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11화 (111/173)

< 비장의 무기 (1) >

“소개 합니다! 우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백도훈 선수를 모시겠습니다!”

“와아아아!”

브라질과의 평가전이 끝난 후, 영국으로 다시 떠나기 전까지 남은 이틀의 시간.

쉬기도 빠듯한 시간에 도훈은 한 가지 행사에 기꺼이 참여했다.

“안녕하세요.”

“백도훈! 백도훈!”

도훈이 단상에 오르자 엄청난 환호로 환대하는 사람들.

다들 축구복 차림을 한 것을 보니 축구를 하러 모인 사람들인 듯 한데.

바로, 이 곳은 더 찬스 2022, 2차 예선이 열리고 있는 현장이었다.

이 곳에 도훈이 오늘 특별 멘토로 초대가 된 것.

2년 전 당시, 도훈이 황희찬에게 멘토를 받았던 것처럼.

“백도훈 선수는 2020 더 찬스의 참가자셨죠?”

“네, 맞아요. 2년만에 참가자에서 이렇게 심사위원으로 다시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동굴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온 뒤.

곧바로 참가했었던 더 찬스.

더 찬스는 말 그대로 도훈에게 기회였다.

그 기회로, 밀란과 계약할 수 있었고 밀란에서 챔피언스 리그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으니.

그리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도훈에게 더 찬스는 꿈을 이룰 수 있게 해준 첫 계단.

당연히 뜻 깊을 수밖에 없는 더 찬스니, 오늘도 기꺼이 멘토로 이 자리를 찾은 것이었다.

“대박...”

“진짜 오늘 잘 하고 싶다..”

선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도훈을 바라보는 참가자들.

아마 이들 모두가 자신이 제 2의 백도훈이 되기를 꿈꾸고 있을 것.

물론, 대다수에게 제 2의 백도훈이 된다는 건 말뿐인 이야기겠지만.

“그 때 심사위원이 누구셨죠?”

“저 때는 허정무 감독님, 차범근 감독님이셨죠.”

“아, 기억 납니다. 그 두 감독님들께서 직접 백도훈 선수를 뽑으셨었죠. 그 때 차범근 감독님도 백도훈 선수의 플레이를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시는 게 기억납니다.”

“예, 저도 오늘 그런 플레이를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왔습니다. 그렇지만요, 한 가지 분명히 말씀 드릴 건 저와 함께 뽑혔던 다른 한 명이 무슨 이유로 선발이 되었는 지를 참가자 여러분께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최종 2인에 같이 선발 되었던 임찬주의 이야기를 꺼내는 도훈.

1차 예선에서 중하위권.

2차 예선에서는 턱걸이로 통과.

최종 예선때까지도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임찬주라는 참가자.

그러나, 팀을 위하는 자세.

헌신, 그리고 절박함에서 나오는 끈기와 오기.

그리고, 믿음.

“중요한 건 세계에서의 경쟁력을 갖출 자세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또 그걸 넘어서, 프로가 되어서도 최고가 되기 위해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느냐. 그걸 가지셔야 합니다.”

이젠 전 세계인들이 아는 백도훈이라는 이름 석 자.

그러나 세계에 그 이름 석 자를 떨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중요한 건 당장의 축구 실력보다도, 그 어려움을 뚫고 이겨낼 수 있는 의지가 아닐까 싶었다.

“또한, 자신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에이 나는 그 정도까진 될 수 없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오늘 테스트 조차 통과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는 분들은 반드시 오늘 테스트를 통과하실 겁니다. 제가, 그런 마음으로 통과 했으니까요. 다들 행운을 빌겠습니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참가자분들, 다 마음 깊이 새기셨나요?”

“예!”“넵!”

“그럼, 본격적으로 백도훈 선수의 멘토스쿨을 진행 하도록 하겠습니다!”

도훈은 아직도 더 높은 꿈을 바라보고 있지만,

누군가는 지금의 도훈이 저 하늘 높이 떠있는 별같은 존재로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 도훈은 꿈, 그 자체.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

제 2의 백도훈이 되는 건 정말 불가능할까?

모든 건 불가능의 연속이었다.

엘리트 참가자가 아닌 일반인 참가자.

아시아인.

17살.

올림픽 메달.

챔피언스 리그 우승.

양대 리그 득점왕.

그리고 발롱도르까지.

가능해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결국 도훈은 해냈다.

불가능이란 없었다.

‘나도 백도훈이 될 수 있어..!’

충분히 가능한 일들 뿐이었다.

도훈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의 귀감이었다.

애초에,

도훈의 시작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부터 였으니까.

ㆍㆍㆍ

A매치 주간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온 도훈과 맨유 선수들은 각자의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에서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선수들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팀을 위해 한 몸을 바칠 차례.

쉴 틈은 없었다.

“23경기 연속 득점, 백도훈! 대단합니다! 대단한 순간입니다!”

“23연승! 23연승입니다! 정말, 정말 꿈의 전승 우승이 가능할까요, 맨유!”

리그 23라운드, 에버튼전.

맨유는 3대1로 승리를 거두며 리그 23연승을 이어 나갔다.

이제 우승 경쟁이라는 건 물 건너 간 이야기.

그저 전승 우승이 가능할 것이냐, 하는 말도 안되는 관심사만 남아 있을 뿐.

맨유와 도훈은 멈추는 것을 잊어 버린 듯 했다.

그리고 그 주 주중에 펼쳐진 카라바오 컵 결승전.

아스날과의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토레이라, 라카제트에게! 라카제트, 라카제트! 골!”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스날의 공격수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는가 싶었으니.

그러나,

“제시 린가드, 포그바에게! 포그바 슈우웃! 들어 갑니다!”

곧바로 10분 뒤 터진 포그바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추었고,

“신중하게 프리킥을 준비하는 백도훈. 달려 듭니다! 슈우웃-!”

“들어갔어요, 들어갔어요!”

이윽고 도훈의 환상적인 프리킥까지 터지며 경기를 뒤집는 맨유.

아스날은 리그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고, 유로파 리그에서도 16강에서 탈락했으며, 남은 게 이 카라바오 컵 하나뿐이었기에, 오늘 이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랐지만,

“맨유 선수들, 투혼을 보여 줍니다!”

“끝까지 따라가 공을 살려내는 에레라!”

카라바오 컵을 위해 뛰는 맨유 선수들의 태도는 그것보다도 더 절박한 것처럼 보였다.

리그에서도, 컵에서도 모두 승승장구하고 있는 맨유인데.

거머쥐면 좋겠지만 놓쳐도 그만인 카라바오 컵을 위해 그렇게까지 뛰는 맨유 선수들을 아스날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맨유의 마인드는 아예 달랐다.

이미, 모든 우승컵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우승컵들을 거머쥐는 게 아니라 빼앗기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맨유였기에.

거머쥐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

당연히 후자 쪽이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삐이익, 삐이이익-!”

“21/22 시즌 카라바오 컵, 맨유의 우승입니다!”

맨유는 올 시즌 첫 번째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었다.

아니, 놓치지 않았다.

“백도훈! 오늘도 보여주는 구나!”

“믿고 있었다! 이대로 컵, 리그, 챔스까지 모두 가보자!”

위대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ㆍㆍㆍ

“지그날 이두나 파크입니다.”

주중에 첫 트로피를 들어 올린 맨유는 곧바로 주말에, 독일로 날아왔다.

챔스 8강 1차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를 위해.

“도르트문트에서는 단연 마르코 로이스 선수를 주목해야 할 겁니다. 현재 분데스리가에서 폼이 가장 좋은 선수예요.”

8강인만큼 이제부터 쉬운 상대는 없을 터.

특히 도르트문트는 어쩌면 다른 상대들 보다도 원정 경기만 놓고 본다면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될 수도.

“여전하군.”

오랜만에 이두나 파크를 찾은 도훈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역시나 노란 물결로 넘실거리는 경기장.

환상적인 경기장이었다.

사실, 8강 대진이 완성된 이후로 이 날만을 기다린 도훈이었다.

도훈이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시절.

이 경기장은 도훈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줬었으니까.

도훈에게 있어 이두나 파크는 ‘짜릿함’ 이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경기장이었다.

“경기가 시작 됩니다.”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시작되는 경기.

때문일까.

전반을 시작하는 도르트문트의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독일의 확고한 에이스 노릇을 하며 팀을 뮌헨과 우승 경쟁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 로이스의 몸놀림은 매우 가벼워 보였다.

뿐만 아니라 제이든 산초, 파코 알카세르 등 도훈이 라이프치히 소속으로 상대했었던 선수들 역시도 날카로운 모습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고.

특히 사고를 칠 뻔한 건 역시나 마르코 로이스였다.

“산초, 슈우웃-!”

“뭐죠! 골인가요? 노 골인가요?”

전반 12분 벼락같이 때린 로이스의 중거리 슈팅.

골키퍼 키를 넘기는 슈팅은 골 포스트를 맞고 수직으로 떨어졌다.

그 공이, 골 라인을 넘었는지 넘지 않았는지 애매한 상황.

그러나 시스템 판독 결과 정말 아슬아슬하게 노 골이었다.

실점이나 거의 다름 없었던 상황.

맨유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도르트문트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으니.

그 아쉬운 슈팅을 기점으로 더욱 응원의 열기가 거세지는 이두나 파크.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

아니, 정말 기다렸었다.

홈팬들의 그 응원 소리가 가장 커지는 그 순간을 위해 도훈이 얼음물 한 바가지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걷어 냅니다!”

“역습! 백도훈입니다, 백도훈!”

도르트문트와 이두나 파크의 기세가 최고조로 달아 올랐을 때.

도훈이 역습에 나섰다.

근데, 사실 예상치 못한 반응이긴 했다.

원래는 역습 한 방으로 골을 집어 넣고, 조용하게 적막에 잠기는 이두나 파크를 예상했었던 도훈이었다.

하지만,

도훈이 공을 잡고 하프 라인을 넘어 달리는 것만으로.

이두나 파크의 함성이 곧바로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리 지레 짐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온 것이었다.

도훈이 공을 몰고 달리면, 그 끝의 결과가 어떨지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공을 잡고 자신들의 골대를 향해 달리는 도훈의 모습을 보며, 수만 여명의 도르트문트 팬들이 지레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빠릅니다!”

“제치고 들어 갑니다!”

뻐어어어엉-!

슈우우웅-

철썩-!

그리고, 도훈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주고야 말았다.

짜릿하다.

도훈은 익숙함에서 찾아오는 짜릿함에 몸을 떨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던 이두나 파크에 적막이 찾아 들었고,

환호하는 건 도훈과 맨유였다.

도르트문트와의 8강 1차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그 1차전에서, 도훈은 역시나 해결사였다.

프로 데뷔 시즌에 뮌헨을 비롯한 거인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랑리스테 월드 클래스를 받아냈던 그 시절의 위용은 어디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으면 강해졌을 뿐.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그 날의 기억과 악몽을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었고,

경기는 3대1.

맨유의 승리였다.

도훈은 총 두 번이나 직접적으로 이두나 파크를 적막에 잠기게 만들었으며, 나머지 한 골을 도우며 경기를 완벽히 승리로 이끌었다.

완벽했다.

그 말밖에, 도훈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ㆍㆍㆍ

하지만, 완벽함의 기준은 다른 사람들과 도훈에겐 달랐다.

다른 사람들의 눈엔 이미 그보다 완벽할 수 없는 백도훈이라는 선수.

그러나 도훈은 아직도 본인 기준의 완벽함에 다가가기 위해 수련 중일 뿐.

도훈에게 있어 완벽함의 기준이 되는 건, 역시나 스승님.

‘시간이 많지 않아..’

동굴에선 남는 게 시간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것이 시간이었고.

동굴에서 나온 뒤로, 솔직히 수련의 성과는 매우 더딘 편이었다.

당연했다.

현실에서의 2년은 동굴에서의 2달 정도로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니까.

어쨌든 그런만큼, 할 수 있는 건 더욱 수련에 매진하는 것뿐.

도훈이 현재 수련하고 있는 초식은 꽤나 여러 개.

1성에 거의 다다른 초승달 차기나 선풍각 이외에도, 두어 개 정도의 초식을 매일같이 수련 중인 도훈이었다.

사실, 직접적인 드리블, 그러니까 보법류의 초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기본적인 드리블에 더해 유령신보, 환영신보, 그리고 지주신보까지.

이것만으로도 지금껏 그 어떤 수비수도 뚫어내지 못한 적이 없던 도훈이었으니.

하지만, 이제부터는 한 번의 대결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지느냐 아니면 마침표를 찍느냐가 걸려 있는 중요한 매 순간이 될 것이었다.

이젠 도훈의 유령신보도, 지주신보도 마주해 본 선수들이 많아졌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간 아무리 도훈이라고 해도 그 기술들이 막히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순 없었다.

그게,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닥친다면.

높은 곳에서 추락 할수록 추락은 긴 법이었다.

분명히 도훈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현재, 세계 축구의 1인자였다.

1인자는,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견제를 받는 자리.

지금도 수십 개의 팀이, 수백 명의 선수들이 자신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백도훈이라는 선수를 파훼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어두운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 맨 몸으로 서 있는 기분. 세계 최고의 자리는 그런 무게를 가지고 있는 법이다.”

도훈은 스승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잊을 수 없었다.

매 경기, 매 순간 느끼고 있으니까.

다만 뚫고 나갈 뿐.

‘빠르면 챔스 결승때. 늦어도 월드컵 전까지.’

오늘도 어김 없이 초식 수련을 마치고 가쁜 숨을 내쉬는 도훈.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를 위해 반드시 숨겨둔 비장의 무기는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 비장의 무기를 갈고 닦는 도훈이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비장의 무기는 언제까지나 비장의 무기로 남는 것일 것일 테지만.

< 비장의 무기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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