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23화 (123/173)
  • < 보여줘라 (2) >

    왼쪽 사이드로 공을 차놓고, 데 브라이너와 베르나르도 실바를 뚫고 나온 도훈.

    아마, 맨 시티가 오늘 도훈을 처음 상대해보는 거라면 필시 그 돌파에 당황하며 공간을 내주고 말았을 것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도훈을 좁게 둘러싸고 있었고, 그 사이를 뚫고 나오리라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시티 수비수들은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동료들이 에워싸고 있어도, 뚫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응도 빠를 수 있었고.

    촤아아아-

    파아앙-!

    “한 발 빠르게 걷어 냅니다, 존 스톤스!”

    “드디어 백도훈에 대한 내성이 생긴 걸까요. 좋은 집중력 입니다!”

    길게 차놓았던 공을 슬라이딩 태클로 끊어내는 스톤스.

    그 모습을 보며 이번엔 시티의 서포터즈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다르다.

    잘 준비가 된 시티의 모습은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강력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리그에서도 맨유를 위기 비스무리한 순간까지 몰아 넣은 적이 있던 시티였다.

    그런 시티가 수비에서도 잘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니, 오늘 결승전도 이전처럼 패배가 정해진 것처럼 흘러갈 것 같진 않았고 때문에 꼭 시티 팬들뿐만 아니라 멋진 결승전을 바라는 중립 팬들도 시티에게 박수를 보내었다.

    분명 맨유를 응원하는 맨유 팬들과, 도훈을 응원하는 밀란 팬들까지 합해져 맨유를 응원하는 팬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으면 언더 독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

    분명한 건 시티가 언더 독의 도전자라는 것이었고, 때문에 오히려 경기장에서는 시티의 좋은 플레이가 나올 때마다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재밌네.’

    그런 반응이, 도훈은 나쁘지 않았다.

    애초에 도훈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장이 도르트문트의 홈 구장, 이두나 파크일 정도니까.

    도훈은 이런 환경에서 상대를 박살내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시티가 소유권을 가져 옵니다.”

    어쨌거나 스톤스의 좋은 집중력으로 공을 가져오는데 성공한 시티.

    도훈이 먼저 선공을 했으니, 시티도 대답을 해줄 차례.

    사실 수비 뿐만 아니라, 시티가 더욱 공을 들여 준비한 건 공격 작업에서 였다.

    언뜻 보면 중원을 활동량 가득한 선수들로 채워 수비력에 신경을 쓴 듯 보이지만,

    “데 브라이너. 실바에게. 끊임 없이 공을 돌리며 안정감을 되찾고 있습니다.”

    사실은 더 효과적인 공격을 위해 고안해낸 선수 배치이기도.

    “리오넬 메시가 의외로 내려오지 않네요. 전방에서 패스를 기다립니다?”

    “오늘은 마무리의 역할에 집중 시키려는 것 같아요. 사실 맨 시티 선수들도 챔피언스 리그의 상위 토너먼트 경험이 많은 선수들로 구성된 것은 아니죠. 메시만이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있고, 또한 골을 기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도, 맨유 상대로 말이죠.”

    박스 근처에서 머무르며 볼 배급을 기다리는 메시.

    평소와는 다른 모습.

    이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선택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골도 넣어본 놈이 넣고 우승도 해본 놈이 한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긴 하지만, 메시는 맨유와의 챔스 결승을 두 번이나 경험해봤고 그 두 번 모두에서 골을 기록한 바 있었다.

    또한, 메시는 일단 챔스 결승에 오른 이상 한 번도 준우승을 해본 적이 없었다.

    준우승은 모르는 게 메시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런 메시에게 수비 가담을 최소한으로 부여하고, 마무리에 집중시키며 해결사의 역할을 맡기려는 것.

    여러 번의 창의적인 공격보다는, 한 방 한 방을 묵직하게 노리며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마무리를 도와줄 동료들은 넘쳤다.

    파아앙-!

    “스털링에게.”

    “곧바로 치고 들어가요! 빠릅니다!”

    왼쪽의 스털링에게 연결되는 공.

    스털링은 공을 잡자 마자 엉덩이를 흔들며 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왼쪽으로 파고 드는 스털링.

    “확실히 양 쪽 풀백 쪽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맨유의 성적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죠.”

    스털링의 스피드를 완벽히 따라가지 못하고 쫓는 것이 한 발 늦는 디오고 달롯.

    맨유의 스쿼드 중 확실히 무게감이 떨어지는 건 좌우 풀백 쪽인 것이 사실.

    하지만 그렇게 사이드를 파고 들어도, 박스 안에 메시가 있는 이상 크로스를 통한 공격이 가능할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메시가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가장 호흡을 잘 맞췄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알베스, 알바같은 사이드 자원들이었다는 것.

    뻐어엉-!

    “낮은 크로스!”

    스털링에게 시선이 집중된 순간.

    뒤 쪽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가져가는 메시.

    그런 메시에게 스털링이 컷 백을 내줬다.

    그 컷백을 논스톱 왼발로 때리는 메시.

    뻐어어엉-!

    그러나,

    슈우우웅-

    파아앙-!

    “골대!”

    “첫 슈팅부터 골대를 강타하는 메시!”

    골대 강타.

    마치 2002년 월드컵 황선홍의 폴란드 전 골을 보는 듯 했으나 메시의 슈팅은 골대를 맞고 튕겨 나왔다.

    픽포드 키퍼도 순간 반응을 하지 못하고 꼼짝 못했던 순간.

    시티 팬들은 골이 들어간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가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고, 맨유 팬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지만 상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세컨 볼!”

    “집중해야죠!”

    골대를 맞고 정면으로 튕겨 나온 공.

    박스 안 맨유의 수비 숫자는 많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다시 메시에게 흘러가는 공.

    메시는 곧바로 재차 슈팅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슈팅이,

    파아아앙-!

    픽포드 키퍼 앞에서 중간에 차단 되었다.

    그리고,

    꿀꺽-

    빅토르 린델로프가 굳은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삐이이이익-!”

    “어엇, 지금은!”

    “찍었어요, 찍었어요!”

    단호히 박스 안의 한 곳을 가리키며 휘슬을 부는 주심.

    메시의 재차 슈팅은, 린델로프의 손에 맞고 굴절이 되어 버렸다.

    핸드볼 파울.

    페널티 킥이 선언되는 순간.

    거기에 주심은 린델로프에게 옐로 카드까지.

    “아아, 맨 시티가 먼저 기회를 잡습니다!”

    묘한 불길함이 흘러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이전 리그 경기와 다르게 경기를 준비해 온 맨 시티.

    음바페가 아닌 메시가 공격의 주인공이 되는 오늘, 역동적이고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 묵직함은 이전보다도 훨씬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맨유에겐 운까지 따르지 않는 듯.

    페널티 킥까지.

    “데 브라이너가 준비하네요.”

    “메시가 차지 않습니다.”

    키커로 나선 건 데 브라이너.

    메시가 얻어내긴 했지만, 원래 키커로 정해져 있던 데 브라이너가 나섰다.

    “삐이이익-!”

    “후우.”

    휘슬이 울리자 크게 숨을 훅 내쉰 뒤, 공을 향해 달려드는 데 브라이너.

    타타탓-

    뻐어어어어엉-!

    데 브라이너는 골대를 보지도 않고 있는 힘껏 슈팅을 때렸고,

    슈우우우우웅-

    슈팅은 골망을 찢을 듯 골대 한 가운데에 꽂혔다.

    철썩-!

    오른쪽을 예상하고 뛴 픽포드 키퍼의 수싸움 패배.

    “고오오오올-!”

    “맨 시티가 선제 골을 터뜨립니다! 맨 시티가 먼저 앞서갑니다!”

    전반 15분, 데 브라이너의 선제 골로 맨 시티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

    불운에 이어진 선제 실점.

    평소처럼 흘러가지 않는 경기에, 가뜩이나 긴장감을 가지고 경기에 나선 맨유 선수들에겐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흐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

    그게 눈에 보일수록, 도훈은 평소보다 더 공을 달라고 외치며 활발하게 움직였고 동료들도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도훈에게 공을 몰아주었다.

    “백도훈.”

    “시티 선수들은 오로지 백도훈만을 막기 위한 진형을 짜고 있습니다. 이걸 잘 풀어 나가야 할텐데요.”

    다시 중앙에서 공을 잡고.

    전방을 바라보며 지난 번 결승전을 떠올리는 도훈.

    그 땐, 밀란의 동료들과 함께였다.

    상대는 강했었지만, 도훈은 거의 혼자의 힘으로 모든 걸 이겨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었다.

    도훈은 그 때의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렸다.

    지금 동료들에게 흐르기 시작하는 불안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결승전에서, 익숙하지 않은 위기 때문에.

    하지만 밀란에선 언제나 이래 왔다.

    밀란에선 언제나 위기 속에서 자신보다 거대한 상대를 쓰러 뜨려야 했고, 도훈은 그것에 익숙했다.

    때문에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자신의 능력은 100퍼센트 그 이상이 발휘된다는 걸.

    모두가 익숙치 않은 이 결승전.

    이 분위기에, 오히려 도훈은 익숙함을 느꼈다.

    이 분위기를 뚫고 멋지게 빅 이어를 들어 올렸던 그 익숙함을.

    타타탓-!

    “다시 혼자서 몰고 올라가는 백도훈!”

    “좀 더 동료들을 활용한다면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다시 하프 라인 위를 향해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이번에도 시티는 조직적으로 도훈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또한 후방 라인도 그 저지선이 언제든 뚫릴 수 있다는 걸 인지하며 수비 선을 덧대었고.

    ‘해보자.’

    그 두터운 라인에 달려들며, 도훈은 해보자는 짧은 생각을 한 뒤,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고 그저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기 시작했다.

    툭, 툭-!

    달인의 경지에 오른 단경보법.

    짧게 짧게, 공이 발에 붙은듯이 공을 달고 올라가는 도훈.

    역시나 상대는 사방으로 도훈을 둘러쌌지만, 달려들지는 않은 채 도훈과 같이 움직였다.

    오히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움직이는 듯한 도훈.

    그러나 이대로 갇힌 채 움직인다면 최종적으론 여기에 더해 후방 수비수들까지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밖에.

    일단은 그 포위망을 빠져 나가는 것이 먼저인 듯 보였다.

    “계속 올라 갑니다, 어디까지!”

    “점점 포위망은 두터워 집니다! 제 발로 늪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주변을 봐야죠!”

    하지만, 도훈은 그저 계속해서 공을 몰고 올라갔다.

    이미 주위엔 동료보다 상대가 더 많았고, 도훈이라고 해도 동료에게 패스 길을 찾기란 쉽지 않은 곳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포위망에 상대 수비수들까지 합세하는 곳까지 왔고.

    그저 상대 골대와 가까워 졌을 뿐, 오히려 상대의 가장 깊숙한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른 도훈.

    몰린 것처럼 보였다.

    ‘몰린 게, 맞아.’

    아니, 몰린 게 맞았다.

    도훈도 알고 있었다.

    이미.

    그러나, 몰렸다는 표현보다는 스스로를 몰아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었다.

    도훈은 스스로 그 막다른 골목에 자신을 몰아 넣었다.

    ‘이 정도라면, 200퍼센트.’

    혼자서, 보여준다.

    스스로를 몰아 넣은 건, 해보여 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고, 배수의 진을 치듯 자신의 극한까지 끌어내기 위한 도훈의 선택이었다.

    쉬이익-

    쉬이이익-!

    ‘지주신보.’

    포위망, 그 가운데서 회오리 치기 시작하는 도훈의 다리.

    그걸 지켜보는 12개의 눈.

    도훈의 주변을 둘러싼 것은 여섯 명이었다.

    그 여섯 명의 12개의 눈은, 8개로 보이는 다리 중 진실의 다리를 찾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단 하나의 눈만 진실을 볼 수 있어도, 막는 입장에서는 이길 수 있는 싸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누군가는 불리하고 누군가는 유리한 싸움.

    문제는,

    양 쪽 다 그걸 알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하나만 찾으면 돼.’

    막는 쪽은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간파 당하면 끝이다.’

    뚫는 쪽은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양 쪽이 내는 간절함의 힘이 달랐다.

    ‘본건가?’‘보인다?’‘보였다!’

    동시에 머리 위로 떠오르는 여섯 개의 느낌표.

    도훈의 발에 시선을 꽂아 두었던 여섯 명은, 동시에 도훈의 두 다리를 볼 수 있었다.

    여덟 개의 다리가 아니라 두 개의 ‘진짜’ 다리.

    그게 보인 순간, 현혹될 것은 없었고 남은 건 멈춰있는 공과 허공을 휘젓고 있을 뿐인 다리였다.

    촤아아-

    그리고, 동시에 여섯 개의 발이 공을 향해 날아 들었다.

    좋다구나 하며.

    하지만.

    “...!”“...!”

    여섯 명의 머리 위에 떠올랐던 느낌표가,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이번엔 몇 개의 물음표도 섞인 채로.

    분명히 그들이 본 건 도훈의 진짜 다리, 두 다리가 맞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 두 다리를 볼 수 있었던 건 도훈의 지주신보를 간파해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툭-!

    그저 도훈이 지주신보를 멈췄기 때문이었다.

    “저 사이를!”

    달려드는 여섯 개의 다리를 피해, 공을 살짝 툭 찍어 올린 도훈.

    만약 여섯 명이나 되는 상대가 엇박자로 발을 뻗는다면, 그 다리 모두를 피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도훈에게 진짜 다리는 두 개 뿐이니까.

    하지만, 상대가 동시에 다리를 뻗을 수 있게 만든다면.

    그렇다면 한 번의 컨트롤만으로 상대의 다리를 피해낼 수 있었다.

    때문에, 도훈은 그것을 유도한 것이었다.

    지주신보를 활용하다 멈추는 것으로.

    마치 상대가 지주신보를 간파해낸 것처럼 느끼도록.

    파아앙-!

    살짝 띄운 공을 다시 공중에서 한 번 더 띄워올려, 정면을 가로막고 있던 라포르테의 머리 위를 넘기는 도훈.

    마치 좀비들의 감옥을 탈출하듯.

    도훈은 좁은 틈을 밀치며 공을 향해 포위망을 몸으로 뚫고 나왔다.

    그러나, 그 쯤 되니 상대도 절박했다.

    뻔히 돌파를 허용한다면 꼼짝 없이 1대1.

    백도훈에게 1대1을 내준다는 건 실점이나 다름 없는 일.

    거칠게 도훈을 붙잡는 손길들.

    “큭...!”

    결국 그 손길들에 도훈의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순간.

    “삐이이이익-!”

    휘슬이 울렸다.

    < 보여줘라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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