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26화 (126/173)
  • < 약속 했잖아 (2) >

    간절함으로 만들어 낸 동점.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바뀐 건 전광판의 스코어뿐.

    맨 시티가 유리한 경기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한 명이 더 많았고, 체력이 바닥을 향해가는 맨유 선수들과 달리 맨 시티 선수들, 특히 후반 교체로 들어온 음바페의 체력은 왕성했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데 브라이너의 뒷 공간 패스!”

    “음바페가 달려 갑니다!”

    확실하게 뒤로 내려선 맨유 수비수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수비수들이 한 없이 물러나 골 라인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찌됐든 뒷 공간은 존재하기 마련.

    음바페의 속도는 무서웠다.

    데 브라이너의 침투 패스가 상당히 깊숙해 보였지만,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타타타타탓-!

    음바페는 무서운 속도로 루크 쇼를 따돌리며 골 라인 근처에서 공을 받아냈다.

    그리고, 돌아서며 따라온 루크 쇼를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가는 음바페.

    멋졌다.

    먼 발치에서 지켜본 백도훈의 동점 골은.

    역시, 매료될만 한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고.

    음바페는 자신이 도훈에게 매료된만큼, 도훈도 자신에게 매료되길 바랐다.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줬으면 하는 건 비단 남녀 사이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니까.

    툭, 툭-

    쉬이익-

    파아앙-!

    루크 쇼를 앞에 두고 툭툭 치고 들어가다,

    특유의 역동적인 동작으로 왼발 헛다리를 친 뒤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음바페.

    그 역동적인 드리블에 중심을 잃고 한 발 뒤쳐지는 루크 쇼.

    언제나 미래에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음바페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기량에 있어서 음바페에게 절정의 순간은 지금.

    타타탓-!

    “한 번 더 치고 들어 갑니다!”

    골 라인을 타고, 안 쪽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음바페.

    순식간에 박스 안으로 입성.

    슬쩍 뒤 쪽을 살피니, 메시와 스털링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백도훈이라면 여기서.’

    음바페는 도훈이 자신에게 매료되도록 만들고 싶다하지 않았나.

    툭-!

    “슈웃-!?”

    시선은 여전히 뒷 쪽.

    그러나, 음바페는 슈팅을 시도했다.

    앞 발로 가볍게 공을 찍어차는 로빙 슛을.

    “...!”

    음바페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기에, 몸으론 골대 쪽을 막고 있었으나 컷 백을 예상하고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픽포드 키퍼.

    픽포드 키퍼는 자신의 중심이 무너졌다는 걸 느끼는 순간, 자신의 안일함을 탓했다.

    슈우우웅-

    그러나,

    축구는 팀 스포츠다.

    그 안일함을 동료가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뻐어어어엉-!

    “스몰링이 이걸!”

    픽포드 키퍼를 넘겨 골대 안으로 향하던 음바페의 로빙 슛.

    그 공이 골 라인을 넘어가기 직전.

    몸을 날린 건 스몰링이었다.

    마치 자신이 대신 골대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듯.

    스몰링은 몸을 날리며 공을 바깥으로 차냈다.

    그 모습에 번쩍 손을 들며 심판을 바라보는 시티 선수들.

    들어간 것 아니냐는 제스쳐였다.

    “...”

    귀에 낀 송신기를 누르며 골대 옆 부심과 통신을 나누는 듯한 주심.

    잠시 뒤,

    “코너 킥!”

    주심은 코너 킥을 선언했다.

    공이 골 라인을 통과하지 않은 것.

    “스몰링이 한 골을 막아 냅니다!”

    스몰링에게 달려들어 포효하는 맨유 선수들.

    마치 골을 넣은 듯.

    그러나 골을 넣은 것이나 다름 없는 슈퍼 세이브가 맞았다.

    “데 브라이너의 코너 킥.”

    스몰링의 슈퍼 플레이로 위기를 벗어난 맨유.

    그 기세로,

    파아아앙-!

    이어진 코너킥도 멀리 걷어내고.

    “기세를 살립니다!”

    도훈은 맨유 서포터즈 석을 향해 두 팔을 휘저으며 함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그래! 가보자!”

    “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는 맨유 팬들.

    그 모습을 보며,

    VIP석에 앉아 있던 레전드들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저 친구는 리더의 자질도 있는 친구구만.”

    “그래서 월드컵도 기대가 되는 것 아니요. 지네딘같은 친구야. 팀을 우승까지 이끌 수 있는 친구라고.”

    그리고, 그들은 맨유 팬들의 함성에 조금의 환호를 보탰다.

    그들은 어느 팀도 응원하지 않는 입장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다들 맨유를 응원하게 되고 있었으니.

    어느 덧 후반 20분을 지나가는 시간.

    “후반전의 점유율은 75대 25. 맨 시티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기 주도권을 쥔 건 맨 시티.

    그러나, 기세만을 놓고 본다면 전혀 밀리지 않는 맨유.

    어떻게 보면 처절하게 버텨낸다는 느낌일 수도 있었다.

    점유율은 균형이 맞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패스 횟수와 슈팅 숫자도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의 분위기는 그런 지표들과는 큰 상관이 없어 보였다.

    맨 시티가 경기를 잡아간다는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으니.

    아직도 누가 빅 이어를 들어 올리게 될 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간절하네. 맨유가.”

    “한 명이 없는 게 너무 잘 느껴져. 근데 그게 나쁜 쪽으로가 아니라, 한 명이 없으니 나머지 애들이 한 발 더 뛰고 있다는 느낌이거든. 이 악물고 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단 말이야.”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단.

    지금의 맨유는 참으로 매력적인 팀이었다.

    저런 팀의 지휘봉을 잡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력하게 일 정도로.

    “근데, 이기는 건 다른 문제 같은데. 돌파구를 찾아야 돼. 어찌저찌 연장 간다해도, 승률은 확 떨어질 뿐이지. 다 방전이라고.”

    “맨유는 연장 갈 생각이 없어. 당연히.”

    동점인 상황에서 수비에 치중하고 있는 맨유.

    그런 맨유의 상황을 보고도, 연장에 갈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지단.

    카를로스는 고개를 갸웃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백도훈을 봐.”

    지단의 말대로 도훈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카를로스.

    잠시 후, 카를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리고 있군.”

    도훈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대 수비수들이 편안하게 전방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혼자서라도 열심히 압박을 가하며 방해를 해줬다. 부담이 클 동료들을 위해 최대한 수비에 힘을 보태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있는 듯, 일정 지점 이하의 위치까지는 내려가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도훈과 맨유는 알고 있었다.

    연장에 간다면 이 경기는 필패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걸.

    상대도 분명히 지치고 있었다.

    그러나,

    “허억, 허억.”

    이 쪽은 이미 체력의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는 입장.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90분이 지나고, 다시 30분을 더 뛸 자신이 없다는 걸.

    승부는 무조건 90분안에 내야 했다.

    도훈은 최대한 동료를 도우면서도,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남은 15분여 안에, 게임을 끝낼 기회를 잡기 위해.

    “메시.”

    그렇다면, 그 전에.

    일단은 버텨내야 한다.

    상대의 뒷 공간을 노리려면, 필히 그 전에 상대가 깊숙하게 올라와야 하는 법.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막아낼 수 있게 해달라고,

    맨유 선수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메시의 발끝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디로 향할까.

    돌파인가, 슛인가.

    아니면, 패스인가.

    “전방을 살핍니다!”

    “킬러 패스 한 방이면 맨유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패스라면, 어느 쪽일까.

    역시나, 그 쪽이 아닐까.

    “루크!”

    멀리서도 뚜렷하게 들린 도훈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달리는 루크 쇼.

    그와 동시에,

    뻐어어엉-!

    메시의 로빙 스루 패스가 뻗어져 나갔다.

    오른쪽의 음바페를 향한 패스.

    도훈은 전방을 바라보는 메시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또한 자연히 그 너머를 볼 수 있었고.

    메시와 같은 시야를 공유한 셈.

    그러니, 패스의 길을 볼 수 있었고 한 발 빠르게 외칠 수 있었다.

    덕분에,

    타타타탓-!

    루크 쇼의 스타트가 오히려 음바페보다도 빨랐다.

    사실, 아무리 도훈이 외쳐줬다고 해도 루크 쇼가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먼저 스타트를 끊지 못했을 것.

    그 정도로 찰나의 차이였다.

    하지만, 루크 쇼는 도훈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도훈의 외침이라면 생각에 앞서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일 정도로.

    파아앙-!

    “픽포드 키퍼에게! 패스를 한 발 먼저 끊어내는 루크 쇼!”

    “대단한 투혼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루크 쇼가 공을 끊어내는 걸 확인하는 순간.

    타타타타탓-!

    도훈이 전방을 향해 뒤를 돌아 보지도 않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가!”

    뻐어어어엉-!

    공을 힘껏 차 보내는 픽포드.

    정확하게 보내기보단, 일단 빠르게 차는 게 먼저.

    어차피 보내 놓기만 하면,

    “역습! 백도훈이 빠릅니다!”

    도훈이 알아서 잡아 줄 테니.

    “급히 돌아가는 맨 시티! 공간이 넓습니다!”

    맨 시티도 여유롭게 공격을 하고 있던 상황은 아니었다.

    시티라고 왜 90분 내에 경기를 끝내고 싶지 않겠는가.

    특히나 상대는 한 명이 부족한데.

    시티 선수들은 전원이 높게 맨유 진영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도훈과 스피드 경쟁이라.

    ‘폭포 오르기.’

    부스터를 킨 듯, 질주하는 도훈.

    그 속도가, 공중을 떠오는 공보다도 앞서는 듯.

    타타타탓-!

    파아앙-!

    역시나 공에 가장 먼저 도달한 건 도훈.

    하프라인을 넘어 떨어지는 공을, 도훈은 그대로 앞으로 차놓고 속도를 살리며 나아갔다.

    “맨 시티, 위기!”

    젖 먹던 힘을 다해 그 뒤를 쫓는 라포르테와 스톤스.

    그러나, 야속하게도.

    도훈은 공을 몰고 가면서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는 갈 수록 벌어지고 있을 정도.

    무인지경.

    “에데르송에게 운명이 걸립니다!”

    잔뜩 긴장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에데르송 키퍼.

    아무리 노 마크에 가깝다지만, 전력으로 달리고 있는 백도훈이기에 만약 조금이라도 드리블이 길다면 곧바로 튀어나갈 요량인 에데르송.

    하지만, 또 야속했다.

    도훈은 공을 발에 단 채로 박스까지 달려들고 있었다.

    너무나 완벽한 찬스.

    이런 찬스를, 지금껏 도훈이 놓친 적이 있을까.

    없었다.

    도훈이 골키퍼와의 1대1 찬스에서 골을 성공시키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모든 1대1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이번 싸움의 승률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매 번, 승률은 50퍼센트일 뿐.

    넣느냐, 넣지 못하느냐.

    도훈은 매 번 똑같은 승부를 해왔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단한 것이겠지.

    그 5대5의 승부를,

    지금까지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것은.

    ‘걸맞는 결승전이로고.’

    골대 뒷편에 펼쳐진 거대한 관중석.

    그 관중석에서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수많은 관중들.

    도훈은 이 멋진 스타디움, 산 시로에서 처음으로 경기를 치뤘던 때가 떠올랐다.

    멋진 경기였다.

    치열한 더비였고, 팬들은 열광적으로 승리를 바라며 자신을 응원했었다.

    그 경기 한 번으로, 도훈은 이 산 시로가 자신의 ‘홈’ 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했을 정도로.

    그렇게, 이 집에서 자란 자신이 이젠 다 커서 돌아와 멋진 마무리만을 남겨두고 있다.

    행운이었다.

    오늘 결승전을 이 경기장에서 치룰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분명한 건,

    후반 막바지, 에데르송을 앞에 두고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찬스에서도,

    도훈은 위와 같은 감상에 젖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뻐어어어어엉-!

    박스 안으로 진입하자 마자, 오른발로 힘껏 슈팅을 때리는 도훈.

    체중을 제대로 실어 때렸다는 증거로 붕 뜨는 왼 다리.

    도훈의 슈팅은,

    촤아아아아아-

    낮게 깔려 왼쪽 포스트를 향해 박스를 대각선으로 가로 질렀다.

    “...!”

    너무 빠르고, 정확했다.

    에데르송 키퍼가 막아내기엔.

    철썩-!

    미끈하게 골망에 감기는 공의 소리.

    롤러코스터처럼 골망을 한 바퀴 돌아 튕기는 공.

    들어갔다.

    “들어 갔습니다!”

    “고오올-! 백도훈! 백도훈!”

    도훈의 세 번째 골이자, 맨유의 세 번째 골.

    한 명이 적은 맨유가, 기어이 역전 골을 집어 넣고 마는 순간인 것이었다.

    “와아아아아앗-!”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함성.

    그리고, 모두 숨을 멈추고 도훈의 뒷 모습만을 지켜보고 있던 맨유 선수들도 골이 들어가는 순간 짐승처럼 포효했다.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 그라운드 위에 있던 선수할 것 없이 모두 울부 짖으며 도훈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

    도훈은, 코너 플래그를 향해 뛰며 새끼 손가락을 높게 들어 보였다.

    ‘약속 했잖아.’

    밀라노에 도착했을 때.

    도훈을 환대해줬던 밀라노의 사람들.

    분명히 약속했었다.

    우승하겠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도훈에겐,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어길 순 없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니까.

    “됐어!!!”

    그리고 그 순간.

    맨유 측 드레싱 룸에서 한 남자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미안함, 죄책감, 안타까움, 간절함.

    복잡한 마음으로 티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린델로프.

    린델로프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겨줄게.”

    그 말이 믿음직하게 들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 약속 했잖아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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