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16화 (116/173)
  • < 알고 싶다 (3) >

    그 때나 지금이나, 바르셀로나는 강한 팀이다.

    또한 맨유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중요한 건, 양 팀의 입장이 예전과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의 바르셀로나는, 대체 어느 팀이 이 팀을 잡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느 팀을 만나든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던 팀.

    그러나 지금은 그 압도적인 팀은 맨유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어 있었고, 도전자의 입장이 된 건 바르셀로나였다.

    “과연 네이마르의 바르셀로나가 맨유를 잡아낼 수 있을까요. 경기, 시작 됐습니다.”

    바르셀로나를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맨유를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 부호를 가지고 시작되는 경기.

    수아레즈의 선축으로 경기는 시작 되었다.

    천천히 경기를 시작하는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전통적으로 기술을 강조하는 팀답게, 개개인의 테크닉이 최상위 클래스에 속하는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바르샤만큼 고유의 색깔과 철학을 가진 팀도 드물 것.

    “네이마르, 좋은 움직임입니다. 몸이 가볍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마르는 정말로 바르셀로나에 어울리는 선수였다.

    바르샤가 강조하는 테크닉이라는 면에서, 네이마르는 월드 클래스를 달리는 선수니.

    “화려한 드리블! 에레라를 제쳐내고 들어 갑니다!”

    한 경기에도 서너번 이상의 드리블을 밥 먹듯이 성공시키는 네이마르.

    네이마르는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드리블로 맨유의 중원을 휘저으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사뭇 긴장하는 맨유 팬들.

    확실히 바르셀로나라는 팀은 언제 만나도 위협적인 것일까.

    “우스만 뎀벨레에게 내줍니다. 우스만 뎀벨레!”

    “다시 네이마르에게!”

    “다시 뎀벨레에게!”

    “다시 네이마르!”

    빠르게 주고 받는 패스워크.

    좀처럼 공을 빼앗아내지 못하는 맨유의 수비.

    “바르샤 클래스에 걸맞는 선수, 걸맞지 않은 선수. 두 종류로 구분을 합니다. 바르샤 클래스에 걸맞는 선수는 별로 없죠.”

    바르셀로나의 전 미드필더, 사비 에르난데스의 말처럼.

    아무나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없다는 걸 증명하듯 올드 트래포드에서도 자신들의 기술을 선보이는 바르셀로나 선수들.

    과연 사비가 맨유의 선수들을 평가한다면, 바르샤 클래스라고 할 수 있을만한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아마 한 명도 없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나마 폴 포그바 정도가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사비에게 바르샤 클래스란, 월드 클래스를 의미하니까.

    “수아레즈에게, 수아레즈 슈웃-!”

    “벗어 납니다!”

    네이마르와 뎀벨레가 수비를 휘젓는 통에 미꾸라지처럼 제 자리를 찾은 수아레즈가 슈팅 마무리까지.

    벗어나긴 했으나 위협적이었던 공격 작업에, 오늘 바르샤를 박살낼 것을 기대하던 팬들의 함성 소리가 조금은 잦아 들었다.

    그 어떤 팀들도 박살낼 자신이 있는 맨유건만, 오늘은 조금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러나,

    “어제부터 맨유 팬 하기로 한 놈들인가?”

    “뭘 걱정해.”

    “그러게. 아직 시작도 안했구만.”

    그런 생각을 하는 팬들은 소수일 뿐이었고, 잦아든 함성의 크기도 딱 그만큼일 뿐이었다.

    맨유의 경기를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진짜 맨유의 팬들은 여전히 바르샤를 박살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백도훈이 공을 잡기 전까지, 맨유는 경기를 시작한 게 아니라는 것을.

    “픽포드 키퍼의 골 킥으로 재개 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천히 반격을 시작하는 맨유.

    맨유는 슬슬 후방에서 공을 돌리며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곧바로 가해지는 전방 압박.

    오호라.

    뒤로 물러서지 않을 셈인가.

    용기는 있는 선택이다만.

    그렇다면 이야기는 더 쉬워질 터.

    뻐어어엉-!

    바르샤가 수비적으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마자, 곧바로 린델로프의 롱 패스가 전방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파아아앙-!

    그 공을 머리로 떨구는 최전방의 로멜루 루카쿠.

    그리고,

    “백도훈이 잡습니다!”

    세컨 볼을 도훈이 따냈다.

    그렇게 도훈의 첫 터치가 나오는 순간,

    “박살내자!”

    “가자! 시작이다!”

    올드 트래포드의 팬들은 비로소 경기가 시작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타타탓-!

    빠르게 공을 몰고 움직이는 도훈.

    상대의 수비 공간은 딱히 협소하다거나 조직적으로 얼개가 잘 짜여진 느낌은 아니었다.

    지역 방어보단, 대인 방어 위주.

    그걸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는 판단일까.

    항상 생각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지나치게 자존심이 세다.

    바르샤의 레전드인 사비조차 인정을 했으면, 저들도 인정할 것이지.

    “백도훈이요? 백도훈은 바르샤 클래스라고 말할 수 없죠. 그는 어나더 레벨입니다. 그에겐 바르샤 클래스라고 칭하는 게 칭찬이 될 수 없어요. 그는 그저 백도훈 클래스일 뿐입니다.”

    사비가 보기엔 맨유에 바르샤 클래스의 선수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말.

    도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다른 선수들이 바르샤 클래스 이하라면, 도훈은 바르샤 클래스 그 이상이라는 게 차이일 뿐.

    도훈이 보기엔 사비보다 더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은 현재 바르셀로나에 없는 듯 했다.

    만약 있었다면 이딴 식으로 자신을 막을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

    참 건방지다.

    도훈은 자존심 강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한 수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데 용이 막아 섭니다!”

    도훈의 앞을 막아서는 프랭키 데 용.

    데 용은 네덜란드 최고의 재능이라고 평가받던 미드필더.

    3년전 바르셀로나에 입단한 데 용은 그런 기대에 걸맞게 바르샤의 중원의 핵으로 성장한 선수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파팡-!

    “번개같은 팬텀 드리블!”

    “더 붙어 줘야죠!”

    그저 애송이처럼 보일 뿐.

    유령신보로 데 용을 가볍게 제쳐내고 박스를 향해 달려드는 도훈.

    박스에서는 피케와 움티티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

    ‘오랜만이네.’

    간만에 마주하는 모습에 반가움을 느끼는 도훈.

    도훈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익숙한 쪽을 향해 달려 들었다.

    1년 전 상대 했었던 움티티 쪽?

    아니었다.

    “피케 쪽으로 돌파를 시도 합니다!”

    헤라르드 피케 쪽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는 도훈.

    사실, 바깥 세상에서 피케를 상대해 본 적은 없는 도훈이었다.

    그러나 동굴에선 피케를 상대해본 적이 있었다.

    비록,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낮은 단계에서 만났었기에 그다지 인상 깊었던 상대는 아니었지만.

    때문에 그 때의 패턴을 떠올려 피케의 모든 걸 꿰뚫은 채로 요리할 수는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지.’

    애초에 인상 깊었던 상대가 아니라는 건, 그 당시에도 피케는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는 것이었으니.

    쉬이익-

    툭-

    툭-!

    “멋진 드리블!”

    “제가 지금 뭘 본거죠!”

    피케를 앞에 두고 마치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처럼 리드미컬한 드리블을 선보이는 도훈.

    오른발로 헛다리를 짚은 후, 왼쪽으로 쳤다가 다시 오른발을 왼발 뒤로 뻗어 라보나 킥을 하는 자세로 공을 피케의 다리 사이로 집어 넣는 도훈.

    그리고 그 모든 동작은 눈 깜빡할 새에 이뤄졌고, 피케는 눈뜬 장님처럼 허수아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피케를 완벽히 농락 시키고 박스 안으로 진입하는 도훈.

    ‘되도 않는 자존심, 버려.’

    테어 슈테겐 키퍼 역시 바르샤 클래스에 걸맞는 선수.

    그러나, 도훈은 애초에 바르샤 클래스라는 말을 떠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꼴보기 싫었다.

    다른 선수들에겐 평생의 영광이 될 수 있는 그 말이,

    도훈에겐 그저 꼬맹이들의 되도 않는 소꿉놀이처럼 느껴질 뿐이었으니.

    뻐어어어엉-!

    박스 중앙에서 강하게 슈팅을 때리는 도훈.

    촤아아아아-

    그 슈팅은 묵직하게 깔려 왼쪽 구석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철썩-!

    슈테겐의 손아귀를 벗어나며 골망을 흔들었다.

    “와아아아앗-!”

    “그래! 이거지! 박살이다, 박살!!”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는 올드 트래포드.

    역시, 도훈이 공을 잡아야 비로소 경기가 시작된다는 게 헛소리가 아니었다.

    10년을 기다린 복수는 이제 시작이었다.

    “후우우우.”

    “웬 한숨을 그렇게 쉬어?”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한숨이야.”

    “하하! 나도 마찬가지일세. 꺼어어억!”

    경기가 끝나고, 우르르 올드 트래포드의 입구를 빠져 나오는 맨유 팬들.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명절날 목욕탕에서 때를 쫙 빼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듯.

    개운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 끝났습니다! 4대1, 경기 종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압승 입니다!”

    90분 동안 맨유, 아니 도훈이 바르셀로나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줬으니까.

    그들이 강조하는 기술로도, 스피드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바르셀로나는 백도훈을 따라올 수 없었다.

    아마 무기력했을 것이었다.

    백도훈을 바라보는 바르셀로나 팬들의 심정은.

    그리고 이해하게 됐을 것이었다.

    10년 전 경기를 지켜보며 손을 떨던 퍼거슨 감독, 그리고 패배를 지켜보던 맨유 팬들의 심정이 어땠을 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먹히지 않을 듯한, 어떻게 해도 이길 방법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

    10년 전 맨유 팬들이 느꼈던 그 감정을, 오늘 도훈은 그대로 바르셀로나에게 되갚아 주었다.

    “백도훈! 백도훈!”

    “꺼어어어억-!”

    그러니 맨유 팬들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이제 그 때 우리의 기분을 잘 알았겠지?"

    "그렇겠지. 난, 이제 그게 알고 싶어졌어."

    "뭘?"

    "졌을 때의 기분 말이야."

    "하하! 그건 나도 모르겠네! 알고 싶어! 진다는 게 뭘까?"

    "하하하!"

    이젠 진다는 걸 알고 싶을 뿐이었다.

    ㆍㆍㆍ

    “뭐야, 백소윤. 너 아직도 자고 있어?”

    “음.. 음..”

    “백소윤!”

    “응!?”

    무언가 잘못됐음을 감지한 듯 눈을 번쩍뜨는 동생, 소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소윤은 곧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각이다!”

    “어휴..”

    도훈이 항상 8시가 되기 전에 훈련장으로 출근을 마치기에 동생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평소.

    그러나 오늘은 훈련이 없는 날.

    “그래도 다행히 내가 쉬는 날이라 망정이지.”

    “알았어, 알았어.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해. 오늘 처음 늦잠 잔거라고.”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열 번 되는거야.”

    “아, 쫌! 빨리 가달라고. 늦겠다고!”

    차로 소윤을 데려다주는 도훈.

    가는 내내 꼼짝 없이 지각할 뻔 했다는 도훈의 잔소리에 소윤은 다음부턴 절대로 늦잠자지 않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학교 생활은 할 만 하냐?”

    “어.. 공부는 재밌어.”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냐? 애들이 동양인이라고 해코지하고 그러진 않지?”

    “요즘 그런 애들이 어딨어.”

    문득.

    15살의 나이에 홀로 외국인들이 가득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동생을 많이 챙겨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도훈.

    비록 자기가 하고 싶다고 선택한 것이지만, 그래도 어찌 힘든 게 없으랴.

    동생이 자기처럼 동굴에서 영어와 고독을 마스터하고 나온 것도 아니고.

    “오빠가 기 좀 살려줄까?”

    “헛짓거리하지 말고 조용히 내려주고 가...”

    “요즘 애들 햄버거 안좋아 하냐? 반에 햄버거 돌려줘?”

    “아 햄버거를 왜 돌려, 쪽팔리게..”

    어느 덧 보이기 시작하는 학교.

    도훈은 정문으로 차를 몰았다.

    반에 햄버거 돌리는 게 쪽팔리다는 건가?

    학교를 다니지 않은 지 100년이 넘어서 그런지, 요즘 애들은 알 수가 없다.

    “뭐 찍고 들어가야 돼?”

    “몇 학년 몇 반 누구라고 이름 대면 돼.”

    마치 훈련장과 비슷하게 학생이 탄 차량만 통과되는 듯, 수위가 지키고 있는 정문에 도훈은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이름을 말하려는데,

    도훈의 얼굴을 확인한 수위 아저씨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배, 백도훈 선생님?”

    “아, 안녕하세요. 동생 등교 좀 시키려는데요.”

    “아, 아니. 동생분이 여기 학생이셨습니까?”

    “예, 예.”

    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위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팬이라고 떠들어 댔다.

    심지어 어제 경기를 직접 봤었다고.

    “고것들 박살나는 거 보니까 속이 얼마나 시원한지. 아 참,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어렵사리 정문을 통과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도훈.

    소윤은 서둘러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고, 도훈도 동생이 교실까지 들어가는 걸 보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종종 걸음으로 교실로 향하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도훈.

    그런데 그 때,

    “야!”

    “오, 양아치네? 지각도 하고?”

    범상치 않은 여학생 무리 하나가 동생에게 시끄럽게 말을 걸며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 알고 싶다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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