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자는, 거울 속에 (3) >
“집에 안 갔어?”
“아, 예.”
빈 훈련장.
스마트폰 하나 손에 들고 혼자서 공과 씨름을 하고 있는 음바페.
코치와 다가와보니, 음바페는 누군가의 스페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뭐야. 인터넷 영상을 보고 따라하고 있는거야?”
“예.”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음바페나 되는 선수가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코치는 그 영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팬텀(phantom). 라포르테 말로는 순간적으로 공이 사라진다고 하네요.”
영상에서는 도훈의 유령신보를 모아 놓은 장면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론 라 크로케타, 일명 팬텀 드리블.
사실 이 드리블은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스킬.
그러나, 백도훈의 팬텀에는 남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 다른 무언가가 무엇일까, 음바페는 영상을 주구장창 돌려보며 찾아내려 애를 썼다.
그리고, 따라하려 애썼다.
이미 자신만의 스킬들로 내로라 하는 수비수들을 제쳐냈던 음바페였다.
그런 음바페가 누군가를 따라하려 한다니.
그건, 무서운 것이었다.
그냥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 백도훈을 연구하며 따라해도 그 실력이 쭉쭉 늘텐데,
음바페라면 어떠 하겠는가.
게다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열정적인 태도까지.
툭, 툭-!
“오, 정말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데.”
“정말요?”
음바페라면,
정말 도훈의 움직임을 카피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번 챔스 결승에서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지도 몰랐고.
ㆍㆍㆍ
“야, 밀지마! 죽는다!”
“헤헤헤!”
맨체스터의 한 중학교.
앳된 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나와 있다.
언제나 신나는 체육 시간.
그러나 들떠 있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
도훈의 동생, 소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땐 좋다. 선생님의 말을 다 알아 들을 수 없어도, 그저 하고 싶던 미술을 배우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체육 시간엔 정말 시간이 잘 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특별히 누군가 괴롭힌다든가 하는 건 아니었다. 몇몇 날라리 같은 여자애들이 누구에게나 그러듯 시끄럽게 말을 걸며 귀찮게 할 뿐.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다들 자기들끼리 친하게 시끌벅적한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이방인인 소윤은 오히려 그렇게라도 말을 걸어주는 그 여자애들이 반가울 정도.
“자, 오늘은 말했다시피 축구를 할 건데. 특별한 선생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특별한 선생님이요?”
“여러분에게 축구를 가르쳐 줄 선생님이에요. 자!”
갑자기 뭔 또 축구를 가르쳐 준다는 건지.
귀찮을 뿐이던 소윤의 눈이, 그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한 후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뭐.. 야?”
“와! 와!”
“백도훈이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
도훈이었다.
도훈이 운동장에 나타나자 아이들은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방방 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맨유를 응원하는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도훈에게 달려가 품에 안기기 시작했고, 맨 시티를 응원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도 놀란 가슴을 감출 길이 없었다.
대체, 이 곳에 왜 도훈이?
“다들 알고 있었나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에서 뛰고 계시는 백도훈 선수님이, 우리 반의 백소윤 친구의 오빠에요.”
“와, 정말!?”
“왜 우리한테 얘기 안 했어?”
순식간에 소윤에게 쏟아지는 시선.
소윤은 난처하게 웃었다.
이럴까봐 안한건데.
“자, 다들 축구 좋아하니?”
“그럼요!”
“당연하죠!”
흥분한 아이들을 겨우 진정 시키고.
본격적으로 축구 교실을 시작하는 도훈.
백도훈의 축구 교실이라니.
어디서 돈 주고도 사지 못하는 시간.
학생들의 눈이 똘망똘망하게 빛났다.
퉁- 퉁- 퉁-!
“자, 이렇게. 발등으로 일정하게 튕길 수 있도록 하는 거야.”
“와...”
“이게 기본이 되면, 이렇게도 할 수 있는거지.”
발등으로, 허벅지로, 이마로 리프팅을 보여주는 도훈.
그런 도훈의 모습에 탄성을 터뜨리는 순수한 아이들.
그 모습에 당황했던 소윤도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수업 마칠 시간이 다 됐네.”
“벌써요? 안 돼요, 안 돼!”
“선생님! 30분만 더 하면 안 돼요?”
그렇게 수업 시간이 모두 끝나고.
선생님이 수업 시간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자 학생들은 아쉬움으로 아우성을 쳤다.
그런 학생들에게, 도훈은 직접 챙겨온 유니폼을 꺼내며 한 명씩 줄을 세웠다.
“이름이 뭐야?”
“해리슨이요.”
그리고 한 명씩 직접 유니폼에 싸인을 해 건네주는 도훈.
“예에에에쓰! 아빠한테 자랑 해야지!”
도훈의 싸인이 적힌 유니폼을 받은 아이들은 방방 뛰었다.
어디가서 구하기도 힘든 것이니 당연.
다른 누구도 아닌 맨체스터와 유럽 최고 스타의 친필 싸인 유니폼이라니.
“자, 오늘 특별히 시간을 내서 와주신 선수님께 인사!”
“감사합니다!”
“또 와주세요!”
“그래. 다들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 다시 올 게!”
그렇게 아이들에겐 매우 짧게 느껴졌지만 즐거웠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모두의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소윤이었다.
“와, 진짜 백도훈 동생이라니 상상도 못했다.”
“대박 부럽다. 오빠가 백도훈이라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주변에 몰려 들어 말을 거는 친구들.
일일히 다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물어대는 친구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소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도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던 아까보다는 훨씬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
“우리랑 같이 점심 먹을래?”
“아냐! 우리랑 먹어야지! 너네 남자애들이랑 왜 먹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오빠 덕분에.
앞으로의 학교 생활은 한결 편해질 듯 싶었다.
ㆍㆍㆍ
“매직 넘버가 마침내 1로 줄어 듭니다! 자력 우승 확정에 단 1승만을 남겨 놓게 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단합니다!”
챔스 결승 진출을 확정 짓고 나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한 리그 33라운드, 왓포드 전.
이 경기를 도훈의 결승골에 힘입어 승리를 거둔 맨유는, 마침내 33연승을 달성하며 리그 우승 확정까지 단 한 경기를 남겨두게 되었다.
단 한 경기만 더 이기면, 그 뒤로 모든 경기에서 패배를 당한다 하더라도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게 되는 것.
“자, 과연 오늘 맨유가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을까요. 리그 34라운드, 레스터 시티와 맨유의 경기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중요한 경기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렸다.
리그 8위,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
올 시즌의 우승자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경기기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이 올드 트래포드로 쏟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을 바랐다.
맨유가 34연승으로 우승을 확정 짓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기적처럼 연승이 깨져 좀 더 레이스의 마지막이 뒤로 미뤄지는 그 기적을 말이었다.
그럴 정도로, 맨유가 한 경기를 지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물 오른 맨유의 분위기.
그 분위기로 올드 트래포드는 경기 전부터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경기가 시작 됐습니다!”
그렇게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경기인만큼, 맨유는 도훈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는 4-2-3-1의 전형, 베스트 일레븐이 모두 출격했다.
레스터 시티도 팀의 레전드 제이미 바디를 필두로,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해 맨유를 저지하기 위해 고춧가루를 뿌릴 준비를 마쳤고.
“레스터 시티는 순위가 말해주듯,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닙니다.”
오늘 경기는, 레스터 시티가 가장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는 경기였다.
선 수비를 기반으로, 기회가 났을 때 역습의 귀재인 제이미 바디를 통한 빠른 역습으로 상대의 뒤를 털어 버리는 것.
이걸 제일 잘하는 팀이 레스터 시티기에, 레스터 시티는 강팀 킬러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팀에게 고전하는 비율이 더 높을 정도인 게 레스터 시티였으니.
따라서 맨유도 이렇게 중요한 경기의 상대가 레스터 시티인 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상대를 가려가며 승리를 거뒀다면, 애초에 33연승이라는 지금의 기록이 말이 안되는 거죠.”
언제부터 맨유가 상대를 가렸다고.
맨유는 보여주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 어떤 팀에게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이유를.
역시, 도훈의 발끝에서부터였다.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던 것의 시작은 바로 그 발이었다.
“좋은 패스입니다! 마샬에게 연결되는 공!”
그 날의 경기 내용은, 집대성이자 하나의 요약본이었다.
올 시즌, 맨유가 보여줬던 모든 승리 공식을 나열하듯, 한 시즌을 90분에 담아내는 듯 했다.
후대의 사람들에게, 대체 이 말도 안되는 기록이 가능했던 이유를 설명할 때 이 한 경기만 보여주면 충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울리는 경기였고 걸맞는 경기였다.
2021/22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짓는 경기로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경기로써.
“세 번째 골! 백도훈의 완벽한 마무리!”
전반전이 끝날 때, 3대0.
레스터 시티를 압도하며 약간은 긴장된 분위기였던 올드 트래포드를 축제 분위기로 바꾸어 놓는 도훈과 맨유.
“이제 이대로 10분이 지난다면, 매직넘버 1도 사라지게 됩니다.”
“역사적인 순간이네요. 이 경기를 해설할 수 있어 영광인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경기 종료까지 10분이 남았을 때.
올드 트래포드는 축제 분위기를 넘어 엄숙한 분위기까지 감돌고 있었다.
역사의 순간이었다.
모두 이 순간, 이 감격을 이 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는 듯.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세례라도 받는 것처럼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엄숙한 자세로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글로리, 글로리 맨유나이티드!”
그 분위기에 걸맞는 성스러운 그들의 응원가를 목 놓아 부르며.
그리고, 경기 종료 5분 전.
“중앙에서, 백도훈이 넘겨 받습니다!”
“열렸어요! 그대로 때립니다!”
뻐어어어어엉-!
아크 정면.
포그바의 패스를 건네 받은 도훈이 멋진 첫 터치만으로 상대 수비를 속여낸 뒤, 열린 각도에 그대로 오른발 슈팅을 때렸다.
그 슈팅은, 어마어마한 역회전이 걸려 마치 과거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UFO 슛을 연상시키는 궤적을 그리며 골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처음과 끝.
올 시즌, 맨유의 첫 골은 도훈의 프리미어 데뷔 골이었다.
그리고 그 골은,
‘초승달 차기.’
슈우우우우웅-
철썩-!
지금의 골과 거울처럼 똑같았다.
처음도 도훈의 발에서, 마지막도 도훈의 발로.
“백도훈의 대미를 장식하는 환상적인 골입니다!”
“6대0! 이보다 완벽한 마무리는 없습니다!”
맨유는 증명해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는 걸.
그저,
그들의 발로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성과일 뿐이라는 걸.
따라서,
모두 좀 더 자랑스러워 해도 좋았다.
이 역사에 함께하는 이 순간을.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이익-!”
경기가 끝나는 순간.
맨유가 마침내 34연승을 달성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이나 벤치의 선수들 할 것없이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그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도훈아!”
“다 네 덕분이다!”
또한, 모두 한 사람에게 달려 들어 기쁨을 나누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건, 모두 이 청년 덕분이라는 것을.
이들에겐 도훈의 존재 자체가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 그 자체라는 것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우승! 프리미어 리그 우승입니다!”
그 날, 올드 트래포드는 경기가 끝난 후에도 한참이나 글로리, 글로리 맨유를 외치는 팬들의 노랫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아직도 도입부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우승... 우승!”
오늘도 다시 한 번 작년의 자신을 뛰어 넘는 도훈.
라이프치히와 밀란, 두 개의 팀을 옮겨 다니느라 이루지 못했던 리그 우승.
오늘은 도훈이 처음으로 리그 우승이라는 커리어를 쌓아 올리는 순간이었다.
도훈의 첫 리그 우승.
이제 시작이었다.
또한, 아직 이 챕터도 끝이 나지 않았고.
“사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니죠. 우승은 확정되었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업적에 도전하고 있는 맨유니까요.”
“앞으로 남은 네 경기. 지금까지 서른 네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맨유가, 앞으로 네 경기만 더 승리를 거둔다면 역사에 유례가 없는 불멸의 기록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챕터의 마지막 페이지는 오늘이 아니었다.
대미를 장식할 찬란한 구절은, 이제 쓰여질 차례였다.
< 경쟁자는, 거울 속에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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