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22화 (122/173)

< 보여줘라 (1) >

“쥐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입니다.”

8만여 명의 관중을 수용 가능한 거대한 스타디움, 쥐세페 메아차.

또는 산 시로.

경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은, 아니 밀라노 도시 전체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팀을 응원하기 위해 온 맨체스터의 팬들, 경기 자체를 보기 위해 온 축구팬들, 낙천적인 현지인들까지.

“오오오~~”

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모여 뿜어내는 열기는 밀라노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거리에서 이 팀 저 팀의 응원가들이 끊이지 않은 건 이미 어젯 밤부터일 정도로.

“이 쪽입니다.”

가득 찬 관중석.

VIP석도 축구팬이라면 모두 알만한 별들로 하나둘씩 채워지고 있었다.

피파 회장, 유에파 회장부터 시작해 여러 팀들의 감독들, 선수들도 얼굴을 비추었다.

또한 지네딘 지단, 파울로 말디니, 호나우두, 히카르두 카카 등 챔피언스 리그를 수놓았었던 레전드들도 자리를 잡고 멋진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결승전, 개막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유명 가수들의 공연으로 드디어 시작되는 개막식.

그리고, 역대 뜨거웠던 결승전들의 명장면이 스크린을 통해 지나가기 시작했다.

“저거 하나로 평생 우려먹을 생각이구만.”

빠질 수 없는 지단의 결승전 발리 골도 나오고.

마지막엔 도훈의 지난 번 결승전의 결승골이 흘러 나왔다.

“오늘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분명 눈이 즐거울 거야. 결과가 어찌되든.”

개막식도 막바지를 향해 다가가고, 점점 경기 시작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손을 비비며 기대감을 높여 갔다.

어쩌면 이 세상 어느 경기보다 수준 높은 단 한 경기.

유에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이제, 선수들이 입장하겠습니다.”

그 경기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선수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터널에 일렬로 서 있었다.

오늘, 이 단 한 경기.

단 한 경기로 유럽의 챔피언이 가려진다.

맨유가 매 번 맨 시티를 이겼건, FA컵을 우승했건, 리그를 전승으로 우승했건 그건 다 필요 없는 이야기.

그 해의 유럽 챔피언은 빅 이어를 든 팀일 뿐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긴장감이 더 있어 보이는 건 맨유 선수들이었다.

어쩌면 더 잃을 게 많은 쪽이니까.

이겨야 본전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맨유였다.

그 가운데, 유독 긴장한 듯한 한 선수.

“후우..”

이런 큰 무대가 익숙치는 않은 조던 픽포드였다.

픽포드도 28살의 나이에, 월드컵 4강까지 경험해 본 선수.

그러나, 오늘의 무게감은 왠지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것이 결승전.

모든 걸 갖느냐, 모든 걸 잃느냐의 싸움 앞에 놓인 무게감인가.

계속해서 점프를 해보고, 팔 다리를 털어봐도 쉽게 떨쳐지지 않는 긴장감에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는 픽포드였다.

그런데,

“...”

순간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동료의 등이 눈에 들어오자, 신기하게도 픽포드는 마음이 가라 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BAEK

7

그 유니폼에 적힌 이름은, 픽포드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기 충분했다.

“...”

도훈은 가만히 눈을 감고 선수들의 가장 앞에 서 있었다.

도훈은 지금 외부의 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완전한 내면 집중.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기에 모든 신경을 집중 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마구 용솟음쳐 오르는 기.

당장이라도 분출되어 모든 걸 휘저어놓고 싶어하는 기.

도훈은 그 기를 억누르며 꽈악 응집시켰다.

이 녀석이 방출되어야 하는 건, 휘슬이 울린 후 부터니까.

“선수, 입장.”

관계자의 사인과 함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서기 시작했다.

“맨체스터의 두 팀이 빅 이어를 두고 맞붙게 되겠습니다.”

“집안 싸움을 남의 집에서 하게 됐네요.”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더비가 열리는 이 곳에서, 오늘은 밀라노 더비가 아닌 다른 더비가 펼쳐지게 되었다.

“자, 근데 말이죠. 양 팀의 선발 라인 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죠?”

“예. 일단 먼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인 업부터 살펴 드리겠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2-3-1)]

GK 조던 픽포드

CB 크리스 스몰링

CB 빅토르 린델로프

LB 루크 쇼

RB 디오고 달롯

MF 안데르 에레라

MF 네마냐 마티치

MF 마커스 래시포드

MF 백도훈

MF 폴 포그바

FW 로멜루 루카쿠

“앙토니 마샬 선수가 선발 명단에 없군요. 대신 그 자리에 폴 포그바 선수가 서고요. 중원에는 네마냐 마티치 선수가 출전 합니다.”

“사실 마샬 선수가 체력 문제로 후반기 들어서 폼이 약간 죽은 듯한 인상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볼 수 있겠죠. 맨유의 선발 명단에는 그렇게 놀라운 점이 없습니다.”

“문제는 맨 시티겠죠.”

[맨체스터 시티 (4-3-3)]

GK 에데르송

CB 아이메릭 라포르테

CB 존 스톤스

LB 파비안 델프

RB 카일 워커

MF 페르난지뉴

MF 베르나르도 실바

MF 케빈 데 브라이너

FW 라힘 스털링

FW 리로이 사네

FW 리오넬 메시

“메시가 원 톱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킬리안 음바페가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고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 합니다.”

“상당히 의외죠. 보통 메시는 윙 포워드로 배치되어, 2선 자원으로 자유롭게 필드 위를 움직이며 경기를 풀어갔고 전방에 음바페가 배치되어 빠른 침투와 마무리를 맡았었는데요. 이게 맨 시티의 후반 연승 공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음바페가 선발 출장 하지 않습니다.”

“경기 전 기사로 접하기에는 음바페에게 경미한 부상이 있다고 하는데, 일단은 벤치에서 시작합니다.”

“그건 아마 지켜봐야 알 것 같고요. 연막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뭔가가 있긴 있을 거라는 겁니다. 연막을 위해 팀의 에이스를 선발 제외시키진 않겠죠.”

3일 전 훈련에서 조끼를 입었던 메시, 입지 않았던 음바페.

선발은 조끼 팀이었다.

데 브라이너, 라포르테, 워커 등의 붙박이 주전들이 모두 조끼를 입었었으니 당연한 일.

그러나, 벤치에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음바페의 표정은 차분해 보였다.

선발 제외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거나, 정말 부상 때문에 경기에 나서지 못한 탓에 울상인 표정이 아니었다는 것.

‘저 놈 성격에..’

그 얼굴을, 그라운드 위에서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바라보는 도훈.

누구보다 강한 승부욕을 가진 녀석이 선발 제외를 당하고 저렇게 편안한 얼굴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도훈이었다.

그렇다면, 뭐가 있긴 있다고 봐야할 터.

사실 경기 1시간 전 발표된 선발 라인 업을 확인하고, 맨유 쪽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음바페는 분명 시티의 중심 선수였으니까.

그런 음바페의 선발 제외라는 건, 맨유로 치면 도훈이 선발 제외된 것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둘이 가진 팀 내 무게감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그럼, 보시죠.”

“경기가!”

“삐이이이익-!”

“시작 됩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거대한 함성 소리와 함께 시작 되었다.

무대가 무대인만큼.

올 시즌 맨 시티를 상대로 전승을 거둔 맨유지만 시작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공기에 적응하는 것.

제 플레이만 할 수 있다면 상대에 관계없이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에, 일단 도훈과 포그바는 중원에서 넓게 동료들에게 패스를 툭툭 건네며, 동료들이 공을 한 번씩 만질 수 있도록 했다.

오늘 선발로 나서는 맨유 선수들 중 챔스 결승 경험이 있는 건 포그바와 도훈 뿐.

둘이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게 중요했다.

매 번 이겨왔던, 긴장할 것 없는 시합이라는 걸 계속해서 말하듯 플레이해야 하는 것.

“시티는 딱히 강하게 전방 압박을 가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라인을 정해둔 것 같아요. 이 이상부터는 압박 대신 기다린다 라는 식으로요. 실제로 백도훈 선수가 서 있는 지점까지 공이 오면 강하게 프레싱이 가해지지만, 그 아래부터는 공간이 넓습니다. 확실히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시 같습니다.”

맨유와 마찬가지로 저들도 조심스럽게 경기를 시작하는 듯.

전반 10분간은 폭풍 전야같은 느낌을 주는 경기가 흘러 갔다.

“...”

“...후우. 왜 손에 땀이 나지.”

함성 대신 묘한 침묵으로 그 10분간을 지켜본 관중들은 손에서 난 땀을 바지에 닦았다.

평소 여느 주말의 리그 경기였다면, 분명히 불만을 토했을 것.

그러나 지금은 불만 대신 오히려 기대감이 증폭되기만 할 뿐.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 고요함 뒤에, 분명히 어마어마한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걸.

“백도훈.”

중앙에서 공을 잡는 도훈.

확실히 동료들이 평소보다 조금은 긴장을 더 한 게 느껴지는 것이, 동료에게 공을 주면 그 동료가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굉장히 짧았다.

그리고 그 다음의 패스를 꼭 자신에게 다시 건네준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불안하면, 당연히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맨유 선수들에겐 도훈이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였고, 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도훈에게 계속해서 리턴 패스를 주고 있는 것.

동료들의 기세와 자신감을 살려주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도훈은 느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을 것이었다.

하나는 동료들이 멋진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서포트 해주는 것.

아니면 또 하나는,

“돌아 섭니다!”

“속도를 높입니다!”

동료들의 믿음에 부응하는 플레이를 선보여 그 믿음을 더욱 공고히 만드는 것.

도훈이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왜냐면,

그 편이 더 쉬우니까.

“시작이다..”

“가라!”

순식간에 돌아서며 하프 라인을 넘는 도훈.

그와 동시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시작.

하프 라인부터는 시티가 확실히 그어놓은 선을 넘는 것이었기에, 곧바로 사방에서 압박이 조여들어 오기 시작했다.

“베르나르도 실바와 데 브라이너의 압박!”

오늘 시티의 중원은 활동량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확실한 컨셉.

창의적인 공격작업 보다는 수비와 중원 장악력에 중점을 두겠다는 말.

그만큼 도훈이라고 해도 그 사이를 쉽게 뚫고 나가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부터 도훈이 쉬워 보이는 난관만 뚫고 나갔다고.

그 압박 속으로 뛰어드는 도훈의 모습에는 거침이 없었다.

‘달려들지 않는다라.’

도훈은 공을 가지고 올라가며 주변에 모여든 상대의 동태를 살폈다.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있었다.

그저 도훈의 진행 방향대로 따라 움직이며 사방의 각도를 없애고 있을 뿐.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 역시도 도훈에 대한 대비를 준비해 왔을 터.

괜히 달려들다 제쳐지지 말고, 끝까지 각도만 좁히며 공간을 내주지 않겠다는 것 같은데.

그것도 ‘따라올 수 있을 때’ 의 말이지.

파아앙-!

타타타탓-!

주변을 둘러싼 상대의 너머를 슬쩍 확인한 도훈은, 상대 사이로 공을 길게 차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상대도 순순히 속도 싸움을 해주진 않았다.

도훈이 선택한 틈은 데 브라이너와 실바의 사이였고, 그 둘은 곧바로 어깨를 넣으며 도훈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솟구치고 있거든..’

둘로는 도훈을 막을 수 없었다.

한참 전부터 날 뛰고 싶어하던 몸 속의 기.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단전에 가두어 두었던 그 기를, 도훈은 순간 전신으로 퍼뜨리며 데 브라이너와 실바의 어깨를 같은 어깨로 밀쳐 냈다.

“큭...!”“익...!”

엄청난 힘에 당황하는 데 브라이너와 실바.

도훈은 그 둘을 몸으로 뚫고 나와,

타타타타탓-!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와아아아아앗-!”

“가라-!”

관중석의 한 쪽 사이드,

맨유 응원석과 중립 응원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있던 과르디올라 감독이 고개를 돌려 음바페를 바라 보았다.

마치, 네가 보여줘야할 것이 저런 것이라는 것처럼.

음바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보여줘라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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