 끌어 안으며 축하와 감사를 표하는 의료진들.

    4강.

    대한민국이 잉글랜드를 꺾고 월드컵 4강에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ㆍㆍㆍ

    브라질 vs 스페인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파이널 포.

    마침내 살아남은 마지막 네 나라.

    2022년의 마지막 달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네 나라 안에 대한민국이 낀 것은 상당히 생소한 느낌.

    그러나 다른 세 팀보다 더욱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것도 대한민국이었다.

    조별 예선부터 8강전까지.

    5경기 19득점 0실점.

    현재 대한민국보다 압도적인 기록으로 4강에 올라온 팀은 없었다.

    아니, 전 대회를 따져 보더라도 이렇게 압도적으로 4강에 진출한 팀은 찾기 어려울 정도.

    역시나 그 중심에는 5경기 12골을 기록한 도훈이 있었고.

    8강이 끝나고, 이미 이 기록으로 역대 월드컵 단일 대회 최다 골 2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 도훈이었다. 여기서 한 골만 더 넣는다면 쥐스트 풍텐의 역대 최다 골 기록과 타이가 되는 것이고, 두 골을 넣는다면 역대 단일대회 최다골의 주인공이 도훈이 되는 것.

    그러나 도훈이 도전하고 있는 그 기록은 이미 60년도 더 된 과거의 기록이었다.

    1970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두 자릿수 이상의 골을 기록한 득점왕은 없었으니, 지금 도훈의 페이스는 사실상 유례 없는 페이스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이제 첫 월드컵이고, 아직 4강전을 치루기 전임에도 사람들은 도훈에 대해 월드컵 사상 최고의 선수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경기를 본다면 그럴만도 했다. 도훈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촬영 기법이 발달하기 이전이든, 최첨단화가 이루어진 지금까지든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에 가까웠으니.

    이런 도훈에게 자신의 위상이 위협받는다고 느낀 것일까.

    이미 한 차례의 저주를 했었던 팰레는,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향하고 있는 한국과 도훈에게 그 정도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대단하다. 나를 뛰어넘는 월드컵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아니면 정말 그저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던 것인지 그런 말을 했다.

    두 번째 저주.

    축구 황제 팰레가 17살의 소년에게 자신을 뛰어넘을 스타가 될 것이라는 말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극찬이었지만, 어떤 것보다도 큰 저주가 될 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한 개도 이겨내기 힘든 걸, 두 개까지 겹쳐 쓰게 된 도훈.

    그런 도훈이 과연 저주를 뚫어낼 수 있을 지.

    이제 월드컵은 4강, 어느덧 마지막 남은 네 팀이 서로의 순위를 정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ㆍㆍㆍ

    4강.

    브라질과 스페인의 경기는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었다.

    현재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브라질이었다.

    재밌게도 그 이유가 지금까지 월드컵에서 보인 경기력도 물론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연초의 평가전에서 브라질이 한국과 3대3으로 비겼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가장 강력한 팀으로 평가받는 한국, 그리고 그 한국과 비긴 브라질.

    한국과 대등했다는 이유로 브라질 역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는 것.

    반면 스페인은 어느 정도 대진 운이 따라 4강까지 올라왔다는 평가가 있었다.

    물론 우루과이, 이탈리아를 만난 대진이 운이 좋았다, 라고까지 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브라질이 상대했던 벨기에, 프랑스보다야 수월한 대진이었다는 게 정설이었고, 실제로 스페인이 벨기에나 프랑스를 만났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도 일리가 있는 분석.

    한창 스페인이 세계 최고로 군림하던 시절과 경기 스타일은 크게 바뀐 것이 없지만, 그 때보다 한 단계 아래의 전력이라는 지금의 스페인과, 과거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변모해 현대 축구에 최적화 되었다는 평을 받는 브라질.

    많은 이들의 예상이 브라질 쪽으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예상들 속에서 시작된 4강 첫 번째 경기, 브라질과 스페인의 대결.

    두 팀 모두 8강까지 주전으로 나섰던 선수들, 그리고 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온 상태에서 경기는 시작 되었다.

    경기를 주도하는 쪽은 스페인이었고, 브라질은 수비를 단단히 구축하는 동시에 개인 기량이 좋은 자원들을 통한 역습을 노리는 양상.

    그런 경기 양상은, 마치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미리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날 브라질의 백도훈은 레이마르였다.

    역시, 브라질 최고의 스타 레이마르.

    스타는 괜히 스타가 아니었다.

    가장 어두울 때, 빛나줘야 할 때 빛나는 게 스타니까.

    “레이마르! 레이마르입니다!”

    “레이마르! 환상적인 골입니다!”

    아무리 스타일이 변모했다 해도,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0대0으로 팽팽하던 전반 32분, 레이마르는 유연한 드리블로 오른쪽 측면을 부수고 들어가, 중앙 쪽으로 접으며 왼발 슈팅을 때렸고 그 슈팅이 멋지게 감겨 들어가며 스페인의 골문을 열어 젖혔다.

    그 골은 결정적이었다.

    마치 한국과 잉글랜드의 경기가 도훈의 골을 기점으로 완전히 기울었던 것처럼.

    레이마르의 골이 터진 이후로, 브라질은 완전히 스페인을 탈탈 털어 먹기 시작했다.

    “코티뉴 존이라고 하죠!”

    필리페 코티뉴도 한 골.

    “대단합니다, 비니시오스!”

    비니시오스 주니오르도 한 골.

    거기에,

    “알리손의 슈퍼 세이브! 클린 시트를 지켜 냅니다!”

    브라질은 스페인에게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전방의 선수들이 삼바 축구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와중에도, 브라질의 수비는 현대의 브라질의 모습을 보여주며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고 그 모습은 이제 결승으로 가게 된 브라질의 우승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여주는 모습이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3대0! 브라질이 스페인을 완파하고 결승에 진출합니다!”

    “20년만에 결승에 진출하는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꽤나 오래 걸렸네요. 월드컵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이, 가슴에 한 개의 별을 더 달기 위한 여정을 이어 나갑니다!”

    누가 뭐라 한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스페인을 3대0으로 완벽히 제압하고 결승에 먼저 오르게 되는 브라질.

    현재의 브라질은 완성형이었다.

    그리고 어느 팀이 됐건, 결승에서 그런 브라질을 만나야 할 상대는 꽤나 고생을 할 것으로 보였다.

    “강하네.”

    “그 때보다 더 완성됐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그 경기를, 한국 선수들은 숙소에 다같이 모여 지켜 보았다.

    베투 감독의 지시였다.

    굳이 개인 시간에 모여 그 경기를 지켜보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쉽진 않겠어.”

    “최선을 다해야죠.”

    당연히 선수들에게 무의식적인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브라질과 스페인의 경기를 관람한 선수들은, 모두가 브라질과 맞붙을 때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브라질과 결승에서 어떤 경기를 펼치고, 어떻게 하면 우승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말인 즉, 당장 앞두고 있는 포르투갈 전을 이미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결승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

    포르투갈은 무조건 이기고 들어간다는 마인드가 선수들에게 깔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굉장히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월드컵 4강.

    어쩌면 결승보다도 긴장이 될 지 모르는 경기였다.

    이제 여기서 단 한 번만 더 이기게 되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결승에 진출하는 것.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을 앞뒀을 때가, 언제나 가장 떨리는 법이니까.

    또한 상대팀에는 역사상 토너먼트에서 가장 강했던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널두가 있었다.

    그런 슈퍼 스타와의 맞대결.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그러나, 선수들은 벌써부터 브라질과의 결승전을 상상하며 오히려 눈앞에 닥친 긴장감을 잊은 듯 했다.

    좋은 신호였다.

    포르투갈과의 4강전이 다가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세가 좋은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별 호널두의 최대 강점인 영웅 본능은 위기에서 언제나 빛을 발해왔고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4강전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었고.

    < 정당방위야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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