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년 수련한 축구선수-108화 (108/173)

< 라스트 펀치 (4) >

“린델로프가 길게 연결!”

전방으로 길게 때려 놓는 맨유.

쉬어갈 때가 아니었다.

완전히 쓰려 뜨려 놓을 시점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면,

언제든지 주먹을 날려 올 상대니까.

그리고 그 주먹에, 내가 뻗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

파아앙-!

린델로프의 롱 볼을 헤더로 따내는 라포르테.

타탓-!

그러나 도훈은 재빨리 세컨 볼을 향해 뛰었다.

아니, 이미 뛰고 있었다.

린델로프의 패스가 약간 부정확함을 빠르게 캐치했기에, 애초에 헤더 경합 대신 세컨 볼을 예상해 뛴 것.

툭-

덕분에 공은 다시 맨유에게로.

도훈은 공을 잡아두고 전방을 살폈다.

“올라가!”

여전히 선수들에게 외치고 있는 나겔스만 감독 덕분에 빠르게 좌우에서 올라가고 있는 풀백들.

그리고 린가드, 마샬이 좌우에서 안쪽으로 파고 들며 수비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뒤!”

스르륵-!

그렇게 도훈이 전방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사이, 포그바가 도훈에게 뒤를 조심하라고 외쳤다.

이미 기의 움직임을 읽고 있었기에 외쳐주지 않았다 해도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뒤에서 달려드는 발을 피해내며 다시 공을 컨트롤하는 도훈.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든 그 선수의 얼굴을 확인한 뒤 도훈은 됐다 싶었다.

“메시의 수비 가담!”

리오넬 메시가 여기까지 내려와 자신의 공을 빼앗으려 발을 뻗었던 것.

메시는 맨시티의 왼주먹이었다.

오늘 경기는 누가 이기는 게임이다?

상대방에게 마지막까지 주먹을 뻗는 팀이.

하지만, 상대는 주먹을 뻗는 대신.

라스트 펀치를 맞고 뻗어 버리는 게 두려워 주먹을 거둬 가드를 올리고 있었다.

이 뜻은,

‘우리가 이겼다.’

게임은 여기서 이미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젠, 마음 놓고 가드 위를 난타해 부숴버린 뒤, 드러난 턱에 진짜 라스트 펀치를 먹여 넣으면 끝.

“메시와 백도훈이 대치 합니다!”

도훈의 앞을 가로 막는 메시.

그러나 이 주먹은, 앞으로 뻗을 때만 무서운 것이지, 이렇게 막을 때 쓸 때는 전혀 무섭지 않은 주먹.

툭, 툭-!

“라 크로케타!”

“빠릅니다!”

메시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그러나 조금 다른 유령신보로 메시를 가볍게 제쳐내는 도훈.

그리고,

타타탓-!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

도훈이 파고드니 맨 시티의 온 신경이 가운데로.

그 틈에,

파아아앙-!

오른쪽으로 패스를 여는 도훈.

“디오고 달롯!”

크게 돌아 들어가는 달롯에게 연결되는 패스.

워낙 득점이 많이 나 잘 기억도 안나겠지만, 첫 번째 득점 장면이 떠오르는 상황.

그게 맹점이었다.

맨 시티의 수비수들도, 당장 첫 번째 실점 상황이 어땠는지 질문을 받았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워낙 실점이 많았으니.

유행이 돌고 돌듯.

공격 패턴도 돌고 돈다.

뻐어어엉-!

달롯의 크로스.

어느 새 맨 시티의 박스안에 혼잡하게 움직이고 있는 선수들.

그 사이에서, 달롯의 크로스는 첫 번째 골 때와 마찬가지로 그 혼잡지역을 약간 빗겨간 박스 뒤쪽으로 향했다.

‘멀다.’

이미 도훈은 문전을 향해 쇄도하다, 달롯과 눈을 마주친 뒤 박스 뒷편으로 빠져 나오고 있던 상황.

그러나 생각보다 달롯이 좀 더 크로스를 꺾었는지,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머리로 돌려 놓기엔 부담이 있는 거리.

타아앗-!

도훈은 골대를 뒤로한 채 힘껏 뛰어 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몸을 뒤틀었다.

슈우우웅-

그리고,

‘그 감각’ 이 다시 도훈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뻐어어어어엉-!

선풍각.

역시 실전에 강하단 말이야, 라며 도훈은 차오르는 쾌감에 미소를 흘렸다.

슈우우웅-

철썩-!

어퍼컷.

마치 와그작, 하고 턱이 부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도훈의 슈팅이 맨 시티의 골망을 갈랐고,

털썩-!

“무너집니다!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 라포르테! 그리고 맨 시티!”

맨 시티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마침내, 다운이었다.

라스트 펀치였다.

“삐이익,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다시 한 번 들썩이는 올드 트래포드.

5대3, 경기 종료.

“왜 우리가 더 힘드냐.”

“멋진 경기였어.”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이 숨을 헐떡일 정도로, 정말 빅뱅다웠던 경기.

그러나, 결국.

승자는 맨유였다.

“다섯 골. 대단합니다. 백도훈 선수가 가장 대단한 점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어떤 상대든, 아니 오히려 상대가 강할 수록 본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강팀에게 강해요.”

“사실 그 구분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죠. 강팀이라지만 백도훈 선수에겐 강팀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5골.

어디 리그 최하위권 팀에게 5골을 몰아넣는 것도 아니고, 모든 팀들이 두려워하는 맨체스터 시티에게 5골.

도훈의 폭발력은 팀을 가리지 않았다.

리그 22경기에서 43골.

그리고, 결장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리그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이어가는 도훈.

또한 전반기 결장했던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지난 번 다시 만났을 때 2골을 기록했던 도훈이니,

그 말은 이제 프리미어 리그에서 도훈에게 실점을 당해보지 않은 팀은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도훈 앞에선 평등했다.

물론 그렇게나 도훈을 이기고 싶어하던 음바페도 마찬가지.

‘이젠..’

고개를 푹 숙이고 경기장을 빠져 나가는 음바페.

싫었다.

이제, 이런 기분에 익숙해지는 자신이.

백도훈에게 패배하는 게 익숙해지는 이 기분이 죽을듯이 싫었다.

“킬리안.”

그런 음바페에게 다가오는 메시.

곧바로 경기장을 빠져 나가려는 음바페를 메시는 손짓해 불렀다.

“팬들한테 인사하고 가야지.”

“...”

메시의 말에 마지못해 선수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 원정 팬들에게 응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박수를 쳐주곤 다시 자리를 뜨려는 음바페.

그러나, 메시는 음바페를 한 번 더 불렀다.

“왜요, 또?”

“인사하고 와.”

“누구한테요?”

“백도훈한테.”

내가 왜? 라는 표정이 되는 음바페.

그러나 메시는 음바페의 등을 떠밀었다.

‘젠장.’

하는 수 없이 백도훈에게 걸어가는 음바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다.

특히, 오늘처럼 패배한 날엔.

만약 오늘 승리했다면 떳떳히 얼굴을 마주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겠지만.

녀석은 다섯 골을 넣었고, 자신은 두 골밖에 넣지 못했지 않은가.

완벽한 패배자가 되어서, 먼저 손을 내밀러 가라니.

“...”

“...”

얼굴을 마주하는 음바페와 도훈.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척-!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는 도훈과 음바페.

“좋은 시합이었다.”

“...그래.”

악수를 하자 마자 몸을 돌려 가는 음바페.

그런 음바페의 뒷모습을 보며, 도훈은 미소를 지었다.

벌써 4번이나 같이 시합을 펼쳤나.

그러나 한 번도 악수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잘했다.”

“...”

도훈과 악수하고 돌아오는 음바페를 기다렸던 메시.

메시는 음바페와 함께 드레싱 룸으로 향하며 말했다.

“킬리안.”

“...?”

“라이벌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법이 뭔 줄 알아?”

“뭔데요?”

“그 라이벌의 열렬한 팬이 되는거야.”

음바페의 등을 툭 쳐주고 먼저 드레싱 룸으로 들어가는 메시.

음바페는,

그런 메시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의 말은 흘려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왜냐면,

그야말로 지난 15년 동안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라이벌과 싸웠던 선수였으니까.

ㆍㆍㆍ

22라운드 기준

1위 백도훈 43골

2위 해리 케인 20골

3위 모하메드 살라 18골

4위 알렉상드르 라카제트 16골

.

.

.

“21경기 43골 13도움.”

“21경기 MoM 19회.”

“경기당 평균 드리블 8.1회.”

“드리블 성공률 90퍼센트.”

“리그 최다 키 패스, 찬스 메이킹.”

“출장 경기, 전승.”

그저,

공격수에게 가질 수 있는 모든 기록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훈.

그것도 압도적으로.

혼자 저 멀리 앞서 나가는 도훈의 퍼포먼스를 보며, 만약 호날두나 메시 둘 중 한 명이 없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하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누구도 도훈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 호날두라는 선수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난 10년 간의 발롱도르 수상자는 누가 되었을까?

설마, 앞으로의 10년간 발롱도르의 주인이 단 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 백도훈이라는 괴물의 질주를 막을 선수가 나타나긴 할 것일까?

만약, 앞으로의 10년이 아니라면, 앞으로의 100년은?

나타나긴 할 것인가?

백도훈보다 뛰어난 선수가?

“있죠. 저 보다 잘 하는 ‘사람’ 은.”

“대체 누굽니까? 그 스승이라는 분이..”

“몇 번이나 말씀 드렸지만, 그냥 동네 할아버지예요.”

시상식 장에서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몇 번이나 언급했던 스승님.

대체 백도훈보다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이 있긴 할 걸까 싶은 요즘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 스승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했다.

이미 한국에서는 그 스승의 정체를 찾기 위해 학부모들이 네트워크망을 펼쳐 수사에 나선 것은 물론, 여러 티비 프로그램에서 수소문을 하는 방송을 방영한 것도 수 차례.

물론 모두 허탕이었을 테지만.

“이번에 BBC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나 찍자고 하는데, 별 건 아니고. 이번 A매치 기간 동안 너 한국 가는 거 옆에서 따라 다니면서 찍는 거라는데, 어때? 너의 지난 어린 시절 한국 생활에 대해서 찍어보고 싶다는데.”

사실 영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표하는 건 이미 부지기수였다.

그 동안 많은 티비 쇼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었고, 뉴스에서도 섭외 요청이 있기도 했었고.

그러나 시간이나 스케줄이 맞지 않아 웬만한 건 모두 고사했었는데, 이번에 멘데스가 말한 건 해봐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죠, 뭐.”

그래서 수락.

잠깐의 리그 휴식과 더불어 평가전을 위한 국가대표 소집을 위해 도훈은 한국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ㆍㆍㆍ

2022년 2월 16일, 대한민국,

수원.

“여기가 예전에 살던 집이셨군요.”

“예. 여기서 태어나고, 16살때까지 살았어요. 지금은 이제 새 집을 짓고 있는 상태인데, 몇 개월 뒤면 완성이 될 거라고 하네요.”

“이런 말씀 드려도 될 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대해 힘든 점도 있었겠어요.”

“많았죠. 뭐, 보시다 시피 풍족하지 못한 집에서 자랐고.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살면서 빨리 어른스러워져야 했고. 뭐, 그게 다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되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니 지금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부족함 없이 자랐다면, 그런 독기를 품을 수 없었을 거고 이 자리까지 오지도 못했겠죠.”

몇 대의 카메라 장비.

그리고 도훈과 BBC 리포터.

대표팀에 합류하기까지 딱 이틀의 시간 동안 촬영될 다큐멘터리.

예전 세 식구가 살던,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집에 앉아 지난 날을 회상하는 도훈.

“사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그거 잖아요?”

“어떻게 갑자기 축구를 잘 하게 됐는가, 그거 말이죠?”

“맞아요. 그 과정에서 스승님을 만났고, 또 그 스승님의 정체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죠. 말해주실 수 있나요?”

도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말 못할 거야 없었다.

“그 분은 도사셨어요. 영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산 속에 기거하며 수련하는 몽크라고 할까요. 어느 날 산행을 하다 발을 헛디뎌 동굴에 빠졌는데, 그 동굴에서 그 분을 만났죠. 놀라운 건, 거기서 100년의 시간을 보냈다는 겁니다. 그 동굴은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이었거든요. 그 100년 동안 저는 바깥으로 나올 수 없었고, 그 도사와 함께 축구를 수련했죠. 예, 맞아요. 놀랍게도 도사는 축구도사셨어요. 그리고, 100년이 지난 뒤 저는 다시 바깥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지금과 같은 실력을 가지고 말이죠.”

도훈은 말을 마치고,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는 리포터.

도훈은 가감없이 천기를 누설해 버렸다.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푸하하!”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었으니까.

< 라스트 펀치 (4) > 끝

ⓒ 한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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