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41화 (141/173)

< 정당방위야 (1) >

낮은 위치에서 공을 잡은 도훈.

그러나 주변에서 몰려드는 상대의 숫자가 많은 건 위치가 어디가 됐든 변함이 없었다.

집까지 따라올 기세인 필 조스는 기본 옵션이고, 해리 카인이나 델레 알레 등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도훈이 공을 잡자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유인하며 역주행해 첫 골을 만들어냈던 때의 상황과 비슷한 순간.

이번엔 도훈의 선택이 달랐다.

필 조스의 방향, 그러니까 정면을 향해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이며 치고 나가기 시작한 것.

그 순간,

‘젠장, 역시.’

즈몰링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도훈이 제대로 할 타이밍을 지금으로 정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자리 잘 잡아!”

마치 높은 파도를 마주한 배의 선장처럼.

즈몰링은 동료들에게 각별히 정신을 바짝 차릴 것을 외쳤다.

분명히, 저 파도는 한 방에 배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가 분명했다.

파팡-!

순식간이었다.

유령신보.

필 조스는 분명히 도훈이 유령신보를 즐겨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지금도 유령신보를 가장 주의하며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빨랐다.

인간의 눈으로는, 그리고 다리로는 따라갈 수 없을 듯한 번개같은 속도.

그 속도는 알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었고,

도훈은 필 조스를 순식간에 제쳐낸 뒤 넓은 공간을 향해,

파아앙-

타타타타타타탓-!

무섭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빠릅니다!”

“백도훈입니다, 백도훈!”

도훈이 그렇게 중앙을 가로 질러 올라감과 동시에,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탄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186센티미터의 큰 키로 쭉쭉 치고 나가는 그 모습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것일까.

관중들은 그 모습만으로 이미 소름.

하지만, 이 쯤에서 눈치가 빠른 관중들은 다시 한 번 시야를 넓혔다.

도훈이 단독으로 올라가고 있는 순간.

역습을 올라갈 땐 다 같이 올라가며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켜 주는 것이 정석.

그러나 한국의 선수들은 손홍민을 제외하곤 모두가 따라서 공격을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뒤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나.

“혼자서 하라는 건가.”

“그래, 해줘라!”

도훈이 마음 먹고 공격을 할 땐, 별 다른 도움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

그저, 혹시 모를 재역습에 대해 대비할 뿐.

그 역시 이미 많은 훈련들을 통해 약속이 된 모습이었다.

도훈이 혼자 치고 나갈 땐, 이렇게 하자는.

한국은 확실히 잘 준비된 하나의 팀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도훈은 믿음 가득한 동료들을 뒤로 하고, 하프라인을 넘어 계속해서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클러가 막아 섭니다!”

피지컬이 상당한 로스 바클러.

바클러는 이미 도훈이 필 조스를 뚫고 질주를 시작한 순간 몸을 던지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아니, 어쩌면 경기에 출전하면서 부터.

이미 속도가 붙은 도훈을 깔끔하게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런 상황엔 그 방법밖엔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건 뒤따를 책임을 각오한 육탄 방어뿐.

그걸 하기 위해, 자신이 선발 출전을 했다는 걸 바클러는 잘 알고 있었다.

도훈이 지척까지 다가선 순간, 로스 바클러는 앞으로 뛰쳐 나갔다.

슬픈 이야기지만, 다른 선수들 대신 바클러가 이 역할을 맡은 것은 보스를 대신해 자수하는 부하의 역할 같은 의미였다.

‘이걸로 충분히 내 역할을..’

로스 바클러는 각오한 상태였다.

바클러는 레드 카드를 받을 각오를 한 상태로 도훈에게 몸을 던진 것이었다.

동업자 정신이 부족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나라를 위한 일이었고, 동료들을 위한 일이었다.

자신은 그저 한 몸을 바칠 뿐이고.

공은 보지도 않았다.

교통사고를 낼 생각일 뿐이었다.

자신과 백도훈을 바꾼다면 무조건적으로 이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좀 슬프지만.

어쨌든.

‘젠장.’

그런 바클러의 눈빛을 보고 어금니를 깨무는 도훈.

공도 안본 채 작정하고 달려드는 녀석을 피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뜩이나 이미 속도를 붙여 달리고 있던 상황이었으니.

깔끔하게 어깨끼리 부딪힌다고 해도 그 고통은 엄청날 것이고, 심하다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마치 미식 축구 선수처럼 무식하게 달려드는 바클러를 보고 도훈은 매우 짜증이 났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물론 이해는 했다.

뭐라도 해야겠고, 무조건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걸 도훈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건 룰 안에서 해결 해야지, 그 선을 넘으면 같은 동업자지만 사정을 봐줄 수가 없었다. 이미 저 쪽에서 먼저 동업자 정신을 버린 것이니까.

때문에,

도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퍼어어어어억-!

쿠당탕탕-!

“어어, 지금은!”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바클러 선수, 저건 아니죠!”

동시에 넘어지는 도훈과 바클러.

충돌은 컸다.

바클러는 프로레슬링의 기술을 시전하듯 도훈의 가슴팍에 어깨를 들이 받았고, 도훈은 그런 바클러에게 받혀 등부터 떨어지며 쓰러졌다.

“헉...”

“어떡해...!”

충돌 순간 고요해지는 관중석.

한국의 관중들은 교통사고의 순간을 목격하기라도 한 듯 일동 숨을 들이키며 입을 막았다.

충돌이 워낙 거대했고, 도훈이 쓰러지는 모습도 굉장히 위험해보였다.

해설자들도 순간 말문이 멈추는 상황.

한국 벤치도 모두가 벌떡 일어났고, 의료진은 본능적으로 의료 상자를 챙겨 달려 나오는 상황이었다.

잉글랜드 벤치쪽도 마찬가지였다.

들이받은 바클러 조차도 뒷목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고 해서 심판의 칼날이 빗겨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레드 카드, 레드 카드가 주어 집니다!”

“자, 그러나 일단은 백도훈의 상태가 어떤지가 더 궁금한데요. 부상이 아니길 바랍니다..”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클러에게 주어지는 레드 카드.

바클러는 제 발로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지도 못했다.

“두 선수 모두가 들것에 실려 그라운드를 빠져 나갑니다. 백도훈 선수에게 조속한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어수선해지는 경기장의 분위기.

바클러와 도훈이 들것에 실려 나오고, 경기는 재개 되었지만 관중들은 그라운드보다 벤치 쪽에 더 시선이 많이 가있는 듯 했다.

경기를 재개한 한국 선수들도 계속해서 터치 라인쪽을 흘끔 대는 것이 도훈의 상태가 어떤지가 가장 궁금한 듯 했고.

그런데,

잠시 후.

한국 관중석 쪽에서 탄성이 일기 시작하더니, 그 탄성이 환호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 일어났다!”

“와아아..!”

도훈이, 일어선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멀쩡하게.

“자, 지금 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백도훈 선수가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폴짝 폴짝 뛰는 모습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아, 큰 부상이 아니라면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들이받은 바클러는 오히려 아직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는데, 도훈은 너무도 멀쩡히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중.

그럴 수 없어 보였다.

충돌의 충격, 그리고 넘어지는 모습.

도훈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클러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입장인 것이 당연했고, 정말 운 좋게 큰 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하프 타임 동안 휴식을 취하며 상태를 지켜봐야 할 정도여야 하는 것이 맞아 보였다.

그러나,

“공이 나갑니다. 아, 백도훈 선수가 다시 들어 왔습니다!”

“대단합니다! 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붉은 악마의 우레같은 박수와 함께 그라운드로 다시 들어가는 도훈.

“괜찮아?”

“괜찮은거야?”

동료들은 곧바로 도훈에게 상태를 물어 봤다.

그러나 겉모습처럼,

“괜찮아.”

도훈은 동료들에게 윙크를 보내며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전달해 주었다.

“후우.”

좌우로 목을 꺾는 도훈.

사실, 멀쩡할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상태에서 그렇게 들이 받혔다면.

완전히 한 명 담구겠다는 식으로 자폭을 하는데 어찌 멀쩡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도훈은 현재 정말로 멀쩡한 상태가 맞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호신강기.’

충돌직전.

도훈은 기를 방출했었다.

그리고, 그 기는 도훈의 전신을 감싸안아,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을 구축했고.

덕분에 바클러는 강한 기에 충돌해 적잖은 충격을 입었을 테지만, 도훈은 힘에 밀려 넘어졌을 뿐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도훈은 한 번도 이 ‘호신강기’ 를 경기 중에 사용한 적이 없었다.

몸싸움을 할 일이 있어도 영리하게 피하거나 적당히 응해줬을 뿐,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한 적은 없었다는 것.

일단 꾸준히 수련해오던 호신강기가 아직 만족할만큼의 완성도를 가지게 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신체단련이 전부인, 기를 가지지 않은 일반인이 호신강기를 활성화한 자신과 강하게 부딪힌다면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지금의 바클러처럼 말이었다.

상대를 충분히 피해낼 수 있는 도훈이었기에, 굳이 상대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몸을 보호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말이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상대가 먼저 죽자 살자 달려든 것이고 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이건 순전히 바클러의 잘못이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일단은 전반전이 이대로 마무리가 됩니다.”

어쨌든, 도훈은 상당히 짜증이 났다.

과실이 어찌됐든 바클러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바클러에게 방해를 받은 탓에 공격을 마무리짓지 못하고 전반이 끝났기도 했으니까.

도훈을 열 받게 하는 건, 확실히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걸 떠나서 결과적으로, 잉글랜드는 한 선수만 잃게 되었고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했으니 확실히 좋은 선택이 아닌 게 맞았다.

또한,

‘대체 어찌된 놈이냐..’

잉글랜드 선수들은 맛이 가버린 바클러와 멀쩡한 도훈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리도 멀쩡할 수 있는 것인지.

그렇게 크게 충돌해놓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그 두려움은 하프 타임 동안 의료진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즌 아웃이라고..?”

“예상보다 상태가 심각해요.”

도훈과 부딪힌 로스 바클러의 상태가, 생각보다도 심각하다는.

골절이라는 이야기가 오가면서, 월드컵은 물론 남은 후반기 시즌 동안 뛰지 못할 것 같다는.

그 이야기를 듣자, 잉글랜드 선수들에겐 초자연적인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감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프 타임이 끝나고,

시작되는 후반전.

잉글랜드의 분위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원하던 동점 골도 전반이 끝날 때까지 만들어 내지 못했고, 한 명은 퇴장을 당했다.

어려운 후반전이 될 것이라는 건 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막상 후반이 시작되고 나니, 가장 문제인 건 따로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열 받은 도훈이었다.

“백도훈, 다시 치고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1차적으로 묶어두는 전방의 선수들로는 백도훈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필 조스도 마찬가지에요!”

필 조스가 도훈의 전담마크를 한다는 건, 그저 도훈에게 가장 먼저 제쳐질 선수가 필 조스가 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하프 라인을 넘습니다!”

다시 한 번 필 조스를 제쳐내고, 전반 막판 때처럼 질주하는 도훈.

이젠 상황이 달랐다.

먼저 부딪혀 줄 바클러도 없을 뿐더러, 다른 누구도 도훈에게 몸으로 부딪힐 수는 없었다.

이미 바클러가 어떤 상태가 되었는 지 다들 알고 있었으니.

그렇다는 건 정말 공만을 막아내야 한다는 건데,

그럴 능력이 있는 선수가 과연 있을까.

“막아서는 에릭 다이언!”

“속도가 상대가 안돼요!”

이어 달리기의 다음 주자처럼, 미리 몸을 돌려놓고 도훈을 맞이하는 에릭 다이언.

일단 완벽히 막아서는 것보단 같이 따라가며 견제하는 것을 최대로 생각하는 듯.

그러나, 그 선택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이미 속도가 붙은 도훈을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이었기 떄문.

도훈은 공을 발에 단 채로, 에릭 다이언을 속도로 따돌리며 계속해서 들어갔다.

그 기세 그대로 박스를 향해 달려드는 도훈.

그 곳에서 잔뜩 움츠린 채 도훈을 맞이하는 존 스턴스와 크리스 즈몰링.

중점을 둬야할 건 세 가지였다.

헛것이 보일 정도의 바디 페인팅.

팬텀 드리블.

그리고 8개의 잔상이 남는 거미다리 드리블.

하지만 이렇게 속도로 달려드는 순간에 거미 드리블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남은 건 둘 뿐.

두 가지의 드리블을 미리 알고 대처를 한다는 건, 수비의 입장에서 크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계속해서 밀고 들어갑니다!”

“속도를 줄이지 않습니다!”

즈몰링과 스턴스가 도훈을 알고 있는 만큼.

도훈도 그들에 대해 훤히 알고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물론 도훈이 가장 즐겨 쓰는 드리블이다.

하지만, 도훈에겐 다른 선택지가 분명히 있었다.

환영신보도, 유령신보도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타타타타탓-!

스피드.

그 자체로 뚫고 들어가는 것.

“...!”

“큭...!”

멈추지 않고 그저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도훈.

자신들의 앞에서 무언가의 테크닉을 사용할 것에 대비하고 있던 스턴스와 즈몰링은, 그 생각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도훈에게 대처가 늦었다.

도훈은 그저 공을 단 채 달리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 속도에 스턴스와 즈몰링이 허수아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도훈은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 최단 경로로 스턴스와 즈몰링의 사이를 뚫어내고 박스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안녕.’

맨유의 골문과 잉글랜드의 골문을 지키고 있는 픽포트 키퍼를 마주했다.

도훈과 함께 맨유에 있는 한, 도훈과 1대1 상황은 마주할 일이 없겠다고 좋아했던 픽포트 키퍼.

좋아할 만 했다.

이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뻐어어어어엉-!

촤아아아아아-

철썩-!

“고오오오오올-!”

“들어갑니다, 들어갑니다! 백도훈의 환상적인 원맨쇼!”

바클러에게 방해를 받아 열 받았던 도훈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팀의 두 번째 골을 후반 시작하자 마자 터뜨려 버렸다.

또한,

동시에 오늘의 경기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 정당방위야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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