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39화 (139/173)

< 구밀복검 (2) >

“만날 지 안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면 살살해라.”

“넌 살살 안할 거잖아?”

카타르로 떠나오기 전.

맨유 동료들과 나눴던 농담.

만약 월드컵에서 만나게 된다면 살살하라는 말은 도훈에겐 물론 농담이었지만, 사실 동료들에겐 농담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도훈이 살살해주길 바랄 뿐이었지.

만약 도훈을 상대로 만난다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도훈이 봐주는 것밖엔 없을 거라고 맨유 선수들은 누누이 얘기해 왔었으니까. 진심으로.

그런데,

이제 진짜로 만나게 되었다.

월드컵에서.

다른 무대도 아닌, 월드컵 토너먼트이니 도훈이 살살해줄거라고 상상할 수는 절대로 없을 것.

때문에 이들은 이제 진짜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봐주지 않고, 전력으로 덤벼들 백도훈을 막을 수 있는, 그리고 그런 백도훈이 이끄는 대한민국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쉽지는 않았다.

절대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것이 정답이 될지 아닐지는 몰라도.

어쨌든 방법은 들고 경기에 나서게 되었다.

때문에,

한 번 해볼만은 하다고 생각했다.

잉글랜드와 대한민국의 8강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ㆍㆍㆍ

프랑스vs브라질             카타르vs포르투갈

스페인vs이탈리아         잉글랜드vs대한민국

쟁쟁한 국가들로 채워지게 된 8강 토너먼트 대진.

의외라면 카타르가 이들 사이에 끼게 된 정도고, 대부분은 올라올만한 팀이 올라왔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대회 시작 전이었다면 대한민국 역시도 의외의 팀이라고 볼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8강 경기 하나 하나는 미리보는 4강, 혹은 결승전 같은 느낌으로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감 속에 치뤄지게 되었다.

역시나 가장 큰 기대를 모은 건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와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의 8강 첫 경기.

이 경기야 말로 미리보는 결승전이라는 말이 딱 알맞는 경기였다.

이미 실제로 98년 월드컵에서 이 둘은 결승전에서 만나 월드컵을 두고 싸운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지네디 지단의 활약에 힘입어 프랑스가 승리를 했었고.

확실히 월드컵은 그런 면이 있었다.

어떤 월드컵, 혹은 어떤 월드컵에서 어떤 경기를 말하면 한 명의 선수가 떠올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팰레나 마라두나, 지네디 지단, 로나우도 같은 선수들 말이었다.

월드컵은 유독 한 선수의 특출난 활약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경기나, 대회 전체로 보더라도.

이 때문에 이번 대회의 주인공이 과연 백도훈이 될 수 있을 지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아무튼간에, 하고자 하는 말은 이 프랑스와 브라질의 8강전에서도 그런 영웅 한 명이 탄생했다는 것이었다.

그건 은바페도, 멤벨레도, 레이마르나 코티뉴도 아니었다.

이 날 경기의 영웅은 레알 마드리드의 비니시오스 주니오르였다.

“고오오올-! 비니시오스! 브라질을 8강으로 이끕니다!”

이젠 신성이라고 하기 뭐한 레알의 에이스 비니시오스는 1대1로 팽팽하던 후반 39분 결승 골을 터뜨렸고, 브라질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브라질이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꺾고 4강에 진출합니다!”

월드컵에서 유독 프랑스에게 약했던 브라질.

그러나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달랐다.

2대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황금세대 프랑스를 브라질이 꺾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8강 두 번째 경기, 카타르와 포르투갈의 경기.

개최국의 돌풍을 보여주고 있는 카타르와 크리스티아누 호널두의 마지막 월드컵으로 주목받은 포르투갈.

그러나 이 경기에서도 주인공은 다른 선수였다.

“멋진 활약입니다. 예전 우리나라의 곽지성 선수를 보는 듯한 활약이에요.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평점 9.0, 그리고 Mom으로 선정되며 팀을 4강으로 이끈 선수는 포르투갈의 베르나르 실바였다. 맨 시티의 주축 미드필더인 베르나르 실바는 엄청난 활동량과 헌신적인 플레이, 그리고 공격에서의 센스까지 보여주며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했고, 결국 2대0으로 카타르를 꺾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그렇게, 잉글랜드와 한국의 승자는 4강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는 대진이 완성 되었다.

8강 세 번째 경기는 유럽과 유럽의 대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기였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전통의 유럽 강호들의 대전.

역시나 경기는 전형적으로 흘러갔다.

빠른 패스와 공격력으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스페인과,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이탈리아.

그러나 조금 예상 외였던 건, 그 두 가지 모두가 예전만은 못하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스페인의 패스 플레이는 조금 세밀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고,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는 꽤 여러차례의 실수들을 보이며 빈틈이 보이는 듯한 모습.

결과적으로 경기는 스페인의 승리였다.

그러나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의 승리였고, 감탄이 나올 정도의 수준 높은 경기라고 보긴 힘든 8강전이었다. 양 팀의 그 처절함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을 지 몰라도.

때문에 4강에서 브라질과 만나게 된 스페인은 굉장히 힘든 4강이 될 것이라는 평가들이 속속 쏟아졌다.

그렇게 4강 중 3개 나라가 정해졌다.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

남미 1팀과 유럽 2팀의 구색은 월드컵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아니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게 느껴지는 구색이었다.

여기에 보통은 유럽 한 팀이 더 끼거나, 남미 한 팀이 끼는 게 보통이었다.

때문에 8강 마지막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승리한다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 될 4강 대진.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유일한 아시아 대륙으로써 4강 진출 가능할까

한국은 이제 어쩌다 보니 아시아를 대표하는 위치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4강의 모든 자리가 남미와 유럽으로만 채워진다면 월드컵은 그들만의 잔치가 되는 것 아니겠나. 명색이 월드컵인데, 아시아도 한 자리 차지해야 마땅하지.

대한민국과 잉글랜드의 8강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잉글랜드 (4-2-3-1)]

GK 조던 픽포트

CB 존 스턴스

CB 크리스 즈몰링

LB 루크 슈

RB 키어런 트리피르

MF 에릭 다이언

MF 로스 바클러

MF 필 조스

MF 제리 신가드

MF 델레 알레

FW 해리 카인

-조별 예선 2위

-16강 vs멕시코 승

-월드컵 최고 성적 우승(1966년)

-상대 전적 1무

삼사자 군단.

이름값, 몸값만 놓고 본다면 선발 전원이 프리미어 리거인 잉글랜드는 당연히 4강으로 진출하는 게 마땅해 보이는 팀이었다.

해외 축구에 많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익숙한 얼굴일 정도로.

그러나,

“그럼에도 백도훈 선수보다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한국에는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는 얼굴인 도훈이 있었다.

그렇기에, 승부는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

“...”

“...”

평소엔 무척이나 시끄러운 제리 신가드.

그러나, 경기 전 악수를 나눌 때 신가드는 도훈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악수만 한 채 앞을 지나쳤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각오.

월드컵이고, 8강이다.

도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각오를 다졌다.

살살해줄 생각?

꿈에서라도 생각말길.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 조국을 4강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삐이이이이익-!”

경기가 시작 되었다.

“확실히 필 조스 선수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는 점이 오늘 경기를 관통하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나 이번 경기의 관건은 잉글랜드가 백도훈을 막아낼 수 있느냐.

그리고 한국이 잉글랜드의 공격진을 막아낼 수 있느냐.

누가 수비를 더 잘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에 있을 것이었다.

잉글랜드는 확실히 그것에 중점을 크게 두고 있는 듯, 중앙 수비가 주 포지션인 필 조스를 미드필더로 내세우며 2,3선에서 도훈의 움직임을 최대한 견제 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필 조스는 도훈의 맨유 동료기 때문에 확실히 도훈의 움직임을 잘 알고 있을 것.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필 조스는 공의 움직임과 상관 없이 계속해서 도훈의 곁에만 머물러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전담 마크인거죠.”

“서로 한 명씩 바꾸면 확실히 잉글랜드에게 이득이긴 합니다. 물론, 백도훈 선수는 전담 마크 하나 정도로 묶여 있을 선수가 아니니까, 잘 이겨줬으면 합니다.”

도훈의 그림자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는 필 조스.

하지만, 상대가 고작 이것만으로 자신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도훈은 생각했다.

상대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알고 있을 거고.

필 조스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걸.

아직은 더 무언가가 있을 것이었다.

“천천히 공을 돌립니다.”

“양 팀, 신중합니다.”

일단 경기 초반, 양 팀은 탐색전을 펼치듯 천천히 경기를 시작했다.

사실 도훈이나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탐색전을 펼칠 이유는 크게 없었다.

이미 아는 사이고, 서로의 플레이를 몇 번이나 몸으로 부딪혀본 상대기 때문에.

거기에 경기를 준비하며 서로의 경기를 수 없이 돌려보며 분석했을 것이기에 경기 운영도 다 꿰고 있을 양 쪽이었다.

때문에 이런 초반의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탐색전 보다는 오히려 서로 먼저 찌르고 들어오길 기다리는 듯한 모양새.

‘와라, 이건가.’

도훈은 천천히 상대 수비진을 둘러 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면, 불리한 건 먼저 들어가는 쪽이 될 것이다.

또한, 기다리고 있다는 건 뭔가 준비한 것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하지만,

‘뭘 준비했을까?’

아무리 뭔가를 준비했다고 해도, 새로울 것 없이 다 아는 얼굴들이 정말 엄청난 새로운 것을 준비했을 수 있을까. 같이 먹고 자며 훈련한 선수들인데.

서로의 약점도, 강점도 모두 알고 있는 선수들인데 말이었다.

‘내 플레이만 하면, 뭘 내놓든 상관 없어.’

전에 인터뷰에서 밝혔듯.

도훈이 경계하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일 뿐.

자신의 플레이만 할 수 있다면 상대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때문에,

“백도훈.”

“먼저 공격을 시도해 보나요.”

도훈은 상대가 기다리는 걸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들어가주기로 마음 먹었다.

툭-

타타탓-!

하프 라인 부근에서 필 조스를 뒤에 두고 공을 잡은 뒤 전방을 향해 돌아서는 도훈.

그렇게 도훈이 공을 잡자, 잉글랜드 선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담 마크였던 필 조스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신가드, 델레 알레와 로스 바클러가 동시에 도훈에게 붙어오기 시작한 것.

“곧바로 압박이 가해집니다!”

그러나 그런 전격적인 압박에도 도훈은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만,

“더 붙는데요!”

최전방 공격수인 해리 카인 마저도 자신에게 붙어오고 있는 걸 확인했을 때에는 솔직히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격에 치중해야 할 해리 카인이 하프 라인 아래로 내려와 도훈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카인은 정통적인 원 톱 스트라이커의 성향을 띄는 선수.

그런 카인마저 수비에 가담하다니.

잉글랜드는 확실히 마음을 먹은 듯 했고, 알고 있는 듯 했다.

‘가장 먼저 백도훈을 막는다. 모든 계획은, 그 다음부터다.’

일사불란히 움직이는 동료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크리스 즈몰링.

오늘 경기에 임하는 잉글랜드의 목표는 단 한가지였다.

경기를 이기는 것마저도 마지막 목표일 뿐이었고,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오직 하나, 백도훈을 막아내는 것뿐.

백도훈을 막아내기 위해선 모든 수를 동원할 작정인 잉글랜드였다.

그 결과가, 필 조스를 전담 마크맨으로 두면서도 지금처럼 도훈이 공을 잡기만 하면 최대한의 인원이 그 주변을 둘러 싸는 것.

또한,

그런 과정에서.

타타탓-

퍼어어억-!

“거칠게 달려 들었는데요!”

“저렇게 여러 명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삐이이이익-!”

밀려 넘어지는 도훈.

휘슬을 불며 잉글랜드의 파울을 선언하는 주심.

한 명에게 밀린 것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밀린 것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울 정도로, 사방에서 동시에 거칠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

“...”

“...”

필 조스, 신가드를 포함해 도훈을 밀쳤던 선수들은 쓰러진 도훈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제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낯선 얼굴들이었다.

분명히 동고동락하고, 같이 훈련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친숙한 얼굴들이었다.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는 얼굴들이 낯선 얼굴을 보여주자, 오히려 그 낯섬은 배가 되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의 얼굴보다도 더 멀게 느껴질 정도로.

‘그래, 그렇지.’

툭툭 털며 일어나는 도훈.

당연한 것이었다.

동료라고 봐주는 게 있겠나.

동료라면, 오히려 더 차갑고 냉정하게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그건,

“삐익-!”

파아앙-!

이 쪽에서도 마찬가지고.

< 구밀복검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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