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35화 (135/173)
  • < 재밌겠네 (1) >

    착각은 금물이었다.

    백도훈이 강한거지, 대한민국의 공격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수비적인 전술을 가동했기에 실점을 안한 것이지, 원래 대한민국의 수비가 강한 것은 아니었고.

    그걸 알기에, 한국은 변함없이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며 경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고,

    “가네바가 한 번에 찔러 줍니다!”

    “그러나 김형권의 헤더! 패스를 잘라냅니다! 좋은 수비!”

    한국의 집중력은 살아 있었다.

    선수들도 다 알고 있었다. 아니,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여유있게 서영제에게 내주는 김형권!”

    “우리 선수들, 확실히 1차전 전반보다는 다들 여유가 생긴 모습이죠?”

    1차전 승리가 가져다 준, 월드컵 무대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자신감.

    그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단 한 명의 선수.

    모든 건 그 선수 덕분이고, 그 선수가 아니었다면 이번 월드컵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선수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파아아앙-!

    “서영제, 백도훈에게 연결해줍니다!”

    “속도를 내보나요!”

    중원, 내려앉은 위치에서 공을 잡는 도훈.

    그 순간,

    도훈이 공을 잡는 순간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마치 경직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훈이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공을 잡고, 전방을 한 번 쳐다 봤을 뿐.

    그러나 그 동작 하나에, 도훈을 바라보고 있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움찔한 것.

    아마, 그것은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본능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일까.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또한,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도훈이 공을 잡는 순간 그들은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발생하겠다는 것을.

    타타타탓-!

    “출발합니다!”

    도훈은 그들이 경직되었던 이유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프라인 아래서부터, 공을 몰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는 도훈.

    순식간이었다.

    제로에서 최고 속력까지 도달하는 것은.

    때문에 하프 라인 근처에 있던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지나치는 것쯤은 순간이었고, 관중들은 한 박자 늦게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계속 가는데요!”

    “전혀 저지하지 못합니다!”

    도훈은 계속해서 달려 순식간에 아르헨티나 진영을 가로 질렀다.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도훈을 쫓는 아르헨티나 선수들.

    그리고, 마치 이어달리기의 주자처럼 이미 몸을 돌려 도훈이 오면 같이 뛸 준비를 하는 수비수들.

    그러나,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어도,

    “빨라요! 빠릅니다!”

    그들은 도훈을 잡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모든 아르헨티나 미드필더들을 제쳐낸 도훈은 박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리아노를 앞에 뒀을 때,

    파아아앙-!

    길게 오른쪽으로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큭...!”

    도훈이 지척에 다가온 순간, 이미 그 속도를 잡을 수 없음을 직감한 소리아노.

    최후방 마지노선인 자신이 뚫린다면 답이 없는 상황.

    소리아노는 본능적으로 어깨를, 아니 팔을 뻗어 도훈을 저지했다.

    촤아아아-

    그 손에 상체를 완전히 붙잡혀 넘어지는 도훈.

    그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멧시는 턱을 쓸어 내렸다.

    4년 전이었던가.

    비슷한, 아니 너무도 똑같은 장면을 눈앞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기에.

    프랑스와의 16강전 경기였을 것이다.

    지금은 팀 동료가 된, 킬리안 은바페의 돌파.

    그리고,

    “삐이이이이익-!”

    내줬던 페널티 킥.

    “찍었어요, 찍었습니다!”

    “페널티 킥! 전반 13분만에 페널티 킥을 얻어내는 백도훈!”

    워낙 섬광처럼 순식간에 지나갔기 때문일까.

    주심이 페널티 킥을 선언한 뒤, 잠시 후에야 터져나오는 함성.

    혼자서 하프라인 아래서부터 질주해, 페널티 박스까지 도달하는데 불과 몇 초가 걸리지 않았고, 그 짧은 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소리아노의 실책.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 곧바로 대한민국에게 찾아오는 득점 찬스.

    “백도훈이 준비합니다!”

    자신이 얻어낸 피케이를 두고 서는 도훈.

    “삐이이익-!”

    그리고 울리는 심판의 휘슬.

    도훈은 수만여 명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입증했다.

    대한민국의 공격이 강한 게 아니라,

    백도훈이 강한 것이라는 걸.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철썩-!

    도훈의 페널티 킥은 완벽하게 왼쪽 상단에 꽂혀 들어갔고,

    대한민국은 전반 13분만에 1대0으로 아르헨티나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카타르 월드컵의 조추첨이 끝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애도했다.

    특히나 마지막 운명의 갈림길에 같이 섰었던 일본은.

    그러나, 까놓고 보니 그들이 애도해야할 건 한국이 아니었다.

    ‘대체 왜 하늘은 하필 저 녀석을 이 때 낳아서..’

    하늘이 원망스러운, 아르헨티나의 소리아노.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도, 나폴리에서도 도훈에게 당했던 소리아노는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룹 스테이지에서 만나게 된 조추첨 결과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은 H조의 최약체가 아닙니다!”

    H조는, 죽음의 조에 한국이 낑긴 것이 아니었다.

    H조가 죽음의 조인 이유는, 거기에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원래대로 경기를 풀어가는 한국!”

    “이건 좋죠. 이른 시간에 득점인 만큼 경기는 그대로, 흥분할 필요 없이 그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이제보니, 베투 감독이 경기를 참 잘 준비해온 것 같아요. 확실히 팀이 완성된 모습입니다.”

    선제 득점 이후, 다시 수비 라인을 정렬하며 경기를 이어 나가는 한국.

    그 모습에, 아르헨티나는 무척이나 답답해질 수밖에.

    그러다 보니 결국 아르헨티나는 멧시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뭔가 해주길.

    뭐라도 해주길 바라며 그저 멧시에게 패스를 몰아주기 시작하는 아르헨티나.

    물론 멧시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 선수기는 했다. 지금껏 마법같은 플레이를 선보였던 게 한 두번이었나.

    그러나,

    “멧시, 아! 좋은 협력 수비입니다!”

    “멧시가 아니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인데, 그런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집중 협력 수비로 아주 잘 대처하고 있어요, 한국!”

    아르헨티나의 유니폼을 입은 멧시는, 원망스럽게도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같은 마법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멧시는 힘겨워 보였다.

    그 어깨가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모두가 멧시만을 바라보고 있고,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해내지 못한다고 멧시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멧시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할 선수였다.

    그런 부담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하게, 그저 한국의 수비가 좋았을 뿐일지도 몰랐다.

    어찌됐든,

    “아, 멧시! 다시 한 번 드리블에 실패합니다!”

    멧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에,

    도훈은 입고 있는 전술 속 역할이라는 옷에 날개가 달린 듯, 너무나 가벼워 보였다.

    언뜻 수비적인 전술은 공격수에겐 참 어려운 전술처럼 보일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것은 도훈에, 도훈에 의한, 도훈을 위한 맞춤 전술이었다.

    도훈을 제외한 전원이 수비에 최대한 가담함으로써 도훈의 부담을 줄여주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역습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축구에서 단 한 명만을 위한 전술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베투 감독이 만들어낸 대한민국과 백도훈은,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 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역습!”

    “길게 잘 때려놨습니다! 달려가는 백도훈! 빠르죠!”

    전반 22분.

    질식 당할 듯한 수비에 이어지는 다시 한 번의 역습.

    공간으로 때려놓은 김민제의 패스를 향해 넓은 공간을 달려가는 도훈의 모습은, 아르헨티나가 아니라 그 어떤 나라의 수비수들이 모인다 해도 막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한 마리의 야생마였다.

    뻐어어어어엉-!

    “논스톱 크로스!”

    박스 오른편까지 빠르게 치고 들어가다 낮게 땅볼 크로스를 올리는 도훈.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대한민국에 손홍민이 있다는 것도 한국에겐 큰 축복이었다.

    손홍민은, 도훈의 역습 속도를 같이 따라와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격수 였으니까.

    촤아아아아-

    파아아아앙-!

    철썩-!

    “고오오오오올-!”

    “손홍민의 추가 골! 2대0!”

    도훈의 크로스를 가볍게 밀어 넣는 손홍민.

    “완벽합니다! 대한민국!”

    이탈리아에 이어.

    아르헨티나 마저도 대한민국에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어느 덧 전광판의 시계는 멈추었다.

    후반 90분.

    그 무렵, 경기장엔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붉은 악마들의 함성 소리만이 가득할 뿐.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이미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또한, 멧시도 더 이상 무엇을 할 힘이 없는 듯 이미 경기장을 걸어 다니고 있을 뿐이었고.

    결국,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네! 이렇게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 H조 조별 예선 2차전, 아르헨티나를 다시 한 번 3대0으로 꺾으며 2승으로 조 1위에 올라서는 대한민국입니다!”

    휘슬은 울렸고 경기는 끝났다.

    결과는 또 한 번의 3대0.

    그러나, 그 정도 결과도 아르헨티나에겐 많은 운이 따랐다는 평이 달릴 정도였던 경기 내용.

    점유율은 아르헨티나가 61대 39로 앞섰으나, 유효슈팅은 단 3개밖에 기록하지 못한 아르헨티나였고 대한민국은 5개의 슈팅으로 3골을 터뜨리며 효율 축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역시나 도훈은 1차전 세 골에 이어 오늘도 2골 1도움, 세 개의 공격 포인트를 올리며 무서운 폼을 보여줬다.

    평균적으로 5골, 6골 정도의 득점자가 득점왕을 차지해갔던 지금까지의 월드컵 역사인데, 도훈은 두 경기만에 5골을 달성해 버린 것.

    이미 챔피언스 리그나 리그에서도 말도 안되는 골 폭풍으로 득점왕 기록을 갈아치웠던 도훈이었으니, 이번에도 어떤 불멸의 기록을 세워줄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순간.

    “정말 모르겠는데.”

    “난 이제 알 것 같은데.”

    그 경기는, 이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증명을 하는 경기였다.

    출국 전, 월드컵 우승이 목표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도훈.

    그 목표가 허황된 꿈이 아니라, 정말로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를 3대0으로 완파한 팀.

    이 팀이 우승 후보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이젠 2위 싸움이 박터지겠군.”

    “그러게나 말이야.”

    전 세계의 언론들도.

    이 경기를 지켜본 뒤 지금까지의 논조를 180도 뒤바꿀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것이라던 대한민국이 16강 진출의 청신호를 켰다는 정도가 아니라,

    “진지하게..”

    “우승후보지. 이건.”

    대한민국이 이번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고.

    그리고 그 의견에, 누구도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백도훈!”

    “멋지다, 백도훈!”

    역대 최고가 될, 아니 이미 역대 최고인지도 모르는 남자가,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를 뒤에서 받쳐주는 자들이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ㆍㆍㆍ

    H조

    1위 대한민국 2승 0무 0패 +6

    2위 이탈리아 1승 0무 1패 +3

    3위 네덜란드 0승 1무 1패 +1

    4위 아르헨티나 0승 1무 1패 +1

    “이게 말이 되냐. 월드컵 하면서 ‘그 놈’ 안본 건 처음 아니냐.”

    “그러게. ‘그 놈’ 안 보이니까 월드컵 같지도 않다 야.”

    한국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2승으로 올라서면서, 한국은 16강 진출을 빠르게 확정 지었다.

    남은 건 1위냐, 2위냐일 뿐.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선 특이하게도 ‘경우의 수’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언제나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그 지긋지긋한 경우의 수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국민들은 낯섬을 느끼는 웃지 못할 현실.

    오히려 이제 눈여겨 봐야할 것은 G조의 결과였다.

    16강 토너먼트에서 이제 G조의 진출국과 마주하기 때문.

    G조

    1위 스위스 2승 0무 0패 +6

    2위 크로아티아 1승 0무 1패 +3

    3위 일본 0승 1무 1패 +1

    4위 나이지리아 0승 1무 1패 +1

    G조의 현재 순위는 이러했고, 아직까지 조 2위가 누가될 지는 모르는 상황.

    이번 월드컵에서 처음인 것은 경우의 수가 없는 것만이 아니었다.

    “웬만하면, 올라와줬음 좋겠네.”

    “재밌겠네. 아주 재밌겠어.”

    현재 3위의 일본.

    그러나 마지막 경기,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나머지 조건들이 맞는다면 일본에게도 아직 2위로의 16강 진출 희망은 남아 있었다.

    한국은 거의 웬만해서는 1위로 진출을 한다고 보는 게 맞는 상황이었고.

    그러니까,

    일본만 힘을 내주면 이번 16강전의 한축은 한일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아마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16강 진출을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떨어뜨려도 우리 손으로 떨어뜨려야 속시원하니까.”

    그들의 최후는,

    우리의 손으로 맞이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 재밌겠네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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