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9화 (109/173)

< 거짓말쟁이 (1) >

“항상 이렇게 매일을 사시는 건가요?”

“그렇죠. 보통은요. 경기가 없는 날은 매일 이렇게 지낸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경기가 있는 날은 여기에 경기가 추가 되고요. 다른 건 없어요.”

“정말 축구만을 위해 사시는 군요. 당연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더 대단하네요. 이러니 이렇게 위대한 선수가 탄생한 것 아니겠어요.”

“위대하다니,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궁금해 하는 도훈의 하루.

대체,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사나이의 하루는 어떠할까.

거의 24시간을 옆에 붙어 촬영을 했던 BBC 리포터는 혀를 내둘렀다.

아침 5시 30분 기상.

30분 동안 명상 및 스트레칭.

6시부터 1시간 동안 구보 및 아침 운동.

식사 후 8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운동.

다시 2시부터 5시까지 오후 운동.

그리고, 8시부터 10시까지 저녁 운동.

오직 축구로만 가득 채워진 시간표.

이걸, 전혀 귀찮거나 힘든 내색 없이 숨 쉬듯 수행해내는 도훈을 보며, 다큐멘터리 촬영팀도 깊은 감명을 받을 수밖에.

타고난 재능으로만 생각했었다.

노력하지 않는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특히나 전 세계의 최상위권 선수들만 모인다는 유럽에서.

모두가 죽도록 노력할 것이었고, 그 중에서도 최고가 되는 선수들은 필히 타고난 재능으로 무장된 선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훈의 운동량은 지금껏 취재해 온 어떤 월드 클래스 선수들과도 비교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정말 노력으로 만들어진 최고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었다.

정말, 노력의 재능을 타고난 노력의 천재.

“의외네요.”

“그런가요?”

“이런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요?”

리포터의 질문에, 미소를 짓는 도훈.

어디 보자.

지겹다고 생각했던 게 언제였더라.

95년 쯤 전이었을까.

사실, 지겹다고 생각한 수준 정도가 아니라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해본 적 많죠. 수도 없이 지겹다고 생각했었어요. 수도 없이. 하지만, 익숙해 진거죠 지금은.”

“그 지겨움이 느껴질 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지겨움이 지겨워질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지겨움이 사라질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수련 했습니다. 이젠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때까지요. 그냥 하루의 모든 것이, 몸에 각인이 되었어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거죠. 필드 위에서 처럼요. 모든 건 몸이 먼저고, 나중에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이제 고작 17살이잖아요?”

“그런가요. 제가 17살이었군요. 하하. 축구에 빠져서 그런 걸 생각할 틈도 없어요.”

세상 사람들은 놀란다.

이제 고작 17살의 소년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된 것에 대하여.

하지만, 도훈의 생활을 밀착 취재하며 BBC의 다큐멘터리 촬영 팀은 놀랐다.

세상 사람들만 도훈을 17살 소년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도훈 자신은 오히려 자신을 17살의 소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의 축구 선수로서 생각할 뿐이지.

“이 정돈 해야 되는군요. 전 만약 이렇게 하면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보장이 있다 해도 말이죠. 이런 노력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진심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별 말씀을. 근데, 과연 그럴까요? 안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든, 상황이 주어진다면 할 수 있을걸요. 피할 수 없다면, 누구든 할 겁니다.”

도훈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어느 수준이죠?”

“말도 안되는 수준이죠. 축구가 아니라 다른 스포츠를 했어도 탑클래스를 찍었을 신체 능력입니다. 보시면 서전트 점프도 미국 NBA 선수들의 평균을 상회하고요. 50미터 달리기도 육상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더 대단한 건 50미터 이후 가속력도 더 붙는다는 점이고요. 이런 신체 능력에, 지금같은 기술을 가졌다는 건 정말 하늘에서 내린 재능이라는 거죠. 축구를 위해 태어난 몸입니다.”

신장 185센티미터.

몸무게 76킬로그램.

“삑! 5.25!”

“와...”

파주 트레이닝 센터 입성 첫 날.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간단한 체력 측정.

선수들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의례지만,

선수들이나 코치들은 구경이라도 난 듯 한 선수의 측정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선수로서도 놀랍고, 수많은 선수들을 봐왔을 코칭 스태프들도 놀라울 따름.

이게, 현재 세계 최고의 사나이.

50미터를 번개처럼 질주하는 도훈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고, 실제 측정된 그 기록 역시 혀를 내두르기에 충분했다.

“하아압!”

“79.3cm!”

다른 선수들의 머리 하나를 훌쩍 뛰어 넘는 서전트 점프.

“삑! 스피드 업!”

“허억, 허억..!”

“후우, 후우... 쟨 아직 숨도 안찼네..”

다른 모든 선수들이 나가 떨어진 뒤 한참이나 혼자서 훈련장을 몇 바퀴나 돌았을 정도의 월등한 체력.

그러나 가장 놀라운 건, 대표팀의 그 어느 선수들 보다도 장거리 비행을 마치고 온 도훈이라는 것.

그러나, 어떻게 이렇게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

동료들도 그 비결을 물어볼 정도.

하지만, 도훈의 대답이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항상 명상을 해요. 비행은 저한테 휴식 시간이나 다름 없죠.”

사실, 오히려 비행이 끝나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는 도훈이었다.

아무리 좋은 좌석을 타고 온다고 해도 그 안에서 몸을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비행이 끝나면, 몸 안에 기가 가득 찬 상태로 발산하고 싶어 미치겠는 것이다.

때문에 언제나 비행 뒤엔 오히려 컨디션이 좋은 도훈이었고.

“축구를 위해 태어난 놈이야..”

“뭐하냐. 다들 안 일어나고. 우리도 따라 가야지.”

“그래. 쟤보다 몇 배 열심히 해도 부족할 판에. 가자.”

그 존재 자체만으로.

동료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도훈.

그런 도훈도 누구보다 노력하고, 아직까지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도 알고 있기에.

도훈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어나 같이 뛰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도훈이 소속된 두 개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대한민국 국가대표.

올 해가 도훈에게 정말 중요한 해라는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맨유 소속 선수로서 팀이 도전하고 있는 모든 우승컵들을 위해 뛰는 동시에, 올 한 해를 마무리할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야 하는 해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앞선 것들이 끝나면 도훈은 올인할 생각이었다.

카타르에서,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를 위해.

만약, 대한민국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업적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사실 2월 평가전에 백도훈 선수를 굳이 차출해야 하냐는 여론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평가전 상대가 공개되기 전의 이야기였지만요. 어쨌든 워낙 많은 일정들을 소화하고 계시고, 한국까지 오려면 먼 거리를 비행해야 하니까요. 혹시, 이에 대해 힘든 점은 없으신지?”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런 여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맨유 소속 선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소속 선수입니다. 그런 질문은, 제게 왜 유럽에서 뛰는가라는 질문과 다르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힘든 점도 없습니다. 만약 힘든 게 있었다면, 경기장에서 드러났겠죠.”

첫 날 훈련이 끝나고, 기자들과 인터뷰 시간을 갖는 도훈.

도훈의 당당한 대답에 기자들은 다른 반론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

도훈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

언제나, 어디서나.

경기장에서 도훈에게 힘든 기색이라는 건 살펴볼 수가 없었다.

“현재 유럽 최고의 전력이라고 평가받는 팀에서 뛰고 계십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도전하고 있을 정도로 맨유에 비하면 언더독인데요. 이렇게 차이가 큰 두 팀에 동시에 몸 담고 계신데, 이런 점에서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 예를 들면 동료들과의 호흡 면이라든가..”

“아뇨, 없습니다.”

이번에도 도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맨유 동료들 보다 대표팀 동료들의 수준이 떨어지니 플레이에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고 물으신 것 같은데, 없습니다. 전 항상 최고의 동료들과 뛰고 있습니다.”

도훈의 단호한 대답에 헛기침을 터뜨리는 기자.

“이번 평가전 상대, 브라질입니다. 각오 한 말씀 해주신다면?”

“브라질은 다들 아시다시피 세계 최고의 팀이고, 우리 팀이 도전하는 입장이 될 겁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목표는 카타르 월드컵 우승이기 때문에, 브라질 정도는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평가전에서도 좋은 경기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언제나 ‘당돌하다’ 는 수식어가 뒤따라 다니는 도훈이었다.

그러나, 방금 도훈이 내뱉은 말은 지금까지 했던 그 어느 인터뷰 보다도 당돌하기 그지 없었다.

“목표가, 월드컵 우승이라고 하셨나요?”

“예. 카타르 월드컵 우승이 올해의 가장 큰 목표죠.”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앞다투어 노트북을 켜기 시작했다.

ㆍㆍㆍ

브라질과의 평가전.

사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브라질 정도 되는 세계 최강급의 나라와 평가전을 잡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연한 게, 단순한 친선 경기가 아닌 월드컵을 대비하는 평가전이기 때문에 언제나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나서는 브라질은 한국보다는 좀 더 강한 나라들과 경기를 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오히려 브라질 쪽에서 먼저 평가전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것도 한국에서 경기를 치룬다는 조항을 먼저 제안하기까지 하며.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되는 조항도 한 가지 있었다.

‘백도훈의 차출, 선발 출장.’ 이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공식적인 평가전에서, 한 선수의 출전을 필수로 하라는 제안을 하는 것은.

그러나, 한국 축구협회는 브라질의 제안을 수락했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한국에서 브라질과의 평가전.

흥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월드컵 대표팀에게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좋은 카드였거니와 대표팀에게 경험면에 있어서도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또한, 도훈으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좋은 기회일 뿐.

개인적인 목표로 세운,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가 망상이 될 지 현실이 될 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물론 망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애초에 목표로 잡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도훈은 무조건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수원 월드컵 경기장입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을 보면 아시다시피, 정말 뜨거운 열기가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요. 오늘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대표팀의 평가전 경기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브라질의 선발 라인업 살펴 드리겠습니다. 이게 저희도 사실 익숙치가 않은데요.”

“명단이 화려하죠? 절대 대충할 생각이 없는 브라질입니다. 지난 남미 예선 마지막 경기를 뛰었던 멤버들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나왔는데요. 이 명단이 그대로 카타르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이 될 거라 봐도 무방할 정돕니다. 진짜에요.”

[브라질 (4-2-3-1) 감독 : 치치]

GK 알리송 베커

CB 레오 산투스

CB 다비드 루이스

LB 알렉스 산드로

RB 다닐루

MF 페르난지뉴

MF 카세미루

MF 필리페 쿠티뉴

MF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MF 네이마르

FW 비토르 가브리엘

보기만 해도 화려한 라인업.

이 라인업이, 정녕 한국 대표팀을 상대하기 위해 한국까지 날아 온 라인업이 맞단 말인가.

그러나,

“이를 상대할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발 명단입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건, 대한민국 라인업에 백도훈이라는 이름 석자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설명될 듯 싶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저 화려한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 누구도 부럽지 않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설명해 줄 것이다.

도훈은 플레이로써.

왜 세계 최강 브라질이 이 먼 곳에까지 와서 먼저 경기를 하고 싶어했던 것인지.

그들이 무엇을 확인하고자 이 경기를 하려 했던 것인지.

보여줄 것이었다.

“삐이이이익-!”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시작 되었다.

< 거짓말쟁이 (1)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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