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자는, 거울 속에 (2) >
가끔 도훈은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자신이 분신술을 익힐 수 있어서,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만약 자신과 똑같은 분신이 있다면, 그 분신과 매일같이 1대1을 하며 수련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보다 훨씬 빨리 발전할 수 있었을텐데.
마치 구글의 알파고처럼.
그러나 분신술은 익힐 수 없었기에, 도훈이 상대할 수 있는 건 과거의 도훈 뿐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게 도훈이 상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상대였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이미 지난 시즌의 자신을 뛰어 넘었는데, 이젠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뭐, 어느 정도 맞는 말 일수도 있었다.
이미 자신은 지난 시즌의 자신을 뛰어 넘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시즌 성적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난 시즌엔 여러 사정 때문에 이번 시즌보다 더 적은 경기를 뛰었고, 당연히 총 성적에서 밀리는 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스스로의 플레이, 자신감, 믿음.
도훈은 자부할 수 있었다.
성적을 떠나, 자신은 지난 시즌의 자신보다 발전했다는 것을.
그렇담 이미 승부가 났으니 자신과의 싸움은 승리로 끝이 난걸까?
아니었다.
‘내년의 나에게, 시시한 상대를 붙여줄 순 없잖아.’
도훈은 지난 시즌의 자신과만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년 시즌, 그러니까 미래 시즌의 자신에게 대항할 현재의 자신을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내년이 되면, 도훈은 다시 올 해의 도훈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가능하도록 동기부여가 되려면, 기준이 될 과거의 상대, 즉 올해의 도훈은 꽤나 강해야 할 것이고.
도훈은 그걸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내년의 도훈이 상대할 상대를.
그러나 어쨌든,
아직 과거의 자신과의 싸움도 끝이 난 것만은 아니기도 했다.
아직 작년의 자신을 이겨야 하는 부분도 남아있긴 했으니.
‘작년의 내게 없었던 것.’
그게 FA컵 우승 트로피.
거의 모든 걸 이뤄냈지만, 지난 시즌 도훈에겐 FA컵 우승 트로피가 없었다.
그렇기에, 가지고 싶었다.
다른 트로피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욱 더 이 FA컵 우승 트로피가.
때문일까.
도훈의 움직임은 평소보다도 더 이르게 예열이 끝난 듯 보였다.
초반부터 빠르게 패스 연계와 전진 드리블로 토트넘을 당황시키며 웸블리를 장악해 나가기 시작하는 도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도훈의 상대는 토트넘이 아니었다.
FA컵을 들어올린 적이 없는, 지난 시즌의 자신이 상대일 뿐.
“겉잡을 수 없을 듯한 기세로 파고드는 백도훈!”
“결승전입니다만, 결승전이라는 기분이 들지가 않습니다!”
결승전이라는 단어의 의미.
토너먼트의 가장 상위에 도달한 두 팀, 그러니까 가장 강한 두 팀이 우승컵을 놓고 다투는 경기.
그러나 맨유와 토트넘의 결승전, 오늘의 경기는 그런 의미와는 그다지 부합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맨유 그리고 백도훈과 최후에 만난 팀간의 대결.
그러니까 토트넘이 결승까지 올라온 이유는, 그저 맨유와 결승에서 만났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보였다.
“백도훈, 슈우웃-!”
“고오올-! 들어 갑니다!!”
그 날의 결승전의 진짜 의미는,
올 해의 백도훈이 작년의 백도훈과 맞붙는 경기일 뿐이었고,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최종 스코어, 4대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FA컵 우승을 차지 합니다!”
헤트트릭을 기록한 올 해의 백도훈이 승리하는 경기일 뿐이었다.
“맨유가 올 시즌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백도훈이 컵을 들어 올립니다! 21/22시즌,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한 팀으로 우뚝 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도훈은 당당히 FA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올 해의 자신은, 내년의 자신에게 쉽게 지지 않을 만큼 당당하다고.
ㆍㆍㆍ
FA컵 우승으로 트레블의 퍼즐 한 조각을 끼우는데 성공한 도훈과 맨유.
이어 다음 퍼즐을 손에 넣기 위한 경기를 위해 도훈은 캄프 누를 밟았다.
두 번째 캄프 누 방문.
감회가 남다르다거나 할 것은 없었다.
그 때도 이겼고,
오늘도 이길 뿐.
그렇게 자신감 충만한 상태로 바르셀로나와의 4강 2차전이 시작 되었다.
이미 1대4로 3점이나 뒤진 채 경기를 시작하는 입장인 바르셀로나.
결승 진출을 바라기 위해선 모 아니면 도의 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바르셀로나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공격력 면에서 바르셀로나는 모 아니면 도의 양날의 검 같은 전술을 시도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팀 중 하나일 것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밀물처럼 올라 갑니다!”
“우스만 뎀벨레, 접고 들어가다가 내줍니다! 수아레즈, 리턴! 뎀벨레, 슈웃-!”
캄프 누의 거대한 함성으로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자신들이 준비해 온 것을 보여주는 바르셀로나.
닥공.
검을 두 손으로 쥔 채 그저 베는 것에 집중하리라 마음을 먹은 것이 보이는 바르샤 선수들의 눈빛.
그런 바르셀로나에게,
“맨유는 어떤 대답을 내놓나요.”
“지난 8강 때와는 조금 다른 대답이군요.”
도훈과 맨유도 대답을 내놓았다.
8강, 도르트문트와 두 번의 경기를 펼칠 땐, 도르트문트 팬들이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느낄 정도의 경기 운영을 펼쳤던 맨유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맨유와 도훈이 생각하기에도 바르셀로나의 공격력은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3점의 차이가 여유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위협적이기에.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자. 그냥, 오늘 단판으로 끝나는 경기라고 생각하자고.”
“오케이!”
때문에, 도훈은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1차전의 스코어는 잊고, 그것 때문에 다르게 플레이할 것 없이 그냥 평소처럼 플레이 하자고.
그러니까,
단순하게, 오늘도 이겨 버리자고.
“맨유도 바로 올라 갑니다!”
“백도훈의 전진 패스! 천천히 할 생각이 없습니다!”
공을 잡자 마자 곧바로 로빙 스루 패스를 찔러 넣는 도훈.
‘으음..’
그 모습을 보며, 1차전 패배 이후 바르샤의 새 임시 감독이 된 사비 에르난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자신들이 공격 일변도의 전술로 나온다면 상대는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할까.
예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벌어 놓은 점수를 지키기 위해 수비적으로 잠구든가, 아니면 맞붙을 놓든가.
솔직히 말하자면 전자이길 바랐다.
그 편이 상대하기 훨씬 편하다고 생각 했으니.
하지만, 과연 상대는 상대였고, 백도훈은 백도훈이었다.
이 쪽이 편한대로 움직여줄 리가 없었다.
“치고 받습니다!”
그렇게,
캄프 누에서 맨유는 바르셀로나와 주먹 다짐을 벌였다.
웬만한 팀들은 할 수 없는 패기.
어떤 팀이든 조금이라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이 곳에서, 맨유는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이 날의 경기는, 도훈이 있기에 캄프 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지기 시작 했다.
“캄프 누에서 이런 경기를 펼칠 수 있는 건 아마 현재의 맨유가 유일할 겁니다.”
중원의 주도권을 바르셀로나가 완전히 내준 것은 아니었다.
양 팀의 점유율은 5대5에 가까웠고, 공격도 한 번씩 주고 받고 있을 정도로 박빙의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사비가 원한 건 이런 흐름이 아니었다.
이건, 전혀 승리로 갈 수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최소한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압도하며 이 쪽에서 세 번 공격할 때, 상대에게 한 번 정도 내주는 그림이어야 했다.
최소한, 최소한 말이었다.
왜냐하면,
똑같이 공격 기회를 가져간다고 한다면, 마무리까지 이어질 수 있는 확률 싸움에서 백도훈이 있는 상대를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이길 수 있어!”
“아직 시간 많이 남아 있다! 이런 흐름이라면 세 골 충분하다!”
그러나 그런 사비의 우려와 달리 그저 화끈한 경기에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보내오는 관중들.
그 관중들의 말을 들으며, 바르셀로나가 세 골이 가능하다면, 백도훈은 다섯 골도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라고 생각하는 사비.
“이길 수 있어!”
“계속 맞받아 쳐라!”
사비도 여기서 뭘 더 해줄 수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이 틀리고 관중들의 생각이 맞길 바라는 수밖에.
그러나,
안타까운 건 캄프 누를 찾은 그 어떤 관중들도, 사비보다 축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리길 바랐지만,
경기는 사비의 생각대로, 우려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반이 끝나고,
후반이 시작된 뒤 다시 시간이 흘러,
마침내 경기 종료까지 10분의 시간이 남았을 때.
“골! 네이마르의 골 입니다!”
“자, 세 번째 득점에 성공하는 바르셀로나!”
관중들의 말 대로, 바르셀로나는 충분한 공격력을 선보이며 후반 36분, 세 번째 골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관중들의 말만이 맞은 게 아니었다.
더 정확한 건 사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은 시간에 비해 격차는 좁혀지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네이마르의 골로 5대3. 합산 스코어는 9대4입니다. 다섯 골차를 극복하기는 힘들겠죠. 이미 결승 진출 팀은 정해진 듯 보입니다.”
바르셀로나가 세 골을 넣을 때.
맨유는 다섯 골을 넣었다.
그 중 세 골은, 도훈의 골이었고.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캄프 누의 기적은 없었다.
그 곳에서 축제를 벌인 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 합니다!”
“역시 올 시즌 최강의 팀답게, 이제 챔스 우승에 도전하게 되는 맨유!”
도훈과 맨유였다.
한 편, 같은 시각.
안 필드.
맨유가 바르셀로나를 꺾고 결승전의 한 축을 확정 지었을 때,
“경기 종료!”
“정말 끝까지 피 말리는 승부 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챔스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는 팀은!”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도 그 승부를 가리고 있었다.
1차전, 2대2로 팽팽하게 맞섰던 두 팀.
그리고 오늘, 두 팀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를 앞세운 철벽의 리버풀과, 메시와 음바페를 앞세운 파괴력의 맨 시티.
마지막에 웃는 건,
“음바페, 정말 대단합니다!”
맨 시티였다.
3대2.
메시의 한 골과, 음바페의 두 골.
특히나 연장전에서의 결승 골로 결승행을 확정지은 음바페의 활약이 빛났던 경기.
그렇게,
“이번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맨체스터의 집안 싸움이 되겠네요!”
“맨체스터의 주인이 되는 팀, 곧 유럽의 주인이 됩니다! 맨체스터의 축구 팬들에게는 이 보다 경사가 없겠는데요!”
맨유와 맨 시티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다시 한 번 맞붙게 되었다.
“축하 드립니다. 결승에 진출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맨유와 맞붙게 되었는데요. 각오 한 말씀?”
경기 후,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어 인터뷰를 진행하는 음바페.
지친 모습이지만, 음바페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기쁩니다. 오늘 경기 이겨서 결승에 진출했고, 맨유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상당히 만족 합니다.”
“맨유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으니까요?”
“그런 것도 있고..”
음바페는 미소를 지었다.
“백도훈과 함께 다시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겠죠.”
“복수를 꿈 꾸시는 군요? 오랜 악연이 있었잖아요.”
다시 미소를 짓는 음바페.
길다면 길게 이어져온 악연.
음바페의 입장에선 정말 악연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음바페는 바뀌어 있었다.
“악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며, 백도훈 같은 선수와 여러 번 경기할 수 있었다는 건 행운이죠. 때문에 다시 맞붙게 되어서 정말 좋고요. 그를 이길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죠.”
왜, 하늘은 자신을 낳고 백도훈을 낳아서 자신의 앞길을 막도록 한 것일까.
왜, 언제나 마지막 길목에서 백도훈이 나타나 모든 걸 망치는 것일까.
지금까진 그렇게 생각해왔던 음바페였다.
하지만, 지난 번의 패배 이후.
메시가 해줬던 말.
그 말은 음바페에게 많은 전환의 기회를 주었다.
“그를 이기고 싶다면, 그의 열렬한 팬이 되어라.”
음바페는 메시의 말을 따랐다.
지금까진 철저히 무시했었던, 애써 외면했던 백도훈의 플레이를 찾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의 플레이를 본 건, 경기장에서 같이 시합을 할 때가 전부.
그러나, 관중의 입장이 되어 바라 본 그의 모습은,
“우...”
매료될 만 했다.
과거 자신의 방을 호날두의 사진으로 도배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음바페.
그러나, 백도훈의 플레이를 보면 볼 수록.
음바페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마음 속에 품은 인물은 달라져 갔다.
그리고,
메시의 말대로 음바페는 백도훈의 팬이 되었다.
아주 열렬한.
지금까지의 자존심은 뒤로 하고, 그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천하의 음바페가.
그리고, 다짐했다.
‘그와 같은 선수가 되겠다.’
죽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는 다짐이었다.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음바페는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 경쟁자는, 거울 속에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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