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장의 무기 (3) >
보통 사람들이 중요한 시험을 치룰 때.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기다리던 시험지를 받아들 때, 사람들의 기분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걱정 되거나, 설레이거나.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어려운 문제들이 나올까 걱정부터 앞서겠지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사람이라면 시험지를 받아들 때의 기분은 오히려 매우 설레일 것이다.
지금,
반 다이크와 쿨리발리의 마음이 그랬다.
설레이고 있었다.
분명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 시험에, 보란듯이 통과해 스스로에게 100점을 줄 준비가 끝나 있었으니까.
“달려 듭니다!”
언제나처럼.
두려움 없이, 망설임 없이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에게 달려드는 도훈.
이미 그 둘에게 승리를 경험한 바도 있고, 정보도 있다.
애초에 그 어떤 수비수에게도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던 도훈이었다.
아무리 그 둘이 막아선다 해도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
뭔가,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다른 선수들이 도훈을 마주하며 수비 자세를 취했던 모습들과는.
척-!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는, 각각 각자의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하듯 겹치며 나란히 섰다.
그 둘이, 마치 다리가 네 개인 한 몸인 것처럼.
어디서도 보지 못한 수비 자세.
일단은 그것만으로 그 둘 사이의 틈을 완전히 봉쇄해버리는 자세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그것만으로 도훈을 당황시킬 수는 없었다.
가운데가 막혀 있다지만, 오히려 좌우로는 넓게 치고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일이니.
오히려 더 단순하게 속도만으로 치고 들어간다면 저 겹치듯한 대형으로는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타타탓-!
도훈은 다른 초식을 사용하는 대신,
쿨리발리의 왼쪽을 향해 차놓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내 쪽이냐.’
그리고 그런 도훈의 모습을 보며 쿨리발리는 약간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비장의 무기를 함께 준비해오며,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는 서로 백도훈이 네 쪽으로 돌파하려 들 것이라며 떠넘겼었다.
당연히 상대는 돌파하기 더 쉬운 쪽으로 돌파하려 들 것이기에, 그게 자신 쪽은 아닐 거라며 장난을 친 것.
그런데 백도훈이 쿨리발리 쪽을 선택했으니 쿨리발리가 약간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하지만,
분명한 건 그렇게 장난을 칠 정도로 이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훈이, 이런 방식으로 돌파를 시도할 것이라는 걸.
당연했다.
‘일부러’ 유도한 것이었으니까.
또한 한 편으로는 쿨리발리도 기대감에 가득찼다.
본인에게 백도훈을 막아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그 순간,
이 둘이 준비했던 비장의 무기가 발동되었다.
퍼어억-!
“...!?”
순간 스피드로는 절대 도훈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둘이었다.
그런데, 왼쪽으로 파고들던 도훈의 시야에 순식간에 나타나는 쿨리발리.
마치 튕겨져 나오듯 나타난 쿨리발리는, 정확히 도훈의 앞을 가로 막아 버렸다.
그건 도훈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였고,
뻐어어엉-!
쿨리발리는 도훈의 발 앞에서 공을 걷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쿨리발리와 엉겨붙어 그라운드 위를 뒹구는 도훈.
반칙인가?
도훈은 주심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주심은 아무런 제스쳐를 보이지 않았고.
공을 먼저 건드렸다는 판정.
쿨리발리가 도훈을 막아낸 것이었다.
“마, 막았습니다! 공을 걷어내는 쿨리발리!”
“대단하네요, 지금 수비!”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안 필드.
그리고,
“막.. 혔어?”
“...”
말문이 막히거나, 경악하거나.
맨유의 원정팬들과, 동료들은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리버풀의 수비가 도훈을 막아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막았습니다!”
막혔다.
쿨리발리에게.
“...”
상체를 일으켜 세운 채 앉아 멍한 표정을 짓는 도훈.
누구보다 도훈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애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순간 속도로 쿨리발리에게 따라 잡혔다는 말인가?
이미 쿨리발리와 상대해본 적이 있는 도훈이었다.
그를 제쳐내 보기도 했고, 지금처럼 속도로 압도한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방금 쿨리발리의 그 속도는 도훈이 기억하고 있던 그 속도가 전혀 아니었다.
설마 1년여간의 시간 사이에 이렇게 쿨리발리가 발전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도훈은 혼란스러웠다.
이어지는 경기.
도훈의 첫 번째 돌파를 막아낸 리버풀의 기세는 상당히 올라가 있었다.
해낼 수 있다는 걸, 백도훈을 막아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리버풀 선수들은 이 경기 역시 잡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에 당연한 일.
그러나 그것이 적극적인 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철저히 약팀의 자세로 오늘 경기를 풀어나가려고 작정한 자세는 유지.
따라서 주도권은 여전히 맨유에게.
“백도훈, 포그바에게. 포그바, 다시 옆으로 내줍니다.”
도훈은 일단 천천히 경기를 풀어 나갔다.
공을 잡기만 하면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기 보단, 폭 넓게 동료들에게 패스를 뿌리며 상대 선수들이 한 발 더 뛰도록 유도했다.
도훈에겐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까, 그 승부에 대해.
일단은 이미 지나간 승부.
그러나 어떤 승부든 그 승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꽤 오랜만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도훈은 원래 승부에서 졌을 때 하던 것을 상기했다.
바깥 세상에서야 패배를 모르는 도훈이었지만 동굴에선 수백, 수천 번을 져봤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자신이 왜 졌는지에 대해 스스로 찾아보며 이유를 찾았다.
승리보다 패배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건 그 때 이미 안 사실.
도훈은 방금의 승부를 곰곰이 생각해보다, 조금 특이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었다는 걸 캐치해냈다.
퍼어억-!
기의 충돌이었다.
쿨리발리의 왼쪽으로 파고들려 하는 순간.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무의식 중에 분명히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 사이에서 기가 충돌하는 것이 느껴졌었다.
쿨리발리의 기와 반 다이크의 기가 충돌하며 반대 방향으로 발산 되었다는 것인가.
‘설마, 그런건가.’
그 기의 충돌.
겹치듯 가까이 붙어 있던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의 수비 대열.
그리고 자신을 막아설 정도로 빨라진 쿨리발리의 속도.
그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가능한 이야기는 하나뿐.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합리적인 추론은 가능했다.
‘꽤 준비를 많이 해온 모양이네.’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그들을 뚫어내지 못했다는 실망감 보다는 환희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재밌었다.
정말, 오랜만에.
사실, 그 동안 기의 성장이 더뎠던 건 그런 이유기도 했다.
더 이상 패배를 통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발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과제에 도훈은 희열을 느꼈다.
물론,
그다지 어려운 과제일 것 같지는 않긴 했다만.
“다시 백도훈에게.”
하프 라인 부근에서 다시 공을 잡는 도훈.
이 이상, 더 전진된 위치에서 공을 잡기란 상대의 높은 집중력 때문에 어려운 상황.
상대의 소용돌이 안으로 뛰어들기 전에, 도훈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추론을 바탕으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 번 그려본 뒤,
타타탓-!
뛰어 들었다.
“백도훈, 다시 돌파를 시도 합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시도하지 않을 선수가 아니죠!”
도훈은 진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타입이 아니었다.
도훈은 자신이 그 어떤 수비도 뚫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면,
뚫릴 때까지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진다는 건 이기기 위한 과정일 뿐.
동굴에서, 그런 식으로 도전해오는 도훈을 끝까지 막아냈던 수비수는 없었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그 때의 기분이 나는 느낌에,
도훈은 너무도 기분 좋게 상대의 중심부를 향해 공올 몰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해풍을 만나 돛을 편 쾌속선처럼.
“이번에도 쉽게 빠져 들어갑니다!”
다시 한 번 피르미누, 바이날둠, 체임벌린, 그리고 조던 헨더슨까지 제쳐내며 들어가는 도훈.
다시 마주하는 두 수문장.
척-!
박스 앞까지 다다른 도훈을 다시 한 번 겹친 형태로 막아서는 쿨리발리와 반 다이크.
오케이.
이제 좌, 우 둘 중 하나의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도훈.
도훈의 추론에선, 사실 이 선택 자체가 상대가 유도하는 방향이었다.
왼쪽을 택하든, 오른쪽을 택하든 상대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게 되는 것이라는 것.
그러나,
‘움직여줄게.’
여기까진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게 좋을 듯 했다.
공략 포인트는 그 다음이었다.
타타탓-!
도훈은 다시 왼쪽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쿨리발리의 왼쪽을 향해 파고드는 도훈.
‘지금.’
그리고, 도훈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흘렀다.
아까의 승부를 복기하며 캐치해냈던 기의 충돌.
그 충돌이 지금도 느껴졌기 때문.
과연 그것이었나.
확실히, 준비를 많이 하긴 했어.
하지만 비장의 무기는 말 그대로 비장의 무기일 때 무서울 뿐.
알고 있다면 보통의 무기보다도 쉽다.
타탓-!
도훈은 급제동을 걸었다.
순간 속도로 왼쪽을 향해 돌파하려는 듯 달려들다, 빠르게 공을 세우며 멈춰선 것.
그리고,
타타탓-
쿨리발리가 그 앞을 지나쳤다.
막아서는 게 아니라, 지나쳐 버리고 만 것.
쿨리발리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도훈을 지나쳐 몇 발자국이나 더 달려갔다.
‘자기의 속도가 아니니까.’
쿨리발리 조차도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의 속도.
그것은, 누군가가 전해준 속도였다.
도훈이 왼쪽을 선택한 순간.
반 다이크가 쿨리발리를 밀어버린 것이었다.
그 추진력으로 쿨리발리는 도훈의 속도를 순간적으로 앞지를 수 있었던 것이고, 도훈에겐 그 기의 충돌이 느껴진 것이었고.
그러니, 이렇게 멈춰 버린다면?
“어엇!”
“공간이!”
쿨리발리는 멈춰설 수 없을 것이고, 떨어져 버린 둘의 사이로 공간이 나오는 것이었다.
타타탓-!
그러나,
반 다이크의 대처도 빨랐다.
곧바로 어금니를 깨물며 도훈의 앞을 막아서는 반 다이크.
설마, 단 한 번만에 한 달을 넘게 준비해 왔던 비장의 무기를 간파해낼 줄이야.
하지만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백도훈이니까.
‘와라. 진짜 비장의 무기는, 이제부터다.’
기다리는 반 다이크.
2대1은 몰라도,
1대1은 아주 쉬운 과제조차 될 수 없다.
도훈이 반 다이크에게 달려 들었다.
쉬이이익-
자신의 오른쪽으로 달려드는 도훈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깨무는 반 다이크.
이거였다.
이 눈속임에 속아 자존심을 짓밟혔던 게 지난 경기에서의 일.
때문에, 이 속임수에 속지 않기 위해 그 동안 어떤 노력을 해왔던가.
별의 별 짓을 다해봤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시각 정보를 믿지 않고, 오로지 청각 정보에만 집중한다는 건.
그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훈련으로 되지 않는 일은 없었다.
반 다이크는 자신의 오른쪽을 지나치는 백도훈을 바라보면서도 섣불리 몸을 돌리지 않았다.
이 시각 정보는 속임수.
대신, 귀를 기울였다.
땅이 밟히고 잔디가 짓이겨지는 그 소리.
그 소리가 나는 쪽이 진짜였다.
그런데,
“...!?”
소리가 왼쪽에서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눈으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바람까지 느껴지고 있었고.
그렇다면,
‘속임수가 아니라고?’
커지는 반 다이크의 동공.
있을 수 없었다.
속임수가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달려들었다면, 그건 전혀 백도훈답지 않은 드리블이었으니까.
만약 보이는 대로 몸을 돌려 따라갔다면 쉽게 막혔을 텐데.
뭘 믿고?
대체, 어떻게?
“제쳐냅니다!”
“역시 백도훈!”
그러나,
반 다이크가 한 가지 간과하는 사실이 있었다.
‘환영신보.’
도훈이 사용한 건, 저번 경기에서 반 다이크를 속여냈던 그 환영신보가 맞았다.
하지만, 꼭 환영신보를 사용한다고 해서 환영의 반대로 본체가 움직이라는 법은 없었다.
도훈은 먼저 환영을 보내고, 반 다이크가 환영을 따라가지 않자 본인이 잔상처럼 환영에 따라 붙었다.
그리고, 그 속도가 번개같이 빨랐다.
애초에, 둘이 힘을 합쳐야만 따라 잡을 수 있었던 그 속도.
그렇게,
‘쉬워.’
도훈은 반 다이크의 옆을 지나쳤다.
< 비장의 무기 (3)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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