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30화 (130/173)

< 11월의 월드컵 (1) >

본래 월드컵은 유럽 축구 시즌이 끝나는 5월 이후 6월달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은 11월부터 12월, 겨울에 열리는 최초의 월드컵이 되었다.

때문에 축구계에는 몇몇 일정 조절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원래 12월에 열리는 클럽 월드컵이 7월 프리 시즌에 열리게 되었고, 특히 발롱도르 투표 마감도 11월말이 아닌 월드컵 이후, 12월 말까지로 변경이 되었다.

물론 일단 올 해 전반기까지, 누구도 도훈의 활약을 따라올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선수가 없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월드컵이 있는 해에는, 그 월드컵에서 활약을 펼치며 조국을 상위 라운드로 이끈 선수가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이 보통.

만에 하나 도훈이 월드컵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면 어쩌면 발롱도르의 주인공은 도훈이 아니게 될지도 몰랐다.

물론 그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도훈에게도 월드컵은 처음이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고, 그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에서 도훈이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여준 적은 없었으나, 월드컵은 또 다른 이야기.

월드컵은 그야말로 세계인의 축제이자, 축구계에서 가장 드높은 명예와 영광을 자랑하는 무대였다.

누군가는 그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정도로.

또한 지금껏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들도 월드컵에선 부진했던 역사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런 월드컵이기에, 도훈에게 있어 이번 월드컵은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는 동시에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느냐하는 시험 무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뭐, 그러나 막상 도훈 자신은 월드컵을 시험 무대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21/22 시즌 트레블을 일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현재 클럽 위상은 당연히 최고였다.

단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고 시즌을 마무리한 것은 역사상 그 어떤 클럽도 해내지 못한 것이었으며, 때문에 단일 시즌으로 놓고 본다면 역사상 최강의 클럽이지 않겠느냐 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대부분.

그게 먼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일이었기 때문에, 맨유는 올 여름 이적 시장에서 지난 몇년 사이와 다르게 굉장한 인기를 자랑하게 되었다.

솔직히 최근 몇년간 유럽 최정상의 선수들은 맨유를 이적의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도훈의 이적이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번 이적 시장에서만큼은, 맨유와 링크가 되는 정상급 선수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 링크의 성사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앙투완 그리즈만, 유벤투스의 파울로 디발라, 바르셀로나의 사무엘 움티티 등이 맨유로의 이적을 원한다는 소식이 유럽 축구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맨유가 그들의 영입을 원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맨유로의 이적을 원한다는 것.

마치 선수들이 바르셀로나 혹은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원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현재의 맨유였고, 이런 맨유를 만든 것은 역시나 도훈일 것이었다.

2022년 7월 21일.

카타르 도하.

도훈을 비롯한 맨유 선수들은 클럽 월드컵 참가를 위해 이 곳에 와있었다.

사실, 도훈이 이 곳에 온 건 이미 2주전쯤.

프리 시즌 베이스 캠프를 아예 이 곳으로 정해버렸기 때문에 도훈은 팀과 함께 이 곳에서 새로운 시즌을 위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적응은 좀 어떤가?”

“폴 덕분에 쉽게 적응하고 있어요.”

올 여름 이적시장 1호 영입이 된 새로운 얼굴, 사무엘 움티티의 얼굴도 볼 수 있었고.

이미 그 보다 더 성공적인 시즌을 보낼 수 없는 시즌을 보냈던 맨유.

그러나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어려운 건 그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

다음 시즌도 맨유가 정상에 군림하는 건 더욱 더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었기에 선수들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몸을 만들었다.

“폴은 어딨지?”

“제시랑 피트니스 룸에 있을 거에요.”

가장 재밌는 점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몇몇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폴 포그바와 제시 린가드.

둘은 언제나 유쾌한 친구들인 동시에, 노는 것 역시 좋아하는 선수들이었다.

특히나 지난 산 시로에서 챔스 우승을 확정지은 이후 둘이 주동해 열었던 파티는 호화스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파티 자리에 아쉽게도 도훈은 없었다.

누구보다 파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포그바가 그렇게 오라고 사정 사정했던 도훈은 파티장에 가는 대신 마티니 가족과 조용히 식사한 뒤 곧바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훈은 다시 조용히 훈련했다.

“역시 (축구에) 미친 놈이군.”

그 소식을 들은 포그바나 린가드, 다른 선수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훈은 누가 뭐라해도 맨유의 중심이자 모두를 이끌어주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도 우승과 실력에 자만하지 않는데, 다른 선수들이라고 그럴 수 있을까.

도훈의 눈치가 보여서라도 그럴 수 없을 것이었다.

현재, 포그바나 린가드를 비롯한 맨유 선수들은 언제 자신들이 트레블을 이뤄냈냐는 듯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도훈은 팀의 위상과 더불어 분위기 또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그런 현재의 맨유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맨유가 타대륙 챔피언들과 맞붙는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아시아 챔피언 전북 현대.

아프리카 챔피언 위다드 카사블랑카.

남미 챔피언 보카 주니어스 등.

유럽 챔피언의 자격으로 각 대륙의 챔피언들과 맞붙은 맨유는,

과연 세계 축구계를 이끌고 있는 유럽의 챔피언의 위엄을 당당히 뽐냈다.

4강에서 한국의 전북 현대를 상대로 4대1, 압도적인 승리.

결승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6대2, 다시 압도적인 승리.

“맨유가 클럽 월드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유럽 챔피언 맨유는,

당연하다는 듯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2022년 8월 12일.

잉글랜드 전역에 활기가 돌았다.

오늘은 축구팬들에게 있어 1년 중 가장 의미없는 3개월이 지나고, 다시 삶의 이유가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

“2022/23 프리미어리그 개막!”

새 시즌이 시작 되었다.

다시 태동하는 유럽 축구.

도훈과 맨유는 다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기 위해 달려 나갔다.

“백도훈, 대단합니다! 지난 시즌의 활약을 그대로 이어나가며 올 시즌도 독재에 가까운 집권을 해내겠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새 시즌.

도훈은 다시 싸움을 이겨내기 위해 뛰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

지난 시즌의 자신이 존재하는 한, 도훈은 언제나 이겨야할 상대가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떨어질 일은 없었다.

세계최고가 되겠다던 목표로 나섰던 동굴.

그러나,

이제 목표는 바깥세상에 있지 않았다.

언젠가 동굴에 다시 들어가 스승님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 때 스승님과 겨루어도 부족함이 없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였다.

동굴에서, 세상으로.

세상에서, 다시 동굴로.

목표는 자기 자신안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게 도훈의 가장 큰 무기이자 원동력이었다.

8월, 9월, 10월.

세달간 도훈은 여느 때보다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리그와 컵 경기, 그리고 국가대표 소집 일정까지.

이제 정말 월드컵을 목전에 둔 대표팀은 막바지 담금질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11월 3일.

“이것으로 카타르 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카타르 월드컵에 나설 최종 23인이 발표되고,

전 세계는 월드컵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ㆍㆍㆍ

11월 24일, 이탈리아 전.

11월 29일, 아르헨티나 전.

12월 2일, 네덜란드 전.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도, 이런 조별 예선 일정이라면 조별 예선 통과에 모든 신경을 쏟지 않을 수 없을 것.

하물며 16강 진출이 목표인 한국 대표팀은, 당연하게도 추후 토너먼트에 대한 대비보다는 조별 예선 3경기를 위한 준비에 모든 목표를 맞추는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탈리아 전 대비를 위해 스웨덴과 평가전을 잡았고, 아르헨티나 전 대비를 위해 콜롬비아와 평가전을 잡았다. 네덜란드 전 대비를 위해서는 덴마크와 평가전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실전을 대비한 평가전이라곤 하지만, 평가전 상대 세 팀이 실전 상대들보다 확연히 쉬운 상대라던가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탈리아가 스웨덴과 맞붙는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정도니까. 오히려 가장 최근의 경기에선 패배한 적이 있을 정도고.

때문에 그 세 평가전의 결과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제 월드컵까지는 한달도 남지 않았다.

이젠 패배가 약이 된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과로 보여줘야 할 때였다.

누군가의 말 대로, 월드컵은 경험의 자리가 아니라 증명의 자리였으니까.

“잘 부탁 합니다.”

“다치지 않도록 합시다.”

카타르, 도하에서 치뤄진 스웨덴과의 평가전.

그 평가전은 언론의 중계가 없는 비공개 평가전으로 진행이 되었다.

한국은 무엇보다도 조별 예선 첫 경기, 이탈리아 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첫 경기의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맞는 얘기였다.

세 팀의 전력 우위를 단정짓기는 어려울 정도로 모두 강팀이긴 하지만, 이탈리아는 현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나 네덜란드보다는 떨어지는 전력이라는 평가가 대부분.

그런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다면 16강 진출의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와 별개로 애초에 조별 첫 경기의 결과에 따라 선수단의 기세가 달라지는 것도 당연했고.

“비공개라니. 뭐 단단히 준비한 거라도 있단 말이야?”

그렇게, 한국이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만큼.

이탈리아도 한국과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당연.

명목적으로 비공개긴 하지만, 어떻게든 건질 것을 찾기 위해 전력 분석관들을 파견한 이탈리아 팀은 한국과 스웨덴의 평가전이 끝나고 경기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스웨덴은 절대로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실제로,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과 본선에서 한국과 이탈리아는 스웨덴에게 모두 고배를 마셨었다.

“스웨덴에게 진다고 해도 방심할 상황은 아니지.”

때문에 이 평가전 결과가 어찌되든,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는 결과에 크게 신경쓸 것 없이 준비해오던 대로 본선을 준비 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경기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내용일 뿐.

파견을 보낸 분석관들이 경기를 훔쳐보든 녹화 비디오를 입수하든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비공개일 뿐 피파 정식 주관 평가전이기 때문에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 결과는 홈페이지에 게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확인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미간이 심각하게 찌푸려졌다.

“이거.. 정확한 건가?”

“피파에서 공개한 결과인데요..”

피파에서 발표한 결과를 보고도 정확한 정보인지 의심하는 만치니 감독.

그럴 만 했다.

스웨덴이, 자신이 아는 스웨덴이 이토록 대패를 당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대한민국 5 : 2 스웨덴

스웨덴이 두 점을 넣었다곤 하지만, 압도적인 완패라고밖에 볼 수 없는 스코어였다.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젠장..”

경기의 득점 테이블을 확인한 만치니 감독은 어금니를 깨물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득점

-백도훈 9‘

-손흥민 18‘

-백도훈 33‘

-백도훈 45‘

-백도훈 55‘

백도훈, 네 골.

그건,

그건 출처가 불분명하더라도 믿음이 가는 정보였다.

역시, 역시 백도훈인가.

그렇다면, 스웨덴의 완패가 이해가 될만도 했다.

역시나 자신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도 백도훈이었으니.

역시, 이 정도란 말인가.

하지만,

만치니 감독은 긍정적인 정보를 보기로 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정보.

백도훈이 네 골을 넣긴 했지만, 그 분포가 초중반에 몰려 있고, 후반 35분 동안의 득점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반대의 시간 동안, 분명히 스웨덴이 백도훈을 봉쇄한 방법을 찾았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오, 왔나.”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이탈리아의 전력 분석관들.

만치니 감독은 가장 먼저 이것에 대해 물었다.

후반 35분간, 스웨덴이 어떤 식으로 백도훈을 막았기에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러나,

만치니 감독은 전력 분석관들의 어이없다는 듯한 대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백도훈은 58분에 교체 됐습니다만.”

머리가 지끈, 하고 아파오는 순간이었다.

< 11월의 월드컵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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