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14화 (114/173)

< 알고 싶다 (1) >

잘 막아내나 싶었던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의 조합.

실제로 한 번은 잘 막아냈기에, 리버풀과 안 필드의 기세는 상당히 고조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 한 번에라도 만족하라는 듯.

도훈은 두 번째 시도만에,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가 한 달간을 준비해왔던 비장의 무기의 자물쇠를 풀어 버렸다.

솔직히 몇 번은 더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길 바랐다.

실망스러웠다.

“뚫어 냅니다!”

“이게 백도훈이죠!”

도훈은 입맛을 다시며 훤히 드러난 골대를 바라봤다.

이 정도 장난 가지곤 얻을 것도 없었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그 동안 어렵게 연구하며 생각해내고 연습했을 그 비장의 무기는 부숴졌다.

이젠 반대로 과제다.

‘더 생각해 와.’

자신을 막아낼 더 좋은 방법을.

그리고, 도훈이 반 다이크와 쿨리발리에게 내준 그 과제는 도훈이 풀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도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었다.

“고오오올-!”

“맨유, 백도훈의 선제 득점입니다! 전반 18분! 백도훈이 리버풀의 수비 태세를 무너 뜨립니다!”

도훈의 선제 골은 의미가 컸다.

당연히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가 준비해 온 비장의 무기를 깨부순 것부터 의미가 크지만, 애초에 텐 백을 준비하며 수비적인 경기를 준비해 온 리버풀이 전반 20분만에 한 점을 끌려가게 되었으니, 이 경기의 근간을 흔드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도.

“...”

클롭 감독은 허탈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았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홈 무패인 자신들이 홈에서 텐 백을 했다.

팀 득점이 리그 3위인 팀이 시작부터 걸어 잠굴 마음을 먹고 경기를 준비했단 말이다.

그런데, 뚫렸다.

그것도 백도훈, 그 하나만을 막기 위해 1천 억이 넘는 중앙 수비수 두 명을 보유하고 있는 자신들이.

대체 어쩌란 말인가.

클롭 감독이 허탈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래도 반격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말했듯, 자신들은 홈 무패라는 긍정적인 징크스와, 막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니.

“전반전까지, 올려.”

이 상태에서 텐 백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

리버풀은 반격을 위해 태세를 전환했다.

이렇게 유연한 전환이 가능한 이유는, 리버풀 선수들의 다재다능함에 기인하는 것.

방금까지 수비적으로 플레이하던 선수들도, 공격적으로 움직이라는 지시 하나면 텐 백이 아니라 텐 어택이 될 수도 있는 게 리버풀.

“올라오죠!”

“리버풀도 동점을 노립니다!”

클롭 감독의 지시에 전체적으로 라인을 끌어 올리는 리버풀.

동시에 실점의 분위기를 없애고자 안 필드의 거친 콥들이 맨유를 비방하는 응원가를 부르 짖으며 공기를 바꾸었다.

여전히 자욱한 안 필드의 안개.

그리고 달려드는 리버풀 선수들을 보며, 맨유 선수들은 이제서야 비로소 안 필드에 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체임벌린, 왼쪽으로 벌려 줍니다. 피르미누가 받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온 피르미누.”

20여분간 점유율이 7대3으로 맨유가 앞서 있을 정도였고, 맨유는 도훈의 전진 드리블을 제외하곤 매우 천천히 경기를 풀어 나가고 있었다.

때문에 갑자기 빨라지는 템포에 맨유 수비수들은 약간 몸이 굳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1단계에서 2,3단계를 뛰어 넘고 바로 부스터 온.

파아앙-

타타탓-!

“빠져 들어 갑니다!”

“빠르죠, 모하메드 살라!”

중앙에서 풀백 뒤로 빠져 들어가는 살라에게 스루 패스를 전달하는 피르미누.

동시에 피르미누는 중앙을 향해 대각선으로 파고 들며 맨유 수비수들을 혼란 시켰다.

그 틈에,

뻐어어어엉-!

살라의 기습적인 왼발 슈팅.

촤아아아-

“살짝 벗어 납니다!”

“오우!”

각이 많지 않았으나 날카롭게 파 포스트를 향한 살라의 슈팅은 골문을 살짝 빗겨 갔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함성.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날카로운 공격을 펼칠 수 있는 리버풀이고, 안 필드의 팬들은 이걸 원했다는 듯 환호성을 내질렀다.

도훈의 한 방에 심대한 타격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인 듯 했다.

“삐이익, 삐이이익-!”

그러나, 리버풀 입장에선 아쉽게도 전반전은 동점 골 없이 그대로 종료.

경기는 곧바로 후반전으로 이어졌다.

후반전을 시작하며, 고민이 많았던 클롭 감독.

전반 20분 이후의 분위기를 이어갈 것이냐, 아니면 다시 수비 태세를 취하며 안정적으로 갈 것이냐.

선택은,

“샤키리, 오른쪽으로. 이번엔 살라가 달려 갑니다!”

동점 골 전까진 어찌됐든 공격이었다.

전반전 동안 확인한 맨유의 수비력이라면 빠른 시간 안에 동점이 가능해 보였으니.

그러나.

뻐어어엉-!

“살라의 크로스!”

파아앙-!

“린델로프가 막아 냅니다!”

만약 그것이 유도된 선택이라면?

리버풀이 도훈을 중앙 쪽으로 돌파하도록 유도했던 것처럼.

이것은, 나겔스만 감독의 함정이었다.

전반전 동안 공격적으로 올라오는 리버풀을 보고도, 계속해서 텐 백을 상대하는 것처럼 전진된 라인을 유지시키며 자칫 수비 공간이 불안해 보이게끔 만든 것은.

사실 결과론적인 이야기긴 했다.

만약 전반전 동안 동점 골을 내줬다면, 그저 실패일 뿐인.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점은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리버풀은 후반전에도 역시나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었고.

이제 텐 백은 없었다.

옛날 이야기가 생각나는 상황이었다.

옷을 두텁게 껴입은 나그네를 보고 해와 바람이 한 내기.

누가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을 것이냐.

바람은 세찬 바람을 불어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했으나 실패했고, 해는 뜨거운 햇빛을 쐬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끔 했다.

그러나 지금의 맨유는, 그 두 가지 방법 모두로 리버풀의 텐 백을 무장해제 시켰다.

스스로 텐 백을 탈피하게끔 만들었으며, 이젠 벗어 놓은 옷가지들을 바람으로 날려버려 다시 입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었으니.

뻐어어어엉-!

“걷어내는 에레라!”

“맨유의 역습 입니다!”

전방으로 길게 공을 걷어내는 에레라.

그 공은 오른쪽의 포그바에게 이어졌다.

공을 받은 포그바는 고민할 것 없이, 전방의 도훈에게 연결.

파아앙-

촤아아아-

다가오는 공을 바라보며 주변의 기가 한층 가벼움을 느끼는 도훈.

공간은 전반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넓어져 있는 상태.

이런 공간이라면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도 전반과 같은 수비 방법을 펼칠 수 없을 터.

물론 가능하다고 해도 상관 없었지만.

‘어딜.’

패스가 굴러오길 기다리던 도훈은, 순간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빠르게 앞으로 뛰어 나갔다.

반 다이크가 패스 컷팅을 시도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던 것.

그러나 도훈의 반응이 빨랐고,

반 다이크의 선택은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도훈은 등으로 반 다이크를 속여냈다.

마치 뒷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상체를 좌우로 흔들다가 반 다이크가 주춤하는 사이,

파아앙-

공을 그대로 돌려놓고 몸을 돌려 달렸다.

“멋진 턴!”

“돌아 섭니다!”

반 다이크를 돌아서자 넓게 펼쳐지는 공간.

서로 연결되있기라도 한 듯 하던 반 다이크가 나가 떨어지자,

“...”

반쪽을 잃은 쿨리발리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그런 쿨리발리에게, 도훈은 굳이 넓은 공간을 두고 정면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전반과 달리, 피하지 않는다.

이게 원래 도훈의 스타일.

‘너도 연습 좀 했니?’

환영을 왼쪽으로 보내는 도훈.

‘더 열심히 해야겠네.’

그리고 도훈은 오른쪽으로 파고 들었다.

쿨리발리마저 완전히 제쳐졌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완벽하게 역습을 마무리하는 백도훈!”

“두 번째 골이에요!”

이젠 텐 백이라는 옷을 다시 주워 입을 수도 없이 완벽히 알몸이 된 나그네가 된 리버풀이었다.

“...”

골망에 쳐박힌 공을 바라보며 무릎을 짚는 반 다이크와 쿨리발리.

열심히 준비했다.

한 달 동안.

그러나, 너무 부족했다.

백도훈을 막아내기에, 한 달로는.

‘대체 얼마나 더..’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1년이 주어진다고 해도 막아낼 수 있을지,

이젠 확답을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날, 경기는 이미 그걸로 끝이었다.

“홈 무패, 리버풀의 안 필드까지 점령에 성공하는 맨유! 이제 유럽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맨유의 승리였다.

도훈이 이 세상에 나와 모든 걸 파괴하기 시작한 지 이제 1년 반.

도훈은 모든 수비를 부숴내기 위해 100년을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도훈을 막아내기 위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지 모르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맨유가 24연승을 달립니다!”

누구도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ㆍㆍㆍ

“요즘 어때요?”

“유례 없는 호황이죠, 뭐.”

“좋네요.”

입춘은 벌써 지났고 우수도 지난 시기지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

그러나, 푸른 잔디 위에는 어느 때보다도 많은 아이들이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축구를 배우고 있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임찬주.

명석한 두뇌와 실력으로 이제 멘데스의 회사 내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임찬주.

최근, 회사는 예전부터 계획했었던 아시아 지부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아시아, 특히 한국의 뛰어난 인재들을 육성하고 곧바로 유럽 진출이 가능한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다 백도훈 덕분이지 뭐.”

“그런가요.”

“부모들이 다 백도훈처럼 만들어 달라고 보내니까. 애들도 다 공격수 하려고 해요. 백도훈처럼 될 거라고.”

“하하.”

활기찬 축구 교실.

그리고 사업의 확장.

모두 도훈 덕분이었다.

도훈이 한국인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이 모든 것도 불가능 했을 터.

그 동안 유럽에서 아시아 쪽 시장을 개척해왔던 건 대게가 일본 쪽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오히려, 숨은 진주들은 한국에 있을 것이라고.

제 2의 백도훈 찾기에 멘데스의 회사 뿐만 아니라 다른 에이전트들도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다고 임찬주는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붐이 일어나는군요.”

“그럼. 아마 월드컵 지나면 더 붐이 일어나지 않겠수.”

“월드컵이 중요하겠네요. 정말 좋은 성적만 내준다면, 2002년 못지 않은 붐이 일어 나겠어요.”

“8강만이라도 가 봐. 그럼 지금에도 비교할 수 없는 호황이 오는 거지. 그래서 백도훈이한테 기대를 걸고 있잖어. 참, 한 사람이 가진 힘이 이렇게 크다우.”

고개를 끄덕이는 임찬주.

암, 알다 마다.

벌써 자신부터 도훈 한 사람 덕분에 이렇게 먹고 살 길을 찾았으니, 모를 수가 있겠나.

도훈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한 나라의 축구 산업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만약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임찬주였다.

“그럼, 고생하십쇼.”

“예, 예.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겄습니다.”

아마, 여기서 제 2의 백도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긴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아마 힘들겠지.

하지만 꼭 제 2의 백도훈이 아니어도 좋다.

이 자체로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는 밝아지고 있는 것이니까.

‘나도 5년만 젊었으면 어땠을까.’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만.

임찬주는 어쩔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골치 아파 죽겠어.”

“왜요?”

“내가 백도훈이 애비라는 걸 어디서 다들 알고 연락을 해오는 지 몰라. 요즘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온다고. 자기네 사업에 투자 좀 하라고.”

“허어. 그래서요?”

“그래서는 뭘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고 끊어 버리지.”

손을 내젓는 아버지, 백승태.

호황인 건 축구계 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사업도 날로 규모가 커져 현재 있는 직원이 개업할 때 보다 배로 늘었다고.

물론 이 현장에서 굴러 먹으며 키운 아버지의 수완 덕분이기도 하지만, 도훈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하지만 요즘은 아들의 유명세 때문에 골치가 아프기도 하다고.

심지어는,

“지가 도훈이 축구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돈을 내놓으라는 사람들도 있어.”

“허어.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떡해. 그런 놈들 나타날 때마다 도훈이한테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 고맙다, 하고 끊어 버리지. 죄다 사기꾼 놈들이여.”

“골치네요.”

웃으며 고개를 젓는 임찬주.

“솔직히 말하면, 난 도훈이가 차라리 이민을 갔으면 싶었어. 뭐, 지금 사는 영국에서 계속 살길 바랐다고. 나야 워낙 이 나라에 신물이 난 사람이라. 난 며느리도 외국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도훈이, 여자 친구 있는 거 아세요?”

“엉? 여자 친구가 있어? 자네는 알아?”

금시초문이라는 듯한 아버지.

“어, 얘기해도 되나?”

“안될 게 뭐 있어. 내가 애빈데.”

“여자 친구 있어요. 이탈리아에서 뛸 때 만난 친군데, 그러니까 이탈리아 인이죠.”

“이 놈 자식이.”

말로는 외국인 며느리를 받고 싶다더니, 막상 그게 아닌걸까.

하지만, 이내 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하루 빨리 날 잡으라고 전화해야 겠구만. 잠깐. 아니지, 이 놈 자식 아직 성인이 아니잖아?”

“하, 하하!”

“솔직히 난 빨리 결혼하는 거에 반대지만, 외지에 혼자 나가 있는 사람은 이야기가 다르지. 가정을 꾸리는 게 좋아. 이 놈 자식,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내 얼굴 도장 찍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해야 겠구만.”

싱글벙글.

아버지의 얼굴에 기분 좋은 웃음이 숨겨지지 않았다.

“아마, 여자 친구 얼굴 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왜?”

“인물이 장난 아니에요.”

“하하!”

얼마나 인물이 훤한지 조만간 봐야겠구만, 이라며 웃는 아버지.

아마, 반응은 상상 이상일 것이었다.

< 알고 싶다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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