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 했잖아 (3) >
환호 속의 침묵.
“...”
망연자실.
역전 골을 내주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는 맨 시티 선수들.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건만.
마치 벌써 우승과 준우승이 나뉘기라도 한 듯,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 팀의 분위기.
어디서 그런 힘이 난건지, 미친듯이 달려 도훈을 덮친 맨유 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포개어져 산을 만들고 있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감동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 카를로스.
지단도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솔직히 말하면, 두피에까지 소름이 돋아 있었다.
여지껏, 저런 선수는 본 적이 없었다.
양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레전드들.
또한 지도자가 되어 지도한 스타 플레이어들.
인생 자체가 축구였던 지단이었고, 지금껏 수많은 선수들을 봐왔던 지단이었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껏 저런 선수는 없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올 선수야..”
옆에서 말하는 호나우두의 말에, 지단은 고개를 저었다.
100년으로도 모자랐다.
“남은 시간은 5분, 추가 시간까지 합하면 그래도 7, 8분 정도는 남아 있습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닙니다.”
“맨 시티는 여전히 한 명이 더 많습니다.”
흥분과 환호, 그리고 침묵 끝에 재개되는 경기.
남은 시간이,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수 없을만큼 촉박한 것은 분명히 또 아니었다.
“맨유 선수들은 마의 구간을 이미 한참 전에 지났죠. 몸이 물에 푹 젖은 솜처럼 무거울 거에요. 정말 정신력입니다.”
버텨야 한다.
이젠 도훈도 많이 내려와 적극적으로 수비를 도왔다.
한 골.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마인드로.
“왼쪽!”
파아앙-!
“반대!”
파아앙-!
선수들의 중앙에 서서 계속해서 패스 방향을 읽어주는 도훈.
그 덕에 맨유 선수들은 느린 발을 한 발 빠른 반응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마치 도훈이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듯, 거짓말처럼 도훈의 말 대로 시티 선수들은 패스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역지사지, 자신이라면 어떻게 패스의 길을 열어갈까 생각을 하며 읽어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시티 선수들 입장에서는 곤욕이었다.
모든 걸 읽히고 있는 기분.
“메시. 방향을 찾습니다.”
그건 메시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패스에 도가 튼 선수일수록 도훈에게 방향을 읽히기는 더 쉬웠으니.
“후우, 후우.”
그렇다고 패스 대신 단독 드리블을 시도하기에도 부담이 되는 상황.
메시는 노장이었다.
애초에 강철같은 체력이 무기인 선수도 아니었거니와.
메시도 개인적으로만 놓고 본다면 맨유 선수들 만큼이나 지쳐있는 상태.
그렇다면,
파아앙-!
“음바페가 내려와서 받습니다!”
결국 남는 건 음바페뿐일까.
페널티 킥을 얻었던 그 때처럼 내려와서 공을 받는 음바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건 돌파 뿐.
음바페도 본인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음바페는 공을 잡자 마자 주저 없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을 직접 가로막는,
도훈.
도훈은 음바페를 다른 누구에게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음바페를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을테니.
“백도훈!”
“음바페와 백도훈이 직접 마주합니다!”
음바페도 그런 도훈이 반갑기는 마찬가지.
결국, 마지막까지 맞붙을 운명인 것인가.
조금은 아이러니컬 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을 만났지만 모두 패배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패배까지만 해도 백도훈이 미칠듯이 싫었다.
미칠듯이 이기고 싶었지만 이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백도훈이 좋았다.
누구보다도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런데,
그를 이기고 싶은 마음은 그 어떤 때보다도,
지금이 가장 컸다.
‘와라.’
‘간다.’
공을 발에 달고 도훈의 정면으로 달려드는 음바페.
자세를 낮추고 기다리는 도훈.
이런 돌진이라면.
역동적으로 페인팅을 주며 속도를 살리는 게 아니라면 결국 그것뿐인데.
‘보여주려는 것인가, 내게?’
음바페가 지척까지 다가선 순간,
“...!”
도훈은 눈을 감았다.
음바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는 게 아닌, 도훈은 눈을 감고 공기를 읽었다.
그리고, 눈앞에 익숙한 동굴 속을 떠올렸다.
그 안에서 마주하는 상대,
자기 자신.
도훈은 머릿 속에서 가상의 자신을 앞에 세워두고 섰다.
‘왜 불렀어?’
‘유령신보. 써 봐.’
공을 가지고 달려드는 자신.
그리고 그런 자신이 양 발 사이에서 공을 튕기는 순간,
도훈은 상상의 속도를 0.7배속으로 줄였다.
파아아-
파아아앙-!
ㄱ자로 꺾이며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자신.
0.7배속이라고 해도 자신은 빨랐다.
그리고,
그 속도가,
“빠릅니다!”
“음바페!”
현실의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음바페의 속도였다.
‘지금.’
상상 속, 0.7배속의 자신이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그 곳을 향해 현실의 발을 뻗는 도훈.
그 발에,
파아앙-!
공이 걸렸다.
“막.. 힙니다!?”
“끊겼습니다! 백도훈이 끊어 냅니다!”
도훈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음바페.
그러나, 정확히 신체의 접촉은 없었다.
도훈과 음바페의 발 사이엔 공이 존재 했으니.
도훈은 정확히 공을 막아세웠을 뿐.
뻐어어어어엉-!
“멀리 차냅니다!”
그 공을 미련 없이 차내는 도훈.
공이 하늘 높게 떠 하프 라인을 넘어가는 순간,
주심은 시계를 들여다 봤다.
‘빨리 와, 제발!’
공을 받기 위해 뛰쳐 나오는 에데르송 키퍼.
왜 이리도 공이 느리게 떠오는 것인지.
“어떻게 되나요!”
그래도 아직 몇 초 정돈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마음 급하게 떨어지는 공을 잡아, 컨트롤 해놓고 다시 전방으로 차내려는 에데르송 키퍼.
뻐어어어엉-!
아직, 한 번의 기회는...
“삐이이익-”
“아...”
“삐이이이익-”
“이렇게...”
“삐이이이이이이익-!”
“끝납니다!”
없었다.
에데르송 키퍼는 공을 차냈으나,
누구도 그 공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투우웅-
출렁-!
심지어 그 공이 골대 앞으로 묘하게 떨어진 뒤 튕겨 골대 안으로 들어갔지만,
픽포드 키퍼는 이미 골대 앞에 없었다.
“와아아아아앗-!”
환호하는 동료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기 끝났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챔피언스 리그 우승! 한 명이 없는 상태로 역전 우승을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순간입니다!”
그 순간.
경기를 보러 온 관중 8만여 명과, 선수들, 코칭 스태프들, 관계자들까지 모두 합쳐.
산 시로 스타디움 안에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은,
단 두 가지의 사람으로 분류가 되었다.
“예에에에에-!!”
미친 듯이 기쁨을 포효하는 사람들과,
“...”
세상을 잃은 듯 망연자실한 사람들로.
그 극명하게 엇갈린 두 가지의 사람들만이,
그 곳에 가득할 뿐이었다.
“도훈!”
휘슬이 울리자 마자 달려 나와 도훈에게 안기는 린델로프.
“우승이다!”
“다들!”
그리고, 모두 엉겨붙어 기쁨을 나누는 맨유 선수들.
마지막, 올 시즌의 마지막 경기였다.
그 마지막 경기까지.
마침내 모두 승리를 거두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늘은 수상이 빠르게 진행 되겠습니다. 챔피언스 리그 대회 MVP, 그리고 결승전 MVP, 대회 득점왕까지 모두 한 선수니까요.”
“출장한 챔스 전 경기 MOM, 4강까지 24골 8도움, 그리고 오늘 결승전에서 헤트트릭. 총 27골 8도움이라는 역대 최고의 스탯을 기록한..”
“백! 도! 훈!”
“백도훈 선수입니다!”
경기가 모두 끝나고,
진행되는 시상.
경기장 한 가운데에 마련된 익숙한 우승 셀레브레이션용 단상.
유에파 회장이 도훈의 이름을 호명하자 8만여 명이 동시에 기립 박수를 보내었고,
도훈이 수상을 위해 단상으로 나섰다.
도훈의 목에 걸리는 세 개의 메달.
3관왕이었다.
모든 최고의 기록을 모두 도훈이 세우게 되는 올 시즌 챔피언스 리그.
덕분에 개인 시상은 빠르게 마무리가 되고,
준우승 메달 수여가 이어졌다.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준우승 메달을 받고 내려 옵니다.”
“박수를 보내줘야 합니다. 오늘 정말 잘 싸웠어요.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요. 준우승도 대단한 업적입니다.”
싸움은 끝났고, 승부는 정해졌다.
이젠 모두 하나가 되어, 고개를 숙인 채 메달을 수여받는 맨 시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8만여 명의 관중들.
미우나 고우나, 우승뿐 아니라 준우승 역시도 맨체스터의 팀이 가져가게 되었다는 건 맨유 팬들로서도 자부심이 생기는 일.
“고생 했어.”
“멋진 시합이었다.”
가장 가까운 앙숙이지만, 가장 가까운 동료다.
메달을 걸고 내려오는 맨 시티 선수들에게 손을 내미는 맨유 선수들.
양 팀의 선수들은 악수나 뜨거운 포옹을 하며 서로에게 진심을 전했다.
오늘, 두 팀이 멋진 시합을 펼쳤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
“...”
그리고, 도훈에게 손을 내미는 음바페.
도훈은 그 손을 맞잡은 뒤, 음바페를 끌어안아 주었다.
도훈의 품에 푹 안기는 음바페.
웃음이 나왔다.
어떤 의미인지는 음바페 본인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저 웃음이 나왔다.
“또 보자.”
“그래. 또 보자.”
음바페와, 맨 시티 선수들은 그렇게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건 채 단상을 내려왔다.
맨 시티 팬들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쉬웠지만, 맨유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아세웠던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다음 시즌을 기약했다.
그리고, 이제.
“이제 2021/22 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유럽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관식이 있겠습니다.”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이 빅 이어를 들어 올리기 위해 차례 차례 단상으로 올라 섰다.
“조던 픽포드, 크리스 스몰링, 안데르 에레라.. 한 명씩 메달을 목에 겁니다.”
“한 명 한 명, 모두 위대한 업적을 세운 선수들입니다. 올 시즌, 한 번도 패배를 경험하지 않은 선수들입니다.”
“그건 이 선수의 역할이 컸겠죠? 백도훈 선수도 메달을 목에 겁니다.”
생애 두 번째 우승 메달이자 오늘만 네 개째 메달을 목에 거는 도훈.
2년 연속, 유럽 챔피언의 자리에 두 개의 팀 소속으로 서게 되는 도훈이었다.
작년, 도훈이 밀란에 있었을 땐 밀란이 이 자리에 섰었다.
그리고 올해, 도훈이 맨유에 있으니 맨유가 이 자리에 서게 되었고.
그것만 봐도 이 우승컵에 도달하기까지 누가 가장 큰 역할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가!”
“들어!”
그건 동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메달을 수여받은 채 단상 위에 올라선 뒤, 도훈의 등을 떠미는 선수들.
동료들에게 떠밀린 그 곳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각인이 새겨진 빅 이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1년만에 재회하는 빅 이어.
도훈은,
“와아아아앗-!”
그 빅 이어를 힘차게 들어 올렸고 동시에 폭죽과 꽃가루가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방방 뛰며 우승의 기쁨을 즐기는 선수들.
찰칵-!
찰칵-!
그 선수들을 담는 수십 개의 카메라들.
그 카메라들에는, 역사상 최강의 팀이 되어버린 팀의 선수들이 담기고 있었다.
“유럽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고의 시즌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ㆍㆍㆍ
2021/22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프리미어 리그 65골 22도움 득점왕.
챔피언스 리그 27골 8도움 득점왕.
시즌 109골 유러피언 골든 슈.
프리미어 리그 MVP.
챔피언스 리그 MVP.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듯한, 말 그대로 올 해 유럽을 호령한 남자.
백도훈.
그런 그가,
“후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있다.
이렇게 긴장한 듯한 도훈의 모습은 처음.
정말 처음이었다.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배가 살살 아파 올 지경.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도훈은 크게 숨을 내쉬었다.
“들어갈까?”
“가보자.”
굳게 마음 먹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초인종을 누르는 도훈.
이윽고 문이 열리고,
그럼에도 한 번을 더 망설이는 도훈.
“가자. 괜찮아. 왜 그렇게 긴장을 해 웃기게.”
“겁은 네가 줬으면서..”
그런 도훈의 손을 잡고 이끄는 로레나.
이 곳은, 마티니 저택.
결승전이 끝난 뒤 약속했던대로 로레나의 부모님을 뵈러온 길이었던 것.
“엄마, 왔어.”
“어, 그래.”
제 집이니 편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로레나.
안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또 다시 침을 삼키는 도훈.
도훈은, 용기 있게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그랬다가,
“왔는가.”
로레나가 그렇게 겁을 줬던 이유와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옆에서 도훈을 보며 슬쩍 웃고 있는 조르지오 마티니보다도 키가 크고, 옆으로는 두 배 가까이 커 보이는 로레나의 아버지.
로렌초 마티니가 거대한 풍채로 도훈을 맞이 했다.
< 약속 했잖아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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