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 했잖아 (1) >
유령신보와 닮은 팬텀 드리블로 마티치를 제쳐내고 박스를 향해 달려드는 음바페.
그 뒤엔 린델로프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와!”
옆에 있던 스몰링이 빠르게 뛰어 나오며 린델로프를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린델로프는 이미 카드가 한 장 있는 몸.
이미 속도가 붙은 음바페를 그런 린델로프가 깔끔하게 막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기에, 스몰링이 음바페를 상대하기 위해 나선 것.
그러나,
스몰링은 알지 못했다.
이미 카드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파팡-!
“한 번 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뛰쳐나오고 있던 스몰링.
그런 스몰링의 발을 피하며 다시 한 번 팬텀 드리블을 연속으로 선보이는 음바페.
참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며, 무지하게.
이 순간, 지난 몇 달간 준비해 온 것을 보여주는 이 순간을 위해 무지하게 참고 있었단 말이다.
“안 돼!”
허공을 가르는 스몰링의 발.
그 옆을 지나치는 음바페.
스몰링은 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린델로프가 달려들고 있었다.
몸을 던지는 슬라이딩 태클로.
절대 해서는 안되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제쳐지는 동료들을 보며, 린델로프는 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툭-
“어어..!”
“지금은!”
촤아아아아-
가슴팍을 땅에 대고 주욱 미끄러지는 음바페.
질주를 방해받은 음바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삐이이이익-!”
“또 다시!”
“휘슬이!”
다시 한 번 박스 한 가운데를 가리키며 달려오는 주심.
“찍었어요, 또 찍었어요!”
오늘 경기 세 번째 피케이가 선언되는 순간.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이미 한 장의 카드가 있는데요! 이러면!”
“퇴장이네요, 퇴장이에요. 정말 큰 변수입니다, 퇴장입니다!”
린델로프에게 또 한 장의 옐로 카드, 그리고 레드 카드가 주어지는 것이었다.
“아...”
“젠장...”
머리를 감싸쥐는 맨유 팬들.
현실을 받아 들일 수 없는 듯 심판에게 격하게 항의하는 린델로프.
그러나, 그렇게 항의를 하는 린델로프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무의미한 항의라는 걸.
억울할 게 전혀 없는 퇴장이라는 걸.
그저,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었다.
피케이를 내주고, 더 이상 이 결승전에서 뛸 수 없게 된 자신.
팀에게 민폐가 되어 버리고 만 본인의 행동을 용납할 수 없을 뿐이었다.
“이건 큽니다!”
얼어 버리는 맨유의 분위기.
남은 시간은 35분여.
음바페가 들어온 상황에서 도훈도, 나겔스만 감독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많은 수비 숫자로 절대 공간을 내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거늘.
다른 누구도 아닌 린델로프가 퇴장을 당한다는 건 모든 승리의 전제가 성립될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빅토르.”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경기장에 머무르고 있는 린델로프.
그런 린델로프에게 다가온 건 도훈이었다.
도훈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 린델로프.
그러나, 도훈은 린델로프의 어깨를 꼭 감싸 안아 주었다.
그리고 귀에 말해 주었다.
“이겨줄게.”
이겨준다는 말.
마치 동네 오락실에서 할 일 없는 백수 형이나 해줄 법한 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한 선수가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듯한 말.
그러나,
린델로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경기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도훈이 빈 말을 하는 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진지한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제발.. 부탁한다..’
린델로프는 경기장을 나서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자신 때문에 팀이 준우승에 머물지 않게 해달라고.
“이번엔 음바페가 키커로 나서네요.”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이던 린델로프가 나가고 나서야 재개된 경기.
피케이의 키커로 나선 건, 피케이를 얻어낸 음바페.
음바페는 언짢은 얼굴로 골대를 응시했다.
보여줄 수 있었다.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모습을.
그러나 멋대로인 태클에 끊겨버린 돌파에 음바페는 기분이 매우 찝찝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은, 넣고 생각해야지.
“삐이이익-!”
휘슬과 동시에 공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음바페.
타타탓-
뻐어어어엉-!
왼쪽을 보고 때린 음바페의 피케이는,
슈우우우웅-
옆그물을 때릴 정도로 정확히 날아갔다.
철썩-!
“고오오오올-!”
“맨 시티의 두 번째 골!”
한 명의 퇴장.
그리고 리드를 잡는 골.
후반 11분, 맨 시티가 승기를 잡는 듯한 순간이었다.
“...”
킥 오프를 하기 위해, 하프 라인에 선 도훈.
동료들 쪽을 바라보니 느껴지는 빈 자리.
“래시포드가 빠지고 에릭 바이가 투입 됩니다. 이제 맨유에게 공격 자원은 백도훈 밖에 없다고 봐야 합니다.”
“한 점을 뒤진 상태에서 수비수를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맨유에겐 최악이군요.”
4-4-1의 전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투입했다 해도 수비가 강화되는 것도 아닌 최악의 상황.
도훈이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경기를 뛰며 이만한 위기감이 느껴지는 경기가 있었을까.
고개를 젓는 도훈.
없었다.
그렇기에,
‘걸맞는 결승전이군.’
결승전답다 싶었다.
파아앙-!
“경기가 재개 됩니다.”
도훈의 킥 오프로 재개되는 경기.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공은 시티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어딜가나, 맨 시티의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뒤로 넘깁니다.”
“급할 게 없죠.”
천천히 뒤로 공을 돌리는 시티 선수들.
답답한 상황이었다.
동수로도 공을 탈취해내는 게 쉽지 않은 맨 시티의 패스 플레이.
한 명이 적은 상태에서, 이젠 압박조차 시도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
전방 압박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도훈도 내려와 중원에 힘을 보태며 어떻게든 주도권을 완전히 내주는 것만은 막아야할 듯 싶었다.
‘하지만.’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경기를 뒤바꿀 수 있을까.
그건 그저 3대1, 4대1로 스코어가 완전히 벌어지는 걸 근근히 막아낼 수만 있을 뿐.
도훈마저 내려간다면 게임은 완전히 반 코트, 맨 시티가 맨유를 가둬놓고 패는 양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약속 지킬게.’
도훈은 린델로프에게 한 승리의 약속을 떠올리며,
전방을 향해 달려 나갔다.
파아앙-
파아앙-!
급할 것 없이 후방에서 공을 돌리는 맨 시티.
어떻게 해도 불리할 게 없는 맨 시티였다.
이미 진퇴양난인 맨유.
그러나 악독하게 더욱 효과적으로 맨유를 곤경에 빠뜨리는 방법으로, 시티는 하던 ‘그대로’ 플레이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 명이 없는 상대를 상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 명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플레이하는 것.
후방에서 공을 돌린다면, 상대는 압박을 하러 올라 오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이라도 시티에게 웃어주는 상황이었다.
올라오면 넓어진 뒷공간으로 침투 패스.
올라오지 않으면 그대로 시간이 흘러갈 뿐.
“백도훈 홀로 외롭게 공을 쫓습니다.”
“조직적인 압박이 아닌 1인 압박으로는 절대 맨 시티를 당황시킬 수 없을 텐데요.”
골대의 에데르송을 기점으로, 좌우로 넓게 벌리고 서 패스를 돌리는 시티 선수들.
그 넓은 반경을 도훈이 혼자서 쫓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
1인 압박이라니.
시티 선수들은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같이 압박을 올라오든, 다같이 내려앉든.
어느 쪽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아예 고려치도 않았던 건 지금처럼 한 명만 압박을 가해오는 것이었다.
그건 최악의 선택일 것이었으니까.
한 명이 압박을 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괜히 수비 숫자 한 명만이 줄어들 뿐이고, 체력만 낭비하는 일일 뿐.
언제나 위협적이고 두려운 존재였던 백도훈.
그러나 그런 백도훈도, 이런 위기 상황이 오니 판단력이 흐려진 것일까.
오기로 달려든다고 해봐야,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지 않을텐데.
지금같은 상황에선 백도훈이라고 해도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파아앙-!
“라포르테, 에데르송에게.”
파아앙-!
“에데르송, 스톤스에게.”
“끝까지 달려 갑니다!”
오른쪽 터치라인에서, 왼쪽 터치라인까지.
세 명의 선수가 패스를 이어간다면 3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 속도를 혼자 따라가 보겠다고 끝까지 달려가는 도훈.
‘오기로 밀어붙여봐야..’
공을 이어 받은 뒤, 달려드는 도훈을 보며 생각하는 스톤스.
압박을 피해내는 발 기술이나 패스 능력은 웬만한 미드필더나 공격수 못지 않은 게 스톤스.
그런 스톤스가 패스의 길을 찾으려는 순간.
“...!?”
스톤스의 얼굴에 낭패가 떠올랐다.
‘혼자가 아니야?’
전방의 카일 워커 쪽이나 페르난지뉴 쪽이 스톤스에겐 가장 안전한 패스 선택지.
그러나 그들에게 이미 한 명씩 붙어있는 맨유의 선수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다시 에데르송에게 넘기는 것.
그러나,
타타타탓-!
도훈이 그 길을 차단하며 달려들고 있었다.
백도훈은, 그리고 맨유는 오기로 달려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놔.’
간절함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순간 고민에 빠지는 스톤스.
만약, 지금이 챔스 결승전이 아니고, 달려드는 상대가 백도훈이 아니었다면 스톤스는 자신감 있게 발 기술로 한 명을 제쳐낸 뒤 패스를 넘기는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망설여 졌다.
그랬다가 뺏기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버린다.
결국 스톤스는 주춤거리다가,
뻐어어어엉-!
일단 전방으로 길게 차버리는 선택을 했는데,
그 땐 이미 도훈이 지척까지 다가온 뒤였다.
촤아아아아-
파아앙-!
“어엇!”
“걸립니다!”
몸을 날리며 슬라이딩 태클을 뻗은 도훈.
그 지점은, 스톤스가 공을 차내리라 생각되었던 바로 그 지점이었고 스톤스의 공은 도훈의 발에 걸리고 말았다.
또한, 공교롭게도 터치 라인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공.
그 공을 도훈은 벌떡 일어나며 갈무리해,
타타타탓-!
뒤돌아 박스를 향해 몰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도훈!”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박스를 향해 뛰는 페르난지뉴와 라포르테.
그러나 도훈의 속도는 무서웠고, 페르난지뉴와 라포르테는 미리 박스 안에서 자리를 잡는 게 아닌, 그저 달리며 도훈의 앞을 가로 막는데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음바페의 눈이 빛났다.
파팡-!
“팬텀!”
먼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페르난지뉴에게 유령신보를 선보이며 지나치는 도훈.
그 속도가 워낙 빨랐고, 진행 방향에도 방해가 없어 눈을 길게 깜빡였다면 도훈이 유령신보를 사용했는지도 몰라볼 속도.
그 다음은 라포르테였다.
그리고 그 순간 라포르테의 심정은, 아까 전의 린델로프와 똑같았다.
린델로프가 머리가 하얗게 되어 음바페에게 깊숙한 태클을 시도했던 그 때.
라포르테도 마찬가지였다.
무섭게 달려드는 도훈을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라포르테는 몸을 날리며 태클을 시도했다.
그리고,
거기서 도훈과 음바페의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피해야 하나.’
도훈은 라포르테의 태클을 미리 느낄 수 있었다.
그걸 피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굳이 피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라포르테의 태클이 자신의 발에 닿는다면.
라포르테는 린델로프의 운명을 따라갈 것이었고 경기는 한결 쉬워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미 도훈의 두 발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차이였다.
진짜와 진짜를 따라하는 가짜의 차이.
진짜는 생각하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저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그것이 100년간을 수련해 온 결과였다.
파팡-!
“제쳐냅니다!”
“라포르테까지!”
라포르테의 태클을 다시 한 번의 유령신보로 가볍게 피해내는 도훈.
그리고, 박스 한 가운데에서 완벽히 열리는 프리 찬스.
지켜보는 모든 동료들이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바라는 순간.
이걸 놓친다면 도훈이 아니었다.
뻐어어어어엉-!
슈우우우웅-
철썩-!
도훈의 동점 골이 작렬하는 순간이었다.
“이걸!”
“해냅니다, 이걸! 역시 백도훈!”
어려움은, 이겨내는 것.
음바페도 따라할 수 없는, 흉내낼 수 없는 도훈의 진정한 무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기어이 동점! 혼자서 공을 따내 동점 골까지 만들어내는 백도훈! 이게 백도훈입니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제가 했던 말이 부끄러워지네요. 안될 거라고 단정지었던 제가 죄송합니다!”
1인 압박으로 맨 시티의 실수를 유발해낼 수 있는 선수가 누가 있을까.
없다.
도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좋아! 이길 수 있어!”
“오케이!”“나이스였다, 도훈!”
방금의 그 실수 유도는 도훈 혼자서 해낸 게 아니었다.
간절함으로 따라와 준 동료들과 함께 만든 것이지.
‘약속, 지킨다.’
또한, 가장 간절함을 와닿게 해준 건 경기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던 린델로프였다.
약속했다.
이기게 해준다고.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었다.
“삐이이익-!”
경기가 재개 되었다.
< 약속 했잖아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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