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10화 (110/173)
  • < 거짓말쟁이 (2) >

    선수단 전원이 유럽, 그것도 상위 리그의 상위권 팀 소속 선수들인 브라질.

    이 멤버가 웬만한 유럽 클럽 팀들과 맞붙는다 해도 이기면 이겼지 지진 않을 것 같은 포스를 풍기는데, 그런 브라질이 한국을 상대하기 위해 직접 한국까지 날아 왔다.

    예전이라면 선수들도 불평을 터뜨렸을 것이다.

    굳이 아시아의 먼 나라까지 원정 경기를 뛰러 가야하느냐고.

    아직 조추첨이 이뤄지진 않았지만, 브라질은 월드컵을 준비하며 조별예선에 대해 특별히 대비하고 준비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브라질이 대비하는 건 토너먼트 이후 강팀들과의 경기를 대비하며 언제나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니까.

    때문에 평가전도 언제나 강팀들 위주로 상대했던 브라질이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전은 모든 선수들이 진지하게 준비했고, 오늘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돈이나 받고 설렁 설렁 뛰며, 주전 선수들은 벤치에 앉아 시간이나 보내며 단순히 휴가 정도로 생각하고 쇼핑이나 하고 가는 것이 아니란 말이었다.

    파아앙-

    파아앙-!

    “카세미루, 페르난지뉴에게.”

    “패스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확실히 남미 예선을 1위로 통과한 팀답게 선수들간의 호흡이 좋습니다. 단순히 스타 플레이어들이 모인 팀은 조직력이 그다지 좋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 있죠. 현재의 브라질에겐 그게 정말로 편견입니다. 오히려 수비력과 조직력으로 승부보는 팀이예요. 실점도 적고요. 물론, 그게 공력 쪽에서의 화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죠.”

    “네이마르!”

    한국도 분명 이강인, 백승호 등의 좋은 선수들로 중원이 구성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 기준.

    브라질 기준에서 본다면 그 선수들이 대표팀에 소집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수준이었기에, 경기 주도권은 브라질이 꽉 쥔 채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격을 풀어가는 브라질의 에이스 네이마르.

    “네이마르를 모르시는 분들은 많지 않겠지만, 쉽게 설명드리면 브라질의 백도훈입니다.”

    하프 라인에서 부터 공을 몰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네이마르.

    유연하고도 편안해 보이는 몸 놀림.

    무릇 브라질 사람이라면 골목길의 코흘리개도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안다는 이미지가 있을 정도.

    하물며 그런 브라질의 에이스인 네이마르는 어떨까.

    공을 보지도 않고 전방을 살피며, 그러면서도 한국 선수들을 가볍게 제쳐내고 중원을 가로 지르는 네이마르.

    “오...!”

    “네이마르를 눈 앞에서 보다니..”

    네이마르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터져 나오는 탄성.

    오늘 경기의 표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네이마르를 비롯한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으니까.

    확실히 달랐다.

    아무리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세계권에서 노는 선수들의 플레이는.

    파아앙-!

    “필리페 쿠티뉴에게!”

    “FC 바르셀로나에서 뛰고 있는 아주 재능 있는 선수입니다!”

    중앙의 좁은 공간에서 공을 받는 쿠티뉴.

    그러나 여유 있게 돌아선 쿠티뉴는,

    뻐어어어엉-!

    곧바로 중거리 슈팅을 때렸다.

    ‘쿠티뉴 존’ 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게 쿠티뉴의 오른발 감아차기.

    슈우우우웅-!

    “살짝 빗겨 갑니다! 위험했습니다!”

    “저 위치에서는 쿠티뉴의 오른발을 잘 잡아줘야 해요! 한 번 더 슈팅을 허용했다간 곧바로 실점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 빗나가는 슈팅.

    그러나, 날카롭게 휘어드는 그 궤적에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탄성.

    “실제로 보니까 엄청 휜다, 야.”

    “불광동 쿠티뉴라고 하고 다니는 거 취소해야 겠다..”

    쉽지 않음을 느끼고 한숨을 내쉬는 한국 선수들.

    전혀 저지하지 못했다.

    사실 이번에 대표팀이 소집된 후 실질적으로 훈련을 맞춰본 건 딱 이틀.

    먼 원정을 온 상대 앞에서 할 이야긴 아니지만, 아직 제대로 합을 맞출 시간은 부족했던 대한민국 대표팀이었다.

    때문에 분명히 수비에선 허점이 크게 드러날 수도 있는 경기였다.

    다만,

    “조현우 키퍼의 골 킥으로 재개 되겠습니다.”

    공격에서는 이 쪽에서도 보여줄 게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브라질이라 해도.

    파아앙-!

    “짧게.”

    후방부터 짧게 이어가는 한국.

    조현우 키퍼의 골 킥을 이어받은 김민재는, 곧바로 공을 받으러 내려오는 동료에게 공을 건넸다.

    “백도훈이 이어 받습니다!”

    “대한민국의 백도훈!”

    도훈이 공을 잡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게 터져 나오는 환호성.

    사실,

    오늘 경기의 표를 구하기 힘든 진짜 이유는 어쩌면 브라질의 초호화 멤버 때문보다도, 바로 도훈 때문이었을지도.

    “붙어!”

    “공간 주지 마!”

    거의 중앙 미드필더처럼 내려가 공을 잡은 도훈.

    그러나, 그런 위치임에도 브라질 선수들은 곧바로 도훈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경기를 통해 브라질이 얻고자 하는 건 단 하나.

    “월드컵 우승을 위해 득점왕을 보유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무조건 수비, 수비다. 수비가 강한 팀만이 월드컵 우승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치치 감독의 말처럼, 그 어떤 팀을 상대로 하더라도 최소한의 실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비 조직력을 갖추는 것.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아주 좋은 상대였다.

    자신들의 수비를 시험 받을 수 있는.

    솔직히 지역 예선 때의 남미 공격수들 상대로는 아쉬웠다.

    약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완벽하다는 건 있을 수 없듯 분명 월드컵 본선에서는 약점이 노출될 수도 있을 것.

    그 이전에, 누군가 한 번쯤 시원하게 그 약점을 찾아줬으면 하는 게 브라질 치치 감독의 생각.

    ‘따끔하게 매를 들어다오.’

    때문에 오히려, 치치 감독은 오늘 도훈이 자신의 팀을 헤집어 놓는 모습을 원하고 있었다.

    도훈이 그것까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일단은 치치 감독이 원하는 그림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 같긴 했다.

    스르륵-

    스르륵-!

    강하게 붙어오는 쿠티뉴와 비니시우스.

    그러나 도훈은 발바닥으로 요리 조리 공을 굴리며 두 명의 압박 속에서 공을 지켜냈다.

    유연함, 침착함.

    그리고,

    툭-

    파아앙-!

    “와...!”

    화려함까지.

    누가 브라질리언인지 헷갈리는 장면.

    도훈은 공을 살짝 띄운 뒤 다시 뒷꿈치로 높게 띄워 올리며 돌아서 두 명 사이를 빠져 나왔다.

    그 동작에 터져 나오는 탄성.

    ‘역시 한국에서 뛰는 게 가장 기분 좋다니까.’

    그 탄성을 오랜만에 느껴보는 도훈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뛸 때도 압도적인 홈 팬들의 응원 소리에 힘이 나지만, 정말 관중의 99퍼센트 이상이 한 번에 내는 완전한 함성은 그보다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 함성을 조금 더 크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타타탓-!

    “몰고 올라갑니다, 백도훈!”

    “빠르죠! 브라질 선수들도 쉽게 대비할 수 없을 겁니다!”

    빠르게 중앙으로 공을 몰고 올라가는 도훈.

    그러며 도훈은 좌우를 살폈다.

    ‘음..’

    일단 동료들이 상대 진영을 향해 올라가고는 있었다.

    전방에서도 빈 공간을 만들어 보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주고는 있었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효과적인 움직임들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대 수비 조직력을 붕괴시킬만큼의 움직임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게 사실.

    그게 가능했다면 한국이 브라질보다 강팀이었을테지.

    그러나 이미 예상한 바였다.

    맨유에서처럼 동료들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바라며 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맨유의 백도훈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백도훈이니까.

    그에 맞게 뛸 뿐.

    “레알 마드리드의 카세미루와, 맨체스터 시티의 페르난지뉴가 막아 섭니다!”

    중원의 저지선을 만드는 카세미루와 페르난지뉴.

    한 명만 중원에 있어도 상대를 질리게 만들 수 있는 선수가 동시에.

    그러나,

    도훈은 전혀 위압감을 느끼지 못하며 둘을 향해 달려 들었다.

    그저 도훈이 둘을 향해 달려들며 기대한 건,

    몇 초후 터져 나올 거대한 환호성뿐이었다.

    “와아아아...!”

    그리고 잠시 후, 기대했던대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제쳐 냅니다, 백도훈!”

    “이거죠! 이겁니다!”

    유령신보를 활용하며 말 그대로 유령처럼 카세미루와 페르난지뉴 사이를 돌파하는 도훈.

    페르난지뉴는 특히 불과 며칠 전 도훈과 맞상대를 했었던 입장.

    그런 페르난지뉴조차 쉽게 돌파를 허용했다는 건,

    다른 선수들에겐 굉장한 적신호.

    도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만 보며 공을 몰고 들어갔다.

    어차피 브라질도 도훈이 계속해서 돌파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수비진 전원이 중앙으로 몰려 들었다.

    다시 한 번 그 많은 상대의 정면으로 파고드는 도훈.

    ‘잘들 봐둬요.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예요.’

    도훈은 보여주고자 했다.

    굳이 공을 잡자마자, 처음의 공격부터 이렇게 모든 집중을 쏟으며 돌파를 시도하는 이유.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나라가 월드컵 우승을?”

    “백도훈이라도 그냥 하는 말이겠지. 설마 진지하게 한 말이겠어.”

    월드컵 우승이 목표라는 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쉬이익-

    쉬이이익-!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달려드는 브라질의 레오 산투스를 상대로 멋진 바디 페인팅을 선보이는 도훈.

    아직 경험이 풍부하지 못한 산투스는, 어디서도 해보지 못한 귀중한 경험을 맛봤다.

    상대의 몸이 두 개가 되는 경험을.

    타타탓-!

    환영신보로 산투스를 제쳐내고, 이제 다음 상대.

    산투스가 제쳐지자 마자 곧바로 오른쪽에서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알렉스 산드로.

    그러나 그렇게 동작이 큰 태클로는 도훈의 공을 빼앗아낼 수 없었다.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해도,

    파팡-!

    세밀한 컨트롤이 가능한 도훈이기에.

    양발 드리블로 산드로의 태클을 피해내는 동시에, 전진을 멈추지 않는 도훈.

    순식간에, 최종 수비.

    다비드 루이스의 차례.

    ‘어쩌란 말이야!’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동료들, 그리고 자신에게까지 넘겨진 폭탄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깨무는 다비드 루이스.

    지금껏 남미 예선을 치루면서도, 이렇게 단 한 명의 상대에게 동료들이 단독 돌파를 허용한 경우는 없었다.

    ‘이래서..’

    그리고 이게 치치 감독이 원했던 것.

    ‘예방 주사.’

    월드컵 본선에서 첫 경험을 하느니, 이렇게 먼저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지금으로썬 어쩔 수 없어도 좋았다.

    쉬이익-

    파아앙-!

    “다비드 루이스까지!”

    “백도훈!”

    번개같은 스텝 오버로 다비드 루이스마저 제쳐내고 오른발 슈팅 각도를 만들어 내는 도훈.

    그리고,

    뻐어어어엉-!

    체중을 실어 다시 골문 왼쪽 구석을 향해 슈팅을 꺾어 때리는 도훈.

    그 마지막까지 침착한 마무리에, 슈팅을 미리 예상하고 몸을 날리던 알리송 키퍼의 예측은 완전히 아마추어같은 실수가 되버리고 말았다.

    슈우우웅-

    철썩-!

    “고오오오오오올-!!”

    “와아아아아아-!!”

    골망이 출렁이는 순간, 귀가 멎을 듯 도훈을 감싸는 함성.

    도훈은 코너 플래그를 향해 뛰며 그 짜릿함을 만끽했다.

    “도훈아!”

    “역시 이 자식!”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동료들을 향해 두 팔을 뻗는 도훈.

    그것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는 맨유에서나 한국에서나 최고의 동료들과 뛰고 있습니다.”

    단순히 선수로서의 역량만 놓고 봐서는 맞는 말이 아닐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감.

    같은 나라를 대표한다는 유대감과, 아무리 친하다 해도 외국의 동료들과는 느낄 수 없는 친밀함.

    같은 피가 흐르는 동료들.

    오히려, 반드시 최고의 플레이를 펼쳐 보여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건 이 동료들이었다.

    이게, 올림픽 이후 숱하게 제의를 받았던 여러 나라들의 귀화 요청을 뿌리쳤던 이유였다.

    “백도훈이, 대한민국의 백도훈이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집어 넣습니다아아-!!”

    그 순간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나오는 함성은 저 멀리 화성에서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의 크기였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이이익-!”

    “네, 이렇게 경기 종료가 됩니다!”

    90분이 모두 흘러가고, 경기는 종료 되었다.

    치열한 공방전도 있었고, 거칠게 달아오르기도 했으며 화려한 볼거리도 많았던 90분 동안의 경기.

    결과는,

    정말 아쉽게도 3대3.

    무승부였다.

    브라질의 공격력은 도훈이라고 해도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팀의 수비수들에게는.

    하지만,

    “대~한민국!”

    “잘했다, 한국!”

    승리로 경기가 끝나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선수들을 향해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불만족스러운 경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브라질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며 가능성을 보았기에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경기.

    “백도훈! 백도훈!”

    그리고, 브라질 선수들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도훈은 자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고생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을 격려하며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는 치치 감독.

    결과는 아쉽지만, 어쨌든 원하던 성과를 100퍼센트 이상 거둔 오늘의 평가전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성과였달까.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지만.

    ‘따끔해도 너무 따끔했군.’

    혼자의 힘으로 3골을 터뜨린 상대 팀의 백도훈.

    그걸 해주기 바라긴 했지만, 원한 만큼 이상의 매운 맛을 보여줬던 백도훈이었다.

    그 수준은,

    혹시나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된다면 진지하게 두려울 정도였고.

    < 거짓말쟁이 (2)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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