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24화 (124/173)
  • < 보여줘라 (3) >

    “지금 휘슬은!”

    도훈이 여섯 명의 사이를 뚫고 나오는 순간.

    지옥을 탈출하려는 영혼을 붙잡는 듯한 손길이 도훈을 감싸 안는 순간.

    모든 걸 멈추게 만드는 휘슬이 울렸다.

    “찍었습니다!”

    “맨유도 페널티 킥을 얻습니다!”

    함성이 터져 나오는 맨유 서포터즈 석.

    페널티 킥이었다.

    불운의 실점을 그대로 되갚아줄 수 있는 찬스가 도훈의 돌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라포르테에게 옐로 카드!”

    “양 팀 모두 센터백들이 경고 한 장씩을 안고 남은 시간을 플레이하게 됐습니다. 이러면 수비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겠죠.”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

    공을 들고 모이는 맨유 선수들.

    그러나 동료들이 하는 말은, 모두 부탁한다는 말뿐.

    공은 도훈의 손에 들리게 되었고, 도훈은 페널티 마크 위에 신중히 공을 올려 두었다.

    그리고 네다섯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나, 도훈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상대 키퍼 에데르송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듯 양팔을 정신 사납게 휘젓고 있던 에데르송 키퍼는 도훈과 눈을 마주친 뒤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페널티 킥은 키커가 훨씬 유리한 게임이지만, 그렇기에 부담은 오히려 키커 쪽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키퍼에겐 밑져야 본전일 뿐인 게임이기에.

    때문에 키퍼들은 그 부담을 증폭시키기 위해 키커의 눈을 응시하며 선택에 혼란을 주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키퍼인 에데르송이 도훈의 시선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듯 했다.

    모든 걸 꿰뚫는 듯한 그 확신에 찬 눈.

    마치,

    ‘네가 어디로 뛸 지 알고 있다.’

    고 말하는 듯한 그 눈빛.

    “삐이이이익-!”

    그 눈빛에 에데르송의 선택이 처음과 달라지고 말았고,

    도훈은 지체 없이 공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타타탓-

    뻐어어어엉-!

    슈우우우웅-

    “...!”

    도훈의 슈팅은, 에데르송이 원래 뛰려고 마음 먹었던 방향으로 향했다.

    철썩-!

    “고오오오올-! 침착한 마무리!”

    “백도훈이 역시나 완벽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에데르송은, 처음 마음 먹었던 그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뛰고 있었고.

    도훈의 깔끔한 피케이 성공, 동점 골이었다.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결승전, 한 점을 뒤진 상태에서 동료가 차는 페널티 킥을 뒤에서 지켜볼 때에는.

    당연히 넣겠지라는 생각보다, 안들어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더 큰 게 당연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맨유 선수들은 그런 마음이 들다가도 킥을 준비하고 있는 선수의 등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

    경기 전 픽포드가 그랬던 것처럼.

    도훈의 등이 주는 믿음은 거대했다.

    “전반 22분, 1대1 동점을 만드는 맨유! 경기는 원점!”

    “양 팀 모두 피케이로 득점, 그러나 과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어찌보면 불운이 따른 맨유의 핸드볼, 그러나 백도훈은 자신의 능력으로 피케이를 유도해낸 것이나 다름 없죠.”

    또한 그 믿음에 언제나처럼 보답한 도훈.

    맨유 선수들은 셀레브레이션을 위해 모인 뒤, 크게 파이팅을 외치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믿고 가보자.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에겐 백도훈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원점에서 재개되는 경기.

    운 좋게 잡은 리드를 몇 분만에 놓치게 된 맨 시티는, 경기 시작 후 10분간으로 다시 돌아간 듯 플레이 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백도훈에게 자그마한 기회조차 주었다간 큰 일난다는 걸 확인했으니 조심스러워 질만도.

    괜히 배짱 좋게 플레이하다 결승전을 말아 먹느니, 차라리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는 게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게 꼭 수비적인 것만도 아니었다.

    “경기장을 넓게 쓰며 패스로 풀어 나갑니다, 맨 시티. 라포르테, 에데르송에게. 에데르송, 스톤스에게 벌려 줍니다.”

    공을 돌리는 위치를 완전히 낮춰, 골대 근처에서 공을 돌리는 맨 시티.

    자연히 높여지는 맨유의 압박.

    딱히 중원의 압박이 거센 맨유의 압박이 아니었건만, 굳이 낮은 위치에서 공을 돌리는 건 맨유를 끌어 들이는 듯한 인상.

    동점 골로 기세가 오른 맨유였기에 그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맨유는 알면서도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그 모습을 보며 편안히 벤치에 앉아 있는 과르디올라 감독.

    ‘일단은.’

    불안한 모습을 노출하며 동점 골을 내주긴 했으나, 일단은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듯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표정.

    빠르게 움직이며 대형을 만들고, 좋은 발 기술로 공을 뺏기지 않고 돌리는 데에는 도가 튼 시티 선수들이었다.

    전반전은 그걸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애당초의 목표.

    ‘갉아 먹는다.’

    언뜻 보면 아슬아슬할 정도로 공을 돌리는 시티 선수들.

    그러나, 그 자신감과 기술은 결과적으로 맨유 선수들을 한 발이라도 더 뛰게끔 만들고 있었다.

    패스로 압박을 벗어나는 쪽과, 공을 빼앗아낼 요량으로 압박을 가하는 쪽.

    양 쪽의 체력 소모는 당연히 후자 쪽이 훨씬 더 크다.

    맨 시티는 그걸 노리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음바페가 아직 벤치에 앉아 있는 이유와 맞물리기도 했다.

    뻐어어어엉-!

    “한 번에 길게!”

    그렇기에 전방 압박을 담당하는 공격수들만 체력을 빼놓아서는 의미가 없는 법.

    한 번에 길게 롱 킥을 때리는 에데르송.

    에데르송의 킥은 높아져 있던 맨유의 수비 라인 뒤를 향해 날카롭게 떨어졌고, 오른쪽의 리로이 사네가 번개처럼 질주했다.

    “루크 쇼와 스피드 경쟁!”

    쇼도 스피드가 약점으로 꼽힐 정도는 아닌 선수.

    그러나 스타트 차이가 컸다.

    에데르송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스타트를 끊은 사네와, 뒷 공간에 대한 의식이 부족했던 쇼.

    곧바로 맨유 수비진은 박스를 향해 전력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고, 스털링과 메시 역시 박스를 향해 달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찾았다.

    타타탓-

    공을 잡아 오른쪽 사이드까지 깊게 파고드는 사네.

    사네는 깊숙한 곳에서 맨유 선수들이 깊숙히 내려올 때까지 발재간을 부리며 기다렸다가,

    파아앙-

    뒤의 워커에게 내줬다.

    뻐어어어엉-!

    그리고 워커가 박스 안으로 반달같은 논스톱 크로스를.

    크로스는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갔으나,

    파아앙-!

    빠르게 뛰어 나온 픽포드 키퍼가 낚아챘다.

    “역습 가나요!”

    공을 잡자 마자 던질 듯 하던 픽포드 키퍼.

    그러나, 픽포드 키퍼는 도훈의 사인을 보고 던지려던 것을 멈추었다.

    도훈에게 곧바로 던져주려 했는데, 도훈이 손을 들어 보여 던지지 말라는 사인을 줬기 때문.

    때문에 픽포드 키퍼는 공을 끌어안고 선수들이 제 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겔스만 감독.

    도훈의 판단은 한 번의 역습 찬스보다, 후반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양 팀의 체력 보유상태 차이가 꽤나 난다는 것.

    맨유는 일주일 전까지 전력을 다한 상태였고, 상대는 아니었다.

    소화한 경기 수 자체도 달랐고.

    상대는 그걸 노리고 있다는 게 도훈의 눈에는 분명히 들어오고 있었다.

    동료들은 경기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하는 것을, 도훈은 넓게 볼 수 있었으니.

    또한 벤치에 앉아 있는 음바페의 존재가 계속해서 신경 쓰이기도 했고.

    분명히 상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었기에, 도훈은 템포를 쉬어가는 선택을 했다.

    역습에 재역습, 이런 구도는 절대 맨유에게 좋은 구도가 아니었다.

    “후우, 후우.”

    그렇게, 조금은 소강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 전반 40분이 지나는 무렵.

    아니나 다를까.

    맨유 선수들의 호흡은 시티 선수들 보다 꽤나 가빠져 있는 상태.

    시티는 여전히 후방에서 공을 돌리며 맨유를 끌어 들이고 있었고, 도훈은 선수들에게 성급히 달려들지 말 것을 주문하며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리고 시간을 흘러,

    “삐이익, 삐이이익-!”

    전반전이 마무리가 되었다.

    “네, 전반전 끝이 났습니다. 1대1, 동점. 상당히 치열한 전반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리그에서 맞붙었을 때와는 상황의 차이가 보이는 전반전이었는데요. 후반전은 어떻게 흘러갈지, 정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전반전이 끝나고, 빠르게 드레싱 룸으로 향하는 선수들.

    모든 선수들이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을 때,

    음바페는 서브 선수들과 경기장에 남았다.

    그리고 입고 있던 점퍼를 벗으며,

    타타타탓-!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보여줄 것이었다.

    지금부터, 자신이 이 결승전 무대를 지배하는 모습을.

    경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후반전이 시작 되겠습니다.”

    시작되는 후반전.

    어떻게 될 지 알 순 없지만, 이 45분으로 유럽 챔피언이 결정되는 순간.

    “음바페 선수가 후반 시작과 동시에 리로이 사네 선수와 교체 되었습니다.”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나오는 선수들을 지켜보며, 맨 시티 서포터즈 측에서 탄성이 일었다.

    킬리안 음바페가 유니폼을 입고 뛰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

    정말 부상이었는 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랬다면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투입이 되지는 않을 터.

    역시 음바페는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과연 그 의도가 무엇이었을 지 후반전 동안 경기장에서 음바페가 보여주길 기대할 뿐.

    “삐이이익-!”

    변화와 함께 후반전이 시작 되었다.

    “이제부터는 정신력 싸움입니다. 시즌 초였다면 뭐 80분부터 정신력의 싸움이다, 라는 얘기를 하겠지만요. 오늘 경기는 마지막의 마지막이니까요. 이미 시작부터 체력의 맥시멈이 낮은 상태였을 겁니다. 정신력 싸움은 지금부터에요.”

    “누가 더 우승컵을 간절하게 바라느냐군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맨 시티는 4-4-2의 형태로 전형을 바꾸었다.

    음바페가 최전방, 메시가 그 아래에 서고 스털링이 미드필더로 내려가며.

    그 모습에 경계심을 잔뜩 보일 수밖에 없는 맨유.

    체력이 어느 정도 떨어져 발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지금 상태에서, 음바페가 뒷 공간을 헤집고 다닌다면 분명히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역습 상황이라도 나오게 된다면, 과연 음바페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맨유도 곧바로 교체가 있네요?”

    “루카쿠가 나오고 프레드가 투입 됩니다. 후반 시작 5분만에 교체. 나겔스만 감독도 일단 발 빠르게 변화에 대처합니다.”

    후반이 시작되기 전.

    나겔스만 감독은 도훈과 따로 상의를 했었다.

    음바페가 몸을 풀고 있다는 소식을 확인한 뒤, 분명히 음바페가 나올 것이라는 걸 예상했던 둘이었고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서 상의를 한 것.

    상의 결과 둘의 의견은 정확히 일치했다.

    세 가지 부분에서.

    하나, 절대 역습 상황을 내줘서는 안된다는 것.

    둘, 수비 숫자를 늘려 촘촘히 지역을 방어해야 한다는 것.

    셋, 공격은 도훈이 혼자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

    그 상의 내용은 프레드의 투입으로 그라운드에 적용이 되었고, 맨유는 4-5-1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데 브라이너, 메시에게. 메시가 전반과는 다르게 많이 내려와 기회를 찾습니다.”

    “압박의 강도가 약해진 지금, 2선에서 움직이는 메시는 전반보다 더 위협적일 수 있습니다.”

    음바페의 투입과, 그에 따른 맨유의 대처.

    분명한 것은 그 대처까지도 생각을 해두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었다는 것이었다.

    수비적으로 나올 게 분명한 상대를 메시의 드리블과 패스로 균열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

    하지만,

    “대열이 상당히 잘 갖춰져 있습니다.”

    “집중력이 좋아요, 맨유.”

    여의치는 않았다.

    숫자를 늘려 촘촘히 서 공간을 내주지 않는 맨유.

    전방의 음바페에게 연결 되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 순간.

    “음바페에게. 내려와서 받습니다.”

    음바페가 박스를 나오며 패스를 직접 이어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박스를 향해 튕겨져 나갔다.

    파아앙-

    타타탓-!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돌진하는 음바페.

    반대편 시티의 진영에선 도훈이 기다리고 있다.

    돌파에 실패한다면 곧바로 역습이기 때문에 시티도 조심스럽게 돌파구를 찾고 있던 입장.

    그러나, 음바페는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보여준다.’

    음바페의 머릿속에는,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가득할 뿐이었다.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도훈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파팡-!

    “팬텀!”

    자신을 막아서는 마티치를 향해 달려든 음바페는, 번개처럼 발 사이에서 공을 튕겼다.

    팬텀 드리블.

    평소 음바페의 역동적인 드리블 스타일과는 조금 다른 느낌.

    그 모습은, 마치 유령처럼 마티치를 제쳐내는 모습이었다.

    “...!”

    도훈의 유령신보와 너무나 닮아있던 것이었다.

    < 보여줘라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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