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34화 (134/173)

< 이변은 없다 (3) >

H조

1위 대한민국 1승 0무 0패 +3

2위 아르헨티나 0승 1무 0패 +1

3위 네덜란드 0승 1무 0패 +1

4위 이탈리아 0승 0무 1패 0

“우리나라가 확실히 강팀한테는 강한 면모가 있다니까.”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만 만나면 이기네. 이탈리아는 우리 보면 치를 떨겠어 이제.”

이탈리아와의 조별 예선 1차전을 깔끔하게 승리로 가져간 뒤.

한국의 반응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

힘든 경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탄탄한 전력으로 승리를 거둔 대표팀의 경기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재방송이 되었고, 국민들은 지하철 역에서, 은행에서, 식당에서 그걸 보며 기분좋게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국민들의 생각은, 여전히 약팀인 대한민국이 강팀인 이탈리아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는 것.

누구도 우리가 강했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이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모두가 한국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그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음에도.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강팀이었던 적이 없었으니.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첫 경기 승리 후, 첫 훈련에서 베투 감독이 선수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국민들은 모르고 있을 지 모르나, 이제부터 맞붙어야할 팀들은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한국은 강팀이 되었다.”

알고 있었다.

한국의 두 번째 상대인 아르헨티나의 감독 상파올리 역시도.

다른 나라는 몰라도, 아르헨티나는 한국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팀일 것이었다.

아르헨티나에는 라이오넬 멧시가 있었으니까.

멧시는 바르셀로나, 맨 시티 소속으로 도훈에게 몇 번이나 패배를 경험했던 선수.

멧시가 경기에서 지는거야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

그러나, 멧시가 도훈에게 패배한 것은 그 전까지의 패배와는 의미가 달랐다.

그 경기 안에서, 도훈은 몇 번이고 멧시보다 놀라운, 뛰어난 플레이를 펼쳐 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었다.

한 마디로, 도훈이 멧시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는 걸 보여주며 멧시에게 패배를 선물했다는 것이었다.

백도훈이라는 선수의 등장 이전까지, 멧시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알고 있다.

백도훈이, 라이오넬 멧시보다 잘 하는 선수라는 걸.

멧시보다 뛰어난 선수가 있는 상대팀.

아무리 멧시가 대표팀에서 기대보다 못한 활약을 보여왔다고 해도, 지금껏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저 명제를 충족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게 되는 한국은 그것을 충족하는 팀이었고.

그러니, 아르헨티나는 무척이나 한국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경기력이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납니다. 그 경기, 승리를 위해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국과의 경기를 이틀 앞두고.

아르헨티나의 상파올리 감독은 훈련이 끝난 뒤 자국의 기자들과 잠깐의 인터뷰를 가졌다.

멧시의 마지막 월드컵, 그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월드컵에 출전한 상파올리 감독.

“만반의 준비는 끝났소이다.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하늘만이 알겠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각오일 뿐이오.”

상투적인 말로만 대답을 일관하는 상파올리 감독.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고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정말 절친한 기자 하나가 상파올리 감독과 독대하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야, 상파올리 감독은 진짜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솔직하게, 지금으로써 목표는 무승부일세. 아니, 목표야 승리지만 무승부만 해도 만족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군.”

“그 정도입니까. 확실히 한국이 강하긴 하죠?”

“그것도 그렇고. 현재 우리 팀의 전력도 생각보다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니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말일세. 지금으로썬 한국이 더 강한 팀이란 말이야.”

“그렇군요. 솔직히,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겉으로 이야기만 못할 뿐이지. 뭐,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덤벼보는 게 더 좋을 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나도 같은 생각일세. 오히려, 이게 약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선수들도 다 알고 있어. 지금으로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멧시조차도 말이야. 하지만, 그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거라고.”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네요. 경기 결과도.”

멧시조차, 한국에게 도전한다는 마음을 품고 훈련에 임했다.

그의 마지막 월드컵.

어쩌면, 후대에 라이오넬 멧시라는 선수가 어떻게 기억될지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르는 마지막 월드컵.

역대 최고의 반열에 심심치 않게 꼽히는 라이오넬 멧시조차도, 도전자의 자세로 임하는 이번 한국과의 경기.

그런 각오까지 마음을 먹었으니, 경기는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침 식사는 양고기 꼬치... 입맛에 잘 맞는다는 소식.. 네티즌 “김치 보내줄까?”

-운동, 운동, 또 운동.. 축구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는 백도훈의 카타르 24시

카타르 안에서, 도훈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든 것이 기사화 될 정도.

도훈은 한국 언론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도훈이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 중 가장 압도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최고의 슈퍼스타였으니까.

때문에 대한민국 훈련장에는 한국 기자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몰리기 일쑤였고, 한국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숙소에도 항상 기자들이 상주를 하고 있는 실정.

그에 따른 선수들의 스트레스는 예상보다 컸다.

어딜가든 카메라를 든 기자들, 뭔가를 물어오는 기자들, 호시탐탐 전력노출을 주워 먹으려는 분석관들.

밤잠까지 설치게 만들 정도의 사람들까지.

그러나 그 정도야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의 입장에선 이해할 수 있고, 감내해야 하는 범주 안이었다.

하지만 더 선수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부담감일 것이었다.

특히, 도훈에겐.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일거수 일투족을, 심지어 아침에 뭘 먹었는지까지 기사로 내보내는 언론들.

자신에게 모든 것을 해주길 바라고 있는 국민들.

부담이 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말이었다.

다행히도 도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덕분에 부담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차라리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치게 된 동료 선수들에게 부담을 느낀다면 느낄까.

오히려,

부담보다는 이 상황이 재밌었다.

과연 월드컵이라는 게 축구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를 알게 되기도 했고.

한 마디로, 이 대회는 최고의 대회였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대될 뿐이었다.

‘쓰지 않는 게 베스트겠지만.’

일단,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는 쓰지 않았었다.

예전부터 준비해오던,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비기.

비장의 무기 말이었다.

비장의 무기는, 언제나 비장의 무기로 숨겨져 있는 게 베스트.

이번 월드컵에서도 쓸 일이 없다면 그게 최고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아끼지는 않을 것이다.

말했듯, 월드컵은 최고의 대회니까.

최고의 대회에서, 최고의 모습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베스트일 것이었다.

ㆍㆍㆍ

“이게 웬 일입니까. 역시나 이번 대회에도 우승국 징크스가 발현하는 것일까요. B조 최대의 이변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은바페의 프랑스가, 남미의 복병 콜롬비아에게 1대2로 발목을 잡히고 맙니다!”

시작된 2라운드.

이변이 없다던 1라운드와는 달리, 2라운드는 시작부터 이변이었다.

전 대회 우승국인 프랑스가 콜롬비아에게 패배를 당하고 만 것.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독일마저도 피해가지 못했던 우승국 징크스라는 건 분명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 징크스마저도 무난히 떨처버릴 것이라는 게 사람들의 예상이었다.

러시아 월드컵을 제패했었던 그 전력들이, 아직 건재하거나 오히려 더 발전한 상태로 돌아온 지금의 프랑스였으니까.

특히 킬리안 은바페의 기량은 지금이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러나, 확실히 월드컵에는 뭔가가 있었다.

정말 마가 끼기라도 한 듯, 은바페의 프랑스는 답답한 경기끝에 1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변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이변의 제물이 된 것은, 에당 하자드의 벨기에였다.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벨기에는 2라운드, 칠레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사실 칠레 역시도 탄탄한 전력을 갖춘 강팀이긴 하나, 그래도 벨기에에 비할 바는 아닐 터.

칠레가 벨기에를 2대1로 꺾은 것은 분명히 이변이라 할만한 결과였다.

그리고, F조에서도.

스페인이 멕시코에게 패배를 당하는 이변의 주인공이 되었다.

“2라운드에 이변이 몰리려고 1라운드에 잠잠했나 봅니다.”

이변이 없다는 것도 딱 1라운드 뿐이었던 것인지.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H조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12월 1일, 카타르 루자일 스타디움.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 곳.

“이렇게 되면 H조의 운명은 꽤나 복잡해지게 되겠네요.”

“첫 경기를 패배한 이탈리아가 힘들 것이라고 봤는데, 의외의 결과입니다.”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 앞서.

다른 경기장에선 네덜란드와 이탈리아가 맞붙었다.

아르헨티나와 무승부를 거둔 네덜란드, 그리고 대한민국에게 패배했던 이탈리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무난한 승리를 예상했을 지 몰랐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

이탈리아가 조르지오 마티니의 결승골에 힘입어 네덜란드를 1대0으로 제압한 것이었다.

이 경기를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 생각보다도 더 강했었다는 것을.

이탈리아는 약한 팀이 아니었다. 특히, 네덜란드에게 무실점을 기록한 그 수비력은.

어쨌든, 이탈리아는 1승 1패가 되었고 네덜란드는 1무 1패가 되었다.

이렇게 되니 H조는 마지막까지 운명을 알 수 없는 혼돈의 조가 될 지도.

물론 그 혼돈이 더욱 짙어지기 위해선, 아르헨티나가 대한민국을 꺾어내야만 했다.

“선수들 입장합니다.”

“신들의 전쟁이라는 말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경기가 드디어 시작 되겠습니다.”

백도훈.

그리고 라이오넬 멧시.

두 신들의 전쟁.

“삐이이이익-!”

대한민국의 조별 예선 두 번째 경기가 시작 되었다.

만약 이 경기가 조별 예선 첫 경기였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경기 시작후, 전반 10분간 흘러간 내용에 대해서.

“상당히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대한민국.”

“아르헨티나가 쉽사리 활로를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비 라인은 좋습니다, 한국!”

세비야의 핵심 미드필더 에데르 가네바와 라이오넬 멧시를 중심으로 중원의 주도권을 잡고 경기를 주도하는 아르헨티나.

그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내줄 건 내준 채 내려서며 박스 앞의 라인을 단단히 구축하는 대한민국.

지극히 정상적인 경기 내용이었다.

첫 경기만 없었다면.

“좀 더 공격적으로 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한국?”

“예. 아르헨티나는 확실히 수비보다는 공격쪽이 강한 팀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격적으로 나서볼만도 한데요. 일단 베투 감독은 준비해오던 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첫 경기, 이탈리아 전때 워낙 도훈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까.

수비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한국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확실히 그럴만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를 3대0이라는 스코어로 제압해냈으니까.

하지만,

분명히 그 전에 분명히 알아야할 게 있었다.

“가네바, 한 번에 찔러 줍니다! 멧시에게! 라이오넬 멧시!”

이탈리아에게 3점을 득점한 것은 순전히 도훈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탈리아에게 한점도 실점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텐 백에 가까운 수비 전술을 펼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걸 알아야 했고, 베투 감독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방심할 수가 없는 것.

아무리 대승을 거둬도, 그 다음 경기는 마찬가지로 수비적인 전술로 경기에 나설 것이었고, 그래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변의 주인공이 한국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 이변은 없다 (3) > 끝

ⓒ 한명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